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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 우리 신화의 비밀 - 조현설

송화강 2019-05-12 (일) 21:56 6년전 12478  

우리 신화의 비밀



-뱀과 결혼하고, 또 뱀을 낳고-


똬리 튼 뱀, 모실 것인가 내칠 것인가 ?

                            뱀의 청혼을 받아들인 여성
                            허물벗고 선비로 변한 뱀
            -민담 ‘구렁덩덩신선비’ 는 재생의 힘이 세속화 된 모습-

 


뱀 하면 당신은 무슨 느낌이 드시는가? ‘징그럽고 끔찍하다’, ‘두렵지만 모셔야 한다’, 어느 쪽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틀림없이 전자에 손을 들리라.

어린 시절 뱀을 보면 한사코 잡으려고 달려들거나 아니면 뺑소니를 쳤던 경험도 전자의 느낌이 촉발시킨 원초적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한쪽에는 후자의 반응도 없지 않다.

민속 관념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업구렁이에 대한 민간의 태도를 생각해 보라.

뱀에 대한 이런 두 갈래의 반응은 자연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두 가지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물리칠 것인가, 모실 것인가? 물론 신화는 후자의 산물이다.

 

동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뱀 신랑 이야기에도 뱀에 대한 두 반응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는 민담학자들이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 민담으로 주목하고 있는데 <구렁덩덩신선비>는 이 유형의 한국판이다.


어떤 할머니가 자식을 소원하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큰 뱀을 낳았는데 이웃 부잣집의 세 딸이 구경을 온다.

첫째와 둘째는 기겁을 하고 물러나지만 셋째 딸은 호감을 보이면서 칭찬을 한다.

뱀에 대한 전형적인 두 갈래의 반응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언니들의 반응이 자연스럽다면 막내의 태도는 뭔가 수상하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막내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후에 구렁덩덩신선비의 청혼을 받은 두 언니는 첫 반응대로 거절하지만 막내딸은 선뜻 받아들인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운명의 역전이 일어난다.

뱀 신랑은 허물을 벗고 멋진 선비로 변신한다. 그리고 허물을 잘 간수하라면서 ‘허물이 없어지면’이라는 금기도 준다.

이제 나서야 할 인물이 두 언니. 멋진 선비를 보게 되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언니들은 선비가 과거보러 간 사이 동생 몰래

허물을 태워버린다.

돌아오는 길에 허물 타는 냄새를 맡은 구렁덩덩신선비는 사라져 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허물-옷’을 지키지 못한 신부의 신랑 탐색담이다.

물론 민담의 문법대로 셋째 딸은 신랑을 되찾아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구렁덩덩신선비> 이야기는 마치 남자를 뱀처럼 징그럽지만 끌리는 존재로 느끼는 소녀가 일련의 시련을 거처 남자를

맞이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소녀들의 성인식 말이다.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이나 <미녀와 야수> 유형의 이야기들에 보이는 소녀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뱀 신랑 이야기는, 민담에서 인간심리의 원형을 찾으려는 분석심리학자들에 의해 여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아니무스(여성의 마음 속에 있는 남성)가 시련의 과정을 통해 순화됨으로써 여성이 자아를 획득해가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구렁덩덩신선비를 여성의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남성상, 곧 아니무스를 상징한다고 보는 해석이 그런 것이다. 

 

불을 창조한 뱀 신랑과
생명을 낳는 여성의 결합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대지의 창조적 리듬 꿈틀

 

그러나 그렇게만 해석하고 말면 속옷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처럼 뭔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든다.

뱀(동물)과의 결혼, 허물을 입고 벗거나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뱀의 형상 등은 우리에게 이 민담의 신화적 근원을 되짚어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화 유형은 초문화적 보편성을 갖는다기보다는 특정한 문화의 산물이다.

뱀 신랑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이 이야기는 신석기 초기의 원시농경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뱀 신랑이라는 소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를 거쳐 멜라네시아에 이르는 원시농경

지역에서 두루 발견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20세기 초에 독일 인류학자 J.마이어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뱀 신랑 신화는 이렇다.

한 여자가 숲에 들어갔다가 뱀의 청혼을 받는데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받아들인다.

<구렁덩덩신선비>의 뱀 신랑에 대한 이웃 딸들의 엇갈린 반응과 다르지 않다.

여자가 아들과 딸을 낳자 뱀은 여자를 돌려보내고 스스로 키운다. 뱀 신랑 이야기와 달라지는 부분이다.

신화와 민담의 갈림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뱀은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아 날 것으로 먹는 것을 보고는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르겠다면서 사내아이에게 자기 뱃속으로 들어와 불을 꺼내 누이에게 주라고 말한다.

