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2.net - 송준희 칼럼 모음 (2001-2002)

(고대사:백암전집) 명림답부전, 대동고대사론, 단조사고 해설

2002-08-31 10:00:11


제목

제목: 1-1(고대사:백암전집) 명림답부전, 대동고대사론, 단조사고 해설

등 록 자

송준희

날짜

2002-08-31 10:00:11

   


치우천자자료실바로가기



동방미디어에서 문답란에 올려주신 "백암전집" 관련 내용입니다
내용 소개해주신 정진구님께 감사드립니다
☞ 동방미디어 홈페이지 : http://www.dbmedia.co.kr/

참고로 백암전집은 9 6일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 합니다



< < 명림답부전, 대동고대사론, 단조사고 해설 > >


< 1.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

그 동안 박은식의 저술목록으로만 확인되던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와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의 합철본이 최근 발현되었다.

이미 알려진 몽배김태조(夢拜金太祖)나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과 방불한 프린트 양지 한 장본( 15cm 길이 21cm)으로

연세대학교 금도형(金度亨)교수가 1910년대 박은식(朴殷植)의 사상변화와 역사인식이란 글을 쓰면서 백암 박은식전집에 수록하도록 제공한 것이다.

발해태조건국지가 66(1 300자 내외),
명림답부전이 44쪽 분량이고
말미에 몽배김태조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가(歷史歌)가 각기 부록되었다.

표지에‘흥동학교지인(興東學校之印)’이라 찍힌 4각 주인(朱印)이 선명하다.

홍동학교는 1914년 운허 이용하(耘虛 李龍夏)가 봉천성 관내에 설립한 학교로 그는 그 학교 교사로 역임하였다.

명림답부전은

박은식이 명림답부를 상무(尙武)의 자주독립국인 고구려의 수많은 인물중에서도만고조요(萬古照曜)’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여 조국독립을 위하여 혈투하는 망국민의 애국심 함양을 위한 역사교육의 본보기로사적의 잔결(史籍의 殘缺)’을 무릅쓰고 편찬한 위인전기라 할 수 있다.

명림답부는 고구려의 국교인 선교(仙敎)의 고위 교직인 녹나부(祿那部) ?衣大仙의 지위를 90세가 넘도록 맡아 고구려 인민의 정신적 단합과 국가의 원기(元氣)배양에 기여한 원훈(元勳)일 뿐아니라 국가 위급의 정난을 당하여 모사광정(冒死匡正)하여 구국구민(救國救民)의 기훈(奇勳)을 세운 충신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명림답부는 고구려 6대왕 태조왕(太祖王)의 친제(親弟)가 되는 수성왕(遂成王)이 웅한용무(雄悍勇武)의 거인이나 명예욕과 탐욕에 빠져 태조왕의 왕위를 찬탈하고 즉위하여 잔폭한 전제정치를 20년이나 감행하여 국기가 흔들리고 인민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의군(義軍)을 일으키어 용전기략(勇戰奇略)으로 이를 정벌하고도 왕위(王位)를 태조왕의 동생 신대왕(新大王)에게 전위하게 하고 자신은상가(相加)’ 지위에 올라 16간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정사를 편 애국충신(愛國忠臣)으로 부각시켰다.

본문은 이와 같은 명림답부가 동서양의 역사적 인물로 비교하면 서양의 크롬웰에 비견되어 ‘천하의 악명(天下의 惡名)’을 듣고천하의 지험(至險)’을 겪더라도 보국구민주의(輔國救民主義)를 실천한 위인이라 칭예한 서론을 이어

1.
명림답부의 출생지와 시대
2.
명림답부의 초년행동
3. ?
衣大仙의 지위
4.
수성왕(차대왕)의 역사
5.
대선사무의 선현(大仙師巫의 先見)
6.
수성의 찬위
7.
대선사무의 피화(大仙師巫의 被禍)
8.
명림답부의 활동
9.
왕군과 민군의 충돌
10.
수성왕의 피시와 신대왕의 즉위
11.
명림답부의 세력과 정치
12.
명림답부의 무공 등 12개장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마지막장에서 명림답부는 군사적 전략에도 뛰어나 한()의 현도태수(?太守)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침략하여 오는 것을 좌원(坐原)에 나아가 맞아 대패시켰고,

