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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한단고기:안원전)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4)

2002-08-20 23:45:30


제목

제목: 1-1(고대사:한단고기:안원전)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4)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2-08-20 23:45:30

   

안원전 선생님 홈페이지 자료를 인용 소개합니다

홈페이지 주소 http://www.cheramia.net


<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서문 전문공개(4) >

<「단군세기」-왜한(倭韓) 양족과 솔로몬의 선단 >


일본에 일본판 「환단고기」를 번역소개한 가시마 노보루는
일본사의 혁명적인 대륙사와 문명서래설을 보여준다.

다음의 「환단고기」 서문 내용 중

- "
북왜, 남왜설"에 대한 내용과
- "<
단군세기(檀君世紀)>-단군조선의 실크로드, 인도지배" 내용 및
- "
단군세기(檀君世紀) -협야후배폐명(陝野侯裵幣命:니기하야히)과 산와(山窩)"에 대한 내용,
- "
「단군세기」-왜한(倭韓) 양족과 솔로몬의 선단",
- "<
북부여기(北夫餘紀)>-단군조선과 시황제(始皇帝)"에 대한

대륙사관적 견해를 들어본다.

중요한 것은 이 학설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가시마는 일본인 학자로서 「환단고기」를 100% 인정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사를 북왜설과 서래설의 대륙사로 끌어올리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사관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국내 ** ** 사학자들에게 좋은 경종을 울려 줄 것이다.

참고로
그간 강단 **사학자군과 재야 민족사학계 사이에 「환단고기」의 진위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어왔음에도 막상 일역판 환단고기의 역자 가시마가 쓴 다음의 내용은 필자(안원전 선생님-운영자 주)가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네 번째 이야기


<「단군세기」-왜한(倭韓) 양족과 솔로몬의 선단 >


한국의 원리운동(통일교를 말하는 듯. 이는 결코 올바른 민족정사가 아님을 알고 이해하기 바란다:안원전)은 한민족의 뿌리를 유대인으로 생각한다.

일본에서도 진광교(眞光敎)는 진()의 시황제를 유대인으로 생각한다.
이것을 인정하면, 일본의 진() 씨는 진()의 망명자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뿌리도 유대인이라는 것이 된다.

이들의 주장은 모두 옳지만, 정확히는 앞에 서술했듯이, () 왕조는 박트리아의 유대인이다.

그 외, () 7세기 경부터 규슈(九州)의 우좌(宇佐)에 동표국(東表國)이라는 에비스 인의 국가가 있었지만,
이 에비스 인은 카난의 에브스 인으로,
솔로몬 왕의 타루시시 선()을 움직인 사람들이다.

또한, 와니 조작신화의 록(:)이 솔로몬의 명을 받았다면, 대물주명(大物主命) , 요동의 공손도(公孫度)와 그 왕녀 비미호(卑彌呼), 원래 솔로몬 왕의 수군였다는 것이 되는데, 잠시 이것을 생각해 보자.

「환단고기」는
'
() 2천 년경의 우수주(牛首州)의 예읍(濊邑)의 추장 소시모리의 자손을,
() 8세기 경 협야후(陝野侯) 배폐명(裵幣命)이라는 왕이 나와,
삼도(三島:의 왜인)을 평정했다고 쓰고 있지만,

"협야후 배폐명" "니기하야히"의 선조이다.

2
개의 왕명(王名)은 페니키아 왕으로 읽을 수 있는데 어떨까.
또한 슈메르 어로 소를 우르라고 읽기 때문에,
우수주(牛首州)는 우르국()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시모리"는 어쩐지 우르 왕 슈르기인 것 같다.

우르의 해인(海人)은 카르데아 인으로, 페니키아인의 조상으로 불리니까, 니기하야히의 조상 선조가 우르 왕이라도 이상하지 않다.

한편,
() 2000년의 우르의 카르데아인의 자손이,
() 1000년 이후의 페니키아인이 되고,
코사라에 침입하여 문다족을 추종하여,
일파는 말레이 반도에서 북상했지만,
다음에 그들이 나타난 것은 하남성(河南省)이다.

「사기」<()본기> 소양왕(昭襄王)의 조()
'33
, ()의 객향(客鄕)의 호상(胡傷)이 위()의 권(), 채양(蔡陽), 표두(表杜)(모두 하남성)를 공격하여 이를 뺏었다.

또한, ()의 장(망묘(芒卯)를 화양(華陽)에서 쳐부수고 목을 참수한 것이 15만이었다.

()는 진()에 남양(南陽)을 바치고 화목했다.
34
, ()은 위()에 한()의 상용(上庸)의 땅을 주어 일군(一郡)으로 하고,
남양에서 관()을 빼앗긴 신()을 이주시켰다.
35
년에, (), (), ()를 구하여 연()을 정벌하고,
처음으로 남양군(南陽郡)을 두었다.'

「사기」의 기년은 정확치는 않으나
() 4 세기의 말에서 전() 3세기 초두(初頭)이다.

