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의 원형적 상상력의 구조
- 神異에 대한 상상력의 범주와 신화의 사유체계
Ⅰ. 논의의 전제와 방법
Ⅱ. 신화에 나타난 神異의 표상
Ⅲ. 원형적 상상력의 범주와 특성
Ⅳ. 한국 신화의 사유체계
Ⅴ. 결론
【요 약】
한국의 신화 텍스트들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원형적인 상상력을 범주화하면
신성존재에 대한 상상력,
타자에 대한 상상력,
공간에 대한 상상력,
시간에 대한 상상력,
세계 법칙에 대한 상상력의
다섯 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신화의 서사 전개 과정을 인물의자질․능력과 행위와 결과, 그로 인해 재현된 세계상의 세 가지 병렬체로 설정할 수 있다.
神異에 대한 상상력이 이 병렬체에 직․간접적으로 결합하여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각 이야기에서 병렬체에 해당하는 것들이 연쇄를 이루어서 하나의 계열체를 구성한다.
이 계열체는 신화를 간단한 문형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주며, 신화의 중심 이념을 드러내기에 용이하다.
신성에 의한 세계창조와 통치, 인간세계의 근본 문제 해결 및 신격에 의한 인간세계 관장 등으로 추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신화에서 발견할수 있는 기본 사유체계는 신성의 인간화, 인성의 신격화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인간적 경험과 사유로는 인식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시․공간, 존재, 세계에 대한 상상력으로 신화 서사에 풀어 놓고 있다.
Ⅰ. 논의의 전제와 방법
신화를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이야기’1)로 규정하는 것은 명쾌하고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복잡하다.
이 짧은 문장에는 ‘기원․설명․믿음’라는 문화적으로 응축된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인간의 근원적 문제인 ‘존재론․인식론․가치론’으로 연결된다.
신화학자들에 따라 존재론이 강조되기도 하고 인식론이, 혹은 가치론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가 통합되어 있는
것이 신화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화의 이 같은 통합적 사유체계에 대한 연구는 신화 전승집단의 문화 저층에 작용하는 원리를 규명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같음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같음, 즉 특정한 기준 속에서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다.
1) 나경수, ????한국의 신화-역사와 예술 그리고 사유의 근원????, 한얼미디어, 2005,p.14.
이때 . 기준은 당연히 현실 세계 속의 현실적 인간 존재일 것이며, 그들의 실제 경험과 사유가 근간을 이룬다.
하지만 인간은 차이 자체에 압도당하거나 자신의 현실적 경험과 사유로써 인식되지 않는 대상을 사유하기도 한다.
일연은 ????三國遺事????의 紀異편을 서술하면서 이미 이 같은 신기하고 신성한 차이를 인식했다.
신화는 이 같은 ‘신이(神異)에 관한 이야기이며, ‘신이’에 대한 사유, 즉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상상력은 통념상 현실의 범주와 대립되는 위치에 속한다.
더구나 상상력은 과학적․합리적 사고와 반대되는 사유체계로 간주된다.
그러나 신화를 떠받치고 있는 상상력은 이 같은 단순한 양항체계로 환원될 수 없다.
초기 인류학에서는 신화적 사고체계를 현대 문명과 대비시켜 미숙한 단계로 간주했는데, 레비-브륄(LucianLévy-Bruhl)이
대표적이다.2)
그에 따르면, 미개인은 논리 이전(pre-logic)의 사고방식과 느낌을 지닌 자들로서 집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개별적인 심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에 따르면, 문명인의 사고와 미개인의 사고는 사물을 분류하는 방식과 관심의 주된 영역이 다를 뿐,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미개인과 문명인의 사고방식은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의 다른 방식 혹은 태도일 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이른바 미개인의 사고가 근대인 혹은 문명인 못지않게 질서와 체계에 민감하고 나름의
논리적, 과학적 사고방식인 것이다.3)
레비-스트로스의 논의는 이후 신화 연구에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고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의 ‘야생의 사고’는
2) Lucian Lévy-Bruhl, Les Fonctions mnetales dans les sociétés primitives inférieures(1910), trans., Lilian A.
Clare, How natives think, Arno Press, 1979.
