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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신라왕은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송화강 2019-05-24 (금) 23:46 6년전 12698  

신라왕은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008.12.04 11:19

신라왕들의 특징 - 지증 ‘성기’ ㆍ진평 ‘신장’ ㆍ선덕 ‘예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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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 22대 왕은 지증왕이다. 지증왕은 죽은 뒤에 붙인 시호라고 하고 원래 이름은 지철로 혹은 지대로, 지도로였다고 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 것은 신라어의 음가를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즉 어떤 한자로도 신라어의 음가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일본어 한자음으로는 볼 때는 과거에는 철이 아니라 댓, 텟 정도의 음가였을 가능성이 있다), 대, 도가 결국은 동일한 신라어를 표기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한자인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한자 이름으로 표기되었던 지증왕을 삼국유사는 신라 최초의 마립간이라고 했다(삼국사기는 내물왕이 최초의 마립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립간이란 아마도 마릿간 즉 우두머리 간(간)이라는 뜻일 게다. 마립간이라는 호칭 속에서도 아직 신라왕의 지위가 경주 지역의 다른 수장들(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지증왕을 “체격이 매우 크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처럼 흔히 있을 법한 맹숭맹숭한 표현이 아니라, 한층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영일냉수리비. 지도로갈문왕 즉 지증왕의 이름이 보인다. 

 

지증왕의 ‘물건’은 1자 5치

 

삼국유사는 지증왕의 음경 길이는 1자 5치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배필을 얻기 어려워 사신을 보내 배필을 구하도록 했다. 사신이 모량부 어귀의 큰 정자나무에 이르렀을 때, 개 두 마리가 북만한 큰 똥덩어리의 양쪽 끝을 물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한 소녀가 고하기를 “이는 모량부의 상공의 딸이 여기서 빨래를 하다가 숲 속에 들어가 숨어서 눈 똥입니다”라고 했다. 그 집을 찾아가 살펴보니 여자의 키가 7자 5치가 되었다. 이 사실을 자세히 왕에게 아뢰자, 왕은 수레를 보내 궁중으로 맞아들이고 황후로 봉하니 신하들이 모두 축하했다.

 

이런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있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음경의 길이가 1자 5치면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지금의 한 자는 30cm 정도지만, 고대에는 특히 사람의 키를 나타낼 때는 22~25cm가 1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증왕의 물건은 적어도 33cm는 된다.

 

물건이 이 정도 되면 왠만한 여자는 부인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오죽했으면 사신을 보내 적당한 배필을 찾게 했을까. 지증왕의 비가 된 여자 또한 만만치 않다. 1자를 25cm로 잡으면 그녀의 키는 187cm에 이른다.

 

개 두 마리가 북만한 여자의 똥을 한 가닥씩 물고 다투었다고 하니, 예사 체구가 아니었던 셈이다.

 

신라왕 신비하거나 특이한 존재

 

재미있는 건 삼국유사 같은 스님들이 쓴 책에 이런 노골적인 이야기가 버젓이 실려있는 게 의아하고 신라왕들에 대한 신기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하고 있어서, 그것들이 일정한 흐름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지증왕의 물건 이야기도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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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보랏빛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왕은 죽은 후에 하늘로 올라갔으나 7일 후에 그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지므로, 그 몸을 수습해 나누어 묻은 것은 오릉이라고 한다. 3대왕인 유리왕(노례왕)은 떡을 물어 이빨 자국이 남보다 많았기 때문에 왕이 되었다고 한다. 28개나 32개보다 더 많았던 모양이다.

 

4대 탈해왕도 큰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죽고 나서 장례 치를 때, 그의 두개골 둘레는 3자 2치이고 몸의 뼈 길이는 9자 7치였다고 한다. 김씨왕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김알지 역시 황금궤짝 속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없으나, 금궤 옆에서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닭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성 싶다. 13대 미추왕은 성스러운 덕이 있었고, 그가 죽은 후에는 대나무잎으로 병사를 만들어 적병의 침입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오릉. 다섯 조각이 난 박혁거세의 시신을 묻은 곳으로 전한다.


눌지왕의 경우도 덕망이 있고 행실이 어질었다고 한다.

 

26대 진평왕의 경우는 그 키가 11자였으며, 내제석궁이라는 곳에 행차했을 때 돌 계단을 밟으니 돌 3개가 한꺼번에 깨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좌우에 이르기를, “이 돌을 옮기지 말고 뒷사람들에게 보이라”고 했다. 이 돌은 성안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다섯 돌 중의 하나가 된다. 뿐만 아니라 즉위한 해에 하늘로부터 옥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사 등의 큰 행사에는 언제나 이 옥대를 착용했으며, 이 옥대는 신라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막아주는 보물 중의 하나였다.

 

27대 선덕여왕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여왕이 재위한 16년간에 세 차례나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았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으로 그린 모란과 꽃씨 석 되를 보내왔는데, 여왕은 그 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씨를 뜰에 심어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신하들이 궁금해 하자, 여왕은 꽃은 그렸으나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 당나라 황제가 내가 짝이 없음을 놀린 것이라고 답했다.