평소 정사에서는 강무(講武)에 주력하여 고구려를 ‘무강지국(武强之國)’으로 이끈 면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결구에서 명림답부는 114세의 무병장수를 누리면서도

“오국(吾國)은 본래 무력으로써 성립한 자라. 지금에도 사면 강적이 형()에 재()하야 무력이 아니면 일일이라도 보존치 못할지라. 만일 오국민이 한인(漢人)의 문아(文雅)를 숭모하야 점차 문약(文弱)에 함()하면 필연코 쇠망을 불면할지니 강국을 어찌 희망하리오”

라는 평소의강국지론(强國之論)’을 들고 아울러 그의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예찬하였다.


< 2. 大東古代史論 >

독립기념관소장 도산안창호문서(島山安昌浩文書)속에서 근래 찾아낸
대동고대사론은 몽배금태조와 명림답부전 천개소문전 발해태조건국지 등과 같이 교열자를 단애 윤세부(檀崖 尹世復)으로 하고 백암 박기정(白庵 朴箕貞_이란 이명을 저자로 밝힌 박은식의 중요 사론이다.

한문으로 표지까지 합하여 20(한쪽 160자 내외)의 사론이지만 내용은 우리 한민족을 포함하는 고대 동방민족의 원류를대동민족(大東民族)’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그를 역사적으로 실증하려 한 것이다.

아울러 대동민족의 활동영역도 지리적 개념으로서대동(大東)’능칭만한(能稱滿韓)’이라 지적한 바와 같이 백두산을 중심에 두고 남북만주와 한반도에 걸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본문은 이와 같은 대동민족의 개념을 논술한 ""
대동민족의 시원인 단군조선
그리고 중국대륙에서 동래하여 대동민족에게 동화 편입된 기자조선의 3개장으로 구분되었다.

특히 서()에서
대동민족은 태백산 즉 백두산에서 시원된 단군조선에서 연원하고
그후 부여, , , 숙신, 옥저, 고구려, 발해, 백제, 신라 등의 여러 나라와 그 종족들이대동이란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세워져 연면한 역사를 전개하여 왔다는 논리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숙신을 이은 읍루 또는 물길과 말갈, 여진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의 후예인 만주족까지도 비록 일이천년 전에서부터 압록두만강을 두고 갈라져 언어 풍속까지 달라지긴 하였으나 모두 단군 내지 단군조선에서 갈려나온 동족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말갈의 발해와 여진의 금 등이 모두 단군 내지 단군조선의 후예이고 그들의 역사와 만한(滿韓)에 걸친 활동영역이 모든 ‘대동민족’의 영토가 된다는 인식체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실전(失傳)되어 아직 찾지 못한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와 후술할 발해태조건국지 등을 이 사론(史論)과 전후하여 저술하고 이어 3.1운동전후 연해주에서 금사, 요사(金史 遼史) 등을 한글로 역술한 것이라 생각된다.

단군조선에서는 단군이 대동민족의 시조인 점을 강조하면서 단군이 건국한 단군조선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영역을 논술하였다.

특히 단군조선의 신교(神敎)인 즉 후세 대종교(大倧敎)의 위상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단군조선의 웅대한 역사와 문물을 정교일치의 논리로 기술하였다.

기자조선에서는 기자가 처음 중국에서 내도한 중심지가 그동안 알려진 대로 지금의 평양이 아니고 요서의 유주지역에 위치한 영평부 언저리로 논증하면서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이 단군조선에 귀화 발전하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그리하여 박은식은 “단군조선의 개척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었고 그 중심은 평양에서 유주까지 미쳤다. 기자조선의 개척은 유주에서 시작하여 그 중심은 평양으로부터 (지금의 한강으로 비정되는) 열수까지 미치는데 이것은 인류문명의 발달과 천하의 기운이 계속 순환하기 때문이다라고 연역하였다.

또한 그는무릇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역사로 증명하면 만한(滿韓)은 본래 한나라이었고 그 백성은 원래 동족이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증거할 수 있다.

그러하니 우리 대동민족은 신성한 신조가 있고 신성한 문화가 있고 신성한 무풍(武風)도 있으니 유독 신성한 정신이 없겠는가.

