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문명 신비의 마야 도시 팔랑케 > 종합 역사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종합 역사자료실

[고대문명] 사라진 문명 신비의 마야 도시 팔랑케

송화강 2019-05-29 (수) 22:34 6년전 12346  

사라진 문명 신비의 마야 도시 팔랑케

 

1. 7세기 중앙아메리카 마야의 최고 도시 팔렝케,

전성기 파칼 대왕의 왕궁과 피의 제전!~~

 

팔랑케는 수세기 동안 문명의 꽃을 피우다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그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곳이다.

이제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과학자와 공학자 및 고고학자로 이루어진 연구팀이

이 놀라운 도시의 건축공법과 그 용도에 대해 파헤쳐 보려고 한다.

 

"왕과 왕비, 고위 사제들만이 이 밑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절정기때 도시 모습도 밝혀볼 것이다.

연구팀의 목표는 역사속에 감춰진 비밀을 풀어 위대한 마야의 사라진 문명을 복원하는 것이다.

 

신전을 비추는 일직선의 햇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신성기학학이라 불리는 고대 공식이 전체적인 도시 설계에 밑바탕인가?

또한 가장 위대했던 팔렝케 왕의 편안한 안식을 1,200년간이나 지켜온 고분의 신비로운 건축 공법은 무엇인가?

 

지금부터 사라진 고대 마야 문명을 부활시키기 위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도화 사업이 막을 올리게 될 것이다.

이제 팔렝케를 둘러싼 모든 신비의 베일을 벗겨보자.

 

133BF34C4D1524D3247E58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우림지대 속에 위대했던 고대 도시의 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를 세운 주인공은 마야라는 위대한 민족이었다.

 

3천 년 전에 싹을 틔운 마야 문명은 그 후 2천 년간 번영을 구가했다.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지내는 동안

마야 문명은 기하학과 천문학을 발전시키며 서적을 발간하고 무역로를 개척했다.

마야 문명은 의식과 제물에 바탕을 둔 복잡한 종교사회다.

더불어 강력한 도시국가 체제를 발전시켰다.

이 마야의 도시국가 중 최고봉이 팔렝케였다.

14463E504D1525182B1159

 

800년 전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팔렝케는 활기 넘치는 대도시였다.

거대한 궁전과 신전들이

멕시코 고원위로 우뚝 솟아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광장과 경기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팔랑케의 건축물 대부분은

위대한 통치자이자 건축가인 파칼 대왕의 영도하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9세기 이후 자취를 감춘 팔렝케는

그후 천 년 동안 세상에서 잊혀졌다.

 

현재 에드윈 반하드 박사가 이끄는 팔렝케 지도화 사업의 연구팀은 이 도시의 모든 자료를 수집 중이다.

이 연구팀의 목표는 현지 조사를 통해 파칼 대왕의 고대 도시를 복원하는 것이다.

182CB5474D1526932FE26F

 

연구팀은 250 평방미터의 면적에 산재한 700개 이상의 건물을 측량 중이다.

연구팀은 파칼 대왕의 최대 업적인 왕궁에서 조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팔렝케의 심장에 위치한 이 웅장한 왕궁엔

미로와 같은 복도와 접견실, 회랑 및 안마당이 갖추어져 있다.

 

"왕궁은 팔렝케의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로

도시의 심장부에 위치한 대광장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에드윈 반하드 박사, 텍사스 대학교

 

그리고 최초로 세워진 왕궁의 중심부에서 그 설립자에 대한 실마리가 발견되었다.

 

1670F0574D152C060CA8E2

 

"이 건물은 왕궁의 알현실입니다.

여기 벽에 붙어 있는 석회암 현판은 과거 이 알현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죠.

왼쪽 여성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팔렝케의 왕관이었던 머리 장식품입니다.

또 쌍두 재규어가 조각된 왕좌에 앉아 이 왕관을 받는 인물이 바로 파칼 대왕이죠."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현판에 기록된 파칼 대왕 대관식은 팔렝케를 영원히 변화시킨 운명의 서곡이었다.

그 이전까지 왕가는 끊임없는 전쟁과 기근으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서기 615년 권좌에 오른 파칼 대왕은 왕권을 다시 부흥시키며

팔렝케에서 전후무후한 원대한 대역사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파칼은 약 70년간 권좌를 유지했고

여든 살에 죽기 직전까지

 

거대한 연단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그 터에 일련의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죠."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파칼의 궁전은 수세기에 걸친 왕궁 공사의 절정으로써

선조들의 궁전위에 세워진 걸작이었다.

 

"역대 왕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왕궁에 증축 공사를 시행했고

낮은 건물을 쌓아 올리며 왕궁의 규모를 키워나갔습니다."

