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흉노입니다.. 아래의 글은 KBS 역사스페셜에 '강기원'님이 질의하신 내용입니다..미쳐 허락을 받지않아 실명을 그대로 전제합니다..그 아래에는 흉노가 올렸던 답글입니다..당시 '대화방'에 있던 중이라..십분만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써내려..그리 명쾌한 글은 되질 못합니다.. 현재 '김상'님의 견해를 바탕으로 '왜'의 정체에 대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나..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몇차례 개념의 정리를 위하여 글을 올린 적은 있으나 아직은 서로 연결이 매끄럽지 못합니다..차후에 정리된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왜'는 한반도에 있었다> - 강기원님 임나일본부설의 원인이 되었던 광개토대왕비. 거기엔 왜가 신라를 침략했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그당시 일본은 신라를 침략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록상의 왜란 어디일까? 역사스페셜에서는 왜를 고구려가 과장하기 위해 그랬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역사스페셜에서도 방영한적이 있는 나주반남 고분에 눈을 돌려보자. 나주반남고분의 형태와 유물은 일본의 것과 유사하다고 나와있다. 중국의 고기록에도 왜가 한반도에 있다고 나와있다가 나중에 다시 일본열도에 있다고 나왔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도 왜가 백제나 신라를 자주 침략했다는걸 알수 있다. 또한 여러분도 박제상의 이야기를 알것이다. 신라가 왜에 인질을 보냈다는 사실. 신라가 왜에 인질을 보낼정도로 왜가 강했다는게 믿겨지는가? 중국의 고기록에 왜가 한반도 남부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한게 있다. 그에 대해 중국측은 왜와 친한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를 왜의 소속으로 인정해주었다. 이는 왜가 강대했다는 또 다른증거다. 이문제에 대해 역사스페셜측에서는 명쾌한 해답을 해주길 바란다. <'왜'와 '일본은 엄연히 다릅니다> - 흉노 안녕하십니까..흉노입니다.. 아마도 동아시아 고대사에서 가장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존재가 바로 '왜(倭)'가 아닌가 합니다..그러한 '왜'의 정체는 시대와 장소, 서술하는 국가에 따라..다르게 기술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엄청난 역사의 왜곡을 초래하기도 합니다..몇 가지 정리를 해봅니다.. 삼국사기 신라기에 나오는 '왜'는 서기 5세기에서 6세기로 넘어가는 시점까지와 그 이후의 정체가 각각 다릅니다.. 그 이전의 '왜'는 신라의 남쪽에 접해있으며, 규모가 크지 않으며, 선단을 이용하기도 하는 신라의 가장 큰 적국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그와 같은 기간의 백제, 고구려, 가야의 기록에는 그러한 '왜'라는 정체에 대해 단 한번의 기록(광개토태왕비)만이 나타난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데서..그 정체가 누구인지를 짐작케 해줍니다.. 그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그러한 '왜'의 기록이 진흥왕대에서 사라진다는 것인데..바로 '가야'를 붕괴시키는 것이 그것입니다..'일본서기 흠명조'에 나오는 가야의 멸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결국, 삼국사기에 나타나 신라를 괴롭힌 '왜'는 '가야'입니다..이렇게 '가야'가 '왜'로 나타난 이유는 바로 그 곳이 '왜'가 살던 곳이고 '가야'가 '왜'로 구성된 나라였기때문입니다.. 예전부터 한반도의 남쪽은 남방계가 살았고 그들은 '왜'라고 불렸습니다..그러나 같은 '단군조선'의 영향아래에 있어 동일한 문화권에 있었던 그들은 '단군조선'의 몰락과 함께 밀려온 북방의 세력에 밀려 '열도(현재의 일본)'으로 도래하고 그와 함께..많은 소(小)세력을 형성합니다..그에 반해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남방계의 '왜', 북방의 신라, 삼한, 가야, 백제의 지배세력이 함께 공존한 것입니다..그것이 현재까지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왜'라는 정체가 '열도'의 '왜'일수도 있고, 한반도 남부의 '왜'가 될수도 있게되는 이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에 나타나는 이 '왜'라는 정체는 현재의 '일본'과는 별 상관이 없는 또는 현재의 한민족과 일본인 모두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므로..'왜'='일본'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나주등의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의 형태는 당연히 일본의 유물과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유물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발견된 유물일 뿐입니다.. 단, '광개토태왕비'의 '왜'는 아직은 '가야'라고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당시의 '가야','백제', '왜(열도)'왕조는 서로 연합을 하는 관계였고..그 상황에서 고구려의 신라 지원이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고구려의 입장에서 신라에 있었다는 '왜'는 열도에 있었던 '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열도의 '왜'는 독자적으로 신라를 칠 능력이 돼질 않았다는 것입니다..'백제', '가야'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남조에 '왜'가 국서를 보내 지배권을 요구합니다..'왜'가 요구한 것은 바로 '왜','신라','임나','백제','모한(마한)','가야','진한'입니다..살펴보시면, '왜'가 '왜'의 지배권을 요구합니다..이게 무슨 까닭입니까.. 7세기 까지 열도는 수많은 분국이 있었기에 '일본서기'에도 그 정복내용이 나옵니다..즉, 당시 열도에 있었던 '왜'왕조는 누구의 지배권을 요구하고 말고할 능력이 돼질 않았습니다.. 결국, 지배권을 요구한 '왜'는 열도에 있었던 '왜'왕조가 아닌 위의 7개국에서 빠진 '변한'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 알수있는것은 '왜'왕조가 스스로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불렀겠는가..하는 것입니다..'왜(倭)'라는 것은 '속칭'입니다..국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즉, 여기서 두가지 사실을 추측해낼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당시의 남조에서 국서를 보낸 나라('변한'이라고 추측됨)를 비하해서 '왜'라고 하였고 또 하나는, 그 대상이 된 열도의 '왜'왕조 역시 지배권을 요구한 나라('변한'이라 추측됨)에 의해 '왜'로 비하된 것입니다.. 