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개의 형상은 다양하다. 집을 지켜주는 친구이자 신의 징벌로부터 밀을 보존해 오늘날 문명을 추동해준 인류의 은인이며, 사람과 결혼한 종족의 시조였다. 사진은 2018년 개의 해 첫날을 맞아 일출을 배경으로 놀고 있는 진돗개 대한이와 민국이. 경향신문 자료사진
옛날 옥황상제가 뜀뛰기 시합을 시켜 열두 띠 동물의 순서를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영리한 생쥐는 일등을 했고, 개는 11등을 한다. 좀 느린 소는 하루 전에 출발했다고 하는데, 날쌘 개는 왜 늦었을까? 이 이야기에는 아무 설명이 없다. 밤새 집을 지키느라 개는 출발이 늦어지지 않았을까? 이런 추론을 해보는 것은 열둘 가운데 개가 사람과 가장 친한 동물인 까닭이다.
개는 어쩌다 사람과 친구가 되었을까? 그 이유를 아주 흥미롭게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시버족이 전하고 있다. 시버족은 중국 신장성이나 랴오닝성에 거주하고 있는데, 옛 선비족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옛날 외로웠던 개는 다른 동물과 친구가 되고 싶어 먼저 토끼를 찾아가 함께 지낸다. 밤이 되자 토끼는 풀숲에 몸을 움츠리고 잠이 들었지만 개는 작은 소리가 나도 심하게 짖어댔다. 토끼는 화가 나서 그렇게 짖으면 늑대가 찾아와 우릴 잡아먹을 거라고 소리쳤다. 개는 토끼를 겁쟁이라 여겨 늑대를 찾아가 친구가 되었다. 저녁이 되자 늑대도 나무 뒤에 숨어 잠이 들었지만 개는 바람소리에도 짖어댔다. 늑대는 잠이 깨자 곰이 들으면 우리를 잡아먹을 거라고 개를 나무랐다. 개는 늑대가 곰보다 담이 작다고 생각하고는 곰을 찾아간다. 개는 곰과 친구가 되어 굴속에 살기 시작한다. 그런데 밤이 되자 곰은 굴에 들어가 잠을 잤지만 개는 굴 밖에서 망을 보다가 작은 기척에도 짖어댔다. 곰은 화를 내며 사람이 들으면 우릴 잡아갈 거라고 소리쳤다. 개는 곰이 사람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고는 사람을 찾아간다. 개는 마침내 사람과 친구가 되어 살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사람은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개는 망을 보았는데, 작은 소리에도 짖어댔다. 아침이 되자 사람은 밤새 집을 지키느라 수고했다면서 쓰다듬어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을 위해 망을 보는 것이 기뻤다. 이렇게 하여 개는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동화 같지만 개와 사람 사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개는 친구가 필요했다. 생긴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친구! 개의 본성은 짖는 것인데, 토끼도 늑대도 곰도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토끼는 늑대가 무섭고, 늑대는 곰이 무섭고, 곰은 사람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실 사람은 곰이 무섭고 늑대도 무섭다. 하지만 개가 있으면 경계할 수 있고, 때로는 개를 앞세워 사냥을 할 수도 있다. 개와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는 이야기다.
왜 늑대는 개가 되었을까? 언제쯤 개는 가축이 되었을까? 여러 학설이 논쟁 중이다. 그 가운데 사람이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이 배를 채우는 데 더 유리해서 늑대가 점차 가축화되었다는 견해가 그럴듯하다. 마을 주변을 배회하며 청소부 노릇을 하던 늑대가 사람한테 적응하면서 유전자가 변형되었다는 것. “외로워서”, 동물들 가운데 궁합이 딱 맞는 사람하고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는 시버족 이야기는 이런 최신 학설의 오래된 설화 버전이 아닐까?
그러나 시버족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민담에 속한다. 성스러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담 형식으로 구전되고 있지만 신화의 자취를 지니고 있는 개 이야기를 더 만나보자.
