coo2.net - 송준희 칼럼 모음 (2001-2002)

오재성 선생님 답변자료 모음 ① - 참고하십시요 !

2001-02-05 17: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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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재성 선생님 답변자료 모음 ① - 참고하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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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05 17:11:32

   

오재성 선생님 답변자료 모음 ①


그동안 재야사학자 이신 오재성 선생님이 네티즌 여러분들의 질문에 답한 사항에 대하여 모아 보았습니다. 참고하십시오 !

< 고려 북쪽경계에 대하여 >

고려사 권 46에 의하면 서북쪽은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춘령에 대하여는 중앙도서관 소장 한61-77(고지도) 및 규장각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서북쪽 압록강은 현재의 압록강으로 볼수도 있지만 만주원류고 신라항목과 고려사 137권 철령위 및 고려사 권42권 동령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리웠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 신라방이 아니라 사로신라 >

현재까지 신라역사는 한반도에서 건국하고 통일한 이후 황해 서쪽에 신라인이 진출한신라방이 있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신라방이라는 지역에는 고조선 이전 한웅시대의 치우 천자능이 있고 김유신의 선조이며 신라인의 선조인 소호금천씨 능이 있고 기자가 살던 서화와 기자총이 있는 몽성이 있는데

신라방 지역에는 김유신의 전쟁지명이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진출한 신라인의 지역인 신라방일까 아니면 한웅 그리고 소호금천씨 및 기자를 계승한 신라가 있었고 그 역사가 우리 한반도 신라와 연계되고 하나의 민족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것 아닌지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

< 동이가 우리민족이라는 사서의 근거 >

중국의 정사인 25사에 보면

삼국시대를 나타내는 모든 기록에서 부여, 고구려, , , 백제, 신라, 가라는 동이의 각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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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위지 동이전 : 단군, 기자, , 한에 대한 기록이 동이전 속에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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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위서, 송서, 남사, 북사, 신구당서 등 여러 사서에서도 상기 국가들이 동이의 각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평양 및 경주 유적에 대한 답변 >

북한지역에 있는 고구려 유물은 32 - 503년까지 고구려가 한반도를 통치하였을 때 남긴 유물로 보아야 하며

경주의 유물은 503년 고구려연방의 지방""에서 독립한 신라의 유물로 보아야합니다

독립한 신라의 경계는 광령(지금의 요녕성 북진)에서 길림동쪽까지가 신라의 영토라고 만주원류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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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원류고 : 18세기 청나라에서 기록한 역사서

< 구리시대의 철사용에 대한 답변 >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역사에 관심을 가져 주시니 고맙습니다

고조선만 있다고 배운 역사로서는 이해하기가 곤란한 구리시대에 대하여 질의하신 이재성님께 짤막하나마 대답을 드림니다

중국25사의 첫번째 사서인 사기에 단군조선이전인 속칭 한웅시대로 불리는 시대의 구리의 통치자에 치우천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치우는 '옛 천자'라고 하였고 그와 대적한 인물이 중국역사의 시조로 추앙하는 헌원은 소전이라는 제후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헌원과 대적했던 천자 치우는 사기에서 '동두철액'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철가면을 했다는 기록으로 풀이할수 있습니다(사기11-4쪽에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동두철액이라는 기록이 있어 쇠붙이를 사용한 것으로 보고있고 그 이상의 기록을 소개할수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반도에 백제가 존재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변 >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역사에 관심을 가져서 감사합니다
황용호님께 짤막하게 답변을 드림니다

사로신라 백제 왜가 중국에 있었다고 하니 한반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므로 본 연구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할수가 있습니다

한반도 유적으로 백제는 공주의 사마왕능이 발견되었는데 백제가 한반도에 없다고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제가 없었다고 하는 것보다는 백제의 수도 한성 웅진이 한반도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것입니다

