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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한민족 우수성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

송화강 2019-05-28 (화) 19:50 6년전 14597  

 
한민족 우수성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

고고학적으로 동이족의 원시문화에서 기원한 암각화나 빗살무늬토기들은 중국의 동북, 내몽골, 신강, 광서지역, 러시아의 레나강 일대까지 유라시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고인돌도 동남아.인도.영국에 이르기까지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 문화가 유라시아의 초원길과 고대 해양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되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다시 만주와 한반도로 동진하여 문화가 융합되었다고 봐야 한다.고대사의 주역은 한국인들이였던 것이다. 아래 고고학적 내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분류와 동이족(東夷族) 

우리민족의 역사는 신라 박제상이 저술한 [부도지]의 마고시대에서 출발한다. 마고성이 어디일까? 황궁씨가 북쪽 천산주로 이동했다고 했으니 중앙아시아 지역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남쪽지역에 해당한다. 한자[바다-해]는 갑골문자로 여성지도자를 의미한다. 지리산은 마고할머니 전설로 가득하다. '바다-해'는 바다속으로 사라진 마고성의 흔적을 담고 있는 갑골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신화와 습성은 2만년 전 한반도 서남해를 중심으로 '마' 문명을 건설했던 고대 한국인들이 기후변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바다가 되자, 사방으로 분산되면서 북으로 이동했던 고아시아족들이 거주했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즉, 솟대문화와 무속신앙의 고향은 한반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는 단군3조선 중 한반도는 문명이 처음 시작되었다는 '천일'에 해당하는 [마한]에 해당한다. [마한]은 바로 [마고성]에서 기원한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고로 퉁구스문화로 대변되는 북방 동이족의 무속문화가 주로 시베리아지방에 있는 것이다. 우리 북방 동이족의 기층문화가 주로 시베리아지방에 있는 여러 민족의 원시문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우리 북방 유목민족의 기원과 계통이 그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한반도에는 세계최초 최고의 구석기.신석기 유물유적들이 존재한다. 우리 민족의 직접적인 선조들인 것이다. 그들이 한반도에 살면서 문화를 남겼으며, 또한 만주를 걸쳐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여 문화를 전파한 것이다. 그러나, 구석기문화는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에 끝난 홍적세(빙하기)와 함께 사라지고, 그 뒤로는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해서 나타나는 중석기문화가 나타난다. 물론, 구석기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문화다.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문화는 계승발전되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백성들이 사라지지 않듯이 말이다. 

즉,최근 자료가 새로 발굴되면서 한반도에서 신석기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때는 종전에 알려진 바와 같이 기원전 4000년 무렵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올라간 기원전 6000년 무렵이라고 수정되었다. 또 한때 시베리아와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가 동일 계통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지금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시베리아 지역보다 이른 시기에 한반도에서 신석기 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편 최근 한반도 각지에서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의 사이에 중석기 문화가 존재하였음을 시사하는 유적,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중석기 문화가 존재하였다면, 구석기인들과 신석기 인들이 시간적으로나 체질적으로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신석기 시대 이후 한반도에서는 주민의 전면적 이동이나 대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간혹 신석기 시대의 주민을 고 아시아 족, 청동기 시대의 주민을 퉁구스 족 계통으로 보아 양자를 서로 다른 집단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의 주민들이 청동기 시대의 주민들과 종족적으로 달랐음을 입증할 자료는 거의 없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주민을 전혀 이질적인 집단으로 보는 것도 근거가 희박한 셈이다. 