아담과 밀 이삭은 함께 천국에서 쫓겨난다. 당시 지상의 밀 이삭은 뿌리부터 줄기까지 다 밀알이 열려 있었다. 하루는 어떤 할멈이 기름과 밀가루로 만든 전으로 손자의 똥을 닦아 버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밀 이삭은 알라에게 애걸한다. 사람들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겠으니 천국으로 도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을 들은 알라는 천사들에게 땅으로 내려가 밀 이삭을 다 꺾어 오라고 명한다. 천사들이 내려와 이삭을 꺾고 있을 때 개가 그것을 발견한다. 개는 알라에게 달려가 간청했다.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여, 조금이라도 밀 이삭을 남겨주십시오. 다 가져가신다면 저보고 무엇을 먹으라는 말씀입니까?” 개를 가엽게 여긴 알라는 천사들에게 조금 남겨두라고 명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밀은 알라가 개에게 준 음식이다. 그러므로 개를 기르는 사람은 늘 배불리 먹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위구르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있는 이야기다. 위구르족은 오늘날 주로 신장위구르족자치구에 거주한다. 이들의 기원은 고대 정령(丁零)에 닿아 있고, 후대는 철륵(鐵勒)-돌궐(突厥)족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늑대를 신성시하는데, 위구르의 영웅 우구즈칸이 전투에 나설 때 길을 인도해주는 신성한 존재로 나타난다. 이 늑대는 나중에 돌궐 시조신화에서 발목이 잘린 채 버려진 사내아이를 키우는 암 늑대로, 몽골 시조신화에서 흰 사슴과 짝을 맺는 푸른 늑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천신에게 간청하는 개의 모습은 이런 신화에 젖줄을 대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알라신이 등장한다. 천국에 살던 아담(Adam)도 출연한다. 이는 위구르족이 10세기에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변형이다. 천국의 아담이 문제를 일으켜 쫓겨났듯이 지상의 인간도 문제를 일으킨다. 밀 이삭에 인격을 부여하여 노파가 학대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밀의 낭비가 문제였다. 뿌리에까지 밀알이 열릴 정도로 밀이 너무 풍성했기 때문이다. 곡식의 낭비가 대홍수의 원인이 되는 신화가 적지 않은데, 여기서는 홍수 대신 알라가 곡식을 회수해간다. 밀이 사라지면 인류는 신석기 시대 이전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인류를 있게 해준 은인이 바로 개라고 말하고 있다. 망을 봐주는 친구에서 신 같은 존재로 개의 위상이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셈이다.
이제 개의 신성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신화를 만나보자. 5세기에 편찬된 <후한서(後漢書)> ‘남만서남이전(南蠻西南夷傳)’에 좋은 사례가 있다.
고신(高辛) 임금 시절에 견융(犬戎)이 변경을 침범했다. 고신 임금이 견융의 포악을 근심하여 정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에 임금이 천하에 두루 인물을 모으면서 견융국 오장군의 머리를 가져오는 자에게는 황금 천일(일=24냥)과 만가(萬家)의 식읍(食邑)을 주고,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고 했다. 그때 고신 임금이 키우던 오색의 털을 지닌 개가 있었는데, 이름이 반호(盤瓠)였다. 임금의 영이 내려진 뒤 반호가 사람의 머리를 물고 대궐 아래 이르렀다. 여러 신하들이 이상하게 여겨 살피니 오장군의 머리였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였으나 반호에게 딸을 아내로 줄 수도 없었고, 봉작(封爵)할 길도 없어 신하들과 포상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공주가 듣고 임금이 내린 명령은 어겨서는 안되니 그대로 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금은 어쩔 도리가 없어 딸을 반호의 배필로 주었다. 반호는 공주를 얻자 업고 남산으로 달려가 석실(石室)에 들어갔다. 아주 험하여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거기서 여자는 본래 입었던 옷을 벗어버리고 복감(僕鑒)식으로 머리를 묶고 독력(獨力)의 옷을 입었다. 고신 임금은 슬퍼하며 딸을 그리워하여 사자를 보내 찾도록 하였으나 번번이 비바람이 불고 깜깜해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3년이 지나자 6남6녀를 낳았다. 반호가 죽은 뒤 서로 부부가 되었다. 이들은 나무껍질로 옷감을 짜고 풀 열매로 염색을 하였는데, 오색 옷을 좋아했고 옷을 지을 때는 꼬리를 달았다.
