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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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해(海)의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 >
"이론이 있는 부분이므로 올바른
사료해석의 자료로서 참고바랍니다"
율곤학회 게시판에서 인용한 자료입니다
가감없이 내용을 그대로 전제합니다
아울러 기존에 올렸던 바다해(海) 관련
자료를 일부 올려봅니다
참고바랍니다
이미소개한바 있는 1950년대 중국군사지도 및 자연도상의 표시는 어떠한지
찾아서 보완자료로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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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곤학회 인용글 >
사이트 주소 = http://www.sanggosa.com/
< 동해, 남해, 서해, 북해 >
▒ 서해(청해)

수나라 시기의 지도입니다.
고지도에는
청해를 모두 서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해 왼쪽으로
서해군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관리자 개인이 추론하자면,
서해의 물이 아주 맑은 까닭에 청해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나라 이후부터
북해를 小海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면,
西海(청해)를 상대적으로
大海라고 부르지 않았나하는 것이
관리자 개인의 생각입니다.
또한 고지도를 보면,
유독 황하의 거대한 물줄기가 유입되는 동해변을
황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황하의 황토물로 인해 바닷물이 누렇다고 하여
황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즉 황해는 동해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지도에는,
항상 동해와 황해를 같이 표기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해와 서해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한반도에서 바라볼 때의
즉 우리 현재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 소해(북해)

소해는,
고지도를 통해 보면,
수나라 때까지 북해로 표기되어 오다가,
당나라 이후의 지도에는 소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 사해

西漢 시기의 지도를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지도상에는 지금의 황해가 고대에는 동해로 표기되어 있고,
대만 아래에서부터, 홍콩 앞 바다는 남해로 표기되어 있고,
홍콩의 바로 윗쪽에 南海라는 지명이 있으며,
고대에는 홍콩의 일대가 남해군이었음을
당나라까지의 지도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양자강의 하류 부분, 동해에 근접한 위치에
강릉이라는 지명 역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해를 西海라고 했으며,
몽고 지역에 北海라고 표기되어 있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북해는, 隋나라 시기까지 북해로 계속 표기되어 오다가,
唐나라 이후부터는 소해로 표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당서에 기록된대로,
백제가 소해의 남쪽이고, 서해의 북쪽이라면,
이십오사에 기록된 대로,
백제가 요서 지방의 진평이군을 경략했다는 기록도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요동과 요서의 경계는,
율곤선생님에 의하면,
서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여러나라의 기록들이 맞아떨어진다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추론하고 있습니다.
역시 율곤선생님에 의하면,
왜(倭) 역시 처음에는 대륙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위치가 옮겨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최후의 기착점이 지금의 일본이라고 합니다
< 인용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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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에 게시한 내용중 일부 재게시
< 송본지리지장도 - 동한군국지도 >

- 빨간네모 : 치, 청, 래, 해 - 백제본기에 나오는 병사 칠천 징발 장소입니다
- 푸른네모 : 북해, 동해, 남해 - 바다가 아니라 지명입니다
바다해(海)자를 바다로만 보지 마시고
전후상황을 보아 지명 또는 바다로 풀어야
정확한 역사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지금 중국군사지도상에는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중국군사지도 >