소년이 불을 꺼내오자 소녀가 물고기를 요리했고 둘은 익힌 음식의 맛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익힌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뉴기니 북부 애드머럴티 제도의 뱀 신랑 신화는 일종의 창조신화라고 할 수 있다.

불이나 익힌 음식 등 문화의 기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화에서 뱀 신랑은 그저 뱀의 허물을 쓴 선비(유럽의 경우 왕자)가 아니라 창조신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뱀이 창조신으로 등장하는 신화는 그리 드물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가운데 쟈우앙족의 창조신화는 에잉가나라는 뱀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새끼줄에 진흙을 묻혀 인간을 만든 중국 신화의 여와도 그런 존재다.

한나라 시대 화상석(畵像石)에 새겨진 여와의 하반신이 바로 뱀이 아니던가.

 

창조신화에 뱀이 등장하는 것은 뱀이 가진 재생 이미지와 관계가 깊다. 창조의 본질은 재창조이고, 재창조를 통해 세계는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허물을 벗는 뱀처럼. 그런데 달거리와 출산을 통해 재생 이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또한 여성이다.

불을 창조한 뱀 신랑과 처녀의 결합은 재생 이미지의 중매에 의한 것이다.

또 이런 신화가 신석기 초기의 원시농경문화를 공유한 지역에 퍼져 있었던 것도 농경 양식이 지닌 죽음과 재생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재생 이미지를 고리로 삼아 ‘뱀-여성-농경문화’가 보물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진 셈이다.

<구렁덩덩신선비> 이야기는 이런 뱀 신랑 신화가 오랜 전승과정에서 세속화된 모습으로 바뀐 형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신화에는 아직 세속화되지 않은 뱀도 남아 있다.

제주도의 뱀 신들이 그렇다.

한반도의 <칠성본풀이>와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다른 본풀이가 대표적인 제주 뱀 신들의 이야기다.

 

옛날 장설룡 송설룡 부부가 뒤늦게 딸아이를 낳았는데 이 딸이 부모의 부재중에 실종된다.

다시 나타난 딸은 중과 관계를 맺었는지 배가 불룩하다.

부모는 딸은 무쇠함에 담아 바다에 버린다.

한반도의 <제석본풀이>나 <석탈해> 신화 등과 유사한 부분이다.

석탈해가 처음에 바다를 건너 가락국으로 들어왔다가 김수로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쫓겨나듯이 딸아기씨를 태운 무쇠함도 제주도로 흘러와 산지포·화북·가물개·조천 등 들어가려는 곳곳에서 쫓겨난다.

마을마다 이미 신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마지막으로 닿은 곳이 함덕 신흥이었다.

 

한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쇠함을 발견한 일곱 해녀와 송첨지 영감이 함을 열자 그 속에서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던 것.

쫓겨난 딸은 신이한 중과 관계를 맺고 함속에 갇힌 채 뱀 딸을 일곱이나 낳았던 것이다.

새끼 뱀을 낳은 아기씨도 기실 뱀이었다.

<칠성본풀이>의 서두에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부모가 천지공사를 살러 떠났을 때 하녀가 가둬놓고 구멍으로 밥을 주었

다거나 중이 아기씨를 노둣돌 아래 파묻어 놓고 장설룡을 만나는 장면이 이미 아기씨의 정체를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느닷없는 사태에 대한 일곱 해녀와 송첨지의 반응이 흥미롭다.

처음에 이들은 “더럽고 재수없다”며 달려들어 해코지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즉시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가슴에 트림이 일어나고 안질이 생겨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심방의 점괘에 나온 것은 ‘남의 나라에서 온 신을 소홀히 대접한 죄목’이다.

 

이를 보면 칠성신은 분명 외래신이다.

어쨌든 이들은 심방의 말대로 칠성새남굿을 한 후에야 병이 낫고 천하 거부가 된다.

소문을 듣고 함께 모신 함덕 마을도 부촌이 된다.

같은 사태는 반복된다. 딸아기가 일곱 딸을 데리고 도성 안 송대장 집으로 들어갔는데 잘 모신 송대장 부인 덕에 송대장은 천하거부가 되고 “더럽고 추잡하다”고 침을 뱉은 관원은 입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 굿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물리칠 것인가, 모실 것인가? 신화는 모셔야 새로운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여덟 뱀 여신은 마침내 신직을 맡아 좌정하는데 모두 가옥신(家屋神)이 된다.

