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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전 선생님 홈페이지 자료를 계속 인용
소개합니다
홈페이지 주소 http://www.cheramia.net
<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 「환단고기」 서문 전문공개(6) >
기왕 여기까지 소개하다보니
일본사의 뿌리와 한민족사의 뿌리를 아울러 드러내고 있는
가시마의 일역판 「환단고기」 서문을 좀 더 들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환단고기의 소 타이틀을 걸고 대륙사 및 서래설의 차원에서 추적하고 있는 가시마의 일본사 추적을 잠시 더 살펴보기로 하자.
< 북부여기 > - 3의 왕조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왜 부여사(夫餘史)의
대부분을 말살했을까.
본서 「환단고기」의 <북부여기 상,하>와 <가섭원(迦葉原) 부여기>를 읽으면,
계속 그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다.
<북부여기 상>은 해모수(解慕 ) 왕조의 역사이지만,
편의상 이것을 북부여 전왕조로 하면,
1) 해모수 재위 45년,
2)모수리(慕 離) 재위 25년,
3) 고해사(高奚斯) 재위 49년,
4)고(高) (解) 우루(于婁) 재위 34년이다.
이 왕가는 가섭원 부여에 이어지지만,
<북부여기 하>에 의하면,
북부여에는 동명왕(東明王)에 의한 별도의
왕조가 가능하다.
이것을 북부여 중기왕조로 하면,
5)고두막(高豆莫) (豆莫婁, 東明이라 칭한다) 재위
22년, 재제위(在帝位) 27년,
6)고무서(高無胥) 재위 2년이다.
<가섭원부여기>에 의하면,
북부여 전기왕조의 말왕 해우루(解于婁)의
왕제 해부루(解夫婁)는 북부여 중기 왕조에 쫓겨 가섭원(迦葉原)으로 옮겼다.
그 왕은,
1)해부루 재위 39년,
2)금와(金蛙) 재위 41년,
3) 대소(帶素) 재위 28년이다.
단 금와는 부루의 자식은 아니다.
여기서 제 1의 문제는, 북부여 중기
왕조의 실체이지만,
「왜인흥망사」제 34장, 제 35장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34장 위만조선(衛滿朝鮮) >
연(燕)의 만(瞞), 은(殷)에 설득하여 왈,
청컨대 물(水)를 등져(背) 나라를 세우고, 한구(漢寇)를 방어할 것.
은(殷) 납득하여 이를 코시우(姑 宇)에 봉(封)하다.
만(瞞) 또한 한(漢)을 설득하여 왈,
호(胡), 진(秦)의 화주(華胄)를 감추다.
청컨대 이것을 멸하여 군(郡)으로 하고, 후환을 없애소서.
한(漢) 기뻐하여 이에 병장(兵仗:무기)을 보내다.
만(瞞) 공격하여, 은(殷)을 뺏고, 한(漢), 군(郡)을 나아가(進) 서가(徐珂)를
노리다.
은(殷)왕 진(辰:단군조선 3한
중 단군이 직접 통치한 진한, 마한·변한은 부단군 2명이 각기 맡아 통치)에 달려가, 진(秦) 씨를
따라(隨) 옮기다.
은(殷) 망하다.
만(瞞) 즉 지회(智淮)씨, 연(燕)의 고사(故事)를 연구하여,
이것으로 나라를 세우고, 조선(朝鮮)이라 부르다.
처음으로 주무(周武)의 뜻을 이루다.
위만(衛滿)은 은(殷)을 설득하다.
'대능하(大凌河)를 등져(背) 건국하고, 한(漢)의 침입을 막고 싶다.'
여기서 은(殷)은 이것을 대능하와 요하(遼河) 사이의 땅에 봉하고,
만(滿)은 또 한(漢)을 설득하다.
'은(殷)은 진(秦)의 망명자를 숨겨주고 있다.
나는 이것을 멸하고 한(漢)의 군(郡)을 두고, 후환을
끊고싶다.-
' 한(漢)은 기뻐하여 군병을 주다.
만(滿)은 급습하여 은(殷)의 영토를 뺏고,
한(漢)은 창해군(蒼海郡)을 두어 사카은(殷)을 저지했다.
은(殷) 왕은 진(辰)에 망명하고 진(秦)족은 이에 따라 도망가고,
은(殷) 나라는 망했다.
