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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한단고기:안원전)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5)

2002-08-20 23:46:40


제목

제목: 1-1(고대사:한단고기:안원전)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5)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2-08-20 23:46:40

   

안원전 선생님 홈페이지 자료를 인용 소개합니다

홈페이지 주소 http://www.cheramia.net


<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서문 전문공개(4) >

< <북부여기(北夫餘紀)> - 단군조선과 시황제(始皇帝) >


일본에 일본판 「환단고기」를 번역소개한 가시마 노보루는
일본사의 혁명적인 대륙사와 문명서래설을 보여준다.

다음의 「환단고기」 서문 내용 중

- "
북왜, 남왜설"에 대한 내용과
- "<
단군세기(檀君世紀)>-단군조선의 실크로드, 인도지배" 내용 및
- "
단군세기(檀君世紀) -협야후배폐명(陝野侯裵幣命:니기하야히)과 산와(山窩)"에 대한 내용,
- "
「단군세기」-왜한(倭韓) 양족과 솔로몬의 선단",
- "<
북부여기(北夫餘紀)>-단군조선과 시황제(始皇帝)"에 대한

대륙사관적 견해를 들어본다.

중요한 것은 이 학설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가시마는 일본인 학자로서 「환단고기」를 100% 인정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사를 북왜설과 서래설의 대륙사로 끌어올리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사관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국내 ** ** 사학자들에게 좋은 경종을 울려 줄 것이다.

참고로
그간 강단 **사학자군과 재야 민족사학계 사이에 「환단고기」의 진위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어왔음에도 막상 일역판 환단고기의 역자 가시마가 쓴 다음의 내용은 필자(안원전 선생님-운영자 주)가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


< <북부여기(北夫餘紀)> - 단군조선과 시황제(始皇帝) >


앞에 서술했듯이,

<
북부여기>,
단군조선의 말기에 '5()의 백성이 (秦王) (:진시황 이름)에 따랐다'고 서술하고 있다.

()의 지배는 일관되게 장성(만리장성) 밖에 못미처,
단군조선의 5()가 진()에 흡수되었다면,
그것은 장성의 내측에 있던 것이다.

이 부분의 중국사는 전혀 엉터리로 신용할 수 없다.

<
삼성기전(三聖紀全)>
한인(韓人)이 정()을 저격했다고 쓰고 있지만,
이것은 「사기(史記)」의 연()의 암살자 형가(荊軻)의 모델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주() 전국(戰國)의 시대에 조(), (), ()이라는 세 국가가 있어,
이것을 3()이라 하는데,
이 중 한()은 낙양을 중심으로 하고,
위는 남양(南陽) ()의 제철부족의 서()씨를 지배하고,
()는 중산국(中山國)의 제철부족의 탁씨(卓氏)를 지배하고 있다가
후에 3()은 모두 진()의 공격에 굴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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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행(太行) 산맥을 중심으로 서는 산서(山西) 동은 산동(山東)이다.
산서성(山西省)은 춘추시대의 진() 왕조의 발흥지로 뒤에 전국시절, (), (), () 3국으로 나뉘어 소위 3()의 시대를 연다.

산동이 전통적 동이족의 근거지로 동이족 은()의 영향권에 속하고
주의 제후국 백금의 노나라가 있던 곳이라면
산서 역시 동이족에 뿌리를 대고 있는 요(), (),()가 근거한 동이족의 근거지였다.

장량과 한신이 바로 이 3() 가운데 한()의 후예니
()은 환단의 동이겨레 고유의 명칭이었으니 한신이 처음 초패왕 항우에게 간 것은 초()나라가 전통적인 동이족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
안원전 주)


<삼성기전>이 서술하고 있듯이
진시환 정()을 친 것은 장자방(장 량)이 개입된 동이족 한()족으로,
()이 그 황실(瀛씨 성)과 혈통(신농씨 姜씨 성의 후예 呂씨 성) 모두 동이족이었으나
장성을 쌓아 중원대륙을 석권하고 있던 동이 제 족을 압박하고
동족인 모든 동이 제 족을 흩어 민호(民戶)로 삼아 한족(漢族)화 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동이 제 족의 반발을 샀다.

뿐만 아니라
「북사(北史)」에 포함되어 있는 북주(北周)왕조 역시 우문(宇文)씨에 의해 개국되었는데,
「북사(北史)」는 우문(宇文)씨를 염제의 후예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능히 우리 핏줄 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
모용(慕容)씨 또한 동이족의 하나인 선비족 출신으로 중국에 들어가 516국의 하나인 연() 왕조를 열었으니 연() 또한 우리 핏줄 국가가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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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의 「삼진세가(三晋世家)」를 읽으면,

조사(趙史)는 우랄토 박트리아史,
위사(魏史)는 킨메리아史지만,
() 史는 어딘지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주()대의 금문(金文)과 낙양(洛陽) 금촌(金村)에서 출토된 한()의 히요우()씨의 종을 해독하면,
이들은 바하렌 도()의 해인(海人),
쉽게 얘기하면, 아라비아해()의 해적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 7세기에 갠지스 유역을 제패한 카시국의 맛라키(마라)족의 동류(同類),
전에 서술했듯이 카시국은 "협야후 배폐명" 또는 "니기하야히"의 코사라국과 동맹한 것이다.

나는 ( 안에   3:일본에만 있는 성 씨)氏는 페니키아 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한편,

<
북부여기 상> 시조 해모수 19년 조에,
'
()가 훙(:제후의 죽음)하지 않고, 자준(子準)을 공격하다.
()하여 번조선(番朝鮮)의 왕이 되다'로 되어있고,

기씨조선(箕氏朝鮮)이 번한(番韓)을 계승한 것으로 되는데,
기씨조선도 원래는 (동이족) 은인(殷人)이 세운 국가였다.

졸저 「반첸·왜인의 뿌리」에서 서술했지만
()이란 국가는 이신에 종속된 해인(海人)의 카르데아인이 말레이 반도를 중계기지로 하여 중국을 침략한 때의 식민지여서,
()도 기씨조선도 카르데아인 후의 페니키아인였다.
나는 "기자(箕子)"라고 얘기하고 싶은 페니키아 왕의 한역(漢譯)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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