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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12) 평창에 인면조가 나타났으니, 천하에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송화강 2020-04-15 (수) 21:38 5년전 11433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12) 평창에 인면조가 나타났으니, 천하에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평창 인면조와 하이브리드에 대한 상상

지난 9일 밤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 인면조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그리스 등에서도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했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됐다.   연합뉴스

지난 9일 밤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 인면조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그리스 등에서도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했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됐다.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 개막행사에 사람 얼굴의 새, 인면조(人面鳥)가 등장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연출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평안남도 덕흥리에서 발굴된, 유주자사를 지냈던 한 권력자의 무덤에는 다양한 생활풍속화와 상상화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가 수도로 삼았던 중국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무용총의 벽화도 비슷하다. 연출자는 이 벽화들 속의 존재들을 불러내어 “고대의 원형적 평화를 형상화”(연합뉴스, 2월16일)하려 했다고 한다. 이미지화된 평화의 군무 한가운데 언론이 ‘충격’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특필한 인면조가 있었다.

왜 고구려인들은 인면조를 상상했을까? 그런데 인면조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銅托銀盞)에도 새겨져 있고, <산해경(山海經)>의 “북방에 우강(禺彊)이란 신이 있는데, 사람 얼굴에 새의 몸으로 두 마리 푸른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 푸른 뱀을 발로 밟고 있다”라는 기록을 참조하면 중국 초나라의 상상 세계에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신화의 극락조 칼라윈카(Kalavinka), 그리스신화의 하르퓌아이(Harpyai)라는 괴조(怪鳥)도 사람의 얼굴을 지닌 것을 보면 인면조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인면조를 상상했을까? 인면조는 새와 사람이 결합된 존재다. 요즘 자주 쓰는 외래어로 하이브리드(Hybrid)다. 하이브리드의 상상력은 인류가 다른 동물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어떤 집단은 늑대를, 어떤 집단은 곰이나 호랑이를, 또 어떤 집단은 양을 시조로 삼아 다른 종족과 구별 짓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특화된 동물에 대한 금기도 생성되고, 집단적 의례도 마련되었다. 새도 그런 동물 가운데 하나다.

고구려 건국신화에는 유화(柳花)라는 아리따운 여성이 등장한다. 압록강의 신 하백의 세 딸 가운데 맏이다. 둘째가 훤화(萱花), 셋째가 위화(葦花)여서 이름만 보면 식물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해모수한테 잡혀 억지로 혼인을 했지만 아버지는 허락 없이 혼인했다는 이유로 유화를 추방하게 되는데, 이때 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입술을 세 자나 되도록 잡아당겨 백두산 남쪽 우발수라는 연못으로 귀양을 보낸다. 입술이 석자나 튀어나온 여인이라니! 그래서 이규보는 “기이한 짐승이 왔다 갔다 (…) 모습이 아주 무서웠네”(<동명왕편>)라는 감회를 토로했던 것이다.

유화는 호수에 살았다. 그러다가 어부의 쇠그물에 잡힌다. 어부 강력부추가 금와왕한테 바쳤는데 말을 못하자 입술을 세 번 잘라 말을 하게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화는 금와왕의 궁실에서 큰 알을 낳는다. 이런 유화의 모습 위에 어른거리는 것은 부리가 긴 새의 형상이다. 알을 낳는 것도 조류의 생태에 속한다. 유화는 분명 새를 자신들의 종족적 표지로 삼던 집단의 신화 속 인물일 것이다. 하이브리드라고 하더라도 얼굴은 새의 모습이고 몸은 사람이어서 조면인(鳥面人)으로 역치(易置)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면인 유화와 연결되어 있는 신화적 인물이 만주신화의 부쿠룬이다.

