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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東夷文字" (지도보완)

2001-07-22 13:23:47


제목

제목: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東夷文字" (지도보완)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1-07-22 13:23:47

   

< 한자(漢字)가 아닌 동이문자(東夷文字) >






한자가 동이문자라고 하니 너무 억척이다하여 의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본문 내용에 부가하여 참고로 글을 올립니다
이것은 국수주의도 아니고, 과대 확대해석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할 뿐입니다

상호 비교를 통한 판단은 네티즌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


< 한자(漢字)가 아닌 동이문자(東夷文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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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없다. 오직 동이문자(東夷文字)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많은 출판물에 접하고 있는데 많은 출판물은 각기 다른 문자로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한글과 한자라고 하는 文字를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데 한글은 동이의 후예인 근세조선 의 4대왕인 세종대왕때 만들어진 훈민정음을 발전시킨 "주시경 선생님"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러나 한자로 부르고 있는 글자는 漢나라에서 만든글자인가 ?
아니면 어느날 바뀐글자인가 ?

漢字라고 부르는 것은 漢나라에서 만들었던지 아니면 개발되었을때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漢나라에서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漢字라는 말이 쓰여지지 않았던 옛날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설문(說文)은 후한시대의 字典, 본명은 說文解字이며 후한(100)때 許愼이 편찬했다.
분명히 漢字라는 뜻의 명칭이 아니고 또 漢나라에서 만든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옥편(玉篇)은 양()나라 고야왕(顧野王)의 찬술로 543년에 이루어 졌다고 한다.

강희자전(康熙字典) 1716년 淸나라 장옥서(張玉書) 등이 편찬했다.

설문 옥편 강회사전등 어느것 하나 漢나라에서 만들었다는 뜻 또는 漢나라에서 발전시켯다는 뜻의 漢字의 의미가 없는 오직 문자를 뜻하는 것으로 명칭이 되어 있는데 왜 우리만이 漢字라고 하고 있는가 ?

이는 漢字란는 말은 사대주의 산물이며 반도사관의 산물인 것이다.
결코 漢나라의 창제나 모방이나 개발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옥편의 ""를 어느 곳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갑골문자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갑골문자가 나오는 곳을 은허(殷墟)라고 하는데 현재 하남성 안양의 소둔(河南省 安陽의 小屯)이다.

이곳에서 발굴되었다면 이곳의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갑골문자의 출토지 은허는 태행산맥의 동쪽에 있으며 요동에 있고 동이의 땅이었다.


① 은허는 주()가 살던 은()의 땅인데 기자(箕子)가 살았던 땅인 조선땅 서화의 북쪽에 있다.
동이의 나라인 九黎(구리) 14대천자인 치우(蚩尤)천자부부의 능이 있는 동평과 거야의 서쪽에 은허가 있다.
주는 은의 마지막 왕인데 기자는 주의 친척이다. (箕子者紂親戚 - 사기권38)
기자가 살던 땅이 조선의 서화(西華)이니 그 북쪽에 있는 은허는 조선땅으로 볼 수 밖에 없다.

② 연()나라때 태행산맥의 동쪽은 조선땅이었다.
그러므로 은허는 조선땅이었다고 볼수 밖에 없다.
()나라때도 태행산맥의 동쪽은 조선 마한 지역이었다.

③ 한()나라때에도 조선의 땅이었다.
태행산맥의 동쪽은 위만이 땅이었다.
()나라때부터 요중심(遼中心)의 동쪽은 동이 즉 조선의 땅이었다.

④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도 이들의 땅이었다.

태원(후한서)은 안양의 서북에 있으며 광주는 은허의 서남쪽에 있다.
은산 신성 서안평의 남쪽에 은허가 있으니 고구려땅이었을 때도 있었다.
백제는 요동, 요서에 있었는데 은허를 중심으로 백제시대 지명을 들면

서쪽으로 진성과 고평 숭산이 있으며
남쪽으로 동명 항성 주류성 광릉 독산 동성 잠산 덕안이 있으며
동쪽으로 평원 황산 사자하 백마 대산 박산 제성 성양이 있으며
북쪽에는 대방접석문 광양 청하가 있으니

은허(하남성 안양 현소둔)는 백제의 내부에 있었다.

신라는 은허를 중심으로 볼때
북쪽으로는 독산성 석문과 석성의지명이 있고
동쪽으로는 황산 제성 연주 내주 대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항성 독산 동성 잠산 덕안 사지연수의 지명이있으니 신라의 내부에 있었던때도 있었다.

은허는 구리시대 조선시대 고구리 맥제 신라시대까지 동이의 땅이었다.
이땅에서 갑골문자가 나왔다면 당연히 동이문자가 아닌가?
그래서 한족들은 옥편이니 자전이라는 말을 써도 한자라는 말을 쓰지 아니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고 발전시켰으며 그것을 한의 장안에 전파시켰음에도 계속해서 한자라고 하겠는가?

분명히 갑골문자를 기원으로 한 문자로 한자가 아닌 동이문자인 것이다.
동이는 동양에서 최초로 표의문자인 동이문자를 완성하였으며 그것을 이두법으로 정리하였고 3천년도 더 지난 이후에 동이의 일부인 반도에서 음을 정립하는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으로 발전시켰다.

결국 두 종류의 문자를 만든 위대한 민족이 자기들의 공을 남의 공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해동(한국)에서 동이문자가 만들어 지지 않았다 하여 우리글이 아니라고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이순신은 충청도 사람이니까 다른 도민은 존경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나 똑같은 말이다.
나침반은 동이인 서신라의 제품이었다.
그런데 기록이 있음에도 말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 것이다.

우리민족은 예로 부터  (:), 나전칠기, 비단, (쇠뇌), 나침반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발전시킨 위대한 민족인 것이다.

한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동이문자라 하여야 하며 동이는 구리때부터 백제때까지 동일지역이었음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14
대기이전 문자와 언어연구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대만이란 단어의 정착은 3세기 동안에 이루어 졌는데 대만의 역사는 670년이전은 변한왜의 이주였다.
이주(夷洲)를 태주(台州)로 하여 현재 대만이 되었는데 17세기이전의 기록은 거의 없다.
이곳은 9세기 이전 古일본지역이었다. (倭更號日本 )

반도의 언어정착 역시 5세기 미만이다. (1428년 훈민정음 발표)
현재의 언어 정착으로 14세기 이전의 역사를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
10
세기이전은 오직 동이문자 밖에 없었다.

현재의 언어배열이 다르다 하여 그당시를 의문시 한다면 BC2세기부터 AD9세기까지 기록에서 한족의 정사와 '삼국사기'(장안중심기록과 반도기록)의 내용에서 배열이 같다는 것은 동일 하게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30
년전 제주도말과 육지말이 다르다하여 조선땅이 아닐수는 없다.
동이의 전지역에 방언의 차이는 있어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 사고밑에서 언어와 문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에 바탕을 두고 전체 구리지後 조선지後 고구려지後의 언어와 문자변천을 연구하여야 할것이고 전민족이 다같이 사용하기 편리한 문자로의 변형을 연구하여야 할것이다.

벌일작예(伐一作濊)
졸일작평(卒一作平)

위의 문장은 한글은 하늘식으로 해석하여야 뜻이 통한다.


<
운영자 송준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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