서울 석촌동 고분은 만주의 고구려 고분과 형태가 비슷하며 개로왕때 한성에 건설한 현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백제가 패망할때의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동명 덕안 동성 잠산 독산 평원 황산 백마하 주류자 침구 ()항성 등 많은 지명이 있고
위 지명이 있는 곳에는 치우천자능이 있다고 하였고 김유신 선조인 소호금천씨능이 있다고 하였으며 조선시대 기자총이 있다는 몽성도 같은 지역에 있으므로 동이족 역사의 연속성에 비중이 많이 가고 백제의 수도 웅진도 중국에서 찾아야 할것으로 보여집니다

백제가 고구려연방의 일부에 속하여 있을때 고구려태왕의 한반도 순행때 백제인이 동행하므로서 이땅을 알았고 백제가 고구려연방으로부터 광복하고 진출하여 금강유역을 통치한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백제의 한반도 진출은 고구려지방관으로 보이는 간() 503년 마립간에서 왕으로 변경하여 한반도와 만주를 통치하던 신라가 독립하게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보여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백제유물이 존재하는 한 백제와 무관하다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분에 얽매이지 말고 전체를 보는 시각으로 해법을 찾고 있는 중이므로 많은 도움을 주시기 바람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가 우리역사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한민족이라하고 만주에는 여진족 만주족이 있다고 하여 삼국민의 후예가 다른민족으로 보고있는 국사관에서 삼국민의 후예가 하나되는 민족사관으로 삼국시대를 재조명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단군은 진짜인가에 대한 답변 >

현재 눈으로 보고 있는 것도 어느것이 진실인가를 의심하게 됩니다. 하물며 고조선이 있었고 단군이 있었다고 하는 것에 의심을 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족보라는 기록으로 가문의 역사를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족보에서 시조부터 본인을 찾아가라고 하면 몇분이나 자신있게 시조로부터 본인까지 도달하겠습니까? 그러나 본인에서 시작하여 시조를 찾아가라고 한다면 찾아가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역사에서 단군이 있었다고 기록하여 알수있습니다
야사라고 불리우는 삼국유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단군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국사에서는 단군이 우리역사의 첫장을 열었다 즉 개국했다고 하지만 중국25사에서는 단군조선 이전 치우 천자가 다스리던 '구리'라는 나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야사에서는 치우는 여러 한웅 중 한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단군은 찐짜있는가?' 라는 물음에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단군의 능이 어디에 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북한에서 단군능을 조성한것은 얼마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단군 이전의 통치자 천자 치우능이 중국의 산동성 동평군에 있다는 기록이 '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이 있으니 믿어야 연구가 될것입니다

만약 6.25 동란때 할아버지가 어디서 전사를 했는지 모르고 시신을 거둘수 없어서 묘를 만들지 못하고 증조할아버지는 고향에서 돌아가셔서 묘를 조성하였다고 기록으로 접하였을때 할아버지 묘가 없으니 인정할수 없고 또 증조할아버지는 인정할수 없다고 주장할수 없을 것입니다

단군 이전에 한웅의 능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단군이 있다고 믿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사에서 중국인의 시조로 모셔지는 소전이라는 제후의 아들 헌원과 대적한 구리의 천자 치우능이 있다고 기록된 이상 야사를 근거로 한다고 하지만 단군은 있다고 하고 역사연구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기자조선에 대하여 >

기자조선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현재까지 조선시대 기록된 여러 사서에 의하면 기자조선이 기자때부터 건국하여 있었던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25사와 야사에 의하면 기자의 후예로 기후부터 번조선왕으로 불리워지고 기준이 위만에게 패하여 남으로 한(삼한)에 드러간 것으로 되어 있어 기후에서 기준까지가 기자조선으로 보아야 하며 선조 기자까지는 추존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기자가 건국한 조선이라고 하기 보다는 기자가 조선에 살았고 살던곳이 서화(중국 하남성)라고 하고 기자총이 몽성(중국 안휘성)에 있다고 하니 기자가 살던 시대의 조선땅 서쪽경계 즉 주나라와의 경계를 찾아낼 수있는 중요한 인물로 보여집니다

