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운회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여러분들과 먼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지난 해 ‘삼국지 바로 읽기’에서 여러분들이 보여준 깊은 관심과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삼국지 바로 읽기’를 연재할 당시 저는 ‘쥬신’에 관해 간략히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충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의혹이 증폭되고 논쟁이 끝없이 일어났기 때문에 언제 기회가 되면 ‘쥬신’에 대해 다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일이 빨리 온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올해를 넘기면 다시 이 이야기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일에 뛰어든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동북공정에 대한 대안(代案)으로 ① 기존의 사학계가 추진하는 ‘고구려 지키기’, ② ‘요동사(遼東史)’ 개념[요동의 역사를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보려는 시도], ③ ‘쥬신’의 관계사(關係史)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쥬신’은 만주 일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었으며, 17세기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미 ‘고구려 지키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도임을 ‘삼국지 바로 읽기’를 통해서 제시한 바 있습니다. 1천4백여 년 전에 없어진 나라에 대한 계승권을 주장한다거나, 조공-책봉에 대한 연구를 한다 한들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설령 발해의 역사를 지킨다 해도 이미 1천 년 전에 없어진 나라이니 그 또한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1천 년 전의 국가의 토지대장이 있다한들 지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무력이 있습니까?
‘요동사’ 개념도 의미가 없는 시도입니다. 요동은 우리 민족의 주요 근거지인데 이것을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분리한다니 말이 안 되지요. ‘요동사’ 개념에서 말하는 한국이라는 것은 삼한(三韓)의 개념을 근거로 하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중국의 사서(史書)만을 중심으로 개념화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라는 개념은 한반도 남단에만 있었던 삼한(三韓)을 포함하여 북방계 유목민의 천손사상(天孫思想)을 나타내는 용어 입니다. 이 점은 앞으로 충분히 밝혀 나가겠습니다.
(나머지는 첨부파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