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리안 루트와 한국인
십수년 전인가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에스키모 가족의 흑백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 100년 전 할아버지·할머니 모습과 너무나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다. 이후 미국의 원주민(Native American) 인디언 박물관에서 접한 인디언들의 생활모습에서도 까닭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구전(口傳)된 민속노래(folk song)가, 어렸을 적 우리 시골에서 접한 노동요나 제례요(祭禮謠)와 너무나 흡사했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어~어 어~어’로 시작되는 노래는 우리 농촌에서 죽은 사람의 상여를 메고 나갈 때나 입관식을 할 때 부르는 제례요와 100% 같았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미국 대륙을 더 내려가 만난 멕시코인을 비롯 중·남미인 중에도 찢어진 눈매를 비롯한 얼굴 생김새, 표정, 동작, 체격이 영락없는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 이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에 이민간 동포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한 아르헨티나 동포는 “고산지대에 갔더니 우리와 똑같은 생김새에 생활습속도 비슷한 원주민들을 만났는데 놀랍게도 성이 김씨더라”고 전했다.
의문은 몇년 후 풀렸다. 한국인의 원류(源流)인 북방몽골계가 수만년 전 시베리아~베링해협(과거에는 육지)~알래스카~북미~중·남미로 이동하면서 지금 에스키모, 인디언, 인디오들의 조상이 됐다는 연구 자료들을 접하면서였다. 결국 우리 모두는 수만년 전, 지금 바이칼호 부근 어느 곳에서 함께 살았던 조상들의 ‘한 뿌리’ 자손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수많은 세월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 오면서 많은 변화가 이뤄졌지만 한국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해 비교적 단일혈통과 습속을 유지할 수 있었듯이 미대륙 혹한지대나 고산지대에서 동화를 거부하고 전통적 삶을 고수한 원주민들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기자가 에스키모나 인디언에게서 느낀 동질감은 수만년 전 ‘한뿌리’였다는 동류(同類)의식을 본능적으로 포착한 것이자, 그 장구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수만년 전 조상들의 생활 습속과 유전인자가 지금껏 완강하게 후손들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다.
문화 인류학적으로 몽골지역에서 시베리아 미국으로 뻗어가는 ‘몽골리안 루트’에 관해선 많은 연구가 돼있다. 그러나 지구촌 다른 곳 즉 몽골에서 남진해 티베트 고원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주변으로 펼쳐지고 궁극적으로는 인도양·태평양으로까지 확산되는 또다른 ‘몽골리안 루트’에 관해선 아직 연구가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티베트 역시 우리 북방 몽골계로 언어, 체격, 습속 여러 면에서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곳은 지역적으로 서역·동남아시아를 향한 ‘관문’ 구실을 하는 바람에 여러 종족·문화와 많은 교류가 있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접하는 네팔의 경우 왕족은 무사계급으로 역시 몽골계다. 네팔 몽골계 중 날래고 산을 잘 타 한국 등반대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세르파족의 경우 단일혈통을 유지한 덕분에 한국인과 매우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역시 국경을 접한 미얀마는 물론, 동진(東進)해 접하는 베트남·라오스·태국 치앙마이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 사는 고산족들 중에서도 ‘코리안’과 비슷한 몽골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 반점을 지니고 있고 한복 비슷한 차림에 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 그들이 말하는 방언에서도 우리 언어와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남부 아시아 지역에서 지금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종족은 부탄 사람들일 것이다. 이곳은 사면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자 오지(奧地)로, 다른 곳에 사는 몽골계보다 훨씬 주위 환경에 덜 동화된 채 북부 몽골계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탄과 미얀마 사이 인도 동북부 산악지대에 사는 나가(Naga)족들 역시 우리와 같은 몽골계로 앞으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이같은 북방몽골계 연구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몽골인들이 워낙 강인하고 생명력이 질겨 칭기즈칸 시대, 중국의 청나라 시대 등 인류사에 굵직한 족적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그 몽골계 중에서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서양인들의 시각이 아니라 바로 한국인의 주체적 시각으로 몽골계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면 그만큼 우리가 누구냐는 데 대한 정체성·주체성 연구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함영준 주간조선 편집장 yjhahm@chosun.com)
출처: 주간조선2002.11.28. 17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