- 에드윈 반하드 박사, 텍사스 대학교

 

파칼은 서기 660년까지 가장 큰 현대의 미식축구장 크기인

670 평방미터의 대지에 거대한 석재 연단을 쌓아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원대한 포부를 열어간 파칼에겐

더 많은 돌이 필요했다.

 

"이 돌은 모두 근방의 석회암으로

이곳의 터를 닦을 때 채굴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건물을 세울 부지를 마련한 거죠.

또 일부는 저쪽 산맥에서 채굴한 후 산을 넘어 도시 내부까지 운송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에드윈 반하드 박사, 텍사스 대학교

 

마야인의 뛰어난 석공 기술은 현대 공법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121951554D15282A2684A0

 

당시 채굴 공법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의 크리스토퍼 파월과 알론소 멘데스가 과거 팔렝케의 채석장을 방문했다.

 

"이 채석장은 고대 채굴 공법을 파악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당시와 차이점은 나무와 돌 대신 금속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뿐이죠."

- 크리스토퍼 파월, 고고학자

 

오늘날까지도 채굴이 되고 있는 이 석회암 채석장은

당시에도 암석이 풍부하고 채굴이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의 석회암은 자연적으로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암석의 무르고 단단한 층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채굴하기에 용이한 편이죠.

홈이 파인 층을 이용해 작업하는 겁니다."

- 크리스토퍼 파월, 고고학자

 

견고한 암석을 능란하게 채굴했던 마야인의 도구는 무엇일까?

157171584D15287E091CEC

 

"이 돌은 당시 사용했던 도구의 일종으로 이런 종류의 석회암을 정련할 때 사용했죠.

 뾰족한 돌을 나무 막대기에 이와 같이 꽂은 다음

이 돌을 고정시키기 위해 가죽끈으로 막대기를 묶었습니다.

마야인들은 이렇게 완성된 도구로 석회암을 깍아 다듬었죠."

- 알론소 멘데스, 고고학자

 

134BA8534D1529143042CD

 

이 왕궁은 파칼 대왕의 영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파칼 대왕의 위대한 왕궁은 이 거대한 연단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외부 구조와는 달리 왕궁 내부는 놀랍도록 협소한 수준이다.

로마인들은 이보다 수세기 앞서 공간 활용도가 높은

쐐기돌 아치 구조라는 독창적인 공법을 개발했다.

 

마야인들은 이 공법에 대해선 무지했지만 또 다른 해결책을 고안했다.

스스로 독창적인 공법을 개발한 것이다.

197282514D15299E04496E

 

154600594D1529C9309074

 

"이건 '코벨 아치'라고 불리는 구조입니다.

로마인과는 달리 마야인은 이 공법을 선호했죠.

로마의 아치는 쐐기돌을 정점으로 굴곡진 형태지만

마야의 아치는 보시는 것처럼 납작한 돌을 서로 마주보게 쌓아올린 계단 구조를 띱니다."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텍사스 대학교

쐐기돌 아치 공법의 부재로

마야인들의 방은 협소했고

벽을 쌓는데 막대한 양의 돌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야의 공법에도 큰 장점이 하나 있었다.

 

"마야의 코벨 아치는 서로 지탱하는 구조

아치 구조 자체의 안정성이 높아집니다.

1,500년 동안 건재한 것만 봐도 그 효과는 증명되고 있죠."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현재 파칼의 궁전은 석회암만 나뒹구는 폐허로 변했지만

과거 한창 때는 웅장한 벽마다 왕가의 상징이 치장되어 있었다.

 

마야인들은 화려한 색의 상형문자와 조각 및 띠모양 장식을 새겼다.

167604574D152B84061CF5

 

애드윈은 당시의 형태를 파악하고자

고고학자 알폰소 모랄네스에게 유적에서 가져온 희귀한 안료 샘플의 조사를 의뢰했다.

 

"이 안료는 평범한 찰흙에 색을 보존하는 착색제를 섞은 겁니다.

노란 안료 역시 같은 색상의 찰흙으로 만든 겁니다.

찰흙을 말려서 세척한 다음 분말로 만든 거죠.

또 검은 안료는 난로에서 발생하는 그을음에서 추출한 겁니다."

- 알폰소 모랄레스, 고고학자

 

마야의 예술가들은 왕궁을 치장할 안료를 구하고자 먼길을 찾아나섰을 것이다.

그 중에서 이 강렬한 청색 안료는 목람에서 추출한 것이다.

 

"목람은 관목과 비슷한 형태죠? 그런데 잎과 열매 중에 어느 부분이죠?"

"이에요."

"그럼 잎에서 청색을 추출하는 거군요?

결국 유기체와 광물을 섞어서 안료를 만든 셈이네요."

 

이제 화려한 색상으로 치장된 궁전과 주변 건물의 복원을 통해

절정의 미적 감각을 과시했던 마야 문명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끽해보자.