만(滿)은 진운은(辰 殷)의 고사(故事)를 생각하여,
국명을 바꿔 조선이라 하고,
처음으로 주(周) 무왕(武王:앗슈르니라리 4세)의 뜻(志)을 달성했다.'
< 제 35장 예군(穢君) 남려치(南閭峙) >
이에 따라,
만(滿), 한(漢)에 반역하지 않기를 요구하다.
한(漢), 타후시(但巫志)를 떠나, 가슴속
깊이 품다.
서가(徐珂)왕 아크리나로토(淮骨令南閭峙) 은(殷)을 위하여 복수하고 싶어,
이를 한(漢)과 도모하다.
한군(漢郡)이 아닌 것을 맹세하고, 왕인(王印)으로
증명하다.
낙토(洛兎)로 나아감에,
나로토(南閭峙), 분에(憤 :분노)하여
스스로 목을 베다.
자(子) 아크리이사토(淮骨令蔚祥)를 습격하여 요동을 부수고,
수팽오(守彭吾)를 베고, 나라를 이끌어 훈나(潘耶)에
합치다.
훈나(潘耶) 이에 곧 크게 되다.
이렇게 되자 만(滿)은 한(漢)에게 약속의 취소를 요구했다.
한(漢)은 탑자하(塔子河)를 떠났지만,
마음속에 한(恨)을 품다.
서가왕(徐珂王) 아크리나로토(濊君南閭峙)는 은(殷)을 위해 적을 토벌하여,
한(漢)과 도모했다.
한(漢)은 군(郡)을 두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왕인(王印)을
주어 맹세했다.
그러나 한(漢)은 낙랑(樂浪), 현토(玄 )의 2 군(郡)을 두어 나로토(남려치)는
분노하여 자살했다.
자(子) 아크리이사토는 습격하여 요동을
부수고,
군수(郡守) 팽오고(彭吾賈)를 베어 나라를 이끌고 부여(夫餘)에 합쳤다.
부여는 성대해졌다.
여기서 서가왕(徐珂王) 아그리나로토는
「사기(史記)」에는 '예군(濊君) 남려치(南閭峙), 조선왕 우거(右渠)에 따라,
28만 구(口)를 이끌고 요동에 청하여
내속(內屬)하다'고
되어있고,
「한서(漢書)」에는 '동이예군남려등(東夷濊君南閭等) 구이십팔만인(口二十八萬人)
항복하다. 창해군(蒼海郡)이 되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아그리나로토의 서가은(徐珂殷)이라는
국가는 예국(濊國)이다.
그런데 <북부여기 상> 3세
고해사(高奚斯) 42년 조에,
'위적(衛賊)을 남려(南閭)의 성(城)에서 쳐부수다'로 되어있고,
4세 고우루(高于婁) 6년 조에, '군(軍)을 남려(南閭)에 두다'라고
되어있다.
따라서 북부여 전기 왕조는,
아그리나로토의 일족과는 별개지만, 북부여 중기왕조의 "두막루(頭莫婁)"를
즈바쿠리(Zubakuri)라고 읽으면, 왕명(王名)의 후반부는
"아크리"라고도 읽을 수 있다.
한편 <북부여기 하> 6세
고무서(高無胥) 2년 조에는 협보(陜父)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 왕은 <고구려국본기>에도
등장하여,
웅본(熊本)에서 다파라국(多波羅國)을 세운 것으로 되어있는데,
「고사기(古事記)」와 서로 비추어 합하면, 협보는 그 "니기하야히"에 상당한다.
또한 <단군세기>는
왜인의 왕이 된 "협야후배폐명(陝野侯裵幣命)"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이 왕과 「왜인흥망사」의 서가은(徐珂殷)의
왕,
및 「구사기( 事紀)」에 쓰여있는 아마쯔마라의
선단을 이끈 "니기하야히"와는 동계(同系)이다.
따라서 협보를 배폐명의 자손으로 하고,
니기하야히를 그 세습명으로 생각하면 이들의 관계는 모두 명료해진다.
이런 이유에 의해,
나는 북부여 중기 왕조를 예국(濊國)의
왕가로 하고 싶다.
제 2의 문제는 부여 후기왕조이다.