3) Claud Lévi-strauss, ????야생의 사고????, 안정남 역, 한길사, 1996.234 韓民族語文學(第49輯)
신화시대, 즉 원시인들의 사유를 근대적 문명에 입각한 발전론적 시각이 아닌 상대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으로 의미가 크지만, 자칫 신화 자체의 사유방식이나 특성을 특정시대의 것으로 한정시키게 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과거 신화시대에서 생겨난 사유는, 신화가 재현되고 재생되면서 여전히 초(超)시간․초공간적으로 현재화되기 때문이다.
신화의 특성이나 본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신화가 ‘진실’이나 ‘비(非)진실’로 구분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질료’가 아니라 ‘구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신화는 허구적이거나 진실한 것 둘 다를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근원적 상상력의 세계가 지닌 규칙에 따라 재료가 배열된다는 점이다.4)
따라서 신화 텍스트의 구성․배열의 원리를 밝히는 것은 신화를 전승․공유했던 집단의 원형적 사유체계에 접근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 논의의 전개 순서는 먼저, 한국의 대표적 신화 7편을 대상으로 신이에 대한 표상을 이야기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찾는다. 다음으로 신이에 대한 원형적 상상력을 범주화해서 추출하고 그 특성을 밝힐 것이다.
한 편의 서사로서 존재하는 신화의 사유체계를 살피기 위해 병렬체와 계열체로 나누어 논의할 것이다.
원형적 상상력은 이야기의 병렬체와 직접적으로 결합되며, 이들이 연쇄를 이루어 하나의 계열체가 되어 중심 이념과 가치관․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4) Lucian Boia, ????상상력의 세계사????, 김웅권 역, 동문선, 2000, p.37~48.
Ⅱ. 신화에 나타난 神異의 표상
한국의 신화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하위 갈래로 나뉠 수도 있고5) 단순히 양항 체계로 나뉠 수도 있다.6)
후자의 경우, 신화의 전승방식 상으로는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과 구전되는 것으로 양분할 수 있으며, 내용상으로는 국가 건국이나 국왕 즉위의 내용을 다룬 것과 무속 종교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들의 본풀이를 다룬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흔히 건국신화(기록신화)와 무속신화(구술신화)의 양항 체계로 설정된다.
본 논의는 신화의 갈래 구분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양항 갈래를 따르기로 하고 각 신화체계에서 대표적인 신화를 선정,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에 전하는 기록신화(건국신화)는 고대국가의 건국시조를 다루고 있는데 신화의 서사구조와 인물의 형성화 방식 등을
고려할 때 하위의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천자 내지 천자의 아들이 직접 강림해서 나라를 세운 경우는 <단군신화>, <해모수신화>가 있다.
하늘의 명에 의해서 알이나 유아로 지상에 강림해서 성장 이후 부족을 통합하고 즉위하는 유형으로는 <혁거세신화>와
<수로신화>가 있다.
지상에서 탄생한 후 시련을 겪고 투쟁하여 즉위하는 신화로 <주몽신화>와 <탈해신화>가 있다.
이 세 가지 유형 중 <단군신화>, <수로신화>, <주몽신화>를 대상 텍스트로 한다.
무속신화는 전승 형태상 많은 이본이 전하기 때문에 건국신화처럼 단순한 범주로 묶기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지역적 전승범위를
5) 김헌선은 ‘문헌에 정착된 건국신화, 문헌에 정착된 여산신과 남신의 신화,문헌에 정착된 성씨시조신화, 구전으로 전해지는 예사신화, 무당노래로 전해지는 일반신 신화, 무당노래로 전해지는 당신의 신화, 무당노래로 전해지는 조상신의 신화’로 여덟가지로 분류한다.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 pp.13~16.
6) 논자들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건국신화(국조신화)와 무속신화(서사무가)로 양분하는 입장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홍기문, ????조선신화 연구????(초판 1964), 지양사, 1989.현용준, ????무속신화와 문헌신화????, 집문당, 1989.서대석, ????한국 신화의 연구????, 집문당, 2001.
기준으로 한국 전지역에 전승되는 광역 전승 신화인 <바리공주>,<당금애기>와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신화인 <이공본풀이>를 대상 텍스트로 한다.7)
전승형태상 무속신화에 속하지만 내용상 또 다른체계로 볼 수 있는 신화로 창세신화가 있다.
