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2.net - 송준희 칼럼 모음 (2001-2002)

삼국사기 및 25사동이전 참모습 ①

2001-05-20 01:33:10


제목

제목: 삼국사기 및 25사동이전 참모습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1-05-20 01:33:10

   


< 삼국시대를 나타낸 국사(韓國史)와 삼국사기 및 25사동이전 참모습 >

☞ 삼국 위치를 한반도로 볼 수 없는 부분들의 실제 위치는 중화국


< 서 언 >


高句麗 百濟 신라 가라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고 국사를 배워 왔다.
물론 그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였으며 그래서 지명 유적 등으로 그 위치를 분명히 하려고 노력하였다.
지명으로 옛 역사무대를 파악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지명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더구나 현재 한반도의 상황으로 풀이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삼국시대 및 그 이전에 대한 기록들이 한반도 강역하고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서를 부정하고 수정하면서까지 취사선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수정하면서까지 규명하려 해도 사서를 부정하는 문제점과 그에 따른 또 다른 의문점이 있는 것은 왜일까 ?

그것은 삼국의 위치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삼국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도 왈가왈부하는 것도 삼국 위치가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삼국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하면서도 삼국시대를 나타낸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자가 쓴 사서라고 하면서 「삼국유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왜 삼국시대를 나타낸 유일한 정사 「삼국사기」가 비판받았을까 ?

한국 일본열도 및 조선 학자들은 「삼국사기」 내용이 한반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삼국시대를 나타낸 사서가 잘못되었는가 아니면 해석 자체가 잘못되었을까를 밝혀야 사서도 부정하지 않고 삼국시대를 바르게 정립할 수 있다. 한반도 상황과 다른 것이 있는지 재조명해 보아야 한다.


< 1. 유연제노 오월에 고구려 백제의 수도관계 지명이 있다. >


① 사대주의자라면 쓸 수 없는 "幽燕齊魯 吳越은 高句麗 百濟땅"

「삼국사기」 최치원전에서 "고구려 백제가 전성시기에 강병 백만을 보유하고 북으로 유연제노와 남으로 오월을 점거하여 중부국가에 큰 해가 되었다."고 하였다.
고구려 백제가 평정하였다는 유연제노 오월은 한반도에 없다.

- "
유주"는 연경 은성 신성 북평이 있는 하북성에,
- "
"은 삭 람 운중 안문 로성 등이 있는 산서성 중동부에,
- "
제노"는 치 곡부가 있는 산동성에,
- "
"는 강소성 남부에,
- "
"은 양자강 이남을 나타내어 요 중심으로 있으니

고구려 백제는 그곳이 활동무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② 유연제노와 오월에 고구려 백제 초기와 패망때 지명이 있는 것

㉠ 고구려 초기 최대 이변 기록은 대무신왕 27(44) 낙랑을 정벌하고 그땅을 취하여 군현(郡縣)을 설치하니 살수 이남의 땅이 한에 속하게 되었다.

모본왕4(49)에 한의 北平 어양 상곡 太原을 평정하였다.
태조69(121) 선비와 함께 요대현을 공격하니 요동태수 채풍은 군사를 거느리고 신창(新昌)으로 나와 싸우다 전사했다.(三國史記 高句麗本紀)고 기록하였고,
동일한 『후한서』에 지명이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광양 탁 요대 신창(右北平 漁陽 上谷 太原 廣陽   遼隊 新昌)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

㉡ 고구려 말기 기록은 보장왕3(644) 당태종은 북쪽의 양곡을 영주(營州)로 수송하고 고대인성(古代人城)에 저장하였다.

4
(645) 정월 이세척이 유주(幽州)에 도착 3월에 유성(柳城)을 떠나 회원진(懷遠鎭)으로 나오는 것같이 하다가 북으로 용도(甬道)로 향하여 아군을 불의로 치려하였다.
4
월 이세적이 통정진(通定鎭)으로부터 요수(遼水)를 건너 현도(玄 )에 이러다.
부총관 강하왕 도종이 신설(新城)을 침범하였다.
이번 당과 고구려전쟁에서 당은 현토 횡산 개모 마미 요동 백암 비사 협곡 은산 후황(玄  橫山 蓋牟 磨米 遼東 白巖 卑沙 夾谷 銀山 後黃) 10성을 빼앗다.
(
삼국사기, 당서 구당서에는 영주 고대인성 신성 은산 등 공통 지명이 있다.)

㉢ 백제초기 온조14(5) 한수 이남으로 수도를 옮겼다.

㉣ 백제말기 의자왕때의 지명들이 고구려 지명의 남쪽에 있는것

의자왕3(643) 신라에서 당으로 들어가는 항성(項城)을 공취하려 하였다.
7
(647) 10월 의직은 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무산성(茂山城)에 진주하고 감물성(甘勿城) 동잠성(桐岑城)을 공격하였다.
19
(659) 4월 장병을 파견하여 신라의 독산성 동잠성(獨山城 桐岑城)을 침공하였다.
20
년 평원에서 대진하고 싸운다면 승패를 알수 없으나 백강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침현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계백이 황산에서 싸우다 전사.
백제 땅에 웅진 마한 동명 덕안 금련 5도독부를 설치하였다.
복신과 도침이 주류성에 웅거.(662)
웅진의 동쪽에 대산이 있으며 지라성 및 윤성 사정책을 격파 진현성이 강에 임하여 높고 험하여 요충이다.
박성에 육박하였다.

유인궤가 군사를 요청하니 치 청 내 해에서 군사 7천명을 징발하여 보내다.
(
삼국사기, 『신 구당서』에 항성 동명 덕안 마한 금련 웅진 대산 윤성 진현성 박성 치 청 내 해< 項城 東明 德安 馬韓 金漣 熊津 大山 尹城 眞峴城 薄城 淄 靑 萊 海 >등 공통 지명이 있다.)

㉤ 신라는 혁세세 19(39) 변한(弁韓)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여 왔다.

위에서 고구려 백제 초기와 말기 기록에서 북평 태원 탁 광양 한수 동명 덕안 주류성 항성 등 지명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한반도에서는 찾을수 없는데 중화국에서는 찾을 수 있다.
즉 북평과 태원이 있는 곳에는 은산 신성 고대인성 용도가 있고 그 남쪽에 한수 또는 하수였던 황하가 있고 평원 황山 동명 덕안 백마하 대산 주류성 항성 동성 잠산 독산 등이 있다.


? 한반도에는 없는 삼국 지명이 중화국에는 있으며 高句麗 百濟 강성할 때 幽燕齊魯 吳越지역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
지금까지 한반도에 高句麗 百濟 新羅 加羅가 있었다는 것이 잘못된 판단일까 교육되는 역사와 그 원전인 사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니 삼국시대를 재조명해야 되는 것이다.






<
다음시간에 계속합니다 ! >

 


※ (참고) 본 사이트가 송준희님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