「위서(魏書)」 부여 조는,
부여왕으로서 "위구대(尉仇台), 간위거(簡位居), 마여(麻余), 의려(依慮)"라는 왕명을 들고 있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위구대"는 "부대(夫台)"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에는
'의려(依慮)의 아들 의라(依羅)가 남하하여 왜왕이 됐다고 되어있고,
이 왕이 우리들의 "미마끼이리히코"
즉 숭신(崇神)인 것 같다.
따라서 이 왕조를 후기 왕조로 하면,
도대체 이들은 중기왕조,
또는 그 계승자인 고구려 왕조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 2의 문제가
된다.
<가섭원(迦葉原)부여기> 3세 대소(帶素)의
조에,
'태조왕 16년, 동부여의 도두왕(都頭王)을 명명하여 우대(于台
대 또는 이)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부대(夫台:부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선,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삼국사기」는, 무언가의 이유로 그것을 말살해버렸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존주 사대주의자이자 반도사적 신라계 종파주의자 김부식이 인종에게 사직서를 바치고 인종의 보고라인을 벗어난 다음, 당시 서슬 퍼런 금 희종의 비위에 맡게 특별 팀을 구성해 과잉충성으로 편찬해 바친 사대사서이다 : 안원전)
< 태백일사(太白逸史)·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
<태백일사> 제 1 "삼신오제본기"의 모두(冒頭)는
「표훈천사(表訓天詞)」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대시(大始), 상하사방 曾이 아직
암흑으로 안보인다.
옛날은 가고 지금은 오고, 단 하나의 광명이 있다.
상계(上界)에서 온 삼신(三神)이 있다.
즉 1 상제가 된다.
주체는 즉, 일신(一神)이 되어 각각 신(神)이
있다.
작용은 즉 3신(神)이 된다.
3신은 만물을 이끌어내고, 전 세계를 통치하는 무량의 지능이 있다.
그 형체를 보여 최상의 상천(上天)에
앉다.-
그런데,
이 교의(敎義)는 실은 힌두교와 동일하다.
전중어토미(田中於 彌)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인도신화전설」)
- 힌두교에서는 브라흐마-(창조신), 뷔슈누(유지신), 시바(파괴신)의 3신을 주신으로 하고,
베다 신화에 있어서 위력(偉力)을 받은
인도라는, 그의 아래 바람(風)의 신이 된다.
이 3 신은 별개의 신이지만, 이것을
일신이 다른 현현(顯現)으로 보는 3신일체(토리무르티)설도
있다.
「우파니샤드」의 철인에 아르나의 자(子) 웃다라카
또는 웃다라카·아루니라는 바라몬이 있었다.
「샤타파타·프라흐마나」2·4·1에서는 쿠르·판차라의
바라몬이 되지만,
웃다라카는 「챤도구야」 제 6편에서,
'태초 만유는 유일무이의 유(有)였다.
이 유(有)라는 신격이, 열(熱) 과 수(水)와 식(食)의 세 가지 신격에, 사는 나(我:生命)를 갖고
침입하여,
명(名)과 색(色)<형태>을
전개하여 그 하나 하나를 3가지 형태로 하려했다.
화(火), 태양(太陽), 월(月), 전광(電光) 등의
적색은 열(熱)의 색, 백색은 수(水), 흑색은
식(食)의 색, 명료하게
모르는 것은 3신격(神格)의 총화(總和)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음에 <삼신오제본기>는
'오제(五帝)는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이고,
그것은 수, 화, 목, 금, 토이고,
또한 북, 남, 동, 서, 중앙이다'라고
논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타레야·아라누야카」는 5대
원소에 대하여,
'일체가 발생하는 5종의 찬송이고 자아를 아는 것은 지자(知者)이다.
지(地), 풍(風), 공(空), 수(水), 화(火)는 5종의 자아의
찬송이다.
만유는 이것에서 발생하고, 이에 환귀(還歸)한다'고 쓰고 있다.
후에 이 5원소의 순서는 공(空), 풍(風), 화(火),수(水), 지(地)가 되고,
멀리 인도에 있어서의 원소관의 표준이 된다.
다음에 <태백일사(太白逸史)> 제 5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중의 3.1신고(神誥), 제 1장 허공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제(帝) 왈(曰)
'그대, 5가(加)의 중생들아, 창창(蒼蒼)한 것은 하늘이 아니며,
현현(玄玄)한 것은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질(形質)없고, 단예(端倪:가, 끝 예 즉, 처음과 끝)없다.