기자는 정치가 이기보다는 위대한 공자 5-6세기이전 동양사상을 정리한 분으로 소개하고져 합니다

< 가야 또는 가라에 대하여 >

우리역사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국사에서는 인쇄술이 통일신라때 발달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배울때는 송나라 4대 발명품중에 인쇄술이 들어 있습니다 신라패망이후에 건국된 송나라인데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야도 동사강목에서는 가야와 임나가 같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대체로 가야는 경상남도에 근거를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상도에서 출토된 말의 갑옷 즉 마갑은 현대전으로 비유한다면 전푹기 이상으로 보여지는데 경상남도 지역을 통치하는 가야의 유물일까요?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그림의 현물이 출토되어도 과연 가야의 유물로 주장하고 가야를 경상도에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야의 후예로 유명한 분이 김유신장군입니다
한반도에는 김유신때 지명이 하나도 없는데 김유신의 조상 소호금천씨능이 있는 중국에는 의자왕능이 있고 주변에는 홍수가 말한 평원, 계백이 전사한 황산, 도독부인 동명 덕안, 그리고 김유신과 전쟁지명인 동성 잠산 독산이 있고, 주류성으로 보여지는 주류자도 있고, 백마강으로 보여지는 백마하도 있고, 침현으로 보여지는 침구도 있고, 당과의 경계인 ()항성이 주와 조선때 기자가 살던 서화의 남쪽에 있으니 김유신의 신라나 과연 가야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중국 안휘성 황산이 있는 지역에는 김수로왕과 관계가 깊을수 있는 묘수 허촌 구지봉으로 보이는 구자산이 있고 황산이 있으니 황산강도 있을수 있으니 과연 가야는 어디에 있다고 연구되어야 할것인가요.

우리는 목화를 고려때 문익점이 씨앗을 가져와 퍼뜨린것으로 배웠으며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나 김유신이 살아 있을때 목화()을 고구려에 주었으니 김유신이 살던 신라와 그 선조들의 가야국은 어디인가를 연구해야 할것입니다.

한반도에 있는 수로왕묘나 김유신묘에 대하여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논할수는 없습니다 저는 다음과같은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북한에서 남하한 실향민들이 먹고 살만하니까 고향은 가지 못하고 묘나 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북한인들이 성묘를 다니지 못하고 몇세기가 흘러버리면 계속 관리한 묘가 진짜묘로 보일까요 아니면 관리되지 못한 북한에 남아 있을 묘가 진짜로 찾을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 역사연구가 진짜인가 논쟁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새롭게 밝혀보아야할 사명이 있으며 현대인들은 바르게 정리하려고 노력할수 있을 뿐입니다

자세한 것은 더 연구하여 다음 기회에 전하여 드리겠습니다

< 한강에 대하여 >

현재의 한강을 사이에 두고 삼국이 영토전쟁을 벌여온 것으로 배우고 있으니 한강에 대하여 주목하게 됨니다 만약 그렇다면 2천년동안 이름이 변하지 않은 유일한 강일것입니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에는 남천이라는 강이름이 등장합니다. 비에서 남천은 어디일까요
또 그 비에 한성은 현재 위치보다 북쪽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제의 한성과 연관된 한강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백제 한성과 관게된 한강은 한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음과 같은 현장이 있어야 백제 한성이 있는 한강을 찾을수 있습니다

한강 서북쪽에 열병을 하였으니 한강은 대각선으로 흐르는 강일것이라는 점이며
연와로 성을 만든 흔적이 있어야 하고 물돌로 개로왕의 아버지묘를 만들었으니 그 현장이 발견될수 있고
사성의 동쪽에서 숭산의 북쪽까지 제방을 쌓았으니 그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의자왕묘가 있고 소호금천씨능이 있는 중국에는 제방과 숭산과 하수로 불리운 강이 있으니 어디가 한강인가를 연구해야 될것입니다