청동기 시대 이래로 고조선 삼국 등의 고대 국가를 건설한 집단은 단군조선을 구성했던 예, 맥, 한족이다. 이후에도 삼국시대 초기까지 북방으로부터 유이민 집단이 파도치듯 이주해왔지만, 기존의 주민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종족적인 특징을 변경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예, 맥, 한족은 단군3조선의 붕괴되면서 제각기 국가를 세우고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불완전하나마 결국 신라로 통합되어 갔고, 이때부터 한국인의 기초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로는 2가지의 큰 흐름이 주류를 이룬다. 그 하나는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 북중국에 연결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시베리아의 문화가 만주를 거쳐 남하한 흐름이다. 그 외 남방적 문화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적다. 한반도의 구석기.신석기문화의 연대가 세계최고인 만큼 시베리아 문화가 남하하여 흘러 들어왔다는 것은 선차적으로 맞지 않고 오히려 농사짓기에 땅이 비옥했던 한반도에서 석기가 일찌기 발전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기술이 북방으로 전파됐다고 보는게 당연한 순리이고, 주체적인 역사관이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빗살무늬토기인데, 이것은 핀란드와 서북 소련의 오카-볼가 상류지방에서 동쪽은 바이칼지방에 이르는 시베리아 일대에 퍼진 소위 '피트 콤 웨어(pit-combwore)'의 전통에 연결된다. 빗살무늬토기는 형태가 반 달걀형이고, 표면에 찌른 자국과 빗 같은 것으로 누른 빗살무늬가 있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다. 빗살무늬토기로서 대표되는 문화의 분포 지역은 시베리아에서 대체로 북위 55도 이북이다. 이 문화는 주로 수렵과 어로에 의존하는 빈약한 신석기문화였지만, 스키나 썰매를 이용하여 그 기동력은 의외로 컸다. 이 문화는 볼가강과 그 지류인 오카강 상, 중류 일대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우랄산맥을 넘고 중부 시베리아의 오브강 하류의 지류인 라핀강 유역으로 진출한 후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서 예니세이강 중류를 거쳐 바이칼호에 도달하고, 거기서 남으로 꺾어 흑룡강을 타고 두만강 하류 지역까지 이어져 나타난 것이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문화의 전파로라고 추정된다. 

한편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동이족들은 회하 유역과 산동반도에 걸치는 중국 동해안 일대, 남만주. 발해만 일대, 한반도 북부에 걸쳐서 거주하면서 동이문화권(東夷文化圈)을 형성하고 있었다. 동북아시아 문화의 주체를 이루는 동이문화는 동이족에 의해 창조되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 자료와 역사 문헌에 기록된 내용 및 연구성과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동이족에 속했던 민족임이 분명하다. 중국인 학자인 여진우는 사전시기중국고대문화(史前時期中國古代文化)에서 동이족의 발상지를 지금의 바이칼호 일대로 보았는데, 북방 동이족의 남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점차 남하하여 요녕성 서부에 와서 한 갈래는 동북으로, 다른 한 갈래는 발해를 따라 산둥반도로 진출하였다고 했다. 또 중국의 고고학 자료와 학계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요녕성 서부의 홍산문화는 동이족의 문화라고 본다. 홍산문화는 옥문화.청동문화.제천문화 등 복합적인 문화를 뛰고 있는데, 이것은 고아시아족으로 대변되는 마 문명인들의 옥문화에다가 북방에서 남하한 한웅족의 제천문화가 융합하여 단군족의 청동문화로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만주와 한반도지역은 본래 마 문명인들이 토착민들로 거주한 땅이고,[부도지]에서 한인씨의 선조가 되는 황궁씨(황인종)로 대변되는 마 문명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서진했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동진하여 고향에 돌아와 옛 가족들과 둥지를 튼 것이고, 토박이노릇하고 싶어 한웅족의 유입을 반대한 호랑이족은 결국 헤게모니 싸움에서 패하고 시베리아 등 북방으로 이주하여 말갈족으로 대변되는 고아시아족들로 남게 되었다고 이해해야하는 것이다.