고신은 제곡(帝곡)으로 불리는 고대 부족국가의 족장으로, 어머니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낳았다는 신화적 인물이다. 중국의 신화적 족보에는 황제(黃帝)의 증손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견융은 오늘날 산시(陝西·山西)성 일대에 터 잡고 있던 부족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중원의 고신씨와는 적대적 관계였다. 이 신화는 양자, 곧 화이(華夷)의 적대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이상한 개 한 마리가 끼어들어 사연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 신화에는 개를 둘러싼 두 가지 서사 전략이 감춰져 있다. 하나는 반호가 견융국 오장군의 머리를 물어왔다는 진술이다. 견융은 견이(犬夷)·험윤(獫狁)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후대의 흉노(匈奴)와도 관계가 있는 종족이다. 그런데 이름마다 ‘개’가 붙어 있다. 이는 소위 오랑캐에 대한 비칭(卑稱)이지만 그 이상의 함의도 있다. 종족의 문화적 특징, 다시 말해 신화가 숨어 있다. 견융은 늑대를 숭배하는, 그 연장선상에서 개를 신성시하는 종족이다. 그런 견융의 오장군을 고신이 기르던 개가 잡아왔다니! 개로 개를 죽인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아닌가! 이 상징 놀이에는 후한의 외교정책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이제이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반호는 공주를 얻어 고신 임금의 부마가 된다. 여기에 두 번째 전략이 숨어 있다. 반호와 공주는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자녀들끼리 짝을 맺어 한 종족을 이룬다. 그러니까 이 종족의 시조는 개다. 아주 익숙한 토템신화의 형식이다. 이런 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종족은 현재의 먀오(苗)·야오(瑤)·셔(畬)족 등인데, 본래 같은 계통이다. 기록 속의 ‘복감’이나 ‘독력’이 무엇인지 불분명하지만 오늘날 야오족의 전통 패션을 보면 짐작이 간다. 야오족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길러 터번처럼 둘러 올리는데 이것이 복감일 것이고, 반호의 털 빛깔처럼 오색의 옷에 꼬리를 다는데 그것이 독력일 것이다. 반호의 후손임을 표현한 복색이다. 따라서 이 <후한서>의 기록은 이들 종족의 기원신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필자가 이전에 한족과 동포임을 표현하고 있는 이족(彛族) 창세신화(6회 참조)를 다루면서 언급한 바 있는 관계, 곧 화이의 혈통관계가 수립된다는 뜻이다. 먀오족 등은 중원의 서남쪽에 있는 오랑캐들이지만 고신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황제의 족보에 등록된다. 이들은 험지에 고립되어 중원의 한족과 소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황제의 방계 후손이라는 뜻이다.
먀오족이 구전하는 신화에 따르면 신농씨의 딸이 개와 결혼한다. 개가 적장의 머리가 아니라 서방에서 곡물의 종자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개가 인간에게 종자를 선물했다는 점에서 앞서 위구르족 이야기와 연결된다. 이렇게 하여 개와 결혼한 신농의 딸은 2년 뒤 핏덩어리를 하나 낳았는데, 칼로 가르자 사내아이 열넷이 나온다. 그 가운데 일곱이 먀오족이 되고 일곱이 한족이 된다.
먀오족과 한족이 형제라는 말이다. 이런 변형된 신화가 구전되고 있는 것을 보면 먀오족 역시 <후한서>의 통합 이데올로기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을 지켜주면서 사람과 친구가 된 개, 신의 징벌로부터 밀을 보존해 오늘날의 문명을 추동해준 개, 사람과 결혼하여 종족의 시조가 된 개, 개의 신화적 형상은 실로 다양하다. 때로는 신성한 개가 화이론에 포획되어 ‘개 같은 놈들’로 비하되기도 했지만.
무술년(戊戌年)은 개의 해다. 그런데 성급하게도 태양력으로 2018년이 되었으니 그냥 무술년이라고 한다. 게다가 ‘무’와 ‘술’은 오행으로 토(土)에 배당되어 있어 누런색일 뿐인데 ‘황금개띠해’라고 난리다. 희망의 색상을 칠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황금을 좋아하기 전에 개의 신화적 형상이 지닌 의미를 음미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무술년을 앞두고 우리가 개 대접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