 

1451C7534D14BC5419693A

 

204A76524D152EB52F4CA1

팔렝케에서 가장 화려한 장식으로 빛나는 곳은

바로 파칼 궁전의 심장에 위치한 탑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왕궁 건축의 정수가 담긴 것이 이 탑입니다.

마야 문명의 독특한 건물로 도시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는 동시에

태양을 관측하던 천문대라는 증거도 속속 밝혀지고 있죠."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마야인이 세운 가장 높은 천문대인 이 탑의 위치는 태양의 궤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매년 특정일이 되면 왕의 사제들은 탑의 기묘한 구멍을 통해 비치는 햇빛을 관찰하기 위해 모여든다.

 

파칼의 왕궁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 독특한 'T자 모양'의 구멍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67A5B584D152F230860EB

 

"여기 보이는 T자 형태의 구멍

바람, 즉 '이크'를 상징하는 상형문자 모형입니다.

 

따라서 건물 내부로 바람을 통과시키는 구멍의 역할로 볼 때 적합한 상징이라 할 수 있죠.

이와 더불어 T자 형태의 구멍은 팔랑케 왕과 왕비의 혈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람구멍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광명이 비치는 왕궁을 상징하는 것이죠."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텍사스 대학교

 

벽과 탑을 비롯해 회랑 곳곳과 알현실까지 화려한 색상으로 빛나는 파칼의 궁전은 우아한 건축 미학의 결정체다.

하지만 웅장한 궁전 밑엔 어둠과 고통으로 얼룩진 비밀 장소가 숨겨져 있다.

 

현재 고고학자들은 멕시코의 깊숙한 정글속에서

천 년 이상 버려져 있던 마야 문명의 대도시 팔렝케 유적을 조사 중이다.

 

이 연구팀은 첨단 기법을 바탕으로

팔렝케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이자 건축가였던 파칼 대왕의 왕궁을 복원했다.

 

이제 연구팀의 수장 에드윈 반하트 박사는

궁전의 어두운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하 탐험에 나서야 한다.

 

에드윈은 지하에서 신기한 방과 복도 및 아치 천장을 발견했다.

이 독특한 구조는 파칼 대왕 시대에 관한 단초를 제공한다.

 

 

12039D534D15308705A92B

 

지상 궁전의 장식과는 달리

이 지하 공간에선 왕가의 상징인 T자형 구멍이 뒤집힌 상태로 장식되었으며

이는 망자가 머무는 저승의 암흑 세계의 상징물이다.

 

"이곳은 궁전의 옥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역대 왕들이 차례로 이곳에 묻히면서 지하 세계를 상징하는 장소가 된 겁니다.

그에 관한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저 창이죠.

뒤집힌 T자 형태는 지하 세계를 비추는 수면을 뜻하므로

이곳이 상징적인 지하 세계인 셈이죠.

왕과 왕비, 고위 사제들만이 이 밑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 에드윈 반하트 박사

 

이 지하의 석회암 석실은 궁전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이 인공 동굴에선 신성한 신을 기리기 위한 피의 의식이 거행되었다.

 

마야인에게 피는 신의 선물이었지만

그 댓가로 끊임없이 신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식을 치루어야 했다.

파칼 대왕은 피의 의식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는 동시에

선조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파칼 대왕은 의식을 위해 날카로운 칼로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후 그 피를 신성한 종이에 떨구었다.

그후 왕은 그 종이를 태울 때 나는 연기를 맡으며 아른거리는 환상에 집중했다.

일단 무아지경에 이른 왕은 망자와 교감하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그들의 지혜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의 피만으론 신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했다.

이에 지상에서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왕궁에서 가장 큰 독립 공간인 야외 마당에서 소름끼치는 인신 공양 의식이 거행되었던 것이다.

 

12073F534D1531F3043E22

 

 

146A16564D15313B18DA09

 

"이곳은 팔렝케의 왕이 자신의 강력한 권력을 과시하던 장소죠.

파칼과 그 측근들은 이 계단 꼭대기에 앉아 있었고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계단 밑에서 깃털 머리 장식과 재규어 가죽으로 치장한 권력자들을 올려다봤죠.

 

서기 660년경 무렵 팔렝케가 다시 부흥을 일구어낸 덕분에

파칼은 마야의 통치자로서 권한을 마음껏 행사했고

이에 전쟁을 벌리며 포로들을 죽여 제물로 바쳤습니다."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안마당 건물은 왕이 희생양들에게 두려움을 불어넣고

그 신하들에게 피의 제전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안마당에 끌려온 희생양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갖은 고초를 겪으며 땅에 피를 뿌린 후 결국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됐을 겁니다.

이 계단 자체도 불안감을 유발해 공포를 조장하도록 설계된 겁니다.