시라무렌강과 노합하에서 기원전 4천년경부터 만주 길림성 여명문화의 영향을 받아 꽃핀 홍산문화는 기원전 2300년경에 쇠하면서 소하연문화라는 조그만 신석기 말기문화로 대체된다. 소하연문화는 이내 하가점하층문화라는 초기청동기시대문화로 다시 대체되는데 이때가 기원전 2천년경이다. 소하연문화는 과도기적단계로 지적되는 문화단계인데, 이때 만주 송화강유역에 등장하는 문화가 백금보문화를 비롯한 신석기말 청동기초의 문화로서 고조선 초기문화라고 여겨지고 있는 문화이다. 

요녕지역의 문화전개양상을 고고학적으로 보면 기원전 2300년경을 전후하여 문화의 중심지가 요서지역에서 요동지역과 북만주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년경을 전후하여 다시 요서지역이 융성해지는 이전상태로 돌아 가는데, 이것은 단군족의 중심지(수도) 이동과 깊이 관련된다 할 것이다.

시라무렌강과 노합하유역의 홍산문화가 쇠하면서 부여의 중심지였던 송화강유역에서 일단의 문화가 전개되고 이후에 다시 노합하유역을 중심으로한 하가점하층문화가 발전하는데 이를 북만주지역의 고조선세력의 문화권역이 확산되어 하가점하층문화가 전개된다는 역사적 사실로 보려한다. 시라무렌강 상류 임서(林西)에서 기원전 2000년경의 다량의 구리 노천광산이 발견되었고 이곳에서 오랜 기간동안 초기 청동기시대의 제련이 행해졌음이 밝혀졌다. 하가점하층문화는 이러한 청동기를 바탕으로 전개된 문화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B.C.13세기경에 어떠한 기후변동의 결과로 인간생활에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기온의 급강하(-3℃)로 이전의 농경기반이 목축기반으로 전환되면서 하가점하층문화도 문화의 성격이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전의 하가점하층문화가 비파형청동검을 표지유물로 하는 완전한 청동기문화인 하가점상층문화로 대체되는 것이다. 

동이문화가 지닌 기본 특징으로 새를 토템으로 하는 난생설(卵生說)과 암각화 및 수렵과 관계되는 활 문화의 발전을 들 수 있다. 한반도 원시문화에서 기원한 암각화도 중국의 동북, 내몽골, 신강, 광서지역, 러시아의 레나강 일대 등 고대 동이족의 이동과 관계되는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동이족의 문화권에 거주하고 있던 종족 중에서도 후에 우리 민족을 형성하는 데 주류가 된 것은 북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남하한 맥족와 농경생활을 주로 하던 만주와 한반도지역의 한(예)족이었다. 북방 동이족들은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퉁구스족의 일파라고 하나, 그것은 서양 학자들이 분류하는 기준이지, 본래는 모두 한반도 언어를 사용했던 동일한 동이족들이였다. 한반도 언어를 명확히 표현하면 '마'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반도 언어가 한반도인들의 이동을 통하여 지역의 기후환경에 따라 변형되었다고 보는게 맞다. 예컨대, 영어의 '해피 투게더'도 따지고 보면 순 우리말이다. '해피 투게더'는 '해빛 두개 더'의 변형이라 할 것이다.따라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이러한 언어의 뿌리를 깊이 인식하면 한국어의 종속적 표현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퉁구스족(만주족 포함), 몽골족, 터키족을 언어학상으로 알타이(Altai)족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세 민족의 언어는 본래 같은 한국어족에 속하고, 오랜 어느 시기에 같은 종족에서 갈라진 것이다. 알타이족은 원주지로부터 서쪽으로 중앙아시아를 지나 유럽의 동쪽에까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시베리아의 레나강 유역까지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일파가 만주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의 서쪽에까지 이동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서양의 언어학자들이 분류한 기준을 이제 주체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12환국 중에서 중심지역에 해당하는 동방지역의 모든 동방족은 본래 동일한 한국인들이고 한국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족으로 구분해야 할 것이다.

