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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한반도의 식민지였던 일본열도

송화강 2019-05-24 (금) 23:53 6년전 12703  

한반도의 식민지였던 일본열도

2008.03.21 13:42

일본열도는 AD 670년까지 한반도인의 식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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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의 기마무사 

 

임나일본부는 없다. 일본열도의 고대사는 한반도인의 역사이고 일본열도는 AD 479년까지는 가야의 식민지였고, AD 670년까지는 백제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그때의 식민지는 근대의 식민지와는 성격이 달라 무인지경의 빈땅에 새로운 문화를 일으키는 그야말로 신천지 개척이았던 것이다. 혹시 수탈을 주목적으로 한 20세기초의 일본에 의한 조선강제병합과 혼동하지 마시기를. 이 글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한일고대사 해석이다. 특히 일본인들은 잘못된 해석에 기초를 둔 기존 학설의 함정에 빠져 기존의 잘못된 사료나 엉터리 해석에 얽메이지 말고 본문을 진지하게 보고 심도있게 연구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1500년 이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므로 우선 큰 줄기를 잡고 세부적으로 증명해 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확실치도 않는 몇몇자료에 얽메이면 전체를 볼 수 없거나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1. AD 360년 ~ AD 500년간의 한일 관계사의 큰 줄거리를 새롭게 정리해 보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들과 몇가지 상충되는 점이 있으나 그 자료가 반드시 옳다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그 자료들도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2. 고대 철기문화가 발달했던 伽倻(加耶)는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아닌 소국연합체의 성격이 강하여 반도남부에 넓게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나라들 보다 먼저(1세기 말로 추정) 列島로 진출하여 伽倻의 分國을 개척하였다. 즉, 열도에서 초기에 나타나는 倭奴國, 비미호의女王國, 邪馬臺國 등이 그것이다.

 

3. 백제는 346년에 근초고왕이 즉위하여 국력이 크게 신장한다. 360년경부터 伽倻지역을 수차례에 걸쳐 침공하여 伽倻를 정복한다. 伽倻는 주력이 무너지긴 하였으나 처음부터 소국연합체이었기 때문에 약화된 상태로 신라에 최종 흡수되는 AD 562년까지 계속 존속한다. 이때 백제에게 �긴 가야세력의 일부가 이미 개척해둔 열도로 이주한다.

 

4. 대륙과 반도에서 영토 확장을 꾀하던 백제는 내친김에 열도까지 �아가게 되고 열도에서 가야와 백제의 열도쟁탈전이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伽倻王族인 阿羅斯等과 그의 長子 金讚(후에 應神으로 紛飾됨)의 伽倻세력에게 백제의 근초고왕과 근구수왕이 전사까지 한다. 이후 백제본국에서는 진사왕이 구테타로 침류왕을 제거하고 집권한다.

 

5. 열도에서 應神과 전쟁중이던 침류왕 계열인 아신왕이 백제 본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자 應神과 밀약(즉, 반도는 아신왕이 통치, 열도는 應神이 통치)을 맺고 應神의 도움으로 진사왕을 몰아내는 逆구테타가 성공하여 백제본국의 왕이 된다. 이 밀약에 따라 應神은 390년에 열도에서 처음으로 국가형태를 갖춘 大和王朝를 세운다.

 

6. 반도는 백제 아신왕의 관활이 되나 아신왕과 應神의 협력은 밀접하여 이후 백제가 고구려-신라연합에게 시달릴 때 열도에서 應神이 출병하여 백제를 돕기도 한다. 아신왕이 죽고 전지왕 때 반도 남해안의 伽倻7國을 한 때 약20년간 大和王朝의 2대왕 津彦이 통치하기도하지만 이후 다시 백제에 복속된다. 이때의 상황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나는 倭의 실체인 것인다. 즉 伽倻인 것이다. 또한 任羅도 伽倻의 이칭중의 하나인 것이다.

 

7. 應神이 세운 열도의 첫 王朝인 大和王朝는 1代 讚王 應神(390년~426년), 2代 珍王 津彦(426년~443년), 3代 濟王(443년~462년), 4代 興 世子( ~462년), 5代 武王(462년~479년)로 正確히 390년부터 479년까지 90年間 存續하였다. 金讚(應神)이 일본의 초대천황 神武로도 粉飾된 것이 우연이 아니다.

 

8. 그 後에 伽倻王族(金氏)으로서 大和王朝 出身인 東成大王이 百濟王(479년~501년)이 되므로서 列島가 伽倻의 後身이기도 하고 百濟의 一部이기도 한 妙한 過渡期가 23年間 있었고 東成大王이 歿한 뒤 武寧王부터 列島가 완전한 百濟領(百濟 餘氏王室 基準)이 된 것이다. 

