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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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일본놈들의 논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베껴쓰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자들이 자칭 **라니 참으로 한심하고 씁쓸함을
감출수 없다
박교수의 논문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서고증과 증빙을 거치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는지
지금까지 반론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
이미 1994년도의 일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특정인들에게 박교수 논문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다
언제까지 입다물고 있는지 두고보자 (^.^)
박교수 논문보다 일본놈들의 논문이나 국내학자들의 논문을 검증해보면 동일성이 있다
왜냐면 일본놈들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누가 누구것을 베꼈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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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史記 天文現象에 대한 國內外硏究論文 分析 >
- 오재성
-
< 차 례 >
第一章. 三國史記 天文現象에 대한 國內外硏究論文 分析
一. 삼국사기
천문현상 연구에 대한 실태분석
二. 지금까지 연구 발표된 내용과 삼국사기원문과의 차이는 없는가 ?
三. 日蝕觀測地硏究結果와 삼국사기 지명의 만남
第2章 倭와 9세기이전 日本위치도
중국의 남부였다.-------------247
< 부 록 >
1. 반도충부의 삼국사기의 일식기사에 대하여-------------------35-
2. 반도충부 논문
-----------------------------------------40
3. 홍이섭의 조선과학사-(동경판)-----------------------------55
홍이섭의 조선과학사(서울판)--------------------------------72
4. 김용운 김용국의 한국수학사-------------------------------87
5. 현정준의 동방학지에 실린 한국고대일식기록에 대하여---------102
6. 신형식의 삼국사기연구논문에서 ---------------------------138
7. 제등국치의 신라 고구려 백제의 천문기록--------------------163
8. 제등국치의 논문의 번역본--------------------------------174
9. 김영식 박성래 송상용의 과학사----------------------------189
10. 박성래의 계간 과학사상에 실린 한국과학사상사--------------193
11. 박창범의 삼국시대 천문현상기록의 독자관측 검증------------211
12. 제등국치의 논문번역본----------
-----------------------255
13. 제등국치 일본일식에 대하여-----------------------------268
14. 일본일식기록의 연구-----------------------------------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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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본문중 일부만 올립니다
二. 지금까지의 연구 발표된 내용과 「삼국사기」원문과의 차이는 없는가를
살펴본다
1. 「삼국사기」와 전혀 다른 내용이 있는가 ?
2. 「삼국사기」를 연구한 다른 도서 인용에서 착오는 없는가 ?
3. 일식연구에서 관측지를 미리 확정한 위치에서 기록의 실현여부 판단이기 때문에 기록시대와는 전혀 다른 위치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
4. 최초 삼국일식 기록의 연구결과가 다른 연구자에게 계속 인용되므로 최초의 연구에 대해서 검토해 보아야 한다.
5. 일식기록이 갖는 사실중의 하나인 관측지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두 가지 즉 관측지를 미리 설정하고 연구하는
것과 관측지 자체를 연구하는 방법
6. 일식 및 천문현상의 독자 기록이 확인되어야 다른 기록도 인정하는 경향은 없는가.
1. 「삼국사기」와 전혀 다른 내용이 있는가 ?
1) 飯島忠夫는 年代計算에서 2년씩이나 착오가 있었다.
飯島忠夫의 錯誤 : 자료 년대의 錯誤는 논문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飯島忠夫 西紀 / 三國史記年表 / 西紀 (신라)
원성왕 3년 789, 丁卯 787
원성왕 5년 791 己巳 789
원성왕 8년 794 壬申 792
애장왕 2년 803 辛巳 801
애장왕 9년 810 戊子 808
헌덕왕10년 820 戊戌 818
흥덕왕11년 838 丙辰 836
문성왕 6년 846 甲子 844
진성왕 2년 890 戊申 888
일식은 관측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면서도 관측지를 설정하고 기록의 실현여부로 판정하여 「삼국사기」를 비판하는데 동조하였다.
중국자료를 차용했다면 중국기록과 같아야 한다.
즉 공백부분이 생길 수 없어야 한다.
이와 같이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차용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2) 홍이섭의 착오 : 飯島忠夫 착오 논문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高句麗 양원왕10년 559년은 甲戌로
「삼국사기」에 있는데 554년으로 오류
신라 원성왕 3년 789년은 丁卯로 「삼국사기」에
있는데 787년으로 오류
3) 玄正晙의 착오 : 초기 삼국의 채집자료 년대를 西曆變換時 1년 착오
혁거세 24년6월 전33년 8월20일은
전34년 8월23일의
것으로
혁거세 30년4월 전27년 6월15일은
전28년 6월19일의
것으로
혁거세 32년8월 전25년10월19일은
전26년10월23일의
것으로
혁거세 43년2월 전14년 3월23일은
전15년 3월29일의
것으로
온조왕 6년7월 전12년 8월26일은
전13년 8월31일의
것으로
혁거세56년1월 전 1년 2월 2일은
전 2년 2월 5일의
것으로 해야 한다.