 

선덕여왕의 신비한 능력

 

두 번째는 영묘사의 옥문지라는 연못에 겨울철인데도 개구리가 모여 며칠이나 울었다. 나라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여왕에게 물으니, 왕은 급히 각각 알천과 필탄 등을 시켜 정예병사 2천명을 뽑아서 속히 서쪽 교외의 여근곡을 수색하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그들을 습격해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들어 각각 1천명씩 이끌고 서쪽 교외로 나가니, 과연 부산 아래 여근곡이 있고 백제 병사 500명이 와서 매복하고 있어서, 모두 잡아 죽였다고 한다. 선덕여왕의 예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여왕은 개구리의 노한 모습은 병사의 형상이고, 옥문은 여자의 생식기이다. 여자는 음이고 음의 색깔은 흰 빛이나 방향으로는 서쪽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적병이 서쪽에 있음을 알았다.

 

나를 도리천에 묻으라

 

남자의 생식기가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니, 적병을 쉽게 잡을 줄 알았다고 답한다. 정말 여왕이 이렇게 말했다면 선덕여왕은 우리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입담이 좋은 여왕이었던 것 같다. 적병을 물리치고 온 장군들에게 남자 물건이 여자 물건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법이라는 농담같은 이야기를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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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전할 뿐이지만, 마지막 이야기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 여왕이 아무런 병도 없을 때 문득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가운데 장사 지내라”고 했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지를 알지 못해서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라고 일러줬다. 과연 그 날이 되어 여왕이 죽자 신하들은 낭산의 양지바른 곳에 여왕을 장사지냈다.


그런데 10년 후에 문무왕이 여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를 창건했다. 불경에 따르면 사천왕천 위가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므로, 신하들은 그때서야 여왕의 신령스럽고 성스러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선덕여왕의 마지막 이야기의 무대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선덕여왕릉. 사천왕사 뒤편 낭산 정상 부근에 있다. 이곳이 도리천이다.


경주 시내에서 울산으로 내려가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낭산이라고 부르는 나즈막한 산이 왼쪽으로 나타난다. 낭산은 고대 신라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산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낭산 주변으로 절이나 왕들의 무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낭산의 남쪽 끝자락에 사천왕사터가 남아있다. 당간지주와 귀부가 남아있는가 하면 건물지와 목탑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절터의 북쪽으로는 동해남부선이 지나가고 있다. 동해남부선 철길을 지나면 곧 산길로 접어든다. 그 산길을 따라 올라가서 거의 정상 가까이에 이르면 제법 규모가 큰 능을 만나게 된다. 선덕여왕릉이다.

 

경주에는 많은 능들이 있지만, 그 능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서악고군군의 태종무열왕릉도 태종무열왕 비석이 그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그 무덤 중에 하나이겠지만 정확하게 어느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흔히 가장 앞에 있는 무덤이 무열왕릉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왕릉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무덤의 형식이나 기록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고, 안강의 흥덕왕릉처럼 그 무덤의 주인을 확정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사천왕사터 뒷편 낭산 자락의 능이 선덕여왕릉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형식적으로 자연석에 가까운 돌로 몇 단의 기단을 올린 점에서 통일 이전의 무덤이다. 선덕여왕의 예지능력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들은 여왕의 능이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식가 태종무열왕

 

예지력을 가지고 있었던 선덕여왕과 달리 태종무열왕은 엄청난 대식가였던 모양이다. 왕은 하루에 쌀 3말과 꿩 9마리를 먹었다고 한다.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점심은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는데, 그래도 하루에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를 먹었다고 한다. 왠만한 사람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일이다. 백제를 멸한 태종무열왕은 색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처음의 문제제기로 되돌아 가보면 왜 신라왕에 대해서는 이처럼 신비한 능력이나 특이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했을까. 선덕여왕의 예지력이 그렇고 지증왕의 유달리 큰 성기, 유리왕의 많은 이빨, 탈해왕의 큰 머리통과 큰 키, 진평왕의 큰 키와 엄청난 몸무게, 그것도 아니면 음식이라도 남보다 많이 먹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신라왕이 되기 위해서는 남과 구별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실 신라왕의 지위는 태종무열왕계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전제적인 왕권이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명의 후보 중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남과 구별되는 특이한 능력이나 외관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태종무열왕 이후에는 신라왕들의 특이한 능력에 대한 기록이 없어진다. 이는 신라왕권이 점차 전제화되고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증왕의 경우에는 왕이 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소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지증왕은 소지왕과 혈연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가깝다고 해도 재종제, 혹은 재종질 관계였다.

 

그러나 소지왕에게는 조카나 종제, 종질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상당히 거리가 먼 지증왕이 즉위한 것은 정상적인 즉위가 아니라, 정변이나 내부의 갈등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과정에서 지증왕은 모량부의 박씨족과 결탁함으로써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증왕 이후 모량부의 박씨는 법흥왕과 진흥왕의 왕후가 된다.

 

삼국유사의 지증왕에 관한 이야기는 지증왕이 즉위한 이후에 왕비를 구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지증왕이 즉위할 때 나이가 이미 60세가 넘었으므로, 즉위하고 나서 왕비를 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박씨족과 연관을 맺는 과정을 반영한 이야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소지왕의 직계라고 할 수 없는 그가 왕이 되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특별함이 필요했을 것이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신비한 표징으로서 그의 성기를 거론할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지증왕의 물건 이야기를 통해서, 지증왕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왕이 되기 위해서 신비한 표징을 필요로 했던 시대의 신라왕권의 취약성을 엿볼 수 있다. 지증왕의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복잡한 함의로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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