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본능과 현실
2008-09-15 18:16
짧은 추석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정시기에 고향을 향하거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하는 명절은 인류의 문화 요소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동물의 본능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동물 세계에서 생존 및 생식을 위한 본능 못지않게 중요한 본질적 행동요소가 있다. 집으로 향하는 본능, 즉 귀소본능(homing instinct)으로 불리는 이 속성은 때로 회귀본능으로도 일컬어진다.
두 용어는 비슷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차이가 난다. 집 또는 둥지를 틀고 사는 동물류에 있어 집으로 되돌아오는 속성을 귀소본능이라 하는 반면, 둥지와 같은 특별한 서식처는 없지만 태어난 곳에서 일정 시기를 보내고 이곳을 떠나 청장년 시기를 타지에서 보낸 후 다시 영유아 시기의 기억이 있는 장소로 돌아오는 것을 회귀본능이라 부른다.
뛰어난 귀소본능을 지닌 동물로 갈매기와 비둘기를 들 수 있다. 이들에 있어 서식영역과 둥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되돌아 올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시각적 기억력과 지구 자기장에 반응하는 생체자석이라는 세포덩어리가 머리부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서구(傳書鳩)로 잘 알려진 비둘기 종(Columba livia)은 최대 3700㎞의 먼 거리를 되돌아 집으로 향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작지만 뛰어난 비행능력을 지닌 벌 또한 태양광선과 자기장을 이용하여 귀소본능을 발달시켜왔고, 개미류는 화학물질을 더하여 귀소능력을 강화해 왔으며, 견공(犬公)들의 귀소성 또한 화젯거리다.
회귀본능의 주류는 역시 어류다. 잘 알려진 만큼이나 이들의 회귀적 생태도 다양하다. 은어는 중산간 계류에서 산란 후 유생시기를 연안에서 보내며, 이후 삶은 자신이 태어나 곳에서 보낸다. 이와 달리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는 민물에서 여러 해 생활하다 산란을 위해 바다로 향한다. 연어나 송어는 민물에서 산란 후 바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생의 마지막 순간 산란을 위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모천회귀성'을 지니고 있다. 북태평양에서 그곳 친구들과 어울려 생활하다 때가 되면 후각적으로 각인된 모천을 향해 태양나침반을 이용하여 동해안 하천으로 되돌아오는 이들에게서 우리가 얻는 것은 신비감 그 이상이다. 연어에게 있어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 새로운 세대를 잉태하게 하는 모천은 인생 한살이 고리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회귀본능은 인생의 의미와 깊고 넓게 연관된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여우가 죽을 때엔 자기가 살던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이 옛말도 회귀본능의 또 다른 심미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양의 해류를 헤치고 강물을 거스르며 급류의 산간계류를 거슬러오르는 수만㎞의 험난한 여정은 흡사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 본능적으로 각인된 고향 내음은 새로운 출발점이자 일상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힘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조상에게 감사하기 위해 특정한 시기에 고향을 찾는 것은 귀소적 행동이라기보다 회귀적 행동에 가깝다. 단순히 특정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생의 의미를 되짚는 본능의 구현이라 할 것이다. 다른 생물과 달리 인생의 말미가 아니라 1년을 주기로 회귀함으로써 삶에 감사하고 재충전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축복인 듯하다.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생활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이소적 압박이 더 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회귀본능이야 말로 일상의 압박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이제 가을 정취와 함께 충실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회귀를 준비할 때다.
노태호(환경정책·평가硏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