혁거세 59년9월부터는 오폴져의 일자에서 1일이 삭제된 일자가 수록되어 있다.
*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식의 조사가 특징이고 일본학자의 연구를 인용하지 않았다.
착오는 일식은 관측지를 알 수 있음에도 삼국이 한반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삼국기록을 연구한 것이 흠이다.
4) 김용운의 飯島忠夫 論文 錯誤의 발견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일식은 관측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삼국사기」에서 일식을 관측한 지역을 한반도로 기정 사실화한 것이 흠인데
조선국가사관으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5) 신형식, 박성래도 飯島忠夫의 결론을 인용하고 있고 관측지연구가 아니라 일식
등 천문현상이 같은 사상관계에 치중하였고 관측지를 한반도로 보았으며 천문현상으로 삼국위치를 찾으려는 연구는 아니였다.
몇 가지 "예"를 들으면
신형식의 「삼국사기연구」에서
'天命觀에 바탕을 둔 정치사상의 구현을 기본정신으로 한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볼 때 天災地變의 기사에 관한 실질적 의미파악이
요청된다. 동양사회에 있어서는 天災神異가 정치에 대한 경고 비판 및 사건의 예고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自然變異의 전후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 삼국시대의 자연관 또는 그러한 기사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삼국사기연구 184p
'「삼국사기」의 일식기사가 중국문헌의 단순한 전재라면 3국이 존속하는 10세기의 중국문헌에 나타난 265회의 기록중 단 67회만이 기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4. 5세기에는 중국에는 30.31회임에
대해 麗.羅에는 1회의 기록도 못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 삼국사기연구203p
필자(신형식)는 '「삼국사기」내용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상고대의 기록이라 해도 그것이 갖는 사료적 한계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일단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본서를 집필하였다.
그것이 비록 중국문헌의 轉載이며 편찬당시에 많은 수정이 있었다 해도 유일한 문헌으로서의 사실 그 자체까지 부정한다면 한국고대사는
성립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편찬당시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하게 원래의 사실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본서는 그에 대한 비판에 앞서 「삼국사기」의 정확한 실체발굴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장래할 명확한 비판을 위한 기초적
작업이 될 것이다.' --- 삼국사기연구16p
박성래의 사상적연구에서 ' 혁거세의 재위 61년
동안에 모두 23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12건이 자연현상에
대한기록이고 이중 7건이 일식기록이고 혜성에 관한 3건
나머지 2건은 용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이 아직 설화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삼국초기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일식의 경우 이 시대의 기록은 신빙성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일이 있고 사학계에서는 이것이 이미 정설로 굳어진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의 일식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신빙성이 적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들의 자연관
또는 과학사상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 과학사상 1992 194p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에 있는 다른 기록이 아주 불충실한 것에 비해 일식 기록이 유별나게 정확하고 도 비교적 많다는 점부터가 의심스럽다면
의심스러운 일이다.
또 삼국의 일식 기록에는 규칙성이나 일관성이 보이지 않으며 어떤 시기에는 많이 기록되었다가 어떤 시기에는 몇 백년 동안 전혀
기록이 없기도 하다. -- 과학사상1992 가을 196p
이런 이상한 현상을 근거로 1920년대에 이 문제에 대해 논문을 쓴 어떤 학자는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중국의 것을 그대로 베껴 「삼국사기」의 빈약했던 내용을 부풀린 것이라고 단정했다.
---- 과학사상 1992 196p
특히 혁거세 재위 기간 동안 모두 23건의 자연현상 기록 가운데 일식이 7건이나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더욱 신빙도가 떨어진다. --- 과학사상 1992 197p
아무리 뒷날 신라의 후예에 의해 쓰인 역사라고는 하지만 고구려의 기록이 4세기 이후의
일식이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은 까닭은 짐작하기 어렵다.
신라의 경우 4세기 이전의 일식 기록에 어느 정도 무리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역시 4세기이래 거의 500년 동안이나 일식을 기록하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다. -- 과학사상1992 199p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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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말씀드리면
삼국사기 천제관측 연구는 일본놈들이 1925년부터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기위해
연구하였고
연구결과 중국의 기록을 차용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삼국사기를 불신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후 국내에서는 제대로된 검증절차가 일어나지 못하였으며(독자연구), 일본놈의 연구결과물을 통채로 베껴 인용하는 것은 물론 그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현상이 1993년까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를 천제물리학자인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여러경로의 검증을 거쳐 사서의 기록을 검증하니
- 독자관측 기록이며
- 오히려 중국보다 더정확한 기록(太白晝見)을
남기었으며
- 초기관측위치가 중국대륙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더러운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과학은 과학일 뿐입니다
판단은 네티즌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제는 깨어나야합니다
< 삼국사기 일식에 관한 연구현황 : 실현여부연구 / 관측지연구 ! > - 오재성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에 대하여 일본인이
처음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방향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한 기록인지를 연구하여 왔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이 포함되었다고 하면서 중국기록을 차용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삼국사기 기록이 중국 기록을
차용한 것이므로 믿을 것이 못된다는 방향으로 학문전개가 되어 왔었다.