장백산 동북쪽 부쿠리산 아래 부루후리라는 호수가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선녀 셋이 내려와 호수에서 목욕을 한다. 목욕을 마치고 기슭에 올랐는데 막내 부쿠룬의 옷 위에 붉은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신령한 새가 물어와 떨어뜨린 열매였다. 너무 아름다워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입에 물고 옷을 입다가 그만 삼키고 말았다. 그러자 곧 느낌이 있어 임신을 한다. 몸이 무거워진 부쿠룬은 언니들에게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언니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몸이 가벼워진 뒤 올라와도 된다는 말을 남기고는 떠나버렸다. 그 뒤 부쿠룬은 사내아이를 하나 낳는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고 성장도 빨랐다. 아이가 자라자 부쿠룬은 어지러운 나라를 안정시키라고 하늘이 너를 보냈다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진다.

부쿠룬이 붉은 열매를 먹고 낳은 아이가 부쿠리용손인데, 이 사람이 바로 만주의 시조다. 부쿠룬과 더불어 목욕하러 온 천상의 여인들은 어떻게 내려왔을까? <만주실록(滿洲實錄)>에 실려 있는 이 자료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그러나 이 신화와 같은 계통으로 보이는 일본 이카고 씨족 시조신화를 읽어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오우미국풍토기(近江國風土記)>에 실려 있는 신화다. 오우미국은 오늘날 교토 인근 시가현 지역이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이다. 오우미국의 이카고군 요고 마을 남쪽에 이카고라는 작은 강이 있었다. 천녀 여덟이 함께 백조가 되어 하늘에서 내려와 강 남쪽 나룻가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때 이카도미(伊香刀美)가 서쪽 산에 있다가 멀리서 백조들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기이하였다. 그래서 혹시 신인(神人)이 아닐까 의심이 들어 달려가 보니 정말로 신인이었다. 이카도미는 바로 사랑스럽다는 마음이 일어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흰 개를 보내 막내의 천의(天衣)를 훔쳐오게 하여 감추었다. 그것을 알게 된 천녀들을 모두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나 막내는 옷이 없어 올라가지 못했다. 하늘 길이 막힌 막내는 지상의 백성이 되었다. 천녀가 목욕했던 물가를 오늘날 가미우라(神浦)라고 한다. 이카도미는 제일 어린 천녀와 부부가 되어 이곳에서 살았다.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았는데, 이들이 이카고 집안의 조상이다. 나중에 천녀는 날개옷을 찾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카도미는 혼자 쓸쓸하게 살면서 한탄하는 노래를 늘 불렀다고 한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과 흡사한 신화인데, 천상에서 내려오는 여자들이 백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카도미는 백조가 기이하다고 했고, 지상의 인간이 되었던 천녀가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돌아갔다고 했으니 날개옷을 입으면 기이한 백조가 되고 벗으면 사람의 모습을 했던 것으로 상상된다. 날개옷을 입은 백조가 기이하다고 했고, 신인이라고 했으니 백조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얼굴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사람과 새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카도미 신화는 금강산의 ‘선녀와 나무꾼’, 만주의 부쿠룬 신화, 나아가 고구려의 유화 신화와 이어져 있다.

하이브리드는 이렇게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1차적 상징은 2차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마치 주역에서 용이 하늘을 나는 괘가 나오면 상서로운 징조로 해석되듯이 하이브리드가 보이면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확대 해석된다, 고구려의 무덤 벽화에 인면조가 나타나고, 백제의 은잔에 인면조를 새겨놓은 것은 단지 그것이 집단의 표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

다시 <산해경>을 펼쳐 보자. 초나라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산해경>은 인면조를 비롯한 각종 하이브리드의 보고, 하이브리드의 금메달감이다. 이 인문지리서에 출현하는 인면조는 크게 둘로 대별된다. 하나가 부정적인 인면조라면 다른 하나는 긍정적 상징성을 지닌 인면조다.

거산(柜山) 새가 있는데 그 모습은 올빼미 같고 사람 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암메추라기 같다. 이름을 주(鴸)라 하는데 제 이름을 스스로 불러댄다. 이 새가 나타나면 그 고을에 방사(放士)가 많아진다.