 

9. 660년에 백제가 망하자 열도의 백제분국에서 부흥운동을 하였으나 실패한다. 이에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게된 가야인들과 백제인들은 합의하에 그때까지의 반도와의 모든 관계를 숨기고 새출발하기 위하여 가야인과 백제인의 갈등을 봉합하는 내용을 신화의 형태로 꾸민 고사기/일본서기를 저작하여 만세일계의 천황가 역사를 창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그들의 후손인 가야계와 백제계가 화합하여 열도 원주민들의 반발을 막고 효과적으로 영원히 통치하기 위한 원대한 포석이 일본역사(신화)의 창조인 것이다.

 

10. 열도의 역사를 다시 정리하면 1세기~4세기중엽은 가야인들이 열도에 진출하여 여기저기 소국들을 형성하고 360년~390년은 가야와 백제의 열도 쟁탈전쟁이 있었으며 390년~479년은 가야왕족 金讚(應神)의 大和王朝이 세워졌으며 479년~670년은 백제의 分國(植民地)이었고 670년~이후 日本으로 독립한 것이다. 즉, 열도는 479년까지는 가야의 식민지였고, 670년까지는 백제의 식민지였던 것이다. 일본이 반도남부를 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 것이다.

 

참고 古代(4世紀から6世紀にかけて)朝鮮半島南部に大和朝廷の支配化にある任那(加羅)が存在し、日本が朝鮮半島南部の植民地支配を認め、その意義づけをしています。しかしこの考え方は、學界のなかでは完全に否定され、古代史の硏究者は誰も認めていない說です。

 

일본(日本) 국호의 유래

 

1. 일본은 yamato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을 지칭하는 명칭이 야마대국(耶馬臺國), 왜(倭), 대화(大和), 동조(東朝), 일본(日本) 등으로 여러가지가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글자 형태도 다르고 음독으로는 다르게 발음되는 여러 명칭이 훈독으로는 모두 yamato라고 읽힌다는 것이다. 즉, 시대에 따라서 일본을 지칭하는 국호가 달라져도 (실제로는 정식 국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일본(日本) 밖에 없지만) 일본인 스스로는 모두 같은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그 말은 yamato란 말이 바로 일본 그 자체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日本) 국호의 유래는 바로 이 yamato란 말의 유래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yamato란 말은 반도 남부에 번영한 가라=가야(加羅=伽倻)의 하나인 우가야(上伽倻)를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반도의 가야(伽倻) 사람들은 일찍이 열도로 진출하여 새로운 땅을 개척하였다. 즉, 우가야(上伽倻)의 자치령(自治領)이 된 일본열도에 살게 된 가야(伽倻) 사람들이 종주국인 반도의 우가야(上伽倻)를 계승하는 나라임을 내세워서 열도에서도 yamato라고 했던 것이다. 이를 위지(魏誌)에서 야마대국(邪馬臺國)이라고 漢字를 빌려서 표기한 것이다. 이후 6세기 초에 백제가 가야의 세력을 제압하고 열도지배권을 가지게 되었고, 백제의 속령이던 열도 사람들이 반도에서 백제가 망하자 670년경 독립한 때부터 일본(日本)으로 국호를 삼았다. 日本이라고 한자로 쓴 것도 그 당시에는 yamato라고만 읽혔었는데 근세에 와서 日本이라는 글자를 漢字音 音讀으로 읽게 되면서부터 그것을 소리바꿈한 닙뽕(nippon)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니혼(nihon)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2. yamato의 유래

한민족은 상고시대의 오랜 세월에 걸쳐 추운 서(북)쪽 땅에서부터 따뜻하고 해가 뜨는 동(남)쪽을 향해서 계속해서 이주해 왔다. 이주해 오는 과정에 많은 나라를 세웠었는데 모든 나라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밝다, 해, 태양, 불, 동쪽, 아침, 신성, 새롭다, 새로운 나라, 나라를 더하다 등의 뜻이 들어있다. 이런 모든 의미는 서로 상통하여 그 뿌리에 태양 즉 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조선 <=== (태양이 솟는 동방의 나라), (햇빛이 선명한 동쪽 땅) 
2) 부여 <=== (태양), (불)
3) 고구려<=== (태양이 솟는 신비한 나라) 
4) 백제 <=== (밝은 산), (밝은 땅)
5) 신라 <=== (새땅), (아침땅), (새 날(해)이 밝는 곳), (새롭게 나라를 만들다)
6) 가야 <=== (나라을 더해나간다), (새 날(해)이 밝는 곳)
7) 발해 <=== (밝은 해가 비치는 나라), (밝은 태양이 솟는 나라) 
8) 고려 <=== (태양), (신성하다), (거룩하다)