북방 동이족이 동쪽으로 또는 북쪽으로 이동 확산하기 전에 북방 아시아에는 이전부터 고아시아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 고아시들은 북쪽에서 유목생활을 한 동이족의 이동에 밀려 동해안과 북극지방의 불모의 땅으로 옮아갔다. 이들을 통틀어 단군신화에서 호랑이족으로 대변되는 고아시아족 또는 고시베리아족이라고 부른다. 북극지방의 축치족이나 사할린 남부와 북해도의 아이누족, 멀리 동북쪽으로는 베링해협의 양안에 분포하고 있는 에스키모들이 그들이다. 이들 고아시아족은 북방 동이족에 밀리기 전에는 아시아의 내륙에 토착민들로 있었다. 따라서 만주와 중국 북부 역시 고아시아족의 일파가 점거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북방 동이족에 밀려 동쪽과 북쪽으로 이동하였을 때에, 그 일부는 한반도로 밀려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두고 일부 학자는 우리 민족을 고아시아족이라 한 일이 있으나,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 북방 동이족의 남하로 한반도의 문화와 사상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한반도 문화는 본래 '마' 문화와 생동적인 북방 동이문화가 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통용되는 것이 퉁구스족 설이지만 이는 학문적 근거와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한 추론에 불과하다. 우리 민족이 몽골족와 퉁구스족의 잡종이라든가 또는 한족(漢族)와 몽골족의 후예라든가 하는 이설도 있으나, 이것 또한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내세운 일제시대 식민사학의 영향이며, 과학성이 결여된 학설인 것이다.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와 시베리아와 몽골지역은 전통적으로 동방족의 터전이며 12환국의 중심지역으로 중국인들이 지역을 기준으로 민족을 분할표현했을뿐 모두가 동일한 한민족이다. 즉, 고아시아족이니 알타이족이니 한웅족이니 곰족이니 호랑이족이니 배달족이니 단군족이니 맥족이니 예족이니 말갈족이니 이런 건 모두 중국인들이 구분하기 쉽게 자기들이 표현한 내용에 불과할 뿐 모두가 동일한 조상과 혈통을 가진 동이족들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고대 문헌에 기록하여 주시했던 예와 맥이 [한단고기]에 표현된 9한을 통합하여 우리 단군민족을 형성하게 한 주역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중국 사서에 우리 민족을 예맥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아무튼 예맥족은 넓은 의미에서 동이족에 포함된다. 

예맥족은 발달된 농경문화의 경제력은 기반으로 하여 먼저 홍산문화와 그 종족들을 흡수하여 보다 넓은 문화기반을 만들면서 우리 민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결론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우리민족은 황인종의 우두머리인 환국인종에 속하고 언어학적으로는 세계언어의 조상어인 '한국어족'에 속하며, 한반도와 만주.연해주와 중국.몽골.시베리아.중앙 아시아에 분산된 9이족을 3한으로 대통합하여 만주(진한=총괄지휘)-중국 동부지역(번한=최전선 방어)-한반도(마한=후방지원)을 핵심지역으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주역은 청동기문화를 가지고 기원전 4천년경에 요서와 요동, 만주에 자리잡은 동이족의 한 지류인 예맥족이다. 맥족이라 했을 때는 [한단고기]에는 "웅족중에 제일 강성한 단족"으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단군왕검의 차남 부소가 왕으로 임명된 고리족(고리국)이다. 쇠를 잘 다뤄 청동기문명의 주역이 된 이 예맥족은 바로 코리족(고리=부여=고구려.대진국=몽골=백제=일본=박혁거세의 진한=불가리아=고려=치우족)이라 할 수 있다. 예맥족이 이동해 오기 전 요서, 요동, 만주지역에는 2만년 한반도 서남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마 문명인들의 후손들이라 할 수 있으며, 토착민들로서 곰족으로 대변되는 고아시아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예맥족은 유순한 곰부족과 융합하였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호랑이부족과는 결별하였다. 이들 고리족(예맥족)이 단군조선을 건국하는 주체세력이 되었고, 현대 우리민족은 그들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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