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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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수거령"이 내린 서적 관련 내용이다
단군관련 서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일부
한국상고사학회 토론과 문답란 "세연"님
글을 인용함
이사서들이 일부는 계승본으로 남아 있으나
"위서"라고 한다
또 다른 사서가 발견되면 어떠한 이유를 대어 또 "위서"라 주장할까 ?
그 노력들이 가상하다. 하면 할수록 "위서"가 아니라는 것에 놀라고들 있지 않은가(^.^) ?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 5월 26일
< 원 문 >
諭八都觀察使曰古朝鮮秘詞大辯說朝代記周南逸士記誌公記表訓三聖密記安含老元董仲三聖記道證記智異聖毋河沙良訓文泰山王居仁薛業等三人記錄修撰企所一百餘卷動天錄磨 錄通天錄壺中錄地華錄道詵漢都讖記等文書不宜藏於私處如有藏者許令進上以自願書冊回賜其廣諭公私及寺社
< 해 설 >
세조 3년 5월 26일(무자) :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 예종 1년
9월 18일(무술) >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表訓天詞)》·《삼성밀기(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이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文泰)·옥거인(玉居仁)·설업(薛業) 세 사람의 기(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명경수(明鏡數)》
및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綿布) 50필(匹)를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하였다.
< 성종 원년 12월 9일(무오) >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을 수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보내다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전일에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表訓天詞)》·《삼성밀기(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리성모(智異聖母)》·《하소량훈(河少良訓)》, 문태(文泰)·왕거인(王居仁)·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명경수(明鏡數)와
무릇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 등 여러 서책(書冊)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보낼 일을 이미 하유(下諭)했으니,
상항(上項) 명경수(明鏡數) 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도선참기(道銑讖記)》는
전일의 하유(下諭)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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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0년 우리역사의 맥이 단 100여년만에 말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해방이후 단군관련 비서들이 하나 둘 세상에 나타나고 있으나
"진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나 필사본, 복간본 등으로 하나 둘 이세상에 빛을 발하고 있으니 그 "진본"이 이땅에 나올 날도 멀지 않았음이라
< 단군관련 "비서" 목록 >
1. 상고,
삼국시대
- 신지비사 (단군조, 신지선)
- 해동비록 (저자미상)
- 신지비사역술 (고구려 대영홍 著(저))
→ AD1412 년경 (조선 태종 12년경) 소각
2. 발해
- 단기고사 : 고왕천통 9~21, AD 707~719 대야발 撰(찬)
→ 1959년 기해복간본 현존
→ 1968년 "민족정사"로 계승 (윤치도 저)
3. 통일신라
- 제왕연대력 : AD 890년경, 진성여왕
20년경 고운 최치원 저 (삼국유사보다 약 390년전)
→ 1929년 기사 필사본 현존 (홍종국씨
소장)
→ 1957년 "해동춘추"로 계승(박장현 찬)
4. 고려
(1) 초 중엽
< 조대기 > : AD 926년
발해 멸망시 대광현 등 유민들이 고려에 망명귀화 할 때 가지고 온 고조선 역대실기 (삼국유사보다
약 350년전)
→ 일제때 압수, 소각
→ 고려말엽 "진역유기"로
계승 → 조선말엽 "규원사화"인용기록
< 조대기 계승 사서들 >
① 삼성기 : 고려중엽
- 삼성기 상편 (안함노 저)
- 삼성기 하편 (원동중 저)
→ 일제때 압수 소각
→ 1911년 계연수 편저 "한단고기"로 계승
② 저자미상 도가사서
- 고조선 비기(사) (표훈천사)
- 삼성밀기 (도증기)
- 지송기 (대변경)
- 삼한합유기 (동천록)
- 신선전 (지화록)
→ 일제때 압수 소각
→ 조선말엽 규원사화(단군실사)로 계승
(2) 말 엽
① 진역유기(3권) : 청평도사 이명
저술(삼국유사와 거의 같은시기)
→ 일제때 압수소각
② 단군세기 : AD1283년경 고려 충렬왕 9년경
이암 저
→ 일제때 압수 소각
→ 한단고기로 계승 (1911년 계연수 편찬)
5. 조선말엽
- 규원사화 (단군실사) : AD 1675년 조선 숙종 원년 3월 상순 북애자저, 고 양주동 소장 필사본 현존, 소위 도가사서중 최고의 것
☞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 동사서는 고려시대 조대기 및 앞서 언급한 도가사서 인용
→ 일제시대 "신단실기"등으로
계승
6. 일제시대
① 한단고기 : 고려시대 삼성기 상, 하, 단군세기
계승(1911년 계연수 편찬)
② 규원사화 계승본
- 신단실기 : 1914년 김교헌 저
- 동사년표 : 1915년 어윤적 찬
- 조선사략 : 1924년 김종한 저
- 대동사략 : 1928년 김광 저
- 조선역사 : 1934년 이창환 저
- 조선세가본 : 1938년 윤재구, 서계수
공저
7. 광복후
- 통일신라 제왕연대력 계승
·해동춘추 : 1957년 박장현 찬
- 발해 단기고사 계승
·민족정사 : 1968년 유지도 저
이러한 단군관련 사서들이 어디에 있는 가 ?
이땅 어디 깊은 땅속에 묻혀 있는 가 ?
가장 빠른 방법은 국력을 하루빨리 양성하여 저 일본인들이 약탈해 황실지하도서관(또는
동경대 지하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는 우리의 고대사관련
"비서"들을 되 찾아와야 한다.
그날이 언제쯤 올것인가 ?
< 단군조선의 사서별 제왕 역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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