< 지나삼국과 우리삼국 무대 >

중국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 강역이 어디를 경계로 하였는지가 궁금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장안 낙양중심의 진과 한나라를 계승한다는 나라와 우리3국의 강역의 경계는 현재 주나와와 고조선의 경계를 찾을수 있는데 바로 기자가 설던 서화가 경계지역의 조선땅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3국의 경계는 한과 고구려 전쟁지명인 북평 태원 상곡 어양중 북평과 태원이 있고 당과 고구려의 전쟁지명중 용도 신성 은산 등이 있으며 신라와 당의 경계에 있는 ()항성이 서화 남쪽에 있으며 신라와 백제경계로 동성 잠산 독산 그리고 백제 패망때의 지명 평원 황산 동명 덕안 침현 주류성 등과 개로왕때의 지명이 숭산 등을 종합하면 산서성 요를 중심으로 동서 즉 태항산맥을 동서로 구분하여 한족3국과 우리삼국이 경계하고 있었던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밀운 은산 용도 북평 신성 석문 동명 숭산 서화 항성 독산 동성 잠산 독산 덕안의 서쪽은 장안중심국가의 강역이고 동쪽은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등의 강역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백제가 진출했다고 백제7군 및 진평2군이나 한반도 신라인이 진출하여 조성했했다는 신라방이 아니라 구리의 치우천자 소호금천씨, 기자가 살던 조선인의 후예의 3국이 있었다고 보여지고 있습니다

< 조선에 대하여 >

조선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중국25사를 인용하면 주나라와 경계를 하고 있는 서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조선에 살았던 기자 그가 살던 서화의 동쪽은 다 조선강역으로 볼수 밖에 없다고 여겨짐니다

중국25사에서 나타내는 조선 강역을 무시하고 한반도만 있었다고 하면서 25사 동이관계 기록을 인용할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국에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가 요 중심의 동쪽에 있었다고 하여도 한반도인과 같은 민족이었고 하나의 민족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더 연구하여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선이 대륙에서 영토를 상실 ? >

조선이 대륙에서 영토를 언제 상실했을까?
우리는 조선이나 삼국이 중국에 있었는데 언제 그 영토를 상실했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륙에 영토를 상실했다는 개념은 한반도만이 우리역사 강역이라는현재의 역사상식 때문에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구려 발해강역이라는 만주 현재 지리상식으로는 한족의 무대라고 생각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여진족 또는 만주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인이 여진족이나 만주족으로 불리울때 고구려 발해역사를 우리역사로 보는 상식으로 가능한 발상이다

우리는 대륙에서 조선 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왜의 무대를 상실하였다는 생각은 우리역사무대가 아닌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밑에 있을때는 형제의 재산은 바로 아버지라는 단위에서 하나로 계산되지만 자식이 분가하면 형제들간의 재산은 각 각이고 독립된 단위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이나 삼국의 중국무대를 상실한것이 아니고 서로 분가하였을 따름이니 상실한것이 아니라 통일되지 못한 민족사 때문인 것이다.

중국이나 몽고나 한국은 서로가 독립된 개체이지만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정립하면 결코 영토상실이라고 생각은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고조선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왜를 거쳐서 산서성 요의 동쪽이라는 요동에서 동이무대라고 하다가 요나라 건국으로 요나라의 동쪽(요하의 동쪽)이라는 개념으로 요동이 새롭게 불리워 지면서 마치 삼국시대나 고조선시대의 요동을 만주로 변질시켜서 한반도만의 역사무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도사관에서 벗어나 최초 국가 구리를 기준으로 하는 민족사를 연구하고 아시아인이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나야 고대국가의 영토상실이라는 개념에서 벗어 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 오재성 선생님 연락처 : 전화번호 02-522-3592(사모구리), 핸드폰 019-285-3592 >


※ (참고) 본 사이트가 송준희님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