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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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한(韓, 汗, 干)제도 연구>
고구려 통치자와 지방통치자에 대한 연구입니다
< 한(韓,汗,干)이란
무엇인가 ? >
통치조직중의 한 단계를 한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최고통치자를 天帝라 하였고 지역지도자를 韓이라 하였는데 辰韓 馬韓 弁韓등이 있었다.
韓은 또 하급지역지도자에 君을 두었던 것이 조선의 통치방식이었다.
九黎와 朝鮮의 뒤를 이은 高句麗에도 古朝鮮과 같은 韓제도가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기록에서 高句麗의 한(韓,汗,干)제도 >
廣開土境好太王碑문에서 韓의 기록에 豆比鴨岑韓
永底韓 舍 城韓穢 客賢韓 巴奴城韓 百殘南居韓 大山韓城등의 韓이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舊唐書 199上 東夷高麗 星神 日神 可汗神 箕子神등의 기록이 있는데 可汗神의 汗이
지역통치자를 뜻한다.
唐書(당시220 東夷高麗 日箕子可汗等神(일,기자,가한등의 신)의 기록이 있는데 可汗의 汗이 지역통치자를
뜻한다.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陽原王13년 丸都城干이 모반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하였다.
< 고구리의 "한"의 기록상 차이 >
汗은 秦長城의 북쪽에 있던 高離의 지도자를
汗이라 하는데,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琉璃王 11년(BC9년)에 鮮卑가 고구리에 항복하였는데 鮮卑의 지도자가 바로
汗이다. 이는 海東(한국) 기록과 漢族 기록이 일치하고 있다.
汗을 표기하기도 하고 韓으로 표기 할수도 이을 것이다.
汗과 韓은 同音異字인 것이다.
그러나 한을 그지역에서는 발음을 '칸'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干의 발음과 그의 일치하고 있다.
옥편에 의하면
韓의 발음이 '한'이다.
汗의 발음이 '한'이다.
干의 발음이 '간'이다.
그러나 분명히 汗이 '칸'으로 발음되고
있으니 干과 같은 소리계통이다.
이는 한을 다르게 표기하였다고 할수 있으니 韓, 汗, 干은 韓의 다른 표기인 것이다.
< 高句麗한제도의 역사적의미 >
고구리의 韓제도의 연구 성과는 조선시대의
통치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北魏를 건국한 鮮卑部族은 高句麗干이 통치를 받다가 독립하여 魏라 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정사 중 유일하게 고구리왕을 烈帝라 기록하고 있다. 물론 三國史記에도 열제라는 기록이
없다.
烈帝의 칭호를 사용한 왕은 釗烈帝(교열제;故國原王;國 上王)는 331-371년까지 재위하셨는데 북위는 384년에 건국되었는데 건국하기전에는 高句麗王을 王中王 즉 烈帝로 불렀던 것이다.
(東明聖王, 大武神王, 好王(문자왕,양원왕,평원왕) 한단고기에도 烈帝로 川王등 모두 왕중왕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여짐)
선비의 후예들은 汗의 칭호를 천년후 까지도 계속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집념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居西干과 마립한을 사용한 신라를 高句麗干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신라왕의
독자적인 칭호로 볼것인가 하는 점이다.
干(한)을 사용한 지역에서 볼때 왕의
역활은 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 전체를 볼때는 그 당시 韓은 고구리의 지역지도자에 불과 한 것이다.
503년 이전의 干사용 지역은 高句麗干의 땅일뿐이지 결코 나라가 아닌것이다.
麻立干사용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고구리는 많은 국가를 거느린 것으로 볼수있다. 광개토경호태왕비에
기록된 韓도 일곱이나 된다.
韓의 지역은 고구리의 일부로 봐야지 국가로 봐서는 아니될 것이다.
汗을 사용하던 鮮卑 東夫餘 沃沮 麻立干新羅는 고구리의 일부인 것이다. 이들은 항상
고구리로 부터 독립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 고구리왕실이 약하여지면 중앙에 도전을 해보곤 하였다.
해동(半島)의 干新羅(한신라; 마립간신라)는 503년 이전에는 고구리의 땅일뿐이었다. 이는 국가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503년 이전의 신라가 江淮(양자강과 회수)지역에 신라가 있다하여도 干新羅지역하고는 관계가 없다.
반도외에 신라가 있을수 있음은 한(韓,汗, 干)제도에서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인 것이다.
이 한제도는 중국동부의 東夷 기록과 반도 그리고 북방이 하나의 민족이었음을 밝힐수 있는 유일한 정사의 기록인 것이다.
이제도가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강회신라를 감추고 신라방으로 없는것을 만들어 왜곡하려 하였던 것이다.
高句麗干(汗,韓)(고구리한)제도를 입증할 유적이 있으니 광개토대왕비와 진흥왕비이다. 半島가 503년이전 干시대에는 독립국 신라가 아닌 高句麗干地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진흥왕의 창녕비는 干(한)에서 왕으로
칭호를 바꾼지 59연만에 건립하였는데 이곳에 비리성의 기록이 있다. 碑利城은 광개토대왕이전부터 고구리땅이었다고 광개토왕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반도가 503년이전 干시대에는 국가가 안닌 고구리
干地(한지)일 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高句麗韓(汗,干)제도와 碑利城은 江淮新羅 遼東百濟 弁韓倭가 있던 중국동부지역과 鮮卑 夫餘가 있던 몽고와 반도가 하나의
민족이었음을 밝힐 수 이는 유일한 증거가 될수 있는것이다.