신성한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야만의 민족이고 노예의 백성으로 불린다.
우리 신성한 민족으로써 역사의 정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진실로 우리 역사정신을 발휘하고자 하면 우리 동포형제들을 이끌고 우리가 나온 시조에게로 돌아가고자 할뿐이다라고 결구하였다.

서간도에서 이 대동고대사론을 저술한 박은식은 1914년을 전후하여 상해에서 그의 대표적 명저로 꼽히는 한국통사와 이순신전 등을 저술 간행하고

이어 전에 조선에 와서도 근무한 일이 있는 청제독 오장경의 손녀 오아란가에 머물면서 대동민족사를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러시아 연해주 동포들의 간청으로 송왕령이라 하던 우수리스크로 떠났다.

그 내용 일부도 찾을 수 없는 이 저술은 제명과 그 저술 정황으로 보아 대동고대사론에서 제시만 하고 상론하지 못한대동민족의 역사를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비롯한 부여, 고구려, , , 옥저, 백제, 신라는 물론 발해, 金의 역사를 종합하여 체계화시킨 것이 아닌가 라고 추리될 뿐이다



< 3. 단조사고(檀祖事攷) >


박은식이 서간도에 망명직후 저술한 것으로 간주되는 단조사고는 민족주의 사학의 성장과 연관하여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체계에 기초를 다진 저술로도 평가할 수 있다.

한문으로 저술되고 등사판으로 필사된 단조사고는 필자가 수년전 중국 연변대학에서 의병장 김정규 문서를 조사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표지에단군기적이라 묵서된 것이나 본문인 내편 외편의 서두에는단조사고라 명기되었다.

본문 앞뒤에 배달족원류단군혈통과 삼천단부단군강역의 두 도표가 붙어있는 내외 양편의 사서이다.

내편이 30(1쪽은 400자 내외) 외편이 40쪽 표지 등을 합하면 73쪽의 분량이다.

본문 첫쪽 단조사고 밑에대종교편으로 되어 있으나 그 위에 김정규의 아호를 따월산지장이라 묵서가 첨기된 것이다.

영인본을 입수하여 작자와 내용을 검토하던 중 최근 이등사판 필사본과 같은 단조사고의 1질이 서울 홍제동 대종교 총본사 문헌 중에 전래되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이것은 3대교주인 윤세부이 해방후 환국하여남아있는 종경을 찾는 가운데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를 중이 여겨 1953년 한글로 완역하여 한배일살핌이라는 제명의 국역본 원고까지 만들어 함께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미국 하바드대학 하바드엔칭 문헌속에 역시 단조사고 필사본 1질이 소장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간에 생략과 탈자 등이 발견되어 불완전한 필사본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여러 면에서 이 단조사고를 검토한 결과로는 우선 작자가대종교편이라고 되었으나 원 편자는 박은식이 분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근거는 여러 가지로 제시될 수 있으나
첫째 박은식이 1925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하다 작고하여 임정사상 최초의 국장을 치를 때 그의 평생사적과 중요저술 17종을 들어 소개하는 독립신문 1925 11 11일자 특호 백암선생약력기사에서
단조사고가 학규신편과 왕양명실기를 이어 3번째로 열거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단국대학교 간행의 박은식전서에 박은식의 유자 박시창이백암선생이 쓴 것을 해방 후에 박시창씨가 옮겨 적었다고 한 백암박은식선생약력에도 저술 네 번째에 단조라는 저술이 들어있다.

이 단조는 필시 단조사고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박은식이 독립신문사에서 활동하던 때 그 신문사 경리 또는 사장을 역임했던 금승학의 주편인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에도 단조사고는 그의 중요 저술로 기술되었다.

다섯째 백암 자신이 1912년과 1913년 두차례 걸쳐 상해에서 미국에 망명한 안창호에게 보낸 간찰에서서간도에 8개월동안 머물며 육칠종의 저술이 있다라고 논급한 대목은 종래 알려진 몽배금태조 등 6종외에 단조사고를 포함하여 쓴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단조사고의 작성시기는 명기하지 않았으나 윤세복 한배일살핌이라 제한 번역문 서언에서신해년 봄으로 추정한 것과 같이 1911년으로 볼 수 있다.