내려갈수록 점점 가파라지는 계단을 통해 마당으로 내려온 포로들은

가장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은 반대편의 왕을 마주보면서

자기 운명의 종착역인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예감했죠."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이제 파칼 대왕 시절의 중앙 안마당을 복원해보도록 하자.

왕의 위대한 권력을 상징하는 이 웅장한 안마당은 제물로 바쳐진 포로들이 피를 뿌린 처형장이었다.

 

하지만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이 피의 의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궁전의 광장을 가로질러 가면 같은 형태의 신비로운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117966574D1533E212BFFB

 

 

1171A6514D153409185CF5

 

그 주변엔 잔디가 비탈지게 덮혀 있었다.

초기의 탐험가들은 이곳의 용도를 몰랐다.

 

"이젠 이 구조를 통해 용도를 밝혀냈죠.

보시다시피 양쪽으로 경사진 벽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중앙은 대문자 I자 형태를 띠며 양끝엔 결승점이 배치되어 있죠.

이곳은 바로 이 지역 사람들이 공놀이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공놀이만 했던 곳이 아니라

지하 세계 관문 형태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이 경기는 죽음을 딛고 생명을 재창조하는 게임이었다.

1470E0584D1533AC1E12A0

 

쌍둥이 영웅으로 알려진 신이

저승의 군주를 패배시키는 이 경기에선

사람의 머리를 공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기장의 비탈진 사면은 대지의 틈을 상징하므로

관중들은 하계로 내려온 쌍둥이 영웅이

저승의 군주와 맞서는 광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왕이 최고의 선수로 자처하며 참여했기 때문에

테라스에서 지켜보는 수천 명의 관중은 월드시리즈가 아닌 대극장의 공연을 보는 듯 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경기는 통치자들이 주인공인 공연의 일종으로

저승의 군주와 격투를 재연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포로들이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포로팀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고

결국 경기 마무리엔 제물로 바쳐지기 일수였죠.

다들 참수되거나 사지가 절단됐으니까요.

마야의 통치자들이 정치 선전의 일환으로 경기를 이용한 셈이죠."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역사를 돌이켜 보면

파칼 대왕 당시 피로 얼룩진 경기장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팔렝케 왕은 깊숙한 지하의 웅장한 건물을 통해 신성한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이곳엔 지금은 잊혀져 버린 마야 건축 공법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

 

 

2. 마야 고대 도시 팔렝케의 뛰어난 건축물들!~

도시 아래로 흐르는 수로 건설.

파종기, 추수기를 알려주는 태양의 신전.

비문 신전의 파칼 대왕 고분과 백성들의 석재 가옥.

그리고 마야인의 건축술의 정수, 자연을 모방한 신성기하학!~

 

멕시코의 우림 지대 한복판에서는 과학자와 공학자, 고고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사라진 도시 팔렝케를 복원 중이다.

천 년 동안 버려졌던 이 도시가 마침내 1,200년 동안의 베일을 벗고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앞서 우리는 팔렝케의 가장 웅장한 건축물인 궁전을 복원했으며

뛰어난 기술자이자 건축가인 마야인들의 피로 얼룩진 역사도 밝혀냈다.

 

하지만 팔렝케의 주민들에겐 신을 위한 피의 제전외에도

독창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절박한 근심거리가 존재했다.

그것은 홍수였다.

 

기술자 커크 프렌치는 도시 지하에서 팔렝케가 번영을 구가한 비밀을 찾아냈다.

바로 수로다.

 

203F4B364D15397F134F27

 

"바로 여기가 팔렝케의 수로입니다.

아직도 수로의 출구는 보존 상태가 훌륭하죠.

석재의 크기도 한 마디로 엄청납니다.

1,200년간 우기를 견뎌낸 곳이죠.

 

사실 팔렝케의 수로는 원래 명칭이 뜻하는 바와는 사뭇 다릅니다.

 

원조 격인 로마인이 건설한 수로의 경우

수원에서 물을 끌어들여 도시의 필요한 곳에 공급하지만

팔렝케의 수도에는 그런 기능이 없죠.

팔렝케의 수원은 도시 내부에 존재하므로

수로는 그 물을 적절히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

- 커크 프렌치, 신시내티 대학교

 

연간 강우량이 2,160미리나 되기 때문에

파칼의 기술자들에겐 우기만 되면 도시를 침수시킬만큼 범람하는 강과 시내가 큰 골치거리였다.

 

"저 좁은 구역에는 이 급경사면으로 통하는 수로가 9개나 존재하죠.

침식된 각 수로는 최대 약 7미터 넓이의 물길을 형성합니다."

- 커크 프렌치, 신시내티 대학교

 

13404C3B4D15394811B57D

 

기술자들은 독창적인 해결책을 고안했다.