창세신화는 건국신화 처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국왕의 이야기도 아니며, 인간이 신으로 변신한 이야기도 아닌 또 다른
유형이다.
명칭에서 드러나듯 최초의 세계를 창조한 신과 그 피조물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신화의 본질적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채록된 창세신화 중 가장 오래되었고 서사구조가 탄탄한 <창세가>를 대상 텍스트로 선정한다.
대상 신화 텍스트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창세가8)
(1) 천지가 분리되면서 미륵이 세상에 출현하다.
(2) 미륵이 세상에 나와 천체를 바로잡고 질서를 수립하다.
(3) 미륵은 거신의 풍모를 지녔으며 생식을 하며 옷을 지어 입다.
(4) 미륵이 물․불의 근본 찾아 개구리․메뚜기에게 답을 구하지만 실패하다.
(5) 미륵이 쥐에게서 물․불의 근본을 듣다.
(6) 미륵이 하늘에서 떨어진 벌레로 남녀 한 쌍의 인간을 창조하다.
(7) 석가가 등장해서 미륵에게 인세차지 경쟁을 요구하다.
(8) 미륵이 내기에서 모두 이기지만 석가가 속임수를 쓰다.
(9) 석가가 인세를 차지하자 미륵이 저주의 말을 하다.
(10) 석가가 인간 무리를 창조하고 화식을 선보이다.
(11) 석가의 무리 중 화식을 거절한 두 중이 바위와 소나무로 변하다.
7) 건국신화의 분류체계와 무속신화의 전승본에 관한 내용은 아래 책 참고.
오세정, 「한국 신화의 폭력 메카니즘 연구」, 서강대 석사논문, 1998.
오세정, ????한국 신화의 생성과 소통 원리????, 한국학술정보, 2005.
8) 김쌍이돌이 구연, <창세가>, 손진태, ????조선신가유편????, 향토문화사, 1930.
② 단군신화9)
(1)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다.
(2) 환웅은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세 개를 얻어 인간 세상에 내려오다.
(3) 환웅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정 신단수에 내려 신시를 열다.
(4) 환웅이 인간 360여사를 다스리다.
(5)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에게 빌다.
(6) 곰은 환웅의 금기를 지켜 여자가 되고 호랑이는 실패하다.
(7) 웅녀는 단수 아래에서 자식 갖기를 빌자 환웅이 변신해 결혼하다.
(8) 웅녀가 낳은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칭하다.
(9) 단군이 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1908세에 아사달의 산신이 되다.
③ 수로신화10)
(1) 구지봉에서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에게 군왕을 맞이하도록 명하다.
(2) 천명에 따라 사람들이 노래와 춤으로 군왕을 맞이하다.
(3) 하늘에서 알이 내려오고, 수로가 난생하여 왕이 되다.
(4) 수로가 탈해의 왕권 도전을 물리쳐 탈해를 쫓아내다.
(5) 구간등이 배필 맞기를 권하자, 왕은 천명을 기다리겠다고 거절하다.
(6) 허황옥이 수로를 찾아와서 결혼하다.
(7) 천상황제가 꿈에 허황옥 부모에게 수로에게 딸을 시집보낼 것을 명하다.
(8) 허황옥이 증조(烝棗)와 반도(蟠桃)를 얻어 가락국에 오다.
(9) 수로와 허황옥이 결혼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다.
(10) 허황옥이 곰 꿈을 꾸고 태자를 생산하다.
(11) 왕후가 죽고, 10년 뒤에 왕도 죽다.
9) ????三國遺事???? 券1 古朝鮮.
10) ????三國遺事???? 券2 駕洛國記.
④ 주몽신화11)
(1) 금와가 태백산 우발수에서 유화를 얻다.
(2) 하백의 딸 유화는 해모수와 사통한 후 버림을 받다.
(3) 유화가 버림받자 하백이 유화를 내치다.
(4) 금와가 유화를 별궁에 가두자 일광에 감응하여 알을 낳다.
(5) 금와가 알을 내버리자 짐승들이 보호하다.
(5) 알을 깨고 주몽이 탄생하다.
(6) 주몽은 금와의 왕자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자 왕자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다.
(7) 주몽이 도주 중 강에 이르러 주문을 외자 물고기․자라가 강을 건네주다.