박은식은 나라를 잃고 잠시 최남선이 경영하던 광문회에 참여 민족고적을 열람조사하고 있었으나 조국광복운동에 헌신하기 위하여 60을 바라보는 노구를 무릅쓰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압록강을 건너 고구려 발생 고지인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그는 우선 회인현 횡도촌 윤세부집에 우거하면서 그의 구국을 위한 지론인국혼론을 역사적 사실로 실증하기 위하여 이 단조사고를 편찬하고

이와 전후하여 그와 관련 깊은 대동고대사론 동명성왕실기 발해태조건국지 몽배금태조 명림답부전 천개소문전 등 7종을 저술, 등사본으로 만들어서 동창학교와 흥동학교 등에서 민족사 교육의 교재로도 사용하게 한 것이라 생각된다.

분명 그는 일제에 의한 미증유의 민족수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도로 찾기 위해서는 올바른 국사교육에서 시작하여야 된다는 신념의 소산에서 나왔을 것이다.

단조사고는 최근 일반적인 사서기술에서는 잘 쓰지 않는 綱目? 편술을 택하였다.

그 이유는 후술할 바와 같이 편자의 입론을 될수록 강화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많은 국내외 문헌전거를 제시하려한데서 연유한 것 같다. 내용은 물론 단군의 사적을 국내외 각종문헌에서 광범위하게 조사 수집하여 항목별로 종합 논술한 것이다.

그 같은 사실을 단조사고 모두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단조(단군) 유사가 여러 학자의 책에서 번갈아 나오는 것이 자못 많다. 그러나 모두 이지러지고 완전한 것이 못되고 돈사(惇史)(순후한 덕을 기록 한 역사)가 없으니 한탄스럽도다.

이에 널리 고증하고 요약하여 채록하였다.

말이 허망하고 간사한 것은 물리쳤고 사실이 혹 모순되는 곳은 분별하면서 억지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이름을 단조사고라 하였다.

혹시 지난 일을 물어서 징험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견문이 좁고 소략하여 미래에 어질고 밝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릇 우리 동포들에게 고루 바라고 있는 것이다.”

특히견문이 좁고 소략하여 미래에 어질고 밝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릇 우리 동포들에게 고루 바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결구한 대목은

편자 스스로를 겸양한 언사로서 박은식으로 간주되는 1인의 저작물임을 실증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단조사고는 저술편의상 내외 두편으로 나누었다.

내편에서는
단군이 현재 백두산인 태백산 단목하에 내려온 상원갑자(1909년 현재 4366년전)년으로부터 그가 어천(御天) 하였다는 경자(庚子)년 까지의 217년 동안의 사적을 19개 항목으로 고증 기술한 것이다.

외편은 그 서문에서역대의 역사에서 단조를 숭상하고 유속이 오래된 것을 모아 외편을 서술하였다고 밝힌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역대왕조에 내려오면서 단군을 숭상한 사적과 단군과 관련된 유속(遺俗)을 고증 집대성한 것이다.

단군의 사적을 7개 항목, 단군의 유속으로 전래되는 항목을 10개 항목으로 모두 17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강목체 편술의 단조사고의 기술상 특징은

첫째 각 항목마다 중요 논술내용을 요약 기술하여 먼저 제시, 본문으로 삼고 그 밑에 그를 실증하기 위하여 여러 관련 문헌의 각종 학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여 세목과 같이 엄밀히주해(註解)’한 것이다.

둘째, 세목주해로 인용된 여러 문헌의 갖가지 설은 기술의 편의상 문장을 절단취사(切斷取捨)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나 일문일자(一文一字)라도 원전을 가감수정한 것이 없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이와 같이 인용되어 고증 주해된 문헌은 국내외 것을 합쳐 73, 논급된 중요인물만도 51명에 달한다.

셋째, 저자가 기술한 본문과 강목에 주해 인용된 여러 설의 내용이 서로 상치하거나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삼국유사의 경우에 볼 수 있듯이 편자의 소견을 밝히는안설(案說)’을 부쳐 논변하였다.

