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夷傳 東沃沮
고구려 개마산 동쪽에 있다. 북쪽으로 큰 바다를 끼고 북쪽은 읍루 부여와 연접했으며, 남쪽은 예맥과 연결되어 있다. 지형이 동서로는 좁고 남북으로는 길어서 천 리나 된다. 땅은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하고 있어서 오곡을 가꾸기에 알맞고 특히 밭농사가 잘된다.
부락마다 장수가 있고, 사람들의 성질은 곧고 씩씩하고 용맹스러워 걸핏하면 창을 들고 싸우기를 잘한다. 언어와 음식과 거처하는 것과 의복 입는 것은 구려와 비슷하다.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에는 나무로 큰 곽을 만들어 길이가 십여 길이나 되게 하고 한 쪽으로 문을 내둔다. 새로 죽은 사람을 땅 속에 우선 가매장을 해 두었다가 살이 모두 썩은 뒤에 뼈만을 추려서 이 곽 속에 넣어 두니 결국 한 집안 식구들이 한 곽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나무를 새겨 신주처럼 만들어 죽은 사람의 수를 헤아렸다.
무제가 조선을 멸하자 옥저 땅으로 현도군을 삼았더니 뒤에 이맥에게 침략당하여 군을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기고 다시 옥저로 군을 만들어서 낙랑의 동부도위에 소속시켰다.
그러다가 광무에 이르러 도위관을 없애고, 이로부터는 모두 그 우두머리로 옥저후를 삼았다.
그 땅은 몹시 좁고 큰 나라들의 틈에 끼어 있어서 드디어 구려에 소속시켰더니 구려에서 다시 그 중에서
우두머리를 뽑아 사자를 시켜서 서로 겸해 다스리게 했다. 이 사람이 조세와 초포, 어염과 바다 속에서
나는 생선을 거두는 책임을 맡고, 그 위에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서 종이나 첩으로 삼았다.(後漢書)
한퓨쳐 / 원문자료실 / 우리나라를 서술한 중국측 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