이상으로 '상고사학회'에서 활동하시는 '김상'님의 견해를 바탕으로 짧게 정리해보았습니다..허락없이 '김상'님의 견해를 인용하여 죄송합니다..잘못 이해한 것이 있다면..지적 바랍니다.. 흉노는 이만 물러갑니다.. <'왜'와 '일본'관련 질의 답변> 안녕하십니까..흉노입니다.. 海星님, 김두현님의 질문에 답글합니다..한가지 양해를 구하고자..하는 것은 저 역시..역사에 이해가 짧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입니다.. 우선, 제글에서 밝혔듯이 '왜(倭)'라는 것은 현재의 '일본(日本)'과 다르다는 것입니다..앞으로..최소한 5가지의 '왜'로 구분하여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문의하신 '왜'='가야'의 여부에서..'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흉노의 글에서 나오는 한반도의 '왜'입니까..열도의 '왜'입니까..그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정답은 BC 1c-AD 6c, 한반도의 '왜'입니다..'가야'가 일본이다..는 얘기가 아니라..당시 신라가 말하던 '왜'가 '가야'라는 것입니다..그러한 이유로..그 기간에는 백제나 고구려의 기록에 '왜'라는 존재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 두 번째로, 당시(3c-5c)의 정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반도는 '단군조선'의 붕괴이후에..열국의 상태였습니다..그러던 것이..백제, 신라, 가야의 확장으로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이 글을 살펴보면, 使持節 都督 倭 百濟 新羅 任那 加羅 秦韓 募韓 七國 諸軍事 安東大將軍 倭國王 왜가 지배를 요구한 나라 - 왜, 백제, 신라, 임나, 가야, 진한, 모한(마한) 위와 같이 서기 5c에 중국의 남조에 있던 '송'에 '왜'가 7개국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합니다..여기서..몇 가지 힌트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서기 5c에 어떤 나라가 존재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인데..살펴보면..먼저 눈에 띄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임나'와 '가라'가 아닐까..합니다..흔히들, '임나'와 '가라'가 같다고 보시거나..혹은 '가야'는 하나였던 것으로 알고계시지만..'가야'는 이미 3c에 멸망하고 없어집니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삼국지 위지'에서 '가야'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망했다고 알려진 '변한'이 있습니다..이 점이 분명 '삼국사기'에 1c로 나타나는 '수로왕'의 '가야'를 3c이후로 끌어내린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야'가 3c이전에 멸망하고, 후에 '임나'가 5c에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나라이고..'임나'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나라였다면..고고학적으로 발굴되는 유물의 차이가 충분히 뒷받침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앞에 나타난 그 자료는 무엇입니까..어째서..이미 멸망한 '가야'의 지배권을 요구하겠습니까.. 또 한가지, 그렇다면 그 '송'서에 나타나 지배권을 요구한 '왜'는 누구이며, 그 대상이 되는 '왜'는 또 무엇입니까..당시 5c의 열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5c는 '응신'천황(15대)의 시대입니다..'응신'천황은 실질적으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최초의 '왜'지배자입니다..그 이전의 인물들은 초대천황인 '신무'천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공이며, '신무'천황또한 '응신'천황의 초반기를 그대로 빌려간 가공의 지배자 입니다.. 즉, 1대는 차용, 2대부터 9대는 가공, 10대부터 14대는 그 이전의 소국에서 차용하였다는 것입니다..어째서 이러한 왕계가 탄생하겠습니까..바로, '응신'천황의 시대가..그러한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서기 응신7년조(396)에 나타나는 '가을에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에서 사람들이 도망왔다'라는 기사에서 미루어 그 도망온 사람중에 바로 '응신'천황 자신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즉, 당시의 '왜'는 한반도에서 고구려에 패하여 밀려난 어떤 집단의 망명정부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그러한 망명정부가 중국의 '송'에 한반도 7개국의 지배권을 요구합니다..그리고 그 7개국중에는 이미 멸망한 나라도 속해있습니다..그리고, 그 망명정부가 또 다른 '왜'의 지배마저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위의 '송'에 지배권을 요구한 '왜'는 '응신'천황에서 '인덕'천황으로 이어지는 소위 <인덕계>라 불리는 시기입니다..그리고 그 시기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임나등과 겨루다 열도로 밀려난 어느 세력의 망명정부였습니다.. '일본서기'에 7c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점과..당시의 '왜'는 현재의 오사카-도쿄 인근만을 다스리던 소국으로,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에도 미치지 못하던 미미한 세력이었다는점.. 당당히 세력을 다투다 열도로 밀려난 그들이 형식적이고 전혀 쓸모가 없었던 '송'에게 지배권을 요구한 것은 그러한 심리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합니다.. 결론적으로, 지배권을 요구한 '왜'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요구한 나라를 존속여부에 관계없이 나열한후 그 지배권을 얻어내어 자존심을 회복하려 한것이 아닌가..합니다..결국, 그 '왜'는 그 지배권 요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망해버린 그들의 나라'변한'이었다는 것이 됩니다.. 제가 올린 내용은 '상고사학회'에서 활동하신 '김상'님의 견해를 바탕으로 흉노의 개인적인 추측도 섞여있습니다..잘못이해한 부분이 있다면..지적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사운더'님의 '삼국사기 편집원칙'과 그에 흉노가 질문한 내용, 답글이 있으니..살펴보시면..복잡한 고대사의 개념이 차차 정리되시리라..생각합니다.. 흉노는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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