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채호사관은 민족사관이 아닌 근세조선 국가사관이다 >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발해가 우리역사라고
하였지만 역사는 우리것으로 한 반면 고구려 발해의 후손들을 우리민족으로 본것이 아니라 여진족으로 분류하였다
분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시점이 바로 민족을 가르는 시기인 것이다
고구려 발해를 우리역사라고 하여도 삼국의 후예가 하나되지 못하고 어찌 삼국이전의 고조선을 기준으로 하는 민족사를 논한다고 할수가
있는가
언어와 풍습과 피부색이 차이가 나도 고조선의 후예이면 다 같은 민족으로 정립해야 하고
삼국이 다르다 하여도 삼국의 후예가 하나되는 사관이야만 민족사관이라고 할수가 있는것이 아닌가?
여진족이니 만주족이니 글안족 몽고족이니 하여 우리와 다른민족으로 분류한다면 이미 우리는 분류한 시점에서 독립하는 민족이 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식 민족개념은 다른 것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동양식은 시조중심이므로 시조의 후예는 하나의 민족으로 보고 정리할때만이 민족사관이라고
할수가 있다.
신채호의 시대는 암울한 시대였으니 조선국가사관으로 정립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조의 후예가 삼국의 후예가 하나되지 못하는 사관은 결국은 분열을 조장하는것이 되고 현재의 국가를 민족강역으로
오도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사가 아닌 시조를 중심으로 하나고 시조의후예가 하나되는 민족사를 위하여 신채호의 사관이 민족사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할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동양식 시조중심사관을 민족사관으로 보고 우리역사를 재음미 할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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