상하사방 없이 밖도 허하고 안도 비어있어,
어디나 존재하지 않는데 없고 무엇하나 포용하지 않는데가 없다'
이 사상도 「우파니샤드」 가르침과 같고, 「차도기야·우파니샤드」는 '허공에 일월전성화(日月電星火)가 있다.
허공에 의해 사람은 부르짖고, 허공으로부터 사람은 듣고, 허공에 의해 사람은 답한다.
허공에 있어서 사람은 기뻐하고, 슬퍼하고, 허공에
있어서 태어나고, 허공 중에 재생한다.
사람은 허공을 숭배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태백교(太白敎)의 3 신(神)(3極) 5제(帝)라는
사상은 「우파니샤드」나 힌두교의 교의(敎義)를 뿌리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태백교 사람들은,
태백교가 일본 신도(神道)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후에 서술하듯이 이것은 옳지만,
태백교 자신의 뿌리가 인도철학에 있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저항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태양은 동에서 뜬다'는 말처럼,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구사기대성경( 事紀大成經)」 서(序) 권 1장 천조(天祖)의 조(條) 8공리(空理)에,
'1 신(神)은 연(緣) 없고, 묘하게
앉는 곳도 없다.
그 넓기가 끝이 없고, 그 경계 끝이 없다.
이것을 신허(神虛)라 한다.
하늘(天)도 아직 없다.
땅(地)도 아직 없다.
윤(倫)도 없고, 의(儀)도 없다'고 한다.
또한 십원리(十圓理)에,
'이 신(神)은 홀로 앉고…청혼(靑魂)은 동에
있고,
풍기(風氣)의 생리에 화(和)하고…적혼(赤魂)은 남에 있고,
열기(熱氣)의 극리(極理)에 화(和)하고…백혼(白魂)은 서에 있고,
조기(燥氣)의 역리(易理)에 화(和)하고,
현혼(玄魂)은 북에 있고,
한기(寒氣)의 상리(像理)에 화(和)하고,
황혼(黃魂)은 가운데에 있고,
습기(濕氣)의 정리(定理)에 화(和)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구사기( 事紀) 30권본」의 <천신본기(天神本紀)>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삼중정량(三重貞亮) 「구사기훈해( 事紀訓解)」
- 정재오승승속일천인혜이존(正哉吾勝勝速日天忍禾惠耳尊)......
황태자존(尊)의 신기(神氣)는 잘 갖고 줄지 않고 새지 않고 태어나면서 8해(海)의 용(龍)을 이끈다.
천조(天祖) 불러, 천지수화(天地水火)의
주(主)를 정하다.
천화(天火)는 즉 이 신이 주재하는 곳에
있다.
지수(地水)는 즉 이 용이 주재하는 곳에
있다.
건윤택(乾潤澤)은 서로 이로움(利)을 도모한다.
천조대신(天照大神)과 황태자존과는, 즉 그 덕화(德化)를
통령(統領)한다.
그런 고로 즉, 천지신룡은 서로 대등하다.
따라서 천조대신과 황태자존과는 이것을 서로 통령(統領)하여 중간에 사람이 있다.
능히 도를 행하고, 덕을 수양하여 하늘을 제사지내고 신을 제사지내면 즉 3극(極)이 서로
응하여, 천지가 무사하다. 이들 3극의 도를 설득하는 근원이 된다. -
그렇다면,
「구사기( 事紀)」가 서술하는 신도(神道)의 이데올로기도 완전히 태백교의 3신(神) 5제(帝) 사상과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상은 실은, 인도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중간에,
중국대륙에도 파급되어,
「중산오궤경(中山五櫃經)」에는
'그 태일(太一)의 진군(眞君)은 이 북극대화(北極大和)의 원신(元神)으로
하여, 신통의 변화로 된다.
북극의 자미궁(紫微宮)에서 천지 사이에
경과하여 만물을 자육(滋育:힘써 길름)한다.
하늘에 있어서는 5상(象)이 명확히 있다.'는 기술이 보인다.
「사기」의 3황 5제도 같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3극 사상은 멕시코까지
도달해 있다.