그런데 판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옥지기나 사령방 등 관청의 한 공간을 차지하는 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방의

곡식을 지켜주는 안칠성신, 집 뒤 귤나무를 지키는 부군칠성신, 과수원을 지키는 과원할망, 광청못을 지키는 광청할망,

추수못을 지키는 추수할망 등 농경과 관련된 신직을 차지한다.

제주도 신화에서도 ‘뱀-여성-농경문화’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뱀 신랑의 창조신화든, 뱀 신의 기원신화든, 아니면 뱀 신랑 민담이든 뱀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결국 두 가지다.

하지만 뱀을 받아들이고 모신다는 것은 단지 잡신 하나를 섬기는 어리석은 행위만은 아니다.

그것은 뱀과 여성으로 상징되는 낳고 낳는,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창조의 능력을, 다시 말하면 대지가 지닌 재생의 리듬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무속의 모심에는 물론 천하거부가 되려는 세속적 욕구가 스며 있지만 그 너머에는 대지의 창조적 리듬을 노래하려는 또

다른 힘이 뱀처럼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해태상



광화문 앞 해태상 세워 화마 쫓고 정의 지키게

 

                    

 

 

강원도에서 일어난 산불 때문에 양양의 낙산사와 그 안에 있던 조선 전기 동종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불타 버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근래 커다란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전에도 종종 낙산사와 같은 절 외에도 많은 문화유적들이 불에 타서 사라지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모든 건물이 나무였던 시기, 불은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무서운 재해였다. 국가에서는 화재를 막기 위해 힘썼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반 건물뿐 아니라 궁궐도 자주 화재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이를 말해준다.

 

 

정궁인 경복궁만 하더라도 중종 때인 1543년 큰 불이 났으며, 불과 10년 뒤인 1553년 명종 때 다시 화재로 많은 건물들이

불에 타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는 국왕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몰래 서울을 빠져나간 것에 분노한 사람들이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이후 경복궁은 조선 말기 고종 때 대원군이 다시 지을 때까지 복구되지 못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경복궁과 함께 창덕궁, 창경궁 등도 불탔다.

창덕궁은 광해군 때 복구되어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인조반정 때 광해군을 찾으려던 반정군들이 실수로 불을 냈다.

이후 다시 복구되었으나, 19세기 순조 때와 일제의 식민지였던 1917년에도 화재로 많은 건물들이 사라졌다.

창경궁도 인조반정과 연이어 일어난 이괄의 난 등으로 일부 건물이 불탔다.

 

 

불과 관련하여 사람들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물 중 하나는 불을 막아 준다는 해태이다.

서울 광화문 앞에는 한 쌍의 해태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은 풍수지리설에 비추어 볼 때 도읍으로 더없이 적당한 곳이기는 하지만, 불에 약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조산(朝山)인 관악산이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산인데, 주산(主山)인 경복궁 뒤의 북악산이 관악산보다 낮아서

그 기운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을 막기 위해 해태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태의 원래 이름은 ‘해치’로, 중국 순 임금 때 나타났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머리에 뿔이 한 개 나 있고,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고,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을 가지고 있다. 해치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과 좋은 일을 가져다 준다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사람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신기한 재주가 있으며 성격이 강직해서, 사람들이 싸울 때면 옳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서 뿔로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관리를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를 지켜주는 상징으로, 사헌부의 우두머리인 대사헌이 입는

관복의 가슴과 등에는 해태를 새겼다. 오늘날에도 국회의사당이나 대검찰청에 해태상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경계해야 하며, 정의의 편에 서서 법을 올바로 집행하고 어떤 일이든지 공평하게 처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김한종의 우리문화 우리역사 - 한국교원대 교수]




使者床



사자상의 내력을 보면

 

              -4만년을 산 사만이는 행복했을까 -
 

지난 겨울 다세대주택에 들어가다가 입구에 놓인 밥그릇을 본 적이 있다. 밤이라 처음에는 누가 쓰레기를 버린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사자상(使者床)이었다.

저승사자를 위해 마련하는 밥 세 그릇, 동전 세 닢, 짚신 세 켤레. 동전이나 짚신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자상이 분명했다.

아니 대도시에도 아직 이런 습속이 남아 있다니!

도시의 사자상은 낯설었지만 사자상의 유래를 담은 신화를 다시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됐다.

 

제주도에 가면 <사만이본풀이>라는 무속신화가 있다. 주인공은 주년국의 소사만이.

그는 조실부모하고 거지로 살다가 조 승상의 딸을 만나 결혼한다.

부인이 머리카락을 잘라 쌀을 사오라고 하지만 엉뚱하게도 총을 사 사냥을 간다.

