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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책 입당구법순례행기 (2) - 항해기록의 문제점

2002-06-16 19:06:49


제목

제목: 일본소설책 입당구법순례행기 (2) - 항해기록의 문제점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2-06-16 19:06:49

   



< 소설책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 (2) - 항해기록의 문제점 >



< 산동성 적산에서 금() 일본까지의 항해때의 문제점 >


현재 산동성에서 일본까지 여행하는데 최소 몇일이나 소요될까 ?

본 여행기에서는 대중원년(847) 9 2일부터 10일까지 산동성 적산포에서 출발하여 今 일본에 도착하였는데 실제 운항은 4일간에 불과하다 이것이 가능한 기록일까 ?

자세히 살펴보면


< 항해일지 >


9 2일 정오 산동성 적산포를 출발(午時發)
9 4 21시 고이도 도착 (二更到 고이도) : 57시간정도 (29시간) 소요

- 9
5일 바람이 동남풍으로 변하여 길을 떠날 수가 없다.

9 5일 고이도에서 12시 출발 (三更發)
9 6 6시 무주남쪽 황모도(구초도) 개뻘에 배를 댐 (卯時到황모도) : 6시간정도 소요

9 8일 무주 남쪽 황모도에서 오전4시에 출발하여 오전9시에 "안도"에서 잠시 쉬었다.
(
五更發 황모도 巳時到 안도) : 5시간정도 소요

9 8일 정오 "안도" 출발 910일 초저녁 일본 송포군 "녹도" 도착 : 30시간소요



<
관련지도 >







산동성 적산포에서 대마도까지 날짜로는 7일이 걸렸으나 실제운항시간은 98시간 밖에 운항하지 않아 4일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 57 + 6 + 5 + 30 = 98시간 )

과연 그 당시의 배로 가능한 운항일 수 일까 ?

현재 인천항에서 중국까지 현대 쾌속선으로 18시간이상이 소요된다

8
세기에 돛달린 배가 노를 저어서 전라남도 무안 앞바다 아주 작은섬 "고이도" 57시간만에 도착한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현재 산동성에서 출발하여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항로의 일수는 얼마나 걸릴 것인
?

1666
(현종7) 8 3일 하멜이 여수에서 출항하여 12일에 장기현(현 일본)에 도착하였는데 일수로 10일이 소요되었다.

1866
9 18일 프랑스 로즈함대가 천진을 출발 21일에 강화도에 도착했으니 3일이 소요되었다.

17
세기 여수에서 일본까지 10일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9세기에 2일정도 소요되어 도착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 ?

9
세기 범선으로 운항을 보면 진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문헌상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전남 완도가 청해진(淸海鎭)이라면 남해안을 통과할 때 풍경이 기록되지 않을 수는 없다 >


(
청해진이 탐라도보다 원인(圓仁)으로서는 더 비중이 있었음에도 완도 기록이 없다.)


圓仁이 반도의 남해안을 통과하는 청해진에 대한 기록은 없고 탐라도에 대한 기록이 두번이
나 등장하고 있는데 여행하는데 조력을 받았던 장보고의 비중이 훨씬 강함에도 장보고의 청해진에 대한 기록이 없고 탐라도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회창 7(대중원년 : 847) 9 6일 무주 서남쪽 고이도 흑산도에서 무주 남쪽 황모도(구초도)사이에서 탐라도가 보인다고 하였다.

회창 7 9 8일 안도에서 탐라도가 보인다고 하였다.

이렇게 탐라도가 보인다는 기록을 두 번이나 하면서도 고이도에서 안도 즉 남해안을 통과했
다고 하면서도 청해진에 대한 선박 활동이나 무역선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은
청해진이 남해안에 없던가 아니면 圓仁이 통과한 고이도에서 안도까지가 이곳이 아니던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다.

(
애장왕 2(801) 10월 탐라국 사신이 신라에 왔다고 『삼국사기』는 적고 있었다.)

현재 고이도는 무안반도에 있고 서쪽에 흑산도가 있고 여수 남쪽에 안도가 있고 그 서남쪽
에 제주도가 있다.

흑산도에서 제주도가 보이는 것과 여수에서 제주도가 보인다는 것은 여간 집중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 기록에서 다른 많은 문제점과 함께 이 부
분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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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이후 한반도에만 지나사 동이전 주인공들의 활동무대로 정착시킨 이후에 문제의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

다시말하면 청해진이 완도가 아닐때 가능한 기록이고 완도가 청해진이라면 패쇄된 이후일 때 가능하나 통과할 때는 청해진이 있었으니 이 또한 의문이고 탐라도를 보고
완도를 보았다면 개뻘에 대한 기록이 있는 내륙을 통과하면서 제주도를 보았을까 하는 것이고 개뻘의 기록이 있고 청해진 기록이 없다면 1391년 이후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할 것이다.

부산 태종대에서 맑은날 보아야 대마도가 겨우 보인다
그보다 더먼 거리인 흑산도나 여수 남쪽 안도에서 과연 제주도를 볼 수 있을을까 ?
청해진이 완도였다면 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

하여간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록이다

이 것은 일부분에 불과한 내용이다
왜 소설일 수 밖에 없는 기록인지 내일 또 언급코자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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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