 

"기술자들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시내를 파서

주변에 벽을 세우고 코벨 아치를 건축했습니다.

시내 자체가 없는 것처럼 꾸며놓았죠."

 

주민들은 이 훌륭한 수로 덕분에 도시의 심장부에 광활하고 비옥한 옥토를 개간할 수 있었다.

마야인들은 로마의 아치 공법 대신 수력학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시켰다.

1114063C4D15381E065AB4

이 방대한 수로는 121미터의 길이에, 높이는 3.6미터, 폭은 4.5미터에 달한다.

이 고대의 코벨 아치는 오늘날까지 엄청난 무게의 석재 광장을 떠받치고 있다.

 

커크는 여기서 마야 건축 공법의 변천사를 밝혀냈다.

 

"이곳은 주 광장 바로 밑의 지하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시는 수로는 여러 단계를 거쳐 건축된 거죠.

시기상으로는 파칼 대왕 시대일 겁니다.

여길 보면 변화의 추이가 그대로 잘 드러납니다.

 

원래 이곳은 과거 수로의 입구였습니다.

구조와 회반죽을 비롯해 벽 뒤의 치장 벽토를 보면 알 수 있죠.

그 후에 다시 새로 작업을 시작해 증축 공사를 함으로써 수로가 더 길어지게 됐죠."

 

마야의 기술자들은 이 수로를 통해

소중한 옥토를 개간하고 범람을 방지하며

도시의 모든 가옥에 신선한 식수를 공급했다.

 

또한 마야인들은 좁은 수로로 급류를 흘러보냄으로써

물을 위쪽으로 끌어올리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했다.

 

"팔렝케에선 수압을 이용한 공법을 통해

이 지하수로의 물길을 손쉽게 전환시켜 지상의 왕궁으로 끌어올렸죠."

 

당시 파칼에겐 전용 수세식 화장실까지 있었다.

 

파칼의 기술자들은 금속 도구없이 48킬로미터 길이의 강과 시내를 터서

매일 370만 리터의 식수를 공급했다.

 

파칼 대왕은 팔렝케의 땅 밑을 통과하는 수로외에도

지상에 마야인들의 독특한 자연관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웅장한 규모의 건축물들을 세웠다.

 

이 건물은 마야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알려준다.

바로 추수기다.

 

연구팀은 현재 그 위치를 파악 중이다.

이 건물은 도시 중앙의 신전 중 하나로써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신탁을 받는 장소였다.

 

1559ED334D14318E03DCBC

 

"이 건물은 태양의 신전인데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군과 일정 방위로 연결되어

햇빛이 통과하는 특별한 관문 구실을 합니다."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텍사스 대학교

 

마야 문명은 전적으로 농업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수확이 저조하면 모두 굶어야 했다.

따라서 파종과 수확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생존의 필수 요건이었다.

이를 위해 파칼의 기술자들은 하늘을 보며 해결책을 찾았다.

 

연구팀은 마야인들이 이 신전을 정교한 해시계로 활용했다고 믿고 있지만 아직 증명된 바는 없다.

따라서 현재 연구팀은 그 이론을 입증하고자 실험에 착수했다.

 

연구팀의 이론이 맞다면

태양의 핵심 열기에 햇빛이 신전의 특정 장소를 비춰야만 한다.

연구팀은 태양의 열기가 절정에 달하는 오늘을 위해 수개월을 기다렸다.

1553E7344D153BBB15D1E4

 

 

173137394D153B0B1F3077

 

"태양은 매년 두 차례씩 정오에 머리 위로 일직선을 그리는데

이때가 고지대인 팔렝케에서 곡식을 파종하는 시기입니다."

-크리스토퍼 파월

 

연구팀의 이론대로라면

햇빛이 바늘궤와 같은 구멍을 통해 레이저처럼 태양의 신전을 관통해야 한다.

 

"첫 번째 햇빛은 이 모서리를 비춰야 합니다.

일출과 더불어 바로 이곳을 밝히는 것이죠."

 

몇 초에 불과한 이때가 바로 운명의 순간이다.

연구팀의 기대대로 햇빛은 이 석실의 모서리를 정확히 비췄다.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 정확한 현상이다.

 

현재 연구팀은 신전의 다른 구역을 돌며 마야의 핵심 절기와 일치하는지 조사 중이다.

183FD3434D143695200811

 

"분점 때는 햇빛이 저쪽의 들보를 통과한 후

이 양쪽의 들보를 거쳐 뒤쪽의 모서리를 비춰야 합니다.

하지 때는 태양이 왼쪽으로 치우치므로

햇빛이 이 앞쪽과 뒤에 있는 들보를 비춘 후

아주 가는 광선을 형성하며 뒤쪽의 모서리를 비춰야 합니다.

이 모든 현상은 일출의 첫 햇살이 비출 때만 나타납니다."