그러나 짐승을 못 잡다가 우연히 만난 백년해골을 모신 뒤 짐승도 잘 잡히고 농사도 잘 되는 등 재수가 좋아진다.

 

어느 날 해골은 소사만이에게 저승차사가 잡으러 올 테니 온갖 음식을 차리고 옷과 돈을 준비해 대접하라고 한다.

그야말로 천기누설이다.

음식을 받아먹은 저승차사들은 이웃의 오사만이를 대신 잡아간다.

저승 열시왕(염라대왕)이 세 차사를 처벌하려고 하자 차사들은 잘못을 감추려고 저승 장부를 몰래 고쳐 소사만이와 오사만이의 수명을 바꿔버린다.

그 덕에 오사만이는 삼십삼년, 소사만이는 사만오천육백년을 산다.

 

가장 이야기가 풍부한 창본(남제주군 남원면 위미리 심방 한태주 구연)도 이렇듯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러나 함축된 신화적 의미는 간단치 않다.

 

거지 사냥꾼 소사만이
백년해골 모신 덕에
자신 잡으러온 저승사자 대접
죽을 운명 뒤바꾸는데…

 

우선 의문스러운 것이 소사만이와 아랫녘 조 정승 딸의 만남이다.

조실부모한 거지가 어떻게 승상의 딸과 결혼을 한단 말인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서 어떤 판본(변신생 창본)에서는 여자도 보모 잃은 동냥아치로 이야기되는 듯하다.

그러나 부인의 출신성분이 달라져도 <사만이본풀이>에는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부인이 머리카락을 팔아 쌀을 사오라고 하자 소사만이가 쌀 대신 총을 산다는 화소(話素)다.

 

제주도 신화를 조금이라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총을 사는 소사만이의 행위가 그저 사내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쌀을 사오라는 부인의 청도 마찬가지다.

<송당본풀이>의 소천국과 백주또, <삼성신화>의 세 을나와 세 공주(18회 참조), 부부는 아니지만 <세경본풀이>의 정수남과 자청비의 관계(19회 참조)를 살펴보라.

이들 신화에서 남성들은 주로 사냥과 연결돼 있고 여성들은 농경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부부가 되어 갈등을 일으킨다.

요컨대 남신은 수렵문화를, 여신은 농경문화를 각각 표상하는 존재이고, 이들의 결연과 갈등은 두 문화의 만남과 충돌을

상징한다. <사만이본풀이>의 소사만이와 부인의 갈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만이본풀이>는 백년해골이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총을 사 사냥꾼이 됐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소사만이는 백년해골을 만난다.

판본에 따라 해골은 총에 맞아 죽은 서울 백 정승의 아들이기도 하고, 발에 우연히 차인 정체불명의 해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의 해골을 집에 모신 뒤 발복(發福)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남의 해골 모시기와 재수(財數) 혹은 연명(延命), 양자는 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사만이본풀이>의 또 다른 의문이다.

 

이 난감한 수수께끼를 풀려면 원시적 사회의 두개골 모시기 습속을 되돌아봐야 한다.

중국 윈난에서 미얀마 산악 지역에 걸쳐 거주하는 와족은 다른 종족의 머리를 베어오는 풍습(head-hunting)으로 꽤나

유명했다.

와족은 자신들의 목 자르는 풍습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원신화를 덧붙여 놓았다.

와족의 원조(元祖) 부부는 처음에는 올챙이였다가 개구리로, 나중에는 괴물로 변해 동굴에 살면서 동물을 잡아먹었다.

어느 날 멀리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사람을 잡아먹고는 두개골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뒤 인간의 모습을 한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두개골을 숭배했고 죽을 때 자손들에게 사람의 목을 계속 바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돈이면 귀신도 속인다’ 는
몰염치한 무속 신관은
적나라한 인간의 얼굴
윤리뒤 숨음 원초적 충동이라

 

소위 문명적 감수성에서 보면 끔찍할 정도로 야만적이지만 와족의 신화와 습속은 우리의 수수께끼 풀이에 몇 가지 끽긴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먼저 머리 자르기와 두개골 숭배가 사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

이들은 동물을 사냥하듯이 사람을 사냥했다. 이것은 분명히 원시 수렵민들의 모습이다.

다음은 이들의 머리 사냥과 해골 숭배 행위가 풍요를 보장한다는 것.

하지만 이 풍요는 단지 사냥감의 풍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와족은 화전농경이 시작되는 3월에서 4월 사이에 목을 잘라온다.

머리 사냥과 두개골 숭배는 원시 농경민 문화와도 관계가 깊다는 뜻이다.

