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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전 선생님 홈페이지 자료를 인용 소개합니다
홈페이지 주소 http://www.cheramia.net
다소 격한 표현들이 일부 있으나 전문인용하는 것이오니 이해바랍니다
내용이 너무 많아 수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서문 전문공개(1) >
< 북왜(北倭)와 남왜(南倭) >
일본에 일본판 「환단고기」를 번역소개한 가시마
노보루는
일본사의 혁명적인 대륙사와 문명서래설을 보여준다.
다음의 「환단고기」 서문 내용 중
- "북왜, 남왜설"에
대한 내용과
- "<단군세기(檀君世紀)>-단군조선의
실크로드, 인도지배" 내용 및
- "단군세기(檀君世紀) -협야후배폐명(陝野侯裵幣命:니기하야히)과
산와(山窩)"에 대한 내용,
- "「단군세기」-왜한(倭韓) 양족과 솔로몬의 선단",
- "<북부여기(北夫餘紀)>-단군조선과
시황제(始皇帝)"에 대한
대륙사관적 견해를 들어본다.
중요한 것은 이 학설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가시마는 일본인 학자로서 「환단고기」를 100% 인정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사를 북왜설과 서래설의 대륙사로 끌어올리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사관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국내 **지 ** 사학자들에게
좋은 경종을 울려 줄 것이다.
참고로
그간 강단 **사학자군과 재야 민족사학계 사이에 「환단고기」의 진위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어왔음에도 막상 일역판 환단고기의 역자 가시마가 쓴 다음의 내용은 필자(안원전 선생님-운영자 주)가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 북왜(北倭)와 남왜(南倭) >
-「일본서기」가 감추려 한 것은 천황가 - 정확히는 환무(桓武)가
백제 망명자였다는 사실이지만,
이 역사위조의 원점에 만주에 있던 왜인(北倭)라는
문제가 있었다.
「산해경」<해내북경>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사무산(蛇巫山) 위에는 어떤 사람이
몽둥이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 있다.
혹은 구산(龜山)이라고도 한다.
…능문산(凌門山)도 황하가 그 가운데서
흘러나온다.
왕자야(王子夜)의 시(尸)는 두 손, 두
다리, 가슴, 머리가 모두 끊어져 따로 있다.
순(舜)의 부인 등비(登比)씨가 소명(宵明)과 촉광(燭光)을
낳았다.
(이들은) 황하의 대택(大澤)에 살았는데, 두 여인은 신통력으로 이곳 사방 100리를 비출 수 있었다.
혹은 등북(登北)씨라고도 한다.
개국(蓋國)이 거연(鋸燕)의 남쪽, 왜(倭)의 북쪽에 있다.
왜(倭)는 연(燕)에 속한다.
조선(朝鮮)이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이다.
열양(列陽)은 연(燕)에 속한다.
열고야(列姑射)가 바다 가운데의 섬 속에
있다.
야고국(射姑國)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데
열고야(列姑射)에 속하며 서남쪽을 산이 에워싸고 있다.
큰 게(大蟹)가 바다 한가운데에 산다.
능어(陵魚)는 사람의 얼굴에 팔 다리가
있고 몸둥이는 물고기인데 바다 한가운데에 산다.
큰 방어( 魚)는 바다 한가운데에 산다.
명조읍(明組邑)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봉래산(蓬萊山)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대인(大人)들의 저자(市場)가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또한 「산해경」<해내동경>에는
거연(鉅燕)은 동북의 변두리에 있다고 했다.
이것을 백기소일랑(白崎昭一郞)은 다음
그림과 같이 비정(比定)했다.
(왜의 위치 도표그림)
연(燕)의 동북에 거연(鉅燕),
거연의 남쪽에 개국(蓋國),
다시 그 남쪽에 왜(倭)
그러나, 이 문장에는 실은 문제가 있다.
즉,
< 개국재거연남왜북왜속연(蓋國在鉅燕南倭北倭屬燕) >이라는 문장을
강호(江戶) 시대까지는
<개국은 거연에 있다. 남왜와 북왜는 연에 속한다>고 읽지만,
명치이후
'남왜와 북왜'로는 곤란해서 <개국은
거연의 남, 왜의 북에 있다. 왜는 연에 속한다>고
고쳐 읽은 것이다.