(8) 졸본지역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국호와 성을 정하다.
(9) 졸본지역에 이르러 비류왕 송양과 나라 경쟁을 벌이다.
(10) 송양이 항복하지 않자 주몽이 흰 사슴을 제물로 비를 청해 승리하다.
(11) 7일간 산에 구름이 끼고 소리가 들리더니 궁궐이 완성되다.
(12) 주몽이 승천하자 남겨둔 옥편으로 장례를 지내다.
⑤ 바리공주12)
(1) 어비대왕이 나라를 다스리며 살다.
(2) 어비대왕이 복자의 말을 어기고 날짜를 앞당겨 결혼하다.
(3) 대왕 부부는 공주만 여섯을 낳고 왕자를 낳지 못하다.
(4) 어비대왕이 일곱째로 태어난 바리공주를 황천강에 버리다.
(5) 바리공주가 석가세존의 도움으로 비리공덕 부부에게 거두어져 양육되다.
11) 건국신화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내용이 가장 풍부하고 이야기의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
다만 주몽신화의 경우는 ????三國遺事????보다 ????三國史記????와????東明王篇????이 더 내용이 풍부하다.
하지만 세 전승기록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세편의 기록을 종합하여 요약 제시한다.
12) 문덕순 구연, <말미(바리공주)>, 김태곤 편, ????한국무가집????1. 집문당, 1971.
(6) 대왕부부가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약수를 구하다.
(7) 딸들이 생명수 구하기를 거부하자 한 신하가 바리공주를 찾아 나서다.
(8) 바리공주가 소식을 듣고 궁궐로 돌아가 부모와 재회하다.
(9) 바리공주가 약수를 찾아 지옥통과 등의 여행을 시작하다.
(10) 바리공주가 무장승을 만나 약수를 얻기 위해 나무 삼년, 불 삼년, 물 삼년 해주다.
(11) 바리공주가 무장승의 요구로 결혼하여 일곱 아들을 낳아주다.
(12) 바리공주가 무장승과 함께 약을 얻어 궁궐로 돌아오다.
(13) 바리공주가 부모를 회생시키다.
(14) 바리공주가 대왕으로부터 이승과 저승을 관장하는 신직(神職)을 받다.
⑥ 당금애기(제석본풀이)13)
(1) 스님이 서천서역국에서 당금애기를 만나다.
(2) 스님이 시주자루를 찢어 쌀을 흘리자 당금애기가 일일이 주워주다.
(3) 스님이 당금애기에게 하룻밤 유할 것을 요구하여 같은 방에서 자다.
(4) 스님이 거부하는 당금애기를 설득해서 동침하다.
(5) 스님이 다음날 박씨를 주고 떠나다.
(6) 당금애기가 임신하자 오라비들이 작두로 죽이려 하다가 어머니의 만류로 뒷동산 돌함속에 가두어 굶겨 죽이기로 하다.
(7) 당금애기가 산속에서 아들 삼태를 낳다.
(8) 당금애기의 어머니가 딸과 손자들을 집에 데리고 오다.
(9) 당금애기가 남편 없이 아들 셋을 키우다.
(10) 아들들이 당금애기에게 자신들의 출생에 관해 묻다.
(12) 당금애기와 아들들이 박씨줄을 타고 스님을 찾아 가다.
(13) 스님이 아들들을 시험하여 혈육임을 확인하다.
(14) 스님이 당금아기와 아들들에게 신직을 주다.
13) 박월례 구연, <시준굿>, 같은 책.
⑦ 이공본풀이14)
(1) 김진국 아들 원강도령과 임진국 딸 원강아미가 결혼하다.
(2) 원강도령이 서천 꽃밭을 지키는 꽃감관으로 간택되어 이승을 떠나다.
(3) 원강아미는 혼자서 만년장자 집에서 종으로 살면서 아들을 낳고 키우다.
(4) 아들 할락궁이이가 15세가 되어서 아버지를 찾아 서천 꽃밭으로가다.
(5) 만년장자가 겁탈하려다가 완강하게 거부하는 원강아미를 죽이다.
(6) 할락궁이가 만년장자의 추적을 피해 서천꽃밭으로 가다.
