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대륙고려 홈페이지 운영자이신 김용무선생님이 소개한 "한원(翰苑)"이란 책에 대해서 소개(3회연재)합니다
추가로 자세한 것은 대륙고려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 주소 -
http://kym5006.new21.org/jbbs/jlist.php?code=bbsc
< 1. 한원(翰苑) - 책소개 >
이책의 중요성
아래 그림파일은 이 책의 중요성을 서술한 일본인 "내등호 박사"의 글 6 쪽중 마지막 쪽의 글입니다
한원(翰苑),
이책이 있다는 기록은,
신당서 장문지 유서류(藏文志 類書類)편에,
장초금 한원(翰苑) 7권이라 써 있고,
동 총집류(總集類)에는 장초금 한원(翰苑) 30권이라 써 있는데,
전 30권으로
중국, 우리나라에도 실전된 이책이 일본에 1권이
남아 있으며,
남송이후로는 기록이 없어진 이 책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3국과 흉노, 오환, 부여, 남만에 관한 기록만이 남아 있는 왜곡되지 않은 희귀본이라는
것과 우리 고대 사료가 극히 희귀한 실정에서 참으로 이책은 귀중하다 할것이라 !
중국 어느 책에서도 우리 3국의 위치를 뚜렷이 알려주는 기록이 없더니, 이 책이야말로 정확히 그 위치를 써 놓은 책으로 더욱 귀중한 보물

< 2. 한원(翰苑) - 충격적인 백제의 위치기록 >
< 충격적인 / 확실한 백제 위치 기록 >
아래의 아세아출판사에서 간행된 한원(翰苑)이란
책에 써 있는 백제의 위치 기록.
"당 장안의 신라 유적"을 주문하다가, 이책을 같이 주문하였더니,
도착하여 하루를 꼼꼼이 살펴 본즉, 백제 위치 기록이 있어...
한원(翰苑)이란 책은 당나라 초기에 써진
책으로
서문격인 "권자(卷子)" 제 1행에
- 한원(翰苑)권구(卷口)장초금(張楚金) 찬(撰)
- 옹공예주(雍公叡[밝을 예]注)"라 써 있습니다
즉 한원(이란 책)은
- 장초금이 저술하고 옹공예가 주석했다는 말
번역은 아래 그림 밑에 하였습니다.

☞ 위 원문 별표 * 밑부문
이를 글자만 알지 도저히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근무 시간중에,
중국인 당의신(회사직원)을 불러 물어
본 바
- 위 그림 맨아래, 빨간 글자 주석 부분 -
마한재서산재산해간(馬韓在西散在山海間)은 "마한은 서산과 산해간에 있다"는 말인데
그리고 위 그림 파일의 제일 오른쪽 부분, "백제는 본래 마한의 땅을 다스렸다"는 말에서,
중국인들의 서산(西散) 표현은 중국 요부(遼部)라는 말이고,
이는 즉 요(遼)지방이란 뜻이고,
산해간의 간(間)은 동(同) 관(關)이란 "필담 답변"에
중국인들의 관용 어휘를 모르면,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글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백제는 요(遼)지방과 산해관
지역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존 사학에서 충청, 전라도에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들통나기도 하지만,
또하나 말도 많은 백제의 중국 개척 식민지라는 진평군, 요서군도 아닌
백제 본국은 요(遼)지방과 산해관 지역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상기하시는가 ?
요(遼)지방
이 홈의 곳곳에
우적도, 화이도, 공산화 되기전의 중국
정밀 군사 지도에 표시된,
요(遼)지방이 어디인 줄을...
여기에 위 3지도를 다시 올리는 것도 번거로워 피하지만,
그 요(遼)지방은 분명, 태행산의 동쪽이, 요(遼)지방....,
태행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요동, 서쪽은 요서
북경 남서쪽 200km지점... 요(遼)지방....
▒ 참고지도 : "요" / 산해관

- 요 및 산해관 지역
위 그림 파일, 별표에서 별표 부분 번역
능초산이곽우대상수소강(陵楚山而廓宇帶桑水疏[트일
소]疆)이란 말은,
능초산이란 곳은 그 지역 범위가,
거름지며[=상수桑水=良田], 그래서 물산이 풍부하다는 말.
그래서 이 능초산이 어디인 줄 아느냐고 중국인 당의신에게 물어 보니,
모르다고, "부지(不知)"라고....
그런데 바로 그다음에 이어지는 글은, 위지(魏志)에 마한은 서산과 산해간에 있다는 기록
(상기 글 참조)
< 3. 한원(翰苑) - 고구려 성(城)기록>
이책의 진가 !
이책에 써 있는 "고구려 성"들의
위치
감숙성과 산동성의 두개의 성(城) - "평곽(平郭)과 남소성(南蘇城)"
참으로 귀중한 보물인 이 책을 탐독하면서,
내 공장의 중국인 종업원 5인이 아니었으면, 알아보지도
못할 뿐인 무용지물의 책이 될 뻔
예를 들어,
아래 그림파일의 남소성(南蘇城)중에,
소(蘇)자가 벼화(禾)자와 어(魚)자가 좌우가 바뀌어 써 있어,
그들 도움인, 소(蘇)와 같은 글자라고 말해 주지 않았으면, 헷갈렸을테니....
확증은 이래서 중요....
한원(翰苑),
이책에 써 있는 고구려관련 기록은 총 90쪽중
11쪽으로, 그중 성(城)에 관한 기록이 6쪽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주옥(珠玉)과도
같은 위치 기록이 존재
지금 소개하는 평곽(平郭)과 남소성(南蘇城)의 2문장
규명에도, 틈틈이 만 2일이나 걸렸을 정도임. 앞으로 계속 번역 / 규명하여 위대한 고구려의 강역을 밝히겠습니다.
아래 그림파일의 밑에 번역을 하였습니다.