그런데,
만주에 있었던 북왜인의 자손의 거란민족의 사서인 「왜인흥망사」 제 31장에는,
'
()의 서(), 바다를 건너, 박진(舶臻)하고,
(:箕氏朝鮮)에 의해, 완난(宛難)에 거(), 땅을 열기를 수천리,
현모달(弦牟達)에 세우고, 곤막성(昆莫城)이라 칭하고, 나라를 서가은(徐珂殷)이라 하다' 했다.

여기서 "()"이라는 것은 남양(南陽)의 제철기지여서,
「사기」와 합치면 완()의 서()는 위()의 제철부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가은(徐珂殷)이란, ()씨의 예국(濊國)인데,
「왜인흥망사」는 예국(濊國)은 후에 부여(夫餘)가 되었다고 쓰여있다.

따라서,
부여(夫餘)가 북방 기마민족이란 것은 새빨간 조작이고,
소련의 모략적인 반설( 說) 이다.

「환단고기」<삼신오제본기>에는
'
옛부터 부여(夫餘)에 말이 있어도 타지 않고'라 되어있고,
「위지(魏志)」에는, '마한(馬韓)은 말 타지 않고'
또한 '왜는 소, 말이없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부여를 시작으로 마한도 왜도, 결코 기마민족이 아니다.
말을 타기때문에 기마민족이라 한다면, 아메리카 인디안도 기마민족이 되겠지.

여기서, 마지막에 서()의 의미지만, 카르데아인의 "지아"는 아닐까.
그렇다면, 역시 니기하야히는 카르데아인의 자손인 페니키아왕으로,
이 일족은 말레이 반도에서 하남성(河南省)에 들어가고,
()에 져서 후에 만주로 이주하고,
거기서 예국(濊國)-북부여를 세운 후, 남하하여 왜왕이 선 것이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북부여의 왕족 협보(陜父)가 남하하여 웅본(熊本:구마모토)에 웅습성(熊襲城)을 만들고,
다파라국(多婆羅國)을 세워 일향(日向)의 안라국(安羅國)과 연합하여,
야마다이(邪馬臺)국이 되었다.

이의 협보가 신무(神武:부여왕 尉仇台)를 구한 "니기하야히"이다.
「구약성서」는 누누이 우르의 카르데아(갈대아) 인을 유대인의 선조라 말한다.
또한 카르데아인은 페니키아인의 선조였다.
따라서 우리들의 니기하야히가 페니키아인이라면,
그것은 유대인의 수군(水軍)였다고 생각해도 좋다.

이세(伊勢)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소민장래(蘇民將來)의 예의범절을 믿고 있지만,
일본각지에 전해지는 소민장래(蘇民將來)의 신앙은 원래는, 유대인의 축제가 그 뿌리였다.


「왜인흥망사」 제 15장에 의하면,
거란의 샤만은, 소민장래의 신앙을 갖고, 우두신(牛頭神)으로 분장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두(牛頭)의 바알 신이지만,
동시에 우두천황(牛頭天皇) 스사노오노 존()이었다.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천조라도, 바알의 처()의 아나토우랄토 왕 아라메의 복합신였다.
또한 기이(紀伊) 반도를 "귀국(鬼國)"이라 쓴 것은, 우두(牛頭)신앙의 우각(牛角)때문으로, 이 땅은 원래 페니키아인의 기지였다.

단군환인이
다곤, 환웅이 바알인 것도 이미 서술했지만,
「왜인흥망사」에서는 환웅을 "시우스사카" ,"스사노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세(伊勢)음두(音頭)가 유대어이고,
신궁에 "다비데의 성()-다윗의 별"이 있던 것도 결코 이상하지는 않다.

비밀리에 속삭여지고,
게다가 모든 대중들이 아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메이지(明治) 천황이 외궁의 신체(神體)를 조사했더니 유대의 유품이 있었다고 하고,
또한 삼유예(森有 )가 내궁(內宮)을 조사하니까, 유대문자가 있었다.

() 1천년경의 멕시코에 유대문자와 타루시시 선()의 유물이 있는 정도여서,
일본열도에 그것이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헤로도투스는 전() 6세기에 페니키아의 수부(水夫)가 파라오·네코의 명()에 의해 항해한 것을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홍해에서 나와 인도양에 들어가,
2
년 후에 라큐레스의 주() , 지브랄탈 해협에서 지중해로 돌아왔다.

그래서 항해 중 태양을 우측으로 봤다고 하고 또한 대륙을 환항(環航)한 것이다.
이것은 동방으로 나아가 태평양을 건너, 미 대륙을 환항(環航)하고, 대서양을 건너, 지중해로 돌아온 것을 표시하고 있다.

고대 오리엔트와 인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앗시리아 여왕 세미라미스, 페르시아왕 다리우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더욱이 옛적, 기원전 2500년 이후,
라가슈나 앗카도의 상인은 회전인장(回轉印章)을 갖고 인더스나 반첸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은()도 이들 문화와 민족의 이동에 의한 토코로덴 현상(우무(토코로덴)가 틀에서 줄줄줄 자연스럽게 힘안들이고 뽑여져 나오는 현상)이지만,

이것은 졸저 「반첸·왜인의 뿌리」에서 상세히 서술했다.

 


※ (참고) 본 사이트가 송준희님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