-크리스토퍼 파월

 

세 번의 측정 결과

신전의 놀라운 정밀함이 밝혀졌다.

 

마야의 건축가들은 이 신전을 어떻게 건축했을까?

 

11439A354D153D8622D1D5

 

"일단 건물을 짓기 전에

곧은 막대기를 땅에 박습니다.

막대기가 곧은 지 확인한 후 바닥에 고정시키고

하지의 태양이 떠오르길 기다리는 거죠.

천정과 분점의 일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침내 태양이 건물 바닥을 비추고

침막대기 뒤로 그림자가 나타날 때 그 선들을 바닥에 그립니다.

그 후 그림자 각도 주변에 건물을 설계하면

햇빛이 건물에 들어오는 지점을 알고 건축할 수 있죠.

그리고 벽과 입구 등을 적절히 배치하면

햇빛과 그림자로 그 시기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파월

 

이 놀라운 신전은 주민들의 삶을 관장했다.

 

1662E6424D144D651EF3A3

하지만 망자를 위한 건축물도 존재했다.

 

파칼 대왕은 팔렝케의 중심부에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했는데

30미터 높이로 솟아있는 이 웅장한 건축물은 '비문 신전'이라고 불린다.

 

현재 멕시코의 우림 지대에서는 연구팀이 마야 문명 사상 최대 도시로 손꼽히는 팔렝케 신비를 파헤치고 있다.

이제 연구팀은 팔렝케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의 조사에 착수했다.

 

3,250 평방미터의 대지위에 세워진 높이 30미터의 이 신전은 팔렝케의 영적인 심장부다.

석회암을 골자로 지어진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이곳은 비문 신전의 내부 석실에 있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인데

그 명칭은 마야 상형문자가 조각된 이 멋진 벽판에서 유래한 겁니다.

이 벽판에는 팔렝케 왕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죠."

- 데이비드 드루, 고고학자

 

116E51554D15493F0119F2

이 복잡한 조각 작품은 절정에 이른 고대 조각 작품의 정수가 담긴 것으로

오늘날의 수준을 넘어선 경지다.

당시는 금속 도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고대 마야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칼을 제작했다.

이 칼날의 재료는 유리질의 화산암인 흑요석이었다.

 

"칼날 제조의 명인이었던 마야인들은

현대 수준을 능가하는 경지를 선보였습니다.

이 흑요석 칼날은 섬세한 조각품을 마무리할 때 썼죠.

이는 석기 시대 기술로는 최고에 이른 수준이며

깔끔하고 정교한 석공술로 걸작을 완성시켰습니다."

- 크리스토퍼 파월, 고고학자

 

이제 크리스토퍼에게 마야인의 흑요석 칼 제작 과정을 들어보자.

192C42544D15499D02F243

 

"우선은 흑요석을 잘게 쪼개야 합니다.

뒷면의 박편을 벗겨내는 거죠.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은 작은 박편은 날카롭기 그지없습니다.

이처럼 흑요석을 쪼갤 때 나오는 박편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예리한 물질이죠.

실제로 안과에서 수술용으로도 쓰입니다."

이처럼 흑요석으로 조각한 마야인들의 정교한 비문은

초기 탐험가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곧 마야 고고학계를 진동시킬 만큼 놀라운 수준의 걸작품이

수세기만에 지하에서 베일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201CC3514D154D0B1DCD49

 

"1949년 멕시코의 고고학자 알베르토 루즈

이곳에서 신전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다가

바닥의 거대한 석회암 석판 위에 뚫린 기묘한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루즈가 곧 이 석판을 들어내자

그 밑으로 지하로 연결된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죠."

- 크리스토퍼 파월, 고고학자

 

루즈는 마야의 피라미드에서 최초로 층계를 발견한 주인공이었다.

당시 고고학자들은 놀라움에 휩싸였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126D05A4D154A860ACCB9

 

"1952년 후반 거의4년 가까이 계단의 파편을 들어낸 발굴팀은

계단이 끊어지면서 작업을 중단해야 했죠.

당시 주변을 살펴보던 학자들은 이 석실의 벽면에서

회반죽이 칠해진 삼각형 석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제 뒤로 보이는 게 그 석판이죠.

곧 회반죽을 벗기고 그 문을 천천히 비집어서 연 발굴팀은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세기의 발굴에 성공했습니다.

그 내부에서 거대한 석실을 발견한 거죠."

- 크리스토퍼 파월, 고고학자

이 석실은 마야의 피라미드에서 발견한 최초의 왕릉이었다.