1. 남소성(南蘇城)
위 그림파일의 기록
한자전환은 그림파일의 한문을 참조하여 생략합니다.
"남소(성)<南蘇(城)> 표융험객가지선명"
남소성을
객가가,
☞ 그림파일 참조 : 모용황 (전연국
왕 이름)이 보낸 도요장군 모객가 : 장수 이름
(고구려를) 험하게 침략하여 남소성 이름을 융주로 바꾸고,
(고구려의) 선조는 통곡하다.
이 선명(先鳴)이란 글자를 중국인 "당의신"은 문장의 앞뒤를 심사숙고하여,
선조통곡이라고 필담 답을 하여 주었습니다.
남소성은 나라의 서북 16국 방향에 있다.
☞ 참 고
이미 국이란 개념을 홈주인이 소개하였듯이,
이 "당의신"도 똑같이
설명하는, 아주 작은 규모의 지방을 국이라고...
춘추 전연 기록왈, [전연 황제] 모용황 12년, [모용황은] 도요장군
모객가를 보내,
고[구]려 남소(南蘇)[성]을 공략하여
빼앗고 [위 그림파일의 극(剋)자],
융주를 설치하고 돌아 왔는데,
즉 이 성이다.
고구려 기에 운하기를 立+木+焦성城 북쪽 70리 산위에 있다한다.
여기에서 立+木+焦성城의 立+木+焦 자字는 옥편에도 없고,
중국인 종업원 5인도 모른다 하여,
융주를 가지고 중국고금지명사전 찾아 보니 산동성으로 써 있습니다.
2. 평곽(平郭)
고[구]려기에, 평곽(平郭)성은
지금[당나라 장초금이 집필 할 때, 현경(顯慶) (당 고종 년호)5년 3월15일]의 건안성
이 건안성을 중국고금지명사전에서 찾아 보니 감숙성이라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 문구는 "[그]나라의 서쪽에 있고,
본래 한(漢)나라의 평곽현이다"
그러니, 위대한 고구려의 강역은 위 두 성만을 가지고 볼 때에,
감숙성에서 산동성까지가 됩니다.

