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종합적 이해 - 윤명철 (2) > 종합 역사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종합 역사자료실

신화학 단군신화의 종합적 이해 - 윤명철 (2)

작성일 19-05-28 15:0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화강 (210.♡.92.119) 조회 14,408회 댓글 0건

본문


단군신화 분석 (1) 


이젠 신화 분석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는 주로 역사성보다는 논리를 추구하는 사상적 입장에서 접근하겠습니다. 먼저 이 신화적 분석이라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화적 분석이라는 방법은 하나의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계속 논지를 좁혀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세부적으로 쪼개어서 한가지 공통부분을 찾아내고, 한번 더 쪼개어서 또 찾아 내고, 마지막에 가서 전체를 일관하는 하나의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 신화적 분석이라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신화가 있을 때 - 단군신화는 24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하나의 부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찾고, 이 특징들을 다시 뽑아 내어 이것을 전체로 간주하여 또 분석합니다. 총체적 분석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강의하는 단군신화를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신화 전체를 24부분으로 나눠서 각각의 신화소(神話素)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찾고 찾는 과정 속에서 공통부분을 추출하고, 이것을 다시 종합해서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이런 방법을 씁니다. 24개의 부분을 차근차근 분석하다 보면 우리 민족이 가졌던 문화적 경험의 커다란 줄거리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역사적 경험 또는 문화의 형태 등 이러한 것들을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상당히 흥미있는 방법입니다. 


이제 실제적인 예를 들어서 신화적 분석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단군신화를 보면 처음에 환인(桓因)이 나옵니다. '한'과 동일한 용어로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환'이라는 것은 가장 고귀한 개념입니다. 환에 대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이신 김상일 선생님이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환인이라고 쓰여진 것은 단군신화를 정리한 승려 일연에 의한 것입니다. 일연은 불교도이면서도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그런대로 투철한 사상가입니다. 그래서 단군신화를 자기나름대로 새롭게 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나타냄에 있어, 가장 원의에 충실하면서도 불교적인 색채를 띤 용어를 찾으려 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환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음으로 볼 때도 비슷하고 환인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 - 태양신, 제석신 - 과도 비슷합니다. 이것은 바로 몇년 후에 나온 '제왕운기(帝王韻記)'에서는 '환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신 제왕운기에는 단수신(檀樹神)이 나옵니다. 그런 것으로 볼 때 환인은 아마 당시의 승려인 일연에 의해 불교적으로 윤색되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변형이 된 것입니다. 


그 다음 환웅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 '환'이 가진 의미는 똑같으니까 생략을 하고 - 서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자환웅(庶子桓雄)이라 해서, '서자'라는 글자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단군신화를 비하하려는 무리들은 '단군은 서자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서자'라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있는 소실의 자식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에 있어서는 '여러 무리 중의 하나' 이런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리고 '적자'가 아닌 '서자'라 해도, 당시에는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라는 것은 실제로 없었습니다. 적서의 차별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선 태종 때 경국대전을 완성시키면서 비로소 적서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후기에 내려오면 차별이 굉장히 심해집니다. 이것은 양반위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제도적 장치입니다. 일연이 단군신화를 정리할 때 서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단군신화의 주체는 환웅입니다. 사건을 일으키고 주도하는 것은 환웅이고, 단군은 결과적인 인물입니다. 이 단군신화의 주체인 환웅이 서자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동북아시아 민족 특히 유목 민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자식이 여러명 있으면 막내아들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떠납니다. 떠나서 새로운 부족을 거느리게 됩니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도 여러 아들 중에서 한 명이 내려와서 인간을 구제한다는 이러한 내용의 신화들이 있습니다. 왕이 9명의 아들을 두었다면, 그 중 여덟 명의 아들들은 떠나는 겁니다. 장성하면 떠나서 새로운 부족을 만들고, 막내아들은 남아서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 받습니다. 말자상속제(末子相續制)인 것입니다. 그런 여러가지 사실들을 볼 때, 환웅이 서자라고 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세번째 부분은 '數意天下 貪求人世' - 천하에 여러번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 이런 내용이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수의천하'라는 말의 해석을 놓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자의 발음과 해석에 관한 것인데, 이 '수'는 '삭'으로 발음되면서 의미가 강화됩니다. '여러번 또는 자주'라는 뜻으로는 '수'가 아니라 '삭'으로 발음됩니다. 그래서 '수의천하'가 아니라 '삭의천하'로 발음하게 될 때는 환웅의 의지 -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한다던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든가 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한다든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의지 - 의 표현이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 다음에 '父知子意'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안다- 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환인이 환웅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환인이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만하다(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부지자의'란 아버지인 환인이 아들인 환웅의 뜻을 인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행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반역의 관계로 나타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여요. 외디푸스신화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다든가, 아버지가 가졌던 왕궁을 차지한다든가 하는 것이 신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부자관계입니다. 


그런데 단군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인정해 줍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대립과 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협력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환인으로 대표되는 천상세계와 환웅으로 대표되는 지상세계가 서로 조화롭게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단군신화가 지닌 조화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원리는 환웅의 행위에 정당성 내지는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요즘에는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정통성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요즘에는 정통성이 어떻게 부여됩니까? 국민 내지는 어떤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뜻에 의해서 부여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것이 신으로부터 부여되었습니다. 여기서 신은 우리가 알고있는 통상적인 의미의 신(神)이 아니라, 사실 민의(民意)가 되겠지요. 거기에는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합니다. 고대의 신의 개념이 과연 우리가 알고있는 인격체로서의 뜻인가, 형이상학적인 뜻인가, 아니면 논리적인 뜻인가 라는 이러한 것들은 더 연구되어져야 합니다. 아뭏든 '부지자의'라는 말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可以弘益人間'이라는 말은 다 아시는 것들이니까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려다 보니까 삼위태백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삼위태백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습니다. 삼위와 태백을 각각 다른 지역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삼위는 태백을 수식하는 관용어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태백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의 위치가 과연 어느 곳일까요? 묘향산(妙香山)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또 일제시대 때 친일사학자들은 구월산(九月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보통 백두산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백두산을 일컫는 명칭이 개마산(蓋馬山), 개마태산(蓋馬太山), 도태산(徒太山), 불함산(不咸山), 장백산(長白山)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백두산에 대한 그러한 묘사를 볼 때, 태백산이라는 것은 당시에 백두산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태백산이라는 지명은 백두산이 될 수도 있고, 오늘날의 태백산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만주에 있는 태백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태백산이 갖고있는 보통명사로서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백'자가 들어가는 산은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밝'이라는 뜻이거든요. '백'이라든가 '밝'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산들은 성산이나 신산으로 숭배를 받은 산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백산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산이 백두산입니다. 태백산은 집단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 다니는 명칭입니다. 우리 민족의 실체가 만주에 있었다면 그 곳에 태백산이 있는 것입니다. 반도로 축소되었다면 백두산이 될 수도 있고, 더 축소가 되었다면 강원도의 태백산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한퓨쳐. All rights reserved.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