141D3B594D154B1916EEA4

132015564D154B541346A2

 

"그 석판에는 마야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작품의 주제는 세계수에서 뛰어내린 파칼 대왕이

저승의 군주와 맞서기 위해 지하세계로 떨어지는 내용이었죠."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텍사스 대학교

 

결국 파칼 대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자신의 백성들과는 달리

지하 무덤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191EB3574D154C3919B9A1

191D3D594D154BED18F3A3

 

"고분 내부에는 파칼 대왕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시신이 누워있는 구멍은 신체의 형상과 같은 유선형이라 발을 안치할 곳도 있었죠.

또한 시신에 뿌려진 붉은 진사는 피를 상징하는 신성한 물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사를 태우면 거울의 재료인 수은이 발생하는데

이 또한 초자연적인 세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시신은 비취로 된 가면을 쓰고 있었죠."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텍사스 대학교

 

이 위대한 건축가의 고분엔 또 다른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다.

"고분 덮개의 무게만 5톤이며

석관의 무게도무려 15톤에 달합니다.

또한 지하 고분으로 연결된 층계의 경우

이곳의 거대한 돌 하나보다도 폭이 좁습니다.

건축가들이 조사한 결과

피라미드를 허물고

고분을 안으로 옮긴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죠."

 

그럼 어떻게 피라미드 내부로 고분을 옮긴 것일까?

그 비밀은 전체 건축 공법을 푸는 열쇠다.

181B52574D154D501EBADB

 

1322A5564D154D98153739

 

 

176A2B554D154F001B4609

 

"우선은 산허리를 파서 그 밑으로 부지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산허리를 깎아 평평하게 터를 닦죠.

다음으로 석관과 덮개를 현장으로 옮긴 다음

그 주위에 석실을 세웁니다.

그 후부터 신전 건축에 착수하는데

다른 마야 건축물과는 달리 공사 내내 층계를 세워야 했으므로

단계별로 차근차근 공사를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중간쯤에 계단의 층계참을 세운 후엔 주변 공사를 계속했고

꼭대기에 지붕을 덮으며 신전을 완공하면 고분을 감싸 안게 되죠."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텍사스 대학교

 

파칼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분을 피라미드의 심장부에 건축했다.

 

하지만 파칼의 고분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사이엔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더 존재한다.

 

"터널의 석함과 같은 이 거대한 층계는 고분에서 신전의 꼭대기까지 쭉 이어지는데

이는 죽은 왕이 선조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 같습니다.

당시 마야인들은 파칼의 영혼이 이승에 내려와

이 계단을 통해 신전에 나타나리라 믿었으니까요."

- 크리스토퍼 파월, 고고학자

 

놀라운 기술력의 결정체인 신전의 고분은 대중의 눈을 피해 존재했다.

당시 최고위급 사제와 관료 및 왕가의 혈육들만이 과거로 통하는 이 관문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제 7세기 팔렝케 백성들에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 비문 신전의 본 모습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1568504D4D14708E266F42

 

하지만 마지막 수수께끼가 남았다.

 

고분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파칼의 유해는

비취로 만든 구와 정육면체로 만든 장신구를 양손에 나눠 쥐고 있었다.

이 상징물은 오늘날까지 고고학계의 미스테리를 푸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연구팀은 마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였던 파칼 대왕이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고대 도시를 건축한 비밀을 밝혀왔다.

 

팔렝케에는

웅장한 왕궁과

지하 수로를 비롯해,

추수기를 예측하는 거대한 신전과

거대한 피라미드에 숨겨진 왕의 비밀 고분이 그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번 과제는 오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작업이다.

 

파칼 대왕의 원대한 건축 계획은 팔렝케를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마야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파칼의 대역사는 곧 도시 외곽으로 확장되었다.

 

팔렝케를 둘러싼 교외 곳곳엔 700채가 넘는 가옥과 농장이 존재한다.

이제 연구팀은 최초로 이 대도시가 자랑하는 엄청난 위용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불규칙하게 뻗어있는 이 교외 거주 지역에서 연구팀 수장인 에드윈 반하트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141A92564D154F912A1D0C

 

2025A3524D154F5F13C559

 

"저희가 거주 지역을 조사하면서 예상한 가옥 형태는 주로 초가집이었지만

실제로 와보니 이 집처럼 대부분 석재로 지은 건물이더군요.

이 가옥은 벽은 물론 지붕까지 돌로 건축했죠.

결국 여러 세대가 이 집에 거주한 사실이 확인된 셈입니다."

- 에드윈 반하트 박사

 

이 세련된 가옥 시설엔 오늘날처럼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과 수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점점 식구가 늘어나면서 이처럼 등걸로 벽을 세워 집을 여러 구역으로 나눈 후

새로운 식구들에게 독자적인 생활공간을 마련했죠.

나중엔 추가로 돌 지붕을 갖춘 이층을 건축하기도 했습니다.

또 현대식 콘도처럼 지붕으로 연결되는 층계도 세웠죠."