또 高句麗韓(汗,干)제도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두개의 신라가 있다고 한 기록을 풀수있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강회신라와 4백년 역사를 가진 해동(한국)新羅를 밝힐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또 몽고지역에서 高麗의 후예라고 하는 이유를 밝힐수 있는 것도 바로 高句麗韓(汗,干)제도인 것이다.
< 高句麗天(川)王밑의
韓(汗,干;한)과 王칭호 >
고구리는 지역통치자에 韓을 두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에 왕을 칭한곳도 있었다는것이 기록에 있다.
北史94 新羅: 新羅는 高麗百濟에 속하여
있었고 그왕도 본래 맥제인이다. (高麗百濟之屬, 其王本百濟人)
광개토경호태왕비문 永樂五年 百濟新羅는 옛부터 속민이었다.(百殘新羅舊是屬民)
위의 新羅와 百濟는 勿論중국동부에 있었지만 고구리내에서 왕칭호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최치원
제왕연대력 모두가 왕이라 칭함)기록하고 있다.
왕칭호를 사용한 지역과 韓(汗, 干) 칭호를 사용한 지겨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매우 흥미
있는 질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본인은 왕이라 칭한 지역은 국호를 가지고 있던 지역으로 볼수있으며 韓의 지역은 국호가 없는지역이라는 접이다.
다시말하면 왕이라 칭한 지역은 속국이 되었다고 볼수 있고 韓의 지역은 속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왕의 지역은 고구리로 부터 분리되면 光復이 되는것이고
韓의지역은 독립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왕과 韓의 차이는 분리되었을때 光復과 獨立의 차이이니 이것은 과학용어의 발견과 발명의 차이로 보아야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 반도가 高句麗干(汗;韓) 고구리한의
땅으로 있던 期限은 얼마나 될까 ? >
新羅本記에는 거서한 마립한 이있는데 5대밖에 안된다.
그것은 韓의 시초와 끝을 말하는 것으로 밖에 볼수가 없는데 언제부터 高句麗땅이 되었을까?
22世지증마립한이었다고 하였으니 22분의 한이 있었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가를 아는것은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단지 옥저를 순행하던 樂浪王崔理가 고구리에 항복한 BC32년 부터 503년까지 470년간 반도는 高句麗干(韓;汗)地(고구리한지)로
생각할수 밖에 없다.
< 반도의 高句麗干(韓;汗)地(고구리한지)때의 기록은 ?
>
현재 평안남도청에는 高句麗城壁刻字가 있는데
현재의 평양이 고구리때 한성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丙戌十二月中漢城下後四小兄文達節自比西北行涉之
丙戌년은 446년 전후 60년을 주기로
있을 것이나 503년이전의 년대로 보아야 할것이다.
한성은 503년이전의 고구리한성이었다. 현재의
평양이 고구리평양 또는 장안성이 아니라 오로지 한성일 뿐이다.
(高句麗平壤城 또는 長安城은 高句麗長城의 서남쪽에 있으며 해주의 서남쪽에 있어야 한다. 즉, 현 하북성내에 있다. )
한국의 한성은 고구리의 별도였다. 32년부터
503년사이에 별도 였다.(北史94-王別爲宅於其側不常居之其外復有國內城及漢城亦別都也其國中呼爲三京. 唐書220-王築官其左又有國內城漢城號別都)
漢城은 高句麗別都였으나 503년이후에는 高句麗로부터 독립한 동신라의 한성이 되었다.
小兄의 기록이 있기 때문에 高句麗城壁刻字로 판독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중원고구리비가 있고 경주에 永樂연호가 새겨진 항아리가 있다. 모두 504년 이전의 高句麗干地였을 때의 유물이 아니겠는가?
<고구리"한"제도는 조선시대의 한제도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조선시대의 韓에는 馬韓 弁韓 辰韓이 있었다. 이 한은 조선의 部分이지 고조선정부를 나타낸 것이 아니다. 馬韓이었던
箕準의 시기에 韓은 朝鮮族의 一部였으니 衛滿역시 부분밖에는 될수가 없는 것이다.
부분이 부분인 濊君은 삼단계의 제일 아래층이 되는 것이다. 삼단의 제일 아래가 君이고
중간이 韓 그렇다면 조선전체통치자는 君이 될 수 없다. 바로 속칭 단군이라 부르는 분이 최고통치자이나
실은 天帝라 불러야 할 것이다.
고조선과 고구리 韓제도는 그 후예들은 행정직에 그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예' 에 邯(한) 角干등의 명칭이 신라에 있으니 이 명칭의 근원은 무엇일까?
< 한(韓,汗,干)의
명칭은 어디에 연유한 것일까 ? >
한은 하늘의 준말일수 도 있다.
문자로는 天으로 쓰고 뜻은 하늘이라 말한다.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다가 통치자의 칭호에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통치자의 권위가 하늘과 같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한은 대중과 가까운 쪽으로 붙여지는 방향으로 되어버린 것도 권위를 위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한 고구리의 韓이 신라에 오면 角干, 大角干, 太大角干의 호칭이 쓰여졌다.
물론 마립한 시대는 각간이나 대각한이 사용되지 아니하였다고 볼수 있다. 최고통치자는
한의 명칭을 하급에 둠으로 해서 스스로 상부에 있음을 표시하려 努力했던 탓일 것이다.
지역에 王의 명칭을 주므로 스스로 帝라 칭한것과 같다고 볼수 있다.
왕은 干의 유사형태화로 볼수 있다. 干(한)이 땅을 다스리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韓이 고구리에서는 지역통치자를 뜻하고 있으니 우리 민족사 연구에 좀더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것이다.
< 참 고 >

< 오재성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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