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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사관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

2001-03-05 17:17:16


제목

제목: 민족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사관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

등 록 자

오재성

날짜

2001-03-05 17:17:16

   


< 민족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사관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 >

역사를 연구하고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사관이 바르게 되어야 하고 사관은 민족사관이 어떻게 정립되는가를 먼저 파악하여야 한다

< 역사를 연구하는 최초의 자세는 사관의 정립 >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에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민족사를 한다고 생각하는 연구가들이 국사인지 민족사인지 분간 못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관계로 사상적 기초에 피해는 매우 크다 즉 고구려 발해는 우리역사라고 하면서도 한반도는 한민족(또는 조선족)이라 하고 만주에는 여진족 또는 만주족이 있다고 말하게 된다.

삼국의 백성 후예가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민족사가 아닌 반도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해야 우리민족이라고 하는 것도 민족사를 연구하는데 장애가 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근세조선 이전은 우리민족과 구별되어야 하고 우리는 근세조선때 독립한 민족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국사가 아닌 민족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민족개념을 분명하게 하고 가치관을 바르게 할 필요가 있다.

< 1. 기준(基準)과 사관(史觀)이 정립되어야 민족사를 바로 할수 있다 >

민족이란 무엇인가 ?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그것을 설명하라고 하면 매우 난해한 말이다. 민족이란 말은 해석이 분분하지만 사전에서 국민이란 "한나라의 통치권 아래 그 나라의 국적을 기지고 있는 인민"을 말한다고 하여 현재를 기준으로 통치권(統治權) 지역민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민족개념은 서양식의 학교교육을 배우면서 구체화하였고 서양 학풍으로 민족개념을 정리되어 왔다.

1) 서양식 민족개념의 정리 (백과사전)

(1)
민족(nation)- 대체로 언어, 생활양식, 심리적 습관, 문화 역사(歷史)등을 같이 하는 인간 집단을 가리켜 민족(民族)이라 한다.

① 인종적 개념-- 씨족(氏族, olan)---▷종족(種族, platry)---▷부족(部族, tribe)

㉠ 인종적 개념으로 씨족 종족 부족 민족으로 구분
㉡ 역사(歷史)적 개념이 있다.

민족학설을 정리하여 보면

첫째 객관설은
자연적 요소로 토지와 혈연(血緣)이 있고
문화적 요소로는 언어 경제 종교 역사적 운명 정부 등이 있는데
이들 요소에서 혈연공동체설, 지역공동체설, 문화언어공동체설, 운명공동체설 등이 있다.

둘째 주관설에는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을 들고 있다.

셋째 절충설은
민족은 객관적요소(토지,혈연,언어,종교,정치,경제,역사적운명공동체)를 구비하고 있으며
이것이 주관적 요소(민족의식)를 다시 가지는 의식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개념은 동양과 서양의 역사 전개 차이와 민족학설의 차이에서 있을 수 있다.

위와 같이 서양식 민족학설은 역사가 짧은 서양에서의 사고방식에 해당하는 것이며 역사가 오래된 동양에서는 위와는 사뭇 다른 민족 개념이 형성되어 있다.

2). 동양적 민족개념의 정리

동양식 민족개념은 서양식 민족개념이 포함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최초의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民族의 시초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국가를 달리하고 있어도 최초 국가 국민의 후예일 때 하나의 민족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 최초 국가 건국자가 기준
㉡ 최초 국가 국민의 후예
㉢ 역사적 공동체

시조중심으로 민족을 정립하면 난립을 막고 더 넓은 지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양식 민족관으로 정립된 역r사를 갖고 있는 민족을 예로들면 아브라함을 시조로 하는 유대인, 헌원을 시조로 하는 한족(漢族), 단군을 시조로 한다는 한국사 등이 있으나 아직까지 시조를 하나로 하면서도 시조의 후예가 모두 하나되는 민족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3) 역사연구에서 시원사와 민족사를 분명히 하고 사관(史觀)을 정립

사관이란 무엇인가 ?
국어사전에서 사관이란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여 해석하는 근본적인 견해 또는 역사적 현상을 전적으로 파악하여 이것을 해석하는 입장"등으로 풀이하고 있어 역사를 파악하는 시각 또는 역사를 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어떤 시각을 가지느냐에 달렸다.
기록할 시기의 국가 개념인가 아니면 민족 개념인가에 따라서 기록의 차이가 생기고 이것이 후세에 전하면서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그릇의 차이가 생긴다.
민족은 기준을 두고 기준 이하를 모두를 하나로 하기 위한 사회집단을 말한다고 생각해야 될것이 아닌가.

(1) 국가사관의 국사와 민족사관의 민족사의 차이

국가 사관은 국가를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고 민족 사관은 민족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의 차이인데 그 차이는 국가와 민족의 차이만큼의 차이이다.

고구려의 『유기(留記), 이문진(李文眞)이 쓴 『신집(新集), 백제의 고흥(高興)이 쓴 『서기(書記), 신라의 거칠부(居柒夫)가 쓴 『국사(國史), 당의 영호징(令狐澄)이 쓴 『신라국기(新羅國記), 조선의 정인지가 쓴 『고려사(高麗史)』등은 국사(國史)이며 국가사관으로 쓰여졌다.

또한 '진흥왕비' '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도 국가사관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25사』동이전은 민족사관에 의하여 쓰여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東夷 여러 국가를 기록하고 민족이란 의식이 싹튼 묘민(苗民)의 국가인 구리(九黎)를 기준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국가사관은 자기 국가를 중심으로 쓰여지지만 민족사관은 민족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뿌리를 같이하는 여러 국가를 모두 포함하여 기록한다는 것이 다르다.
( 단,
호태왕비는 국가사관으로 건립되었으나 신라 백제를 복속되었다고 하였으니 국사이면서도 민족사로 볼 수도 있다.)