이렇게 한민족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에 대한 열망을 나라 이름으로 써 넣었던 것이다. 특히 삼한(三韓)지방 은 반도의 끝으로서 대륙에서 볼 때 거의 동쪽 끝이었기 때문에 그곳이 바로 해의 근본이 되는 곳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 해의 근본이라는 의미를 가진 한국 고대어가 바로 아맡(a mat)이라는 것이다. 이 아맡(a mat)이 음운 변화 과정을 거쳐 yamato가 된 것이라고 한다. 즉, 아맡(a mat) > 야맡(ya mat) > 야마토(yamato)로 변화된 것이라 한다. 이 변형된 순수한 고대한국어 yamato를 위지(魏誌)에서 漢字로 표기한 것이 야마대국(耶馬臺國)이었고 이 야마대국(耶馬臺國)이 일본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나라이름이었기 때문에 후세 일본인들은 일본이란 나라를 순수하게 지칭할 때는 글자에 관계없이 항상 야마토(yamato)라고 읽는 것이다. 이 야마토(yamato)란 말을 670년경 일본이 독립할 때 해의 근본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漢字로 표기한 것이 訓讀만 있는 日本(yamato)였고 이것이 근세에 와서 漢字音讀化되어 日本(nihon)이 된 것이다. 이 내용은 아래 일본학자 星野恒의 말 즉, 히노모도 = 해의 근본 = 아맡(a mat)이라는 말로 뒷받침되고 있다.

 

참고 일본학자들이 말하는 일본(日本) 국호의 유래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낸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잡지(歷史雜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써온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국호로 정했다.(伴信友)
** 일본(日本)이라는 문자는 상고시대로부터 사용해온 (히노모도)라는 말에 한자를 충당해서 쓴 것이며 일본(日本)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삼한(三韓)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星野恒)
**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호로 됐다.(木村正辭)

 

對馬島(tsushima)의 어원은 무엇인가요?

 

對馬島를 한국어로는 대마도 daemado라 하고 중국어로는 두이마다오 duimadao라고 하여 한국어와 비슷한데, 일본인들은 쓰시마 tsushima라고 전혀 다른 발음을 하는군요. 대마도의 위치상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텐데 對馬島를 쓰시마 tsushima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역사적인 배경을 곁들여서 토론해 주세요. 일본인들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망언을 하는데, 독도는 일본땅이 절대 될 수 없지만, 어쩌면 대마도가 한국땅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정치가님들은 무얼하나? (이하는 한국의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소장님의 글의 일부입니다. 참고하세요.)

 

『 쯔시마 쓰시마 tsushima는 對馬島 또는 對馬의 음이 아니라 津島의 음입니다. 대마도의 어원과 그 얽힌 것을 풀기 위해서는 한 편의 논문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그 음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쓰시마 tsushima라고 부르는 음은 현재의 지명표기인 對馬島(대마도daemado) 또는 對馬島에서 島(도)를 뺀 對馬(대마daema)의 음이 아닙니다. 對의 음은 일본어에선 쯔 tsu나 쯔시 tsushi가 아닌 타이 tai(たい) 또는 쯔이 tsui(つい)이며, 馬의 일본어음은 훈독으로 우마 uma 또는 마 ma이니 對馬(대마 daema)의 일본음은 쯔시마 tsushima가 될 수 없습니다. 조선의 국운이 쇠해 가던 서기 1877년 일본이 중앙집권의 폐번치현(廢藩置縣)에 의거, 나가사키현(長崎縣)에 강제 편입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는 바, 일본에서 對馬島(대마도 daemado)로의 집중적 표기는 1877년 이후에 비롯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일본『고사기』에 나와있는 바와 동일한 津島(한국음 진도 chindo, 일본음 쯔시마 tsushima)였으니 비록 표기는 津島에서 對馬島 위주로 바뀌었을지라도 그 어음은 종래 부르던 대로 바뀌지 못하고 쯔시마 tsushima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加倻王族(金氏)이 列島에 세운 大和王朝 5王

 

加倻王族(金氏)이 列島에 세운 大和王朝 5王을 定理해 보면 다음과 같다. 初代 讚王은 日本書記의 應神天皇으로 390년 卽位 426년 歿했다. 2代 珍王은 日本書記의 珍彦으로서 426년 卽位 늦어도 443년에 歿했다. 3代 濟王은 늦어도 443년에 卽位하고 462년에 歿했다. 4代王으로 알려진 興은 世子로 끝나고 王이 된 적 없으며 역시 462년 정도에 歿했다. 5代 武王은 462년 정도에 卽位하여 479년까지 在位했다고 보아야 한다. 大和王朝는 正確히 390년부터 479년까지 90年間 存續했고 그 後에 加倻王族으로서 大和王朝 出身인 東成大王이 百濟王이 되므로서 列島가 加倻의 後身이기도 하고 百濟의 一部이기도 한 妙한 過渡期가 23年間 있었고 東成大王이 歿한 뒤 武寧王부터 列島가 百濟領(百濟 餘氏王室 基準)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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