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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고조선의 멸망과 그 파장

송화강 2019-05-12 (일) 23:33 6년전 12847  

고조선의 멸망과 그 파장


동방문명의 기반아래 발전해오던 고조선문명은 철기문화(위만)를 바탕으로 더욱 완벽한 국가체계를 갖추어 나간다. 이러한 고조선의 성장은 중원문명을 토대로 성장하던 중원의 국가들과 대결구도를 형성해 나간다. 서로의 정치, 경제, 군사적인 영향력이 자국에 끼쳐짐에 따라 국가의 흥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위협을 느낀 것은 漢이였다. 중원문명은 외부 문명의 군사력 앞에 무력하리라 할 만큼 쉽게 무너지곤 했다. 그것은 농경을 토대로 발전한 문명의 군사적인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漢은 秦의 멸망과 함께 외부문명(凶奴)의 무력을 실감했다. 그래서 건국초기부터 외부의 힘에 민감했다. 이러한 상황이 漢武帝(BC142~BC87)의 팽창정책과 맞물려 외부문명에 대한 군사적인 조치로 이어지게 된다.


흉노와 고조선의 연합전선은 漢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었으며, 이러한 위협요소을 제거하기 위해 흉노와 대결, 기원전120년대에 이르러 흉노를 압도하고, 나머지 불안요소인 고조선에게도 군사적인 조치를 감행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漢이 고조선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현재 사학자들은 고조선이 중계무역을 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한과 동방소국들의 직접교역을 중간에서 차단한 것을 직접적인 이유로 보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漢을 위협하는 군사적인 역량이다. 사실 고조선의 멸망과정에서도 보이듯이 漢의 무력과 대등한 정도의 군사력은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고조선의 멸망은 동방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방문명의 중심국 역할을 하던 고조선이 사라짐으로써 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동방의 여러 소국들이 난립하는 동방의 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漢과 같은 중원의 대국을 견제할 만한 세력은 형성하지 못했다. 漢역시 고조선을 멸망 시켰지만 먼거리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그 지역을 지배할만한 능력은 없었다. 漢은 위협세력의 제거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낙랑군정도가 동방과의 무역을 위해 설치된 것으로 보이지만, 지방통치 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낙랑군의 설치는 중원문명을 전파했고, 약간의 문명쇼크를 준 듯 하다. 이 시기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 중원문명의 흔적이 평양일대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멸망은 동방사회에 중심역할을 하던 중심국의 실종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조선의 많은 유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과 함께 고조선 문명을 전파함으로써 뒤에 등장하는 삼국의 건국에 문명의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문명역시 고구려가 계승함으로써 새로운 동방문명의 패자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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