<산해경> ‘남차이경(南次二經)’에 실려 있는 인면조에 대한 기록이다. 이 새의 출현과 인과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방사’는 ‘추방된 선비’를 뜻한다. 주가 나타나면 정변이 일어나 귀양 가는 지식인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전설에 따르면 ‘주’는 성군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의 화신이다. 요임금은 단주의 사람됨이 사납고 교만했기 때문에 순임금한테 양위를 하고 단주는 남쪽 단수(丹水) 지역의 제후로 보낸다. 그 때문에 적개심을 품은 단주는 그 지역 삼묘(三苗)의 수령과 연합하여 순임금에 대항한다. 그러나 실패하여 삼묘의 수령은 피살되고 단주는 남해에 투신자살하고 만다. 이 단주의 원혼이 변하여 주라는 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삼묘는 오늘날 먀오족(苗族)의 조상으로 중원의 황제(黃帝)에 대항하는 적대적인 세력이다. 삼묘는 지금까지도 포악한 오랑캐의 상징이다. 그런데 황제의 후예인 단주가 남쪽 오랑캐와 손을 잡고 성군 순임금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배는 당연한 것이고 투신자살이라는 비극도 이미 예비된 것이다. 비극의 주인공 단주의 원혼이 변하여 인면조가 되었으니 그 새가 길조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주가 정변으로 죽었으므로 이 흉조가 출현하면 방사가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옹(옹)이나 부혜(鳧혜)라는 인면조도 같은 계열의 새들이다. 옹은 모습이 올빼미 같고, 사람 얼굴에 눈이 넷이며 귀도 달린 새다. 이 새가 보이면 천하에 큰 가뭄이 든다고 ‘남차삼경’에 기록되어 있다. 부혜는 생김새가 수탉 같은데,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것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서차이경’에 서술되어 있다. 인면조가 가뭄과 전쟁을 상징하는 흉조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인면조의 배후에도 우리가 모르는 단주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산해경>에 실린 인면조 ‘주’.

<산해경>에 실린 인면조 ‘주’.

그런데 <산해경>의 인면조 가운데는 반모와 같은 새도 있다. 불효산이란 곳에 까마귀 같은 새가 있는데, 사람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 새는 밤에 날아다니고 낮에는 숨어 있는데, 이 새의 고기를 먹으면 열병과 두통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북차이경(北次二經)’)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길흉을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흉조는 아닐 것이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재가 된다니 길조로 분류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북한 평남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인면조 ‘천추’.

북한 평남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인면조 ‘천추’.

반모와 같은 긍정적 인면조 계열에 갈홍(葛洪, 284~364)이 지은 <포박자(抱朴子)>의 인면조가 있다. 인면조는, 수련을 통해 장수에 이를 수 있다는 설에 대해 의심하는 이에게 포박자라는 신선이 대답하는 말 중에 등장한다. “천세(千歲)는 새이고 만세(萬歲)는 날짐승인데, 모두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지니고 있으며 수명은 그 이름과 같다.”(‘대속권(對俗卷)’) 천세와 만세는 모두 인면조인데, 천년만년을 사는 짐승이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새라 할 만하다.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천추(千秋)와 만세(萬歲)라는 이름의 인면조가 바로 이 새다. 이렇게 보면 고분의 주인은 <포박자>를 읽었거나 신선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집단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면조가 있었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길조로 의미가 확장된 인면조도 있었다. 이런 내력을 지닌 인면조가 평창 올림픽 마당에 평화를 호출하는 새로 다시 출현했다. 누천년의 상징성이 누적된 인면조에 새로운 상징의 옷이 하나 더 입혀진 셈이다. <산해경> 투로 말하자면 평창에 인면조가 나타났으니 천하에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근대 올림픽의 정신이 무엇인가?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불러오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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