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책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
(2) - 항해기록의 문제점 >
< 산동성 적산에서 금(今) 일본까지의
항해때의 문제점 >
현재 산동성에서 일본까지 여행하는데 최소
몇일이나 소요될까 ?
본 여행기에서는 대중원년(847) 9월 2일부터 10일까지 산동성 적산포에서 출발하여 今 일본에 도착하였는데 실제 운항은 4일간에 불과하다 이것이 가능한 기록일까 ?
자세히 살펴보면
< 항해일지 >
① 9월 2일 정오 산동성 적산포를 출발(午時發)
② 9월 4일 21시 고이도 도착 (二更到 고이도) : 총 57시간정도 (2일9시간) 소요
- 9월 5일 바람이 동남풍으로 변하여 길을 떠날 수가 없다.
③ 9월 5일 고이도에서 12시 출발 (三更發)
④ 9월 6일 6시 무주남쪽 황모도(구초도)
개뻘에 배를 댐 (卯時到황모도) : 6시간정도
소요
⑤ 9월 8일 무주 남쪽 황모도에서 오전4시에 출발하여 오전9시에
"안도"에서 잠시 쉬었다.
(五更發 황모도 巳時到 안도) : 5시간정도 소요
⑥ 9월 8일 정오 "안도" 출발 9월10일 초저녁 일본 송포군 "녹도" 도착 : 30시간소요
< 관련지도 >


산동성 적산포에서 대마도까지 날짜로는 7일이 걸렸으나 실제운항시간은 98시간 밖에 운항하지 않아 4일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 57 + 6 + 5 + 30 = 98시간 )
과연 그 당시의 배로 가능한 운항일 수 일까 ?
현재 인천항에서 중국까지 현대 쾌속선으로 18시간이상이 소요된다
8세기에 돛달린 배가 노를 저어서 전라남도 무안 앞바다 아주 작은섬 "고이도"로 57시간만에 도착한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현재 산동성에서 출발하여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항로의 일수는 얼마나 걸릴 것인
가 ?
1666년 (현종7년) 8월 3일 하멜이 여수에서 출항하여 12일에 장기현(현 일본)에
도착하였는데 일수로 10일이 소요되었다.
1866년 9월 18일 프랑스 로즈함대가
천진을 출발 21일에 강화도에 도착했으니 3일이 소요되었다.
17세기 여수에서 일본까지 10일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9세기에 2일정도 소요되어 도착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 ?
9세기 범선으로 운항을 보면 진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문헌상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전남 완도가 청해진(淸海鎭)이라면
남해안을 통과할 때 풍경이 기록되지 않을 수는 없다 >
(청해진이 탐라도보다 원인(圓仁)으로서는 더 비중이 있었음에도 완도 기록이 없다.)
圓仁이 반도의 남해안을 통과하는 청해진에 대한 기록은 없고 탐라도에 대한 기록이 두번이
나 등장하고 있는데 여행하는데 조력을 받았던 장보고의 비중이 훨씬 강함에도 장보고의 청해진에 대한 기록이 없고 탐라도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회창 7년(대중원년 : 847) 9월 6일 무주 서남쪽 고이도 흑산도에서 무주
남쪽 황모도(구초도)사이에서 탐라도가 보인다고 하였다.
회창 7년 9월 8일 안도에서 탐라도가 보인다고 하였다.
이렇게 탐라도가 보인다는 기록을 두 번이나 하면서도 고이도에서 안도 즉 남해안을 통과했
다고 하면서도 청해진에 대한 선박 활동이나 무역선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은
청해진이 남해안에 없던가 아니면 圓仁이 통과한 고이도에서 안도까지가 이곳이 아니던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다.
(애장왕 2년(801) 10월 탐라국
사신이 신라에 왔다고 『삼국사기』는 적고 있었다.)
현재 고이도는 무안반도에 있고 서쪽에 흑산도가 있고 여수 남쪽에 안도가 있고 그 서남쪽
에 제주도가 있다.
흑산도에서 제주도가 보이는 것과 여수에서 제주도가 보인다는 것은 여간 집중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
기록에서 다른 많은 문제점과 함께 이 부
분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10세기 이후 한반도에만 지나사 동이전 주인공들의 활동무대로 정착시킨 이후에 문제의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
다시말하면 청해진이 완도가 아닐때 가능한 기록이고 완도가 청해진이라면 패쇄된 이후일 때 가능하나 통과할 때는 청해진이 있었으니
이 또한 의문이고 탐라도를 보고
완도를 보았다면 개뻘에 대한 기록이 있는 내륙을 통과하면서 제주도를 보았을까 하는 것이고 개뻘의 기록이 있고 청해진 기록이
없다면 1391년 이후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할 것이다.
부산 태종대에서 맑은날 보아야 대마도가 겨우 보인다
그보다 더먼 거리인 흑산도나 여수 남쪽 안도에서 과연 제주도를 볼 수 있을을까 ?
청해진이 완도였다면 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
하여간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록이다
이 것은 일부분에 불과한 내용이다
왜 소설일 수 밖에 없는 기록인지 내일 또 언급코자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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