(7) 할락궁이가 아버지를 만나 환생꽃과 악심꽃을 받아 어머니의원수를 갚으러 이승으로 오다.
(8) 할락궁이가 악심꽃으로 만년장자와 그 가족을 죽이다.
(9) 할락궁이가 환생꽃으로 어머니를 소생시키다.
(10) 할락궁이 모자가 서천 꽃밭으로 가서 가족이 상봉하다.
(11) 할락궁이가 서천 꽃밭 꽃감관이 되다.
신화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특성은 인간적 세계와 구별되는 차이, 특히 인간적 한계와 범주를 넘어서는 초월성에 있다.
무속신화와 같이 종교체계 속에서 생성․소통된 신화가 아닌 역사서에 기록된 신화에서도 이와 같이 특성은 일찍이 주목
받았다.
‘다름[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신이(神異)’, 부정적 인식을 ‘괴이(怪異)’로 본다면15), 신화는 단연코 신이의 텍스트이다. 각 이야기에서 두드러지는 신이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4) 안사인 구연, 현용준 편,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국문화사, 1980.
15) 박대복, 「영웅 김유신의 신화적 성격과 무속적 성격-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소재 김유신 이야기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어문교육연구회 163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pp.132~133.
신화 신이한 내용
창세가
• 태초의 세계(천지 합일), 세계창조
• 미륵과 석가라는 신성 존재
• 물불의 근원 탐색 과정(개구리, 메뚜기, 쥐)
• 미륵과 석가에 의한 인간 창조
단군신화
• 환인의 아들 환웅이라는 신성 존재
• 곰과 호랑이의 인간 변신 소망
• 곰의 인간 변신과 단군 출산
수로신화
• 하늘의 명과 수로의 구지봉 강림
• 허황옥의 천명 수령과 신물 획득
• 수로의 변신술과 능력
주몽신화
• 해모수와 유화라는 신성 존재
• 알에서 태어난 주몽
• 주몽의 주술력과 용맹성
바리공주
• 석가세존이라는 신성 존재
• 지옥, 서천서역국 등의 낯선 세계
• 무장승, 그가 소유한 생명수(약수)
• 바리공주의 무조신으로의 변신
당금애기
• 신성한 존재인 스님
• 스님의 변신술, 예지력 등의 신이한 능력
• 당금애기의 삼신신으로의 변신
이공본풀이
• 천상 꽃감관이 되는 원강도령
• 원강아미가 거주하는 천상 세계
•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꽃
각 신화에서 신이의 표상은 인물들의 출신지, 거주지, 부계혈통 등의 천부적 자질과 능력, 그리고 그 인물들이 행한 행위와 행위의 결과, 그로 인해서 실현된 가치나 변모된 상황, 서사의 배경이되는 시․공간 등에서 비교적 잘 드러난다.
<창세가>의 미륵과 석가, <단군신화>의 환인과 환웅, <주몽신화>의 해모수, <바리공주>의 석가세존 등은 이야기에 실제
등장하는 신격들이다.
이들은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거주하며, 미륵과 같이 거인의 풍모를 갖고 있기도 하고, 환웅은 무리 3000을 이끌고 지상으로 강림하는 위엄을 선보인다.
수로와 해모수, 하백, <당금애기>의 스님은 변신술을 쓰며, 주몽은 주문을 외워 주술적 능력을 발휘 한다.
신화 속 주인공이나 신격들만이 이 같은 신이성을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에 따라서는 다양한 대상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물과 식물과 같은 자연적 존재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신이함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는데, <창세가>에서 미륵이 모르는 물불의 근원을 미륵에게 전해주는 생쥐,
<단군신화>에서 인간이 되고자 갈망하는 곰과 호랑이, <이공본풀이>이나 <바리공주>에 나오는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할
수 있는 약수나 꽃, <주몽신화>에서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흰사슴 등 다양하다.
특히 건국신화에서는 각 신군(神君)들의 강림이나 건국의 전조 기능을 하는 신성동물들이 존재한다.