중국민족들이 동이의 흔적을 없애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요
그러나 이 중국군사지도가 있음으로 고지도와 비교하여 추적이 가능합니다
- 치는 "치천"으로
- 청은 익도로 바꾸고 괄호로 옛 "청주"라는
표시입니다
- 래 역시 괄호로 옛 "래주"라
표시하고 있습니다
- 동해 옆에 괄로안에 "해주"가
보이시지요. 옛 "해" 지명입니다
입해(入海)한다가 바다로 간다는 것이아니라
지명 "해"땅으로 들어 갔다는
말입니다
< 송준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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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클릭 "2번" 본문내용 일부 인용합니다
< 바다 "해"자
한자의 해석이 우리역사를 바꿀수 있습니다 ! >
< 海는 地(땅)와 바다의 두뜻이 있습니다 >
우리는 바다를 漢字로 표기할 때는 海로 표기한다. 그래서 海만 들어가면 '바다'로 해석하려
는 습관이 배어있다.
만약 바다로만 해석한다면
東海谷은 동해 바다 골짜기로 풀이할 수 있는데 동해곡은 高句麗太祖55년 지명으로
되어 있
다.
南海로 풀이한다면 남쪽바다가 될 것이나 순행을 하였다고 했으니 지명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해가 들어간 지명으로 한국에는 南海 東海가 있으며 중국에도 동해, 上海(이상 강소
성), 淸海(내륙에 있었음)등이 있다. 모두 지명이다.
역사의 기록에서 해의 기록이 미묘한 것이 韓의 동서의 海가 있고 百濟 기록에서 大海와 度
海이다. 이것은 바다로 보느냐 땅으로 보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를 나타낸다.
百濟 말기의 기록중에서
三國史記 百濟本紀 --發淄靑萊海之兵七千人
舊唐書199上 --------發淄靑萊海之兵七千人
唐書220-------------發齊兵七千
이 기록은 군사를 징벌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데 모두 지명이 아니면 군사를 징벌할 수가 없
다.
淄와 靑과 萊는 泰山의 동쪽에 있다. 海는 어디에 있었는가?
泰山의 남쪽에 海가 있다. 현재는 東海 또는 海州라 한다.
분명히 海는 지명이다.
바다로 풀이한다면 용궁군사를 징벌해야 되는데 그 당시 용궁이 있다면 지금도 용궁을 보아
야 하니 절대로 이곳에서는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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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해)의 해석과 渡海(도해)의
대한 해석에 도움될 중국 내부의
기록 >
우리는 '해'는 '바다'로 '도해'는 '바다를
건너간다'라고 풀이하여 삼국시대의 동이각국의
위치에 대하여 연구를 하는데 매우 민감한 것이 해와 도해이다.
그런데 중국역대 기록에서 동이전에 기록된 외에 장안중심 국가의 '내부 기록'에서 '도해'
를 사용하였음을 찾아 볼수 있다.
우리식으로 풀이하면 중국의 해변에서 한반도나 일본이나 필리핀 등으로 다닐 때만 가능한
기록일 것이다.
여기서 도해는 중국 대륙에서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므로 '해'자 해석에 참고가 될것으로 보
여서 소개하고자 한다
< 중국정사에서의 渡海(도해) 기록 >
< 本紀 史記卷六 本紀第六 p-0260 >
三十七年十一月,行至雲夢,望祀虞舜於九疑山 浮江下,觀籍柯,渡海渚 過丹陽 至錢唐>臨浙
江,水波惡,乃西百二十里從狹中渡上會稽,祭大禹,望于南海,而立石刻頌秦德
「九疑山在永州唐興縣東南一百里。皇覽?墓記云舜?在零陵郡營浦縣九疑山
「丹陽郡故在潤州江寧縣東南五里,秦兼?天下,以??郡也。」
錢唐,今杭州縣。
「其流東至會稽山陰而西折,故稱浙。音折。」
「蓋在餘杭也。顧夷曰『餘杭者,秦始皇至會稽經此,立?縣』。」
"구의산은 호남성 남쪽에 있고 단양은 남경 동쪽에 있다"
< 황산풍경도 - 바다"해"는 넓은 땅 >
2000년도 발행 중국지도입니다
바다해(海)를 바다로만 해석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전후사정을 살펴
- 넓은땅
- 바다
- 호수
등으로 경우에 맞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아래 지도는 가라 추정지역의 "황산풍경도"입니다

- 海는 지금도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후해(後海)-----
서해(西海)---천해(天海)------동해(東海)
----------- 전해(前海)-----
위지도는
아래 가라지역 지명중
"황산"을 나타낸 중국지도입니다


< 중국지도상 - 대해(岱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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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과 백강>
우리는 백제가 패망할때의 강을 백마강이라고
들었으나 삼국사기에는 "백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구당서에도 "백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백강"이 어디인가는 삼국사기에서 찾아야 한다
660년 홍수(백제의 충신)가 평원, 백강, 탄현(침현)은 백제의 길목이라고 하였다.
나당연합군이 백강 침현을 지났다고 하여 계백이 5000군으로 황산으로 가 신라군과
전투 하
였다.
주류성의 백제부흥군을 소탕하기 위하여 "웅진"에서 "주류성"으로 달릴때 "백강어귀"에서 "
왜군"과 전투를 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평원 웅진 황산 백강 주류성 침현은 백제 말기의 지명들이다
여기서 백강 침현 황산 주류성 웅진은 같은 길목으로 보여진다
한반도에서
공주를 웅진으로 보는데 주변에 어떤 지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백제를 정벌한 신라장군 김유신의 선조가 소호금천씨라고
하는데 소호금천씨능이 "곡부"에
있다.
"곡부"근처 지역에는 지금지도에도 황산 백마하 주류자 침구가 남북으로
있으며 "침현"과
같은 "침구"는 항성지역에
있다.
나당교역지점인 "항성"을
지나 침구를 거치고 백강(백마하)입구를 지나서 황산에
이르고 황
산 동쪽에 대산(태산)이 있으니 그 사이에
웅진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 ?
"백강"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산동성 "백마하"가 아닐까 생각이
되며
백마하의 북쪽에 백마관에서 발원하여 사수와 자양을 지나는 강이 사자수가 아닐까
이것이 사자수라면 사자수 남쪽에 백마하가 있다.
백마하의 서쪽에는 5도독부증에 하나인 "동명"이 있음도 백마하가 백강일 가능성이 가장 높
다고 할수 있다.
삼국사기나 당서에서 백강이라고 되어 있는데 언제 백마강으로 마술을 부렸는지 모를 일이
다
백강은 사수와 자양을 지나는 강일수도 있으나 산동성 "백마하"로 보여집니다 !
더 정확한 자료가 나올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
< 지 도 >

< 백(마)강 관련 중국 군사지도
>

< 백(마)강 위치 - 지도보는
방법 >
중국 군사지도에 나오는 지명이다 !
- "백마관"과 "사수", "곡부"사이를 흐르는 강이 "사하" = "사자하"일 가능성은 ?
- "사(자?)하"를 이어 "곡부" 아래로 흐르는 강이 "백마하"이다.
< 항성, 침구, 주류자 관련 지도 >

< 지도설명 >
- 항성 : 당나라와 백제의 분쟁기점
- 침구 : 침현이나 침구나 같은 언덕"구", 언덕"현"자 이다
- 주류자 : 주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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