인용끝
감사합니다
< 운영자 송준희 드림 >
----------------------------------------------------------------------
< 필명 돗대님의 의견 >
1. 띄어쓰기 잘못이거나 아니면 백제영역이
매우크거나,
- 등록자 돗대
- 날짜 [2002-05-06] 14:44:08
- 본 문
그림에 보니까 위지왈마한재서산재산해간(魏誌曰馬韓在西散在山海間)이네요.
서산(西散)이 遼部,요 지방으로 풀이된다는데 그거 근거있는 말인지.
그 삼국지 위서란 책에 나온 원문은 이렇습니다.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아마도 마한재서 ~ 산재산해간의 사이 글을 생략하고 쓴것같은데
제 생각엔 띄어쓰기를 잘못 하신것 같습니다.
굳이 서산(西散)을 붙여읽어 지역명으로
본다면
산관(散關)정도가 해당되지 않을까요.
서산을 서쪽의 산관이라 풀이하면
백제의 영토가 어마어마하구만요.
그런데 이 홈페이지의 백제영역과는 너무 다르군요.
* 散關에 대하여
사기. 表 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第十
入都關中(索隱咸陽也 東函谷,南嶢武,西散關,北蕭關.
在四關之中,故曰關中.)
관중[색은에 이르길 함양이다. 4관(동쪽의 함곡, 남쪽의 요무,
서쪽의 산관, 북의 소관)의 중심에 있다하여
관중이라한다.]
대산관(大散關)
섬서성 보계(寶鷄)현 남동부에 있는 옛
관소. 일명 산관(山關)이라고도 하며 봉현(鳳縣)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이 관소는 한 대이래 군사상 요지로 유명하며 섬서, 사천 두 성 사이의 교통로에 해당하는 관계상, 특히 삼국시대에는
위, 촉 양국의 교전지로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다.
2. 융이 아니고 수 아닙니까?
왜 융이나 융주가 나와야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 고국원왕에
十五年冬十月 燕王 使慕容恪來攻 拔南蘇 置戍而還
15년(345) 겨울 10월에 연나라
왕 [모용]황이 모용각(慕容恪)을 시켜
쳐들어와서 남소(南蘇)를 함락시키고 수자리
군사를 두고 돌아갔다.
같은 기록이 진서와 자치통감에도 나옵니다.
모두 수戍 라고 나왔죠.
戎(융)이 아니라 戍(수:둔영-屯營) 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모양으로 보아도 한원 원문의 글자는 왼쪽삐침 이 없는 戍랑 같습니다.
두 글자 모두 부수인 창 戈을 빼면 융은 十 수는人 비슷한 글자가 남는데
사진에 나와있는 글자모양과 비교하면 뭐랑 같은지 알 수 있습니다.
---------------------------------------------------------------
돗대님 의견 감사합니다
대륙고려 홈페이지에도 올려드리겠습니다
---------------------------------------------------------------
"수곡님 질의에 대한 김용무 선생님의 답글"
대륙고려 홈페이지 운영자이신 김용무 선생님의 "한원"관련 답글이 올려져 있어
소개합니다
출처 :
http://kym5006.new21.org/jbbs/jview.php?page=1&code=bbsc&vid[0]=1614&vid[1]=500&vid[2]=19074
--------------------------------------------------------------------------
"1. 중국인들의 관용구인 西散이 遼部,요 지방으로 풀이된다는데 그거 근거있는
말인지 ? 라는 물음에 대하여... "
관용구는 일상 생활중에 말하는 가운데의 언어습관으로,
이를테면 영어의 iT'S 3:00라고 할때의 관용구처럼 지금 3시이다라는데에,
이 It는 시간을 가르키는 뜻 없는 시간 지칭어이듯,
중국인들의 관용구인 西散이 遼部,
요 지방으로 풀이된다는데 그거 근거있는 말인지 ? 라고 묻지말고,
중국인들에게 이 西散이 遼部,
요 지방으로 풀이된다는데 그것이 맞느냐고 공식적 확인할 필요가 있습나다.
단지 사천성 출신 내한 노동자이며,
전기공학과 출신 "당의신"이란
인물이 그렇게 관용구라고 한문 필담 답을 하였기에,
의심없이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틀린다면,
이 홈주인, 국사 연구가로서 자처하는 그 자세가 참으로 망신덩어리라 사료되기는합니다.
그러잖아도 11개 목록의 책을 소공동에 있는 중화서국에 주문한 한자 이전의 그림=상형문자=금석문자 책이 유일하게 하나 도착되어 송금하여 도착된바,
그집의 여주인 "여혜심"에게
당부할 말도 있어 조만간 방문할터인데,
이 관용구를 물어 확인 해 볼 생각입니다.
" 2, 아래 융주인지 술주인지를 지금껏 확인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깁니다"
-----------------------------------------------------------------------
- 참 고
< 김성진님과의 "술"자냐 "융"자냐의 홈페이지 토론내용 >
김성진님의 반론에 진서 기록이 술주라는데에도 불구하고...
"술자와 융자분류"
戎융자,
그런데 이 한원이란 책에서는 분명히,
오른쪽 빗금 획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왼쪽의 공통 덮어 씌우는 획도 빠져 있습니다.
한원이란 책에서의 문제 글자,
아래 그림 참조.

위 그림 파일에서 보면,
술자도 아니고 융자도 아니고....
그러찮아도 중국인들과 한 토론은,
어느 글자인가?!
모두 몰라요...
그런데,
위 글자를 술자로 볼때에 비견될 지명
이 있느냐는 문제가 뒤따르지 않을까?합니다.
문제가 있는 부분 그런데 이 주인공 이름은 모용객가입니다.
< 김성진님의 글 문의글 >
모용각에 대한 기사 중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新校本晉書/載記/卷一百九 載記第九/慕容황
慕容恪攻高句麗南蘇,克之,置戍而還.
이 기사에는 '모용각이 고구려의 남소를 공격하여 이를 이기고,
수(戍)주를 설치하고 돌아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원에서 홈주인님께서 발췌한 부분 역시 융주가 아니라 수주인 것으로 보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 김용무 선생님 답글 >
그런데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도주나 회피인 것 같지만요...
이 책은 그런 왜곡에서 빠진 책이라는 점을 유념하여 주시기를...
이 의견이 분분한 융, 술자를 술자로 간주하거나 융자로 간주하거나는,
글쓰는이의 마음대로....
더우기 이 /新校本晉書/에서
저들 마음대로 쓰고 싶은 것이 저들 역사이고,
그모양을 따라서 우리 마음대로 쓰는 것도 또한 같으니....
고서를 연구하다 보면,
더욱더 오리 무중인 것이 이것이니....
어느 것이 맞다고하며...
어느것이 틀린다하겠습니까?!
중국인들 그들도 모르는 이 문자를...
< 운영자 송준희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