신화의 신이성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화가 기본적으로 기원에 대한 탐색담이라고 할 때, 태초의 시간이 설정된다.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 신성한 왕국이 건설되기 이전,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격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이러한 시간은 때로는 이야기 속에서도 논리성을 확보하지 못하기도 하는 다소 무질서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인데, <창세가>에서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붙어 있는 신이한 계(界)가 설정되며, 많은 무속신화에서는
천상과 지옥과 같은 타계가 나온다. 이야기 배경차원을 넘어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 즉 시간의식과
공간의식 또한 인간존재가 흔히 경험하는 일상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바리공주가, 죽기 직전의 부모를 구하기 위해서 구약여행을 하는 동안 시간의 경과는 부모가 존재하는 지상세계에서는
무화(無化)된다.
Ⅲ. 원형적 상상력의 범주와 특성
신화에 나타나는 상상력은 인간 문화에 있어서 최초의 원형들과 관련된 것으로, 이 원형의 실체는 인간 정신 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실체를 개념화하고, 요소를 분리․혼합하는 방식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16)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 신화 텍스트를 실제 분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의 범주를 추출해 보자.
서사 구조에서 나타나는 신이의 표상을 중심으로 고려해 볼 때, 한국 신화에서 보편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범주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1) 신성존재에 대한 상상력
신화 속 등장인물(character)은 인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데, 절대 신격에서부터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사의 주인공으
16) 융(C.G. Jung)은 인간 문화에 있어서 최초의 원형들을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의 산물로 보았다.
문화의 근원적 상상력 자체의 관심을 가졌던 바슐라르G. Bachelard)는 ‘공기, 물, 불, 대지’와 같은 고대의 원소개념을
빌어 와서 상상력의 호르몬으로 설정했다. 이후 뒤랑(Gilbert Durand)은 상상력의 세계를 보편적 모태로서의 원형으로
간주했고, 이 원형이 상징으로 표상되며 특정한 구조를 가진다고 보았다.
보이아(Lucian Boia)는 상상력을 초시간적이며 초공간적인 개념으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원형적 사고틀로 보았다.
C.G. Jung 외, ????융 심리학 해설????, 설영환 역, 선영사, 1993, pp.90~96.곽광수, ????가스통 바슐라르????, 민음사, 1995, pp.44~45.
Gilbert Durand, ????상상력의 과학과 철학????, 진형준 역, 살림, 1997, pp.100-103.Lucian Boia, 앞의 책, pp.37~48.
로서 신격이 등장하기도 하며, 인간을 돕는 원조자로 혹은 징치하는 심판자로서 신격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평범한 인간 존재에서 신격화되는 인간도 등장한다.
신격의 역할뿐 아니라 능력이나 초월적 성격의 강도 등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모든 신화에서 신성한 존재는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신성한 존재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은 현실 세계인 물질세계를지배하는 초월적이고 우월한 본질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한다. 신화를 인간 역사와 문화의 맨 앞자리에 놓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의식은 가시적(可視的) 물질세계에 대한 파악으로 자족할 줄 모른다.
인간의 의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시화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확신했다.
랑거(S. K. Langer)는 원시인들의 춤이 ‘존재, 세계와 관련된 본질적인 힘’을 재현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상징의 성격을 유추했다.17)
이 같은 본질적인 것,세계와 존재 사이에 작용하는 힘, 이것이 바로 초월적 존재, 신성한 존재로 상상된 것이다.
한국 신화에서 이 신성한 존재는 천상에서 명령하고 군림하기보다는 인간 세계로 스스로 강림해서 인간들의 왕이 되어
천상의 질서를 지상으로 이식시킨다. 또한 신의 명령을 따르고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시킨 위대한 인물은 신으로 화해
영원히 인간 세계에서 인간의 일을 관장하게 된다.
17) 카시러(E. Cassire)의 상징론의 영향을 받아, 사회 발전의 원시적 국면을‘신화적 의식mythic consciousness’에 전적으로 지배받는 것으로 설명했다.
Susane K. Langer, An Introduction to Symbolic Logic, Dover, 1953, pp.189-190.
신화 신성 존재 성격
창세가
미륵
석가
두 스님
창조․통치 능력 소유
창조․통치 능력 소유, 속임수
생식 거부, 돌․솔로 변신
(2) 타자에 대한 상상력
인간은 초월적 신성 존재에 대해서 상상할 뿐 아니라 인간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서 상상해 왔다.
신화 속에도 신과 인간 이외에 인간과 다른 존재, 즉 타자(他者)로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