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시간에 이어 요동, 요서에 대하여 오재성 선생님의 글을 두번째로
쉽게 풀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렵군요 !
어찌하였건 풀어봅니다
요동, 요서를 구분하는 또다른 기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사기』에서 진(秦)과 요동(遼東) - 진장성연구(秦長城硏究) >
BC3세기 요동시점의 연구는 "진장성"에서 밝혀야 한다
(진장성은
104도-113도까지 진나라 때 축성된 성을 말한다 - 요의 서쪽(요서)에
있다)
# 여전히 한자가 일부지원 안되는 점 이해바랍니다 !
< 중국 군사지도상에서 만리장성 표시 >

- 노란선이 진시황의 장성이고
- 녹색선은 진시황 후대에 축성한 성인 것 같다
# 진시황의 장성은 서쪽의 임조('臨 : 감숙성) 강중(羌中)에서
남쪽의 북향호를 지나서 북쪽으로 하수를 지나 새(塞)와
음산(陰山 : 산서성)사이 까지이고 음산을 지나면 요동이다.
(西至臨 羌中 南至北嚮戶北據河爲塞 陰山至遼東)
(서지임조강중 남지북향호북거하위새병음산지요동)
# 지리지에 서쪽 하수(河水)에 음산현이
있다
(地理志西河有陰山縣)
(지리지서하유음산현)
#「사기」에 있는 진시황의 장성(長城)에
대한 기록인데 유적지가 있기 때문에 비교하여 보자.
(塞先代反 白浪反謂靈夏勝等州之北黃河 陰山在朔州北塞外 從河傍陰山 東至遼東 築長城爲北界)
(새선대반병백랑반위령하승등주지북황하 음산재삭주북새외 종하방음산 동지요동 축장성위북계)
현재 황하 서쪽은 감숙성에서 시작하여 령, 하, 승(靈 夏 勝)을 지나 북(北)황하 황석보(滑石堡)에서
동쪽으로 와서 한줄기는 남쪽으로 안문(雁門)까지 이르는
장성과 또 한줄기는 북쪽으로 마니산에 이르고 숭례(崇禮)를
거처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이 있다.
진장성은 서쪽의 임조(감숙성)에서 시작하여
강, 역(羌 域)을
지나서 북쪽으로 황하(黃河)를 거쳐 음산(陰山) 근처에 이르고 음산(陰山)을 지나면 요동이다 라는 뜻이다
장안중심의 진이 장성을 음산 북쪽 장성을 먼저 축성했다면 남쪽에 장성을 구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서쪽에서 안문(雁門)까지 장성이 있고
안문동쪽은 장성이 없고 그 동쪽에 태행(太行)산맥에
있다. 안문은 요와 같은 남북축상에 있으니 안문 동쪽을 요동이라고 할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태행(太行)산맥
동서의 세력과 안문의 남북세력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축성(築城)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진장성 부분 확대도 : "삭(朔)"북쪽 "음산(지도표시는 산음)" >

- 노란선 끝부분 바로 직전에 "삭(朔)"
- 노란선 끝부분에 "안문(관)"
- "삭" 북동쪽에 "음산(산음)"
→ 장성이 끝난부분이 바로 태행산맥이다
→ 장성 동쪽이 요동이라는 의미 아닌가 ?
분명한 것은 진장성은 안문(雁門)에서
끝나는 장성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시황 장성 기록과 일치하는 것은 임조에서 안문(雁門)에 도달하는 유적이 있다.
분명히 진장성은 기록과 일치하게 음산의 남쪽 안문에서 장성이 끝나며 동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안문의 동쪽은 요의 동쪽으로 표기
할 수도 있다.
음산지요동(陰山至遼東)을 음산을 지나면
요동에 이른다고 해석된다.
음산과 요동에 대하여 본문(本文) 음산지요동(陰山至遼東)을 해석하여 놓기를 정의(正義) 음산동지요동(陰山東至遼東)이라 하였으므로 요동의 시발점을 어디로 보는가를 밝혀질 수 있게 하고 있다.
두 문장은 동자(東字)의 차이밖에 없지만
뜻은 많은 차이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진장성(秦長城) 기록에서 요동이란 장성이
끝나는 삭, 안문의 동쪽을 요중심의 동쪽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수가 있을 것이다.
< 삭, 안문, 음산 위치 >

< 송준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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