이 부분이 한문의 중요부분으로 문장을 고쳐 읽기도 하고,
심한 것은 「일본서기」 등의 흠이 있는 글자 보정(補正)시, 한자를 2-3자
바꾸면 내용이 완전히 달라져, 실로 태양이 서에서 떠오르는 것이 된다.
한편,
여기서 거연(鉅燕)과 연(燕)의 관계인데,
「왜인흥망사」 제 24장은
진운은(辰 殷 : 箕氏朝鮮)을 지회씨(智淮氏) 연(燕)으로 하고, 소연(邵燕)과 별도의 것으로 하기 때문에,
거연(鉅燕)은 기씨 조선의 지회씨(智淮氏) 연(燕)으로,
개국(蓋國)은 기씨조선의 영역, 즉 대능하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된다.
다음에 동서 제 31장은
'이것보다 앞서 완(宛)의 서(徐), 바다를 건너 박진(舶臻)씨, 은(殷:辰 殷:箕氏朝鮮)에
의지하여 완난(宛難:塔子河)에 머물고 땅을 격한 것이 수 천리, 현모달(弦牟達:摩天嶺)에
성을 쌓고, 곤막성(昆莫城)을 칭하고, 나라를 서가은(徐珂殷)이라 부른다'고 되어있고,
또한 서가은은 후에 부여(夫餘)에 합친
것으로 되어, 개국(蓋國)이 거연(기씨조선)에
있다는 것은, 개국이 서하은 후의 부여인 것을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역시 '개국은 거연에 있다'고
읽어야 하고 '거연의 남에 있다'는 해석이 틀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남왜, 북왜란 도대체 무엇일까.
평야방웅(平野邦雄)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규슈(九州)에 있어서의 고대호족과
대륙」「고대 아시아와 규슈(九州)」에 수록)
- 송촌무웅(松村武雄)씨는
규슈의 아담(阿曇)씨는 남양계 민족으로
준인족( 人族)과 함께 인도네시아 계일 것으로 보고,
우원우길(羽原又吉)씨는
찌꾸젠(築前)을 본거로 하는 안담(安曇)족 계통의 해인족(海人族)을 야마또(大和)족으로
구별하여,
이 양 족을 매개로 한 것이 안담기량(安曇磯良)으로
상징되는 인물로,
해인족(海人族)의 본원지는 인도네시아
섬들이고,
그들은 복건, 광동의 민월( 越:전통적 동이족 거주지) 지방으로 이주하여 단민(蛋民)이 되고,
북상하여 남서 여러 섬에서 규슈에 걸쳐 있고,
금관장부(金關丈夫)씨는,
아마도 일본에 미생(彌生)문화를 옮긴
것은 그들 해인족(海人族)의 조상으로,
수전가일랑(藪田嘉一郞)씨는,
아담(阿曇)족 즉, 일본의 월족(越族)은
남지나에서 우리 서남 지방으로 도항한 족속으로,
해인(海人)을 백수랑(白水郞)으로도 쓰는 것은 남지나 천주(泉州)의 수인(水人)이라는 의미의 샘 천(泉)의
의미를 백(白)과 수(水)로 나눈 것으로 생각되고,
그들은 원래 물속으로 잠수하여 진주를 캐던 백성으로,
월(越)족의 용사(龍蛇) 토템(복희씨
토템)을 갖고,
이들 남방 민족은 무수히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도래했지만,
후에 소수집단의 북방민족(조선족)에게
압도되어,
농천정차랑(瀧川政次郞)씨는 준인족( 人族), 아담족(阿曇族)이 그 원주지인 화남(華南)에서
초래한 집돼지, 즉, 돼지를 기르는 것이 저감부(猪甘部)로,
이 양 종족은 원래 동일종족으로,
공히 문신의 풍속이 있고,
용사(龍蛇)의 토템을 갖고,
단민(蛋民),
결국 민월( 越)족과 같다.
아마 기원 전 1, 2 세기에 백월(百越:임혜상에 의하면 동이족이다) 백성은
한무제에 의한 한(漢) 족 남진에 의해
해상으로 도망가,
흑조(黑潮)를 타고 북규슈에 도착한 아담(阿曇)족과
남규슈에 도착한 준인족( 人族)으로 나뉜
것으로,
삼품창영(三品彰英)씨는,
해인족(海人族)의 고기잡이법이나 문신의
습속은 직접적으로는 남조선에서 도래한 것으로,
한족(韓族) 가운데에서도 진한(辰韓)과 변진(弁辰)의 부족간에는, 남방 해양 제 민족에 계통한 문화요소를 전승하고
있는 면이 적지않지만,
이것은 해류 기타 지리적 조건으로 볼때 이살한 것은 아니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농천정차랑은
화남(華南)에서 왔다는 <저감부(猪甘部)>가
한무제를 피해 일본으로 이동했다고 하는데,
이들을 이끈 것이 진(秦) 왕조의 일족으로
우리 나라의 원전언(猿田彦)이다.