원시수렵사회에서 시작된 습속이 의미를 확장하면서 초기 농경사회까지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머리 사냥 풍속은 와족만 가진 문화가 아니다.

서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의 멜라네시아를 거쳐 동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는 원시 농경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습속이었다.

바로 이 습속에서 우리는 <사만이본풀이>의 해골 모시기와 발복의 관계를 풀 수 있는 유력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 머리 사냥 습속이 있었느냐는 것은 확인할 수도 없고 긴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남의 해골을 모셔서 복을 받는다는 관념 혹은 신앙이 원시 수렵문화의 오래된 소산이라는 사실이다.

소사만이가 굳이 총을 사서 사냥을 나갔다가 백년해골을 만난 까닭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같은 유형의 신화인 호남·충청 지역의 <장자풀이>에 오면 두개골 숭배의 오랜 내력은 소실된다.

대신 조상을 잘 모시지 않는 악독한 사마장자가 착하고 현명한 며느리 덕에 저승차사들을 잘 대접하여 목숨을 연장하는

이야기로 변형된다. 남의 두개골 모시기가 내 조상 모시기로 대체된 셈이다.

 

옛날 악행을 일삼는 데다 조상 제사도 드리지 않는 사마장자가 있었다.

참다못한 조상들이 배고픈 사정을 염라대왕에게 호소하자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염왕의 사자가 중의 모습으로 시주를

받으러 온다.

그러나 사마장자는 중을 때리고 소똥을 바릿대에 담아준다. 보다 못한 착한 며느리가 용서를 빌고 시주를 대신한다.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면 ‘어 이거 <장자못 전설> 아냐?’하는 물음표가 고개를 들 것이다.

그렇다. <장자풀이>에는 분명 <장자못 전설> 모티프가 스며들어와 있다.

하지만 전설과 달리 무속신화는 장자(長者)의 악행에 대한 징치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그 대신 <사만이본풀이>의 본래 서사를 따라서 악한 부자의 면화(免禍) 이야기로 이어진다.

 

염왕은 사마장자를 잡으러 가기 전에 그의 꿈자리를 어지럽힌다.

사마장자의 꿈이 죽을 꿈이라고 며느리가 해몽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해몽한 며느리는 쫓겨나고 대신 점쟁이가 해몽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저승차사가 목숨을 회수하러 올 테니 잘 대접하는 굿판을 벌이라는 것.

결국 저승차사들은 사마장자의 접대를 받고 사주가 같은 이웃의 우마장자를 대신 잡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우마장자는 효성이 지극한 착한 사람이다. 차사들은 할 수 없이 며느리 꾀대로 말을 잡아 저승으로 돌아간다.

 

<사만이본풀이>와 달리 <장자풀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자풀이>에는 한 매듭이 더 있다. ‘말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잡아가?’, 마지막 부분은 아마도 <장자풀이>를 듣는 청중들의 이런 반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지옥에 갇힌 말의 원망 때문에 사마장자는 병이 들거나 꿈자리가 어지러워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의 원한을 씻어주는 말 씻김굿을 다시 하게 된다.

이 씻김굿 덕택에 말은 지옥을 벗어나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대단원을 맺는다.

<장자풀이>는 어디 한 군데 맺힌 곳 없이 원망을 다 풀어 준다.

<장자풀이>에는 사마장자와 우마장자의 운명이 맞바뀌는, <사만이본풀이> 식의 억울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있다. 악한 사마장자든, 선악의 문제와 무관한 소사만이든 조상을 잘

모시고 저승차사들을 잘 대접한 덕분에 연명을 하거나 사만년이나 산다.

참으로 편리한 신관(神觀)이고 몰염치한 신들이다.

사마장자가 징벌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판본이 없지 않은 것도 이런 몰염치에 대한 윤리적 반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무속의 신들은 비윤리적이다.

푸짐한 향응을 좋아하고 접대를 받으면 반드시 보상을 한다.

 ‘돈이면 귀신도 속인다’는 무속인들의 문자에 압축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무속의 신관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신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종교 윤리가 아니다.

신화는 본질적으로 윤리 이전의 문제, 혹은 윤리 너머에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한다.

<사만이본풀이>나 <장자풀이>에 그려진 백년해골이나 저승차사의 모습은 접대에 약하고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적나라한 인간의 얼굴이다.

윤리적 인간 뒤에 숨겨진 원초적 충동,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살든 잘 먹고 오래 살고 싶다는 충동. 그러나 충동을 좇아 우마장자의 운명을 훔친 저승차사는, 아니 사만 년을 산

사만이는 과연 행복했을까?

 




門前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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