국가사관은 필자의 국가 이외는 모두 비아(非我)가 되는 것이 특징이고 민족사관은 국가는 다르다 하여도 과거 역사를 같이한 동포를 하나로 민족으로 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국가사관으로 쓰려고 노력하였지만 국사가 아닌 민족사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근세 조선강역(朝鮮彊域)이 아닌 그 이전 구리(九黎)의 후예가 전부(全部) 하나의 민족으로 볼 수 있게 기록을 하였기 때문인데 그''로 기자가 살던 서화, 항성(西華 項城:하남성) 에서 경주(경상도)까지의 무대를 하나의 민족 무대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족(支那族, 한부족 :漢部族)의 『동이전』도 수용하고 거칠부의 『국사』도, 영호징의 『신라국기』도 수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광개토태왕비는 고구려 국가사관으로 쓰여졌음에도 민족사로 볼 수 있는 것은 『삼국사기』와 같이 구리(九黎)후예가 하나임을 기록하고 삼국 후예를 모두 하나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화국 요()중심의 동쪽 정주 덕안 서화 항성 동명 석문 태원 은산(汀洲 德安 西華 項城 東明 石門 太原 銀山) 동쪽에서 한국 경상도 경주까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국사는 그 시대 국가 중심사관이지만 민족사는 현실의 차이점이 아니라 기준 국가에 의한 후예로서 공통점을 찾고 하나로 보는 것이 민족사관이다.

국사는 국가가 국가중심사관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이고 민족사는 국가가 달라도 시조가 같으면 하나로 보는 시각의 사관으로 쓴 것이 바로 민족사이다.

국사는 그 시대 국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과 그 국가 강역의 옛적에서 현재까지 역사를 기록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국사는 후자의 것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현 국가의 강역외의 역사를 함께 기록할 때는 후자의 개념도 아니고 전자의 개념도 아닌 잘못하면 허위 역사를 만들 수도 있다. 국사와 민족사의 구별을 하기 위하여 민족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우리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단군 왕검의 조선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 백성의 후예는 어느 곳에서 살던지 어떤 말을 하던지 어떤 풍습을 가지고 있던지 우리 민족이라고 해야 하고 그 후예국으로 기록된 동이국 역사(東夷國 歷史)를 우리민족사라고 한다면 이 책에서는 동이(東夷)국의 조선 건국 이전에 있던 국가 구리(기록상으로 최초 국가)로 기록된 나라를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로 하고 그 후예는 모두 우리 민족이라고 하여 역사(歷史)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삼국이라고 하지만 동이전(東夷傳)에 수록된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가라 왜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서는 비공통부분인 낙랑국, 신라를 포함하여 우리민족으로 하였고 호태왕시절 고구려에 속했던 백성의 후예는 우리민족으로 보고 연구를 하였다.

즉 서양 학설의 민족개념보다 시조를 기준으로 하는 우리민족개념을 토대로 우리민족사를 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현재 국가 기준으로 국사로 정립하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과는 무관하게 흐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사는 국가 기준이고 민족사는 민족 중심이니 이를 구분하여야 하고 민족사에는 민족 최초 기준의 후예는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 대한민국 헌법을 역사 기준으로 한다면 헌법대로 남북한만을 기준으로 하여 역사를 기술해야 하나 현재는 만주에서 일어난 고구려는 우리역사 속에 넣으면서 고구려 후예는 한민족과는 다른 만주족 여진족 등으로 불러 다른 민족으로 보이게 표현하고 있다.

이로서 국가 기준의 국사이던지 아니면 시조 중심의 민족사를 명확하게 하여 이론과 실체를 하나로 정립되게 했어야 하나 현재 교과서는 국사도 민족사도 아니어서 우리역사를 배우는 것조차도 흐리게 하고 있다.

㉡ 고구려를 기준으로 한다면 N-Korea, S-Korea, Mongcoree, REE(:중국 요동부) 4국이 우리(:)역사에 들어가야 한다

㉢ 구리(九黎), 조선(古朝鮮)을 기준으로 한다면 N-Korea, S-Korea, Mongcoree, 중화국(Jung-REE), 중화민국(Jung-REE)5국이 우리()역사에 들어가야 한다

㉣ 왕건 고려(高麗), 근세조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N-Korea, S-Korea, 2국이 민족사에 들어가야 하고

㉤ 동신라(東新羅)와 낙랑국(樂浪國)을 기준으로 한다면 N-Koree, S-Koree, 중국(Jung-REE,) 3국이 우리()역사에 들어가야 한다

현재 국가 기준으로 국사를 정립하지 말고 역사 기록을 정리하여 보면 수 천년 동안 서화, 항성,덕안(西華 項城 德安) 등 요() 동쪽에서 경주까지 하나의 민족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사서와 다르다는 것이 현재 국가사관으로 본 우리 역사이다.

대한민국의 국사를 연구하겠다면 어쩔수 없고 반도사관만으로 역사연구를 한다면 거짓없는 반도사연구가 되어야 하지만 부정하고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으므로 우리민족사는 우리민족의 단결과 평화와 그리고 발전을 위하여 거짓없이 진실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관을 바르게 하고 가치관을 새롭게 확인하는 바른 사관을 가지도록 노력하면서 역사연구를 하여야 할것이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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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