한무제때 창오(蒼梧)의 진왕(秦王)이 이끈 남월(南越)의 백성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도망간 것에 대해서는 필자도 「반첸·왜인의
뿌리」에서 상세히 서술했다.
여기서 삼품창영(三品彰英)이 한반도로부터
왜인이 왔다는 것은 <북왜>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북왜인 것과 함께
부여(夫餘)의 저가( 加)로,
우리나라의 저가부(猪加部),
안담수군(安曇水軍)으로,
왜의 수군과는 원래 니기하야히의 예국(濊國)-부여에
속해 있던 아마쯔마라의 수군으로 생각된다.
곽박의 「산해경」<대황동경> 대인지국(大人之國)의 조주(條注)에,
'고회(高會)는 말하길, 왜국 사람이 모두가 바람을 만나, 바람에 불려 대해 밖으로
건너, 일국을 봤지만, 모두 키가 크고 형상은 호(胡)와 닮았다고 되어있다.
적송문삼우(赤松文三祐)는 이것을 인용하여,
'고회(高會)는 평주(平州)의 양평(襄平)에서 왜인으로부터 이것을 듣고, 건강(建康)에 도착해 곽박에게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쓰고 있다.
「후한서」<동이열전>은
'단석외(檀石 ), 왜망포(倭網捕)를 도와준다고 듣고,
동쪽 사람이 왜인국을 공격하여 천여가(千餘家)를
얻다.
따라서 진수(秦水)의 위에 놓고 고기를
잡다'라고 쓰여있다.
그런데,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는 '일본이 가장 오래고 또한 크다. 그 땅 흑룡강의 북에서 시작되고, 제주의 남에 도달하여 오끼나와와 서로 접한다.'고 쓰여있다.
따라서 <북왜>의 영토는 흑룡강의
북에 이른다.
력도원( 道元) 「수경주(水經注)」대요수고평천(大遼水高平川)의 조(條)에,
'물은 서북 평천(平川)으로 나오고, 동류하여 왜성(倭城)의
북을 지난다.
단 왜지의 사람은 이것에 따른다' 고 되어있고,
「원경(元經)」진(晋) 태원 7년의
조는 '왕통(王通)이 9월 동이 5국에 와 조공하다'고 기록하고 그 설목(薛牧)의
전(傳)은 '동이 5국이란 부여, 3한, 숙신(肅愼), 왜인, 비리(裨離)이다. 현토(玄 )의 동북에 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발해의 시대 흑룡강의 유역에는, 흑수물길부(黑水勿吉部)가 있고,
물길 7부족 가운데 가장 정예롭고 강하다(精强)고 한다.
흑수부는 후에 고려의 망명자를 왕으로 하여 거란(요)을 멸하고 금(金)국을
세웠다.
「산해경」이 쓴 북왜는 이 흑수부나 백산부(白山部)에
섞여 들어간 것(混入)이 아닌가.
이 백산부가 우리 예다(穢多:えた)의 뿌리인 것 같다.
거란의 사서 「왜인흥망사」는 기씨(箕氏) 조선사가
바탕이 되지만,
부여, 고구려, 왜국의 건국사가 첨부되어
있는 것으로,
이것에 의해 봐도,
거란의 가운데에 <북왜>가
있었던 것은 인정된다.
더욱이 「고려기」대명홍무(大明洪武) 21년조에, 수척(水尺:무자리), 재인(才人), 경종(耕種:농사)을 일로
하지 않고 산 계곡(山谷)에 모여 왜적이라 칭하다.
그 힘이 무섭다. 운운' 되어있다.
또한 거란군이 고려에 침입하면, 백정들이 우리는 왜인이라 하고 호응했다 한다.
<백정(白丁)>은
백정준인(白丁 人)과 같고,
조선의 예다(穢多:えた)이고,
수척재인(水尺才人)은 조선의 산와(山窩:움집)이지만,
함께 반도잔류의 <북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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