미겔·네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아틀란티스 대륙과 심볼마크」-「역사와 현대」Vol.3-1所收)
여기서 "공(空)"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아스테카(또는 나우아톨Nauhatl), 그들이
나타내는 공(空)은 모두 같은 심볼로 표시되는데 그의
단계와 레벨에 의해 성질이 변화한다.
아스테카인은,
오메이오칸(Omeiocan)과 오메테크우토리(Ometecuhtli)라는
두 개의 창조적인 "공(空)"의 결합에서, 제
3의 "공(空)"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테오토라우코(Teotlauco)라는 화(火)의 지역이다.
이 세 가지 공(空)은, 결국은 통합된 하나의 것이 되지만, 그곳에서 다음 세 가지
공(空)이 형성된다.
즉
암암(暗闇)의 공(空)=이차판니나츠카얀(ItzapanNanatzcayan),
예민한 빛(光)의 공(空)=테오코사우코(Teocozauco),
그리고 이 양자에서 생긴 중간의 황혼의 공(空),
후에 별(星)이 하얀 관(館)=테오이스타크(Teoixtac)로
불리는 것이다.
이것은 대공(大空)의 최후의 허공(空)으로, 후에
계속되는 7가지 허공(空)과 인간과를 통합한다. 여기에 이르러,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생물이 아니라, 신성한 광선이 되어
탄생전과 사후에, 이들 7가지 허공(空)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들의 허공(空)을 열거해 보자.
테루타리코(Teltalico)라는 별들의 허공,
소세우코(Xoxuhco)라는 낮의 파란 허공,
야야우코(Yayauhco)라는 밤의 어두운 허공,
마마로아코(Mamaloaco)라는 혜성들의 허공,
윗트란(Huitztlan)이라는 금성의 허공,
토나티우(Tonatiuh)라는 태양의 허공,
그리고 토라로카티판메토리(Tlalocatipanmetztli) 달과 구름의 허공이다.
이들 공(空)을 지나면, 지구의 오메테크우토리,
즉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다다르고
드디어 토나카테크우토리(Tonacatecuhtli)라는 우리들의 육체의 주(主)에 다다른다.
토나카테크우토리는 원시시대 최초의 양성인간을 표현하고 있고,
고문서 중에는 황색 손으로 표시되고, 2번째의 단성 인간은 흰 손으로 표현되어 있다.
앞서 서술했듯이,
이집트의 파라오 네코에게 명(命)받은
페니키아 인은, 마레 반도를 넘어 멕시코에 도달하여, 남아메리카를
돌아, 대서양을 돌아왔다.
나는 고대 갠지스 문화가 마레 반도에서 출발하여, 일파는 북상하여 중국, 한반도, 일본열도에 다다르고, 일파는 동행(東行) 하여
인도네시아에서 멕시코에 다다른 것을 서술했다.
아스테카인은 스스로 왕을 내지 않고 토루테카의 귀족을 왕으로 했지만,
이 토루테카 인이 실은 인도계 이주민인 것도 논했다.
이들 문제에 대해서는 졸저 「비미호(卑彌呼)와
왜인의 뿌리」(「역사와 현대」 Vol.2-2 所收)를 참조하시길.
한편 본서(「환단고기」)의 권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또한 살((殺)과 생(生)에 법(法)이 있다.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때(時)와 물(物)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것을 행함에 1)로서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옛날부터 부여에 말(馬)이 있어도 타지
않는다.
살상을 금지하고 산 것(生)을 방목하는
것은 역시 의로운 일이다. -
일부의 학자는 부여를 북방 기마민족이라 하지만,
본서에 의하면,
부여는 원래 말을 타지 않고, 아마 경작 및 거마(車馬)로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고구려는 말을 탔다고 하는데, 고구려와 부여는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왜인흥망사」에 의하면,
고구려는 고령(高令) 으로 마한(馬韓)의 초대에 의해 고비사막에서 왔다고 하는데,
고령(高令)은 흉노의 제철부족이다.
또한 「위서(魏書)」는 '마한은 말을 타는 것을 모르고.....왜에 우마(牛馬)가 없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도 이미 앞에서 서술했다.
부여가 말기에 말을 타게 되었어도, 이른바 북방 기마민족론이라는 극적인 반설( 說)은, 전에도
서술했듯이 이것이야말로 소련이라는 북방인이 억류자를 통해 일본에 퍼뜨린 모략 반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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