일식 현상이 한반도 상황이 아닌것이 많음으로 독자적인 기록이 아닐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연구의 방향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학자들이 「삼국사기」의 천문현상에 대한 연구를 해 왔으며
특히 1925년 일본인 반도충부(飯島忠夫)의 연구내용이 근간이 되어 1990연대까지 그 맥이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내용은 그 연구목적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조선 국가사관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삼국사기」전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남북한에 있다고 전제하고 그 내용을 검토하여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중국사서에서 차용하여 책의
공백을 매 꿨다는 악평을 내세워 「삼국사기」가 위서라는 것을 방증(傍證)하는 내용일색으로 되어 있다.
<< 지금까지의 연구현황 >>
< 일인 반도충부(日人 飯島忠夫) >
- 연도 : 1925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독자연구
- 관측지설정 : 한반도에서 관측한 것으로 전제하에 연구
- 독자관측 여부 : 한반도에서 볼수 없는 기록이니 중국기록을 차용한 위서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연구목적이 삼국사기가 "위서"임을
증빙하는데 있었음
☞ 국내논문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1993년까지~)
< 홍이섭 >
- 연도 : 1944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반도논문을 차용 (독자안함)
- 관측지설정 : 한반도에서 관측한 것으로 전제하에 연구(한반도 설정)
- 독자관측 여부 : 독자관측기록도 있고 중국기록 차용도 하였음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김용운 >
- 연도 : 1977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반도논문을 반박
- 관측지설정 : 한반도 설정
- 독자관측 여부 : 독자기록(차용아님)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현정준 >
- 연도 : 1979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독자연구
- 관측지설정 : 한반도 설정
- 독자관측 여부 : 독자기록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신형식 >
- 연도 : 1981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前학자의 논문인용(홍이섭의
글을 반도충부의 글로 소개)
- 관측지설정 : 한반도 설정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박성래 >
- 연도 : 1992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반도설 차용(太白晝見
관심없음)
- 관측지설정 : 한반도 설정
- 독자관측 여부 : 초기의문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일인 제등국치(日人 齊藤國治) >
- 연도 : 1985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독자연구
- 관측지설정 : 한반도 설정
- 독자관측 여부 : 차용도 하고 독자기록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 안함
< 박창범 >
- 연도 : 1994
- 주제 : 일식, 태백주견(日蝕, 太白晝見 : 낮에
금성이 보임)
- 독자연구 여부 : 독자연구
- 관측지설정 : 관측지 설정을 하지 않고 집중관측위치 추적
- 독자관측 여부 : 독자기록
- 일식으로 관측지 연구 : 관측지 연구(삼국
모두 6세기이전은 대륙, 7세기이후는 한반도가 관측지)
지금까지 일식의 실현여부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일식을 관측한 곳이 어디인가를 연구한 것은 박창범 교수가 처음이다.
그래서 실현여부의 연구와는 전혀다른 연구방향이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역사인식을 찾는데 도움이 될 연구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연구도 삼국사기가 한반도에서 일어난 기록으로 보고 이루어졌는가에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면 본인은 역사기록이 이와같이
되려면 어떤 상황이 되어야 그렇게 기록될수 있는가에 방향을 두고 연구를 하니 삼국의 대륙존재가 밝혀질수 있다는 것이다
박창범교수의 기본적이고 담대한 연구에 의하여 「삼국사기」의 일식기록 대부분 분석결과와 일치하고 그 관측지를 역추적하므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지역을 새롭게 추정하는 개가를 올린 것 같다.
또 7세기 이후 한반도에서도 일식 관측이 됨으로서 한반도에서도 관측능력이 있는 신라가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본연구는 일식이라는 단일주제이지만 적은 것에서 큰 것을 발견해 낸 획기적이며 우리민족사의 진실을 찾는 과학적관건이 되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모든 연구는 순수한 연구목적을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논리를 펴 나가야 하며 객관성있는 후대에까지도 부끄럽지 않은 연구결과를
자아내야 할 것이다.
「삼국사기」 일식 기록은 실현성 여부 검증과 관측지연구에 의해서 7세기 이전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측지는 황해 서쪽으로 보이는데 이는 요(산서성)의
동쪽에서 관측한 것으로 규명되니 삼국의 수도가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8세기 이후에는 황해 동쪽에서 관측한 것으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으니 「삼국사기」
내용을 한반도에 맞추지 말고 「삼국사기」와 「중국25사」와 「삼국유사」 등을 공통 부분과 비공통부분으로
구분하고 정리된 상태에서 삼국의 강역을 찾아보는 밑거름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다 맞추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일식으로 관측지를 연구한 결과를 충분히 활용하는 새로운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더욱이 서지학으로 검토한 결과 지명, 인구, 조공일정, 특산물, 풍속, 계보, 홍수 등과 일식 연구를 더하여 종합적이고 과학적으로 우리역사를 정립해야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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