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2.net - 송준희 칼럼 모음 (2001-2002)

< 기사소개 > 백제 중국땅에 있었고 만주장성 고구려가 축조

2002-05-18 11:40:25


제목

제목: < 기사소개 > 백제 중국땅에 있었고 만주장성 고구려가 축조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2-05-18 11:40:25

   

"치우천자"의 역사가 일부나마 대중화되는데 14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미쳤다는 소리는 예사로 들어면서 지나온 세월이었습니다

연구하는 것 보다 더힘든 것은 일반인들의 고정화된 역사인식입니다

너무 힘들지만 인터넷의 가공할 힘은 우리의 올바른 참역사를 찾는데
엄청난 기여를 해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율곤학회에 오래전에 보았던 낯익은 기사가 올려져 있어 2가지 소개해봅니다

http://www.sanggosa.com :
이중재 선생님 홈페이지


< 만리장성 고구려가 축조 "백제 중국땅에 있었고 만주장성 고구려가 축조"
우리민족사연구회, 고지도 등 근거 이색주장 >



"
여운건 회장님의 역사관련 서적이 곧 출판될 예정입니다.
오재성 선생님도 참여하셨으므로 좋은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을 것입니다
출판 즉시 주요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겨레신문 1994 07 19

재야의 한 역사연구모임이 일반의 상식과 어긋나는 몇 가지 흥미있는 문제를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독특한 역사해석으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됐던 '우리민족사연구회'(회장 여운건)는 최근 회원교육용 자료를 통해 백제의 위치가 현재 중국의 산둥(산동허베이(하북안후이(안휘)성 일부 지역이고고려의 동북쪽 경계가 한반도가 아니라 두만강 북쪽 6백리 밖이며만주에 있는 장성을 축조한 나라가 고구려와 고려라는 것 등 세 가지 주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각종 사서와 지도 등을 동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당서>, 고려의 <삼국사기> 등을 검토한 결과 패망할 즈음 백제 인구가 76만 호로 조선 초의 이 지역 인구보다도 오히려 많고, 각종 사서에 등장하는 백제 말기의 지명인 평원·황산·백마강·덕안 따위의 20여 개 지명이 호남과 충청도 지방엔 없는 반면 중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들은 백제가 중국 땅에 있었다는 주장을 편다.

고려의 동북쪽 경계에 대해서도 이들은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서북계도> 등의 고 지도와 <고려사> 56권을 바탕으로 '상식화한 경계선'을 수정하려 든다. <고려사>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는 문장에 나오는 '선춘령'이 고 지도에는 모두 두만강 경계에서 북쪽으로 6백 리 위에 표시돼 있다는 것이다.

만주 장성의 경우엔 <송사> "우나라 때 기주가 고조선이 되고 고구려가 되고 고려가 됐다"는 구절과 <동국지도>를 대조해 보았을 때 문제의 '기주'가 오늘날 중국의 허베이성이 틀림없고, 랴오닝성 카이위안(개원) 지방을 결절점으로해 서북으로는 산하이관(산해관) 동북으론 창춘(장춘), 동남쪽으로는 단둥(단동) 지방에 이어지는 장성의 위치를 보더라도 우리 민족이 만든 것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축조하는 쪽에서 볼 때 산맥 너머에 만드는 것이 전례이므로 이 장성은 고구려에 이어 고려가 나중에 추가로 축성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존 학계가 이렇게 이색적인 주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
강희철 기자>



▒ 참고 : 여운건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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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사 연구회 소개" 참조



< 의자왕(義慈王) 유해 돌아오려나, 이국(異國)묻힌 백제 마지막 왕 >


한국일보, 1994 07 06

충남도는 백제문화 재현사업의 하나로 중국 하남성 낙양(河南省 洛陽)에 있는 것으로 기록된 백제 의자왕(義慈王 : 재위 641∼660)의 묘를 현지조사로 확인하고 무덤이 확인되면 유해송환을 추진키로 했다.

도는 이달부터 8월 말까지 현지조사에 필요한 각종 문헌을 수집한 뒤 9월께 도 내무국장을 반장으로 윤무병(尹武炳) 문화재위원 안승주공주대(安承周公州大) 총장 등 학계와 공동으로 중국 낙양 북망산(洛陽 北邙山) 현지를 답사할 계획이다.

현지답사반은 북망산 비석에 새겨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금석문을 확인하고 의자왕과 관련된 현지 사료도 수집할 계획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의자왕은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해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에 의해 두 태자(· : ·), 대신 88, 백성 128백여 명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으며 사후 낙양 북쪽 공동묘지인 북망산 손호, 진숙보(孫皓, 陳叔寶) 능 좌측에 안장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손호(孫皓)는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 왕, 진숙보(陳叔寶)는 진()나라 왕으로 알려져 있다. 북망산은 황폐화된 묘가 많은 공동묘지로 후한(後漢)시대의 능이 많다

충남도는 의자왕의 무덤이 확인되면 중국정부와 유해송환 협의를 벌여 공주 또는 부여지역에 봉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무왕(武王)의 맏아들인 의자왕은 백제 마지막(31)왕으로 632년 태자에 책봉됐고 전성기엔 용맹하고 효성과 우애심이 깊어「해동증자」라 칭송되기도 했다.


도 관계자는『현지의 낙양역사문화원이 협조를 약속했으며 조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빈약한 백제역사를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백제문화권 개발정비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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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