단조사고가 이와 같이 강목체의 편술체제를 취하여, 본문인 강과 주해인 세목 그리고 편자의 소견을 논증한 안설을 부친 것은 대종교관계 여러사람의 공편이라기보다 뚜렷한 역사관을 가진 한 사가의 작품임을 실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조사고의 논술내용은 내외편을 막론하고 한국고대사에서 주목할 새로운 논점이 여러 가지 제기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첫째 삼국유사이래 거론되던환인’ ‘환웅’ ‘단군삼세설이 부정되고 단군하세와 개국이라는 三位一?단군설로 통일 정립되는 견해를 입론한 것이다.

둘째, 단군의개국수군지조로서의 위상이 역사적 사실로 확실하게 굳어지고 정립되게 되었다.

셋째, 단군의 편년이 대종교의 주장과 같이 4300여 년으로 강조되면서 그 영역도 백두산을 중심한 중국 남북만주의 요서요동까지 확대 해석되는 전기를 학술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뒤받침 하기 위하여 권수에 삼천단부단군강역도(三千團部檀君彊域圖)를 첨부하여 놓았다.

넷째, 난해한 주장과 논증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단군이단군내동방생민지시라는 주장과 안설에서 단군이萬姓之祖(萬姓之祖)’라는 관념,

뒤에 첨부된 배달족원류단군혈통도(倍達族源流檀君血統圖)에서도 볼 수 있듯이배달겨레내지대동민족으로 표현되는단군의 후예를 조선을 비롯하여 예맥북부여옥저숙신까지 넓혀, 발해 금의 숙신내지 여진족까지 원류가 같은 민족으로 이해하는 대담한 주견을 제시하고 있다.

여하튼 이 주장은 박은식의 대동고대사론의 단군조선의 주장으로 보다 정리 거듭 주장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해석하여 본다면 단조사고는 국망직후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이 단군의 사적을 국내외 사적에서 집대성하면서 단군과 고조선의 새로운 역사적 이해를 종합적으로 기술한 귀중한 사론을 담은 사서라 할 수 있다.

박은식과 그를 이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이 사론을 한 토대로 미증유 민족수난기에 일제식민지 사관을 극복하면서 조국독립운동의 역사적 실증과 논리를 제시하는 민족주의 사학을 정립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
소개 끝.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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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미디어"에서 2002-08-26 문답란에 올린글 >



단조사고, 명립답부전, 대동고대사론에 대한 궁금중을 몇가지 적어주셨더군요.

이번 백암전집에서 새롭게 발견된것은 이외에도 이순신전(사민보편), 발해태조건국지 등이 있습니다.

먼저 명립답부전은 연세대 김도형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새로운 자료인데요

박은식선생에 관한 논문과 자료 소개를 해주신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조사고, 대동고대사론은 첨 소개하는것입니다.

인용사서라 하면 단조사고는 워낙 많은 자료를 가지고 말 그대로 단군에 대한 논문내지는 설명서라고 하면 좋을듯 한데요.
책이 발간되면 해석본도 있으니 참조하세요.
다른 2군도 참조하심이 더 좋을듯...

책이 9 6일 출판기념회랑 연구발표회 겸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을예정임다.

참조하시구요.

백암전집은 6 36만원으로 책정?瑛뺐甄求?span lang=EN-US>.
책 발매를 우강양기탁선생과 함게 하기때문에 백암전집만 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10권발매기 때문에 60만원이 될듯하네요.
아직 정확하지는 않으니까

나중에 함 연락주세요

구입방법은 당연히 동방미디어에서 출판하니까
연락주시면 됩니다.

저는 지난 1년여동안 백암박은식전집편찬위원회 조교를 맡았던 정진구입니다.

내용 구성이나 설명은 완전 전문가가 아니라 설명하기 그렇구요...
조만간 있을 발표회를 참조하심이 좋을듯 합니다.

현재로서는 자료가 저한테 있지만 출판관계상 보내드리기 좀 곤란하군요.

출간은 어찌?永?span lang=EN-US> 9월초면 볼수 있을 겁니다.

구입을 원하시면
연락주세요..

낼 쯤되야 알수 있을듯 합니다.
017-406-8214

 


※ (참고) 본 사이트가 송준희님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퓨쳐 / coo2.net 송준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