 

연구팀은 이 가옥에서 팔렝케의 모든 건축물마다 나타나는 공통된 공법을 밝혀냈다.

 

"학자들은 100년 이상 마야인의 측정 단위를 밝히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죠.

마야의 도시에선 특정한 측정 단위가 없었습니다."

 

연구팀이 팔렝케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도시 전체가

미터나 리터, 인치와 같은 특별한 건축 단위와 전혀 무관하게 건축한 사실이 확인됐다.

181813564D1550AE2DF3FA

 

"건축 공법상의 기준 단위는 없었습니다.

대신 비율을 활용한 측정법을 고안했죠."

 

현재 연구팀은

파칼의 기술자들이 측량줄을 이용해 네 개의 교차된 원을 그렸다고 추측한다.

이로써 정사각형의 테두리를 만든 것이다.

 

1229525A4D1551081B546C

 

또한 사선을 그리거나 호를 그리는 데도 측량줄을 사용했다.

 

파칼의 건축가들은

이 단순한 측량만으로

마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설계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특별한 측정법에 숨겨진 실제적인 요인을 밝혀냈다.

 

"저희가 발견한 것은 일련의 기하학적 측정법으로

자연의 형태에 바탕을 둔 신성기하학입니다.

마야인들은 이 측정법을 이용해 건축물과 도시를 설계했죠."

 

단순한 정사각형을 비롯한 마야인들의 모든 설계는

꽃 모양 패턴과 자연의 형상에서 파생된 것이다.

201F34554D14BCC2042C55

 

175C21584D14BD1C014BA0

 

 

197113414D14BDE00582F8

 

"마야인은 자연을 모방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비율을 활용하려 애썼죠.

제가 만난 무속인은 집의 더러운 바닥에 앉아

측량줄과 비율의 체계를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옥마다 꽃 모양의 형태가 존재하더군요."

- 크리스토퍼 파월

 

연구팀은 파칼이 이 측정법을 통해 대도시를 건설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높은 피라미드에서 가장 작은 가옥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각형과 원 모양만으로 설계했다.

 

나중에 도시는 주민들에게서 버려졌지만

파칼 대왕은 팔렝케의 특별한 도시 설계의 비법을 보존하고자 노력했다.

파칼은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그 신성한 상징을 자신과 함께 묻어버렸다.

1458D8534D14BA2505EF9F

 

 

1144F8594D14B9F91F00EB

 

"파칼은 비취로 만든 구와 정사각형 장신구를 양손에 나누어 쥐었죠.

팔렝케를 건축한 기하학의 상징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묻어버린 거죠."

- 에드윈 반하트 박사

 

파칼 대왕은 사후에도

고대 최고 도시를 건설한 밑바탕이었던

기하학적 상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제 연구팀의 조사는 막을 내렸다.

마침내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던 고대 마야의 대도시 팔렝케의 진정한 본 모습을 오늘날에 되살려낸 것이다.

 

도시 전체가 화려한 붉은색으로 치장된 팔렝케는

멀리까지 그 눈부신 자태를 뽐내며 경외심과 그 신비로움을 자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신비는 그 내부에 존재했다.

 

파칼 대왕의 건축가들은 수력학을 발전시켜

물을 위로 끌어올려 풍부한 식수를 공급했다.

 

또한 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을 위해 수백 채의 2층 가옥도 건설했다.

 

팔렝케 주민들의 집과 일터 및 신전

신성기하학 이론에 바탕을 둔 측정법을 이용해 설계한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화려함을 자랑했던 태양의 신전

파종기 및 추수기를 알려주며 팔렝케 주민들에게 삶의 양식을 제시했다.

 

마야인의 독창성엔 한계가 없었다.

 

산 중턱까지 깍아 파칼의 고분까지 건축한 것이다.

 

로마의 황제와 같은 영화를 누린 파칼은

백성과 신을 위해 피로 얼룩진 경기에 참여했다.

 

파칼의 건축가들이 만든 지하 동굴의 두꺼운 석회암 벽 속에서는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관문인 피의 제전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팔렝케에는 하늘로 치솟은 무려 7층 높이의 천문대도 존재했다.

 

독창적인 문화를 꽃 피웠던 마야인들은

모든 기술상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팔렝케라는 대도시를 창조했다.

파칼의 원대한 계획하에 건설된 이 놀라운 건축물들은

오늘날까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팔렝케는 사라진 마야 문명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 사라진 문명, 신비의 마야 도시 팔렝케를 보고...

(늘 좋은 날 되세요!~~)

 

 

 

 

 

 

 

 

 

 

 

 

출처 : 권민서의 역사앞에서 | 글쓴이 : 민서 | 원글보기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로그인

최신 댓글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139
어제
707
최대
4,666
전체
1,072,347


Copyright © 한퓨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