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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및 25사동이전 참모습 ②

2001-05-26 23:33:56


제목

제목: 삼국사기 및 25사동이전 참모습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1-05-26 23:33:56

   


2. 신라방, 백제, 요서, 산동진출이라면 유연제노와 오월 사이에 있는 구리(九黎)의 치우(蚩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기자 능(箕子 陵)도 진출하여 묻혔다고 해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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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평 : 치우천자의 묘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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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 : 치우천자의 부인 견비의 묘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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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록 : 치우천자와 제후의 아들인 헌원과의 최초의 전쟁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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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 : 헌원 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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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릉 : 헌원의 묘가 있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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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 : 소호금천씨묘의 위치

「삼국사기」에 있는 유연제노와 오월에는 삼국 지명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 신라 시조 소호금천씨, 고구려 시조 고신씨 관계 지명이 있다.
물론 25사 동이전 지명도 위 지역에는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진출하였다고 하면 치우 천자, 소호 금천씨, 기자도 한반도에서 진출하여 묻혔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호칭이 똑같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한반도에도 있었다고 할 것인가 ?
그도 아니면 치우와 소호와 기자는 한반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할 것인가 ?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삼국은 한반도 쪽에 있었고 朝鮮(고조선)도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있었다고 설명하여 왔다.

그리고 역사 학자들이 삼국 및 그 이전을 연구하면서 주(중화국 땅)에서 조선(한반도 땅)으로 기자를 봉했느니 아니니 하고,

百濟가 遼西 山東 등지로 진출하였다고도 하고,
한반도 신라인이 唐으로 진출하여 신라방을 두었다고도 하여
한반도에서 황해 서쪽으로 進出한 것으로 가르쳐 자부심을 심어 주려고 하였으며
더욱이 「三國史記」에서 高句麗 新羅가 소호금천씨 및 고신씨 후예라고 한 것은 事大 또는 모화사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25사」에서는 삼국은 동이국이고 소호나 고신이 東夷라고 하였으니 결국 「三國史記」나 「25사」는 소호나 헌원이나 치우나 동이인이고 高句麗 百濟 신라 가라 倭는 동이국이므로 같다고 표현하였다.
이제 "진출하였다" "아니다"라는 등 분분하니 삼국 활동 무대를 재조명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3. 한반도에는 없고 유연제노 오월 지역에 「삼국지」동이전 지명이 존재하는 것


「삼국사기」에서 幽燕齊魯와 吳越지역에 高句麗 百濟가 있고
사이에 최치원때 신라가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三國志, 후한서」에서도 동이의 제일 남쪽에 있는 倭는 회계 태 이주 단주 주애 담이(남월)에 있고,
그 북쪽에 한은 해가 있는 지역에 있고
또 그 북쪽에는 예가 창해가 있는 곳에 있었고,
그 북쪽에는 고구려가 북평 태원이 있는 곳에 있었고
그 동쪽에는 "옥저땅의 해주가 있다"고하여 「삼국사기」나 「25사」동이전이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史書와 같이 가르치지 않으므로 국사를 밝히기 위하여 삼국시대 기록을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4. 한국인 중화국인 몽고인은 동이의 후예임을 밝히지 않고 있다.


현대 국가로 보면 한국인 중국인 몽고인은 다른 국민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육받은 것으로 보면 헌원을 시조로 하는 중화국인,
단군을 시조로 하는 한국인,
징기스칸을 시조로 하는 몽고인 등을 배워서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는 분명히 東夷의 후예로 되어있다.

부여 고구려 예 한 왜 백제 신라 가라는 동이국이다. (25사 동이)
순은 동이인이다. (史記권1 : 皇甫謐云舜者都郡也)
창의로부터 7세가 순이고 (昌意以至舜七世也)
창의는 헌원의 아들이다. (史記 권1)

신라인은 소호금천씨의 후예,
고구려는 고신씨의 후예이다. (三國史記)

북평 태원의 고구려와 해주의 옥저 북쪽에 부여가 있다. (後漢書 東夷)
헌원은 제후인 소전의 아들이다.
구리의 천자 치우가 있다. (史記 : 黎東夷國)

위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민족으로 가르치고 있는 이유는 국가사관으로 史書를 해석하고 가르쳤기 때문이 아닐까 ?

① 근세조선 이후 조선인 및 대한인 그리고 한국인은 高麗 이전의 우리역사에서 민족명칭을 밝히지 않고 국가명으로 민족 호칭을 만들어서 삼국과 그 이전 東夷역사를 한반도 역사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분명히 「삼국사기」도 김유신이 있던 신라는 소호금천씨의 후예로,
高句麗는 고신씨의 후예로 기록하고 있고.

25사」에서도 高句麗 百濟 신라 加羅 倭는 東夷國이고 舜은 東夷人이고 그 8대조가 헌원이고 그 아들에 소호금천씨가 있다고 하였다.
순이 동이인이면 헌원이나 소호나 모두 東夷人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東夷의 최초의 나라는 九黎라고 하는데 그 통치자에 치우 天子가 있었는데 諸侯인 少典의 아들 헌원이 치우와 탁록에서 전투하였으나 서쪽으로 가서 황능에 묻히고 漢武帝에 의해서 漢部族의 시조로 모셔졌다고 하였으니 東夷의 九黎가 아시아의 공식적인 최초의 나라인 것이다.
한반도인이나 漢族은 모두 東夷의 후예인 것이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몽고인이나 東夷의 후예이므로 각 국가사관에 의한 역사 연구나 교육이 아닌 九黎를 기준으로 하는 동이민족사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 아닌가 ?



② 漢族이란 東夷에서 漢무제때 독립하려는 部族을 말하는데 다른민족 ?



『사기』에서 제후의 아들 헌원 시대에 동이국 구리에 치우천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규원사화』『한단고기』등에도 九黎시대 즉 환웅 시대까지도 삭제시키고 기준을 낮추는 것은 근세조선시대 지나족(한부족)보다 오래되었다고 하면 사대사상에 배치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도 숨기고 근세조선사관을 따라갈 必要는 없음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

漢나라 무제에 의해서 史記를 편찬하여 헌원을 국조로 하는 支那族(漢部族)이 성립된 역사는 『25사』로 정리되고 있으니 우리는 東夷민족사를 확실하게 정립해야 한다.
중국인들이 支那族(漢部族)에 동화된 東夷로 만들어도 가만히 있으면 현재 우리는 무엇이 되겠는가 스스로 東夷 즉 우리 역사를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
위와 같은 기록들이 있음에도 史書를 부정하고 국가사관으로 동이족을 분열하여 알리고 있음을 밝혀서 東夷역사를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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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시간에는 삼국사기 불신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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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