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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중국·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역사 암살한 역사해적 [1]

송화강 2019-05-05 (일) 17:17 6년전 9779  

중국·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역사 암살한 역사해적 [1]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3-05-11 23:59:42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역사 도둑질에 망언을 언제까지 지켜보나
 
지금 중국은 아세아 20여국과 역사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 고대사 말살을 위한 동북공정도 완성단계다. 중국은 이제 왜곡·변조한 역사를 갖고 박물관까지 지어 개관하며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왜곡한 우리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뒤집어 홍보하고 또한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역사가 실제로 5%밖에 되지 않아 우리 역사를 도둑질한 중국이다. 온전한 우리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며 엄청난 역사변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지금까지 실증적으로 살펴보아 왔다. 일본 또한 교과서에서 자신들이 열등한 반면 우리가 선진국이었던 사실을 감춘 채 그릇된 역사관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참담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일본은 우리의 자존감을 패배감과 열등감으로 바꿔놓으며 자신들의 우월감을 심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우리를 멸시하는 적반하장의 역사책을 발간해 학생들에게 노골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한심하고 못 말리는 족속들이라는 막가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 학노(學奴)들마저 이를 추종해 우리 선조의 역사를 잘라낸 사실을 바보처럼 따르고 있다. 우리 선조의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를 암살(묵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위다. 오늘은 일본의 망언과 관련한 시론(時論)으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일본의 막나가는 망언과 역사왜곡이 관련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조선침략 후 총독부가 서자 우리역사 말살을 위해 ‘조선사편수회’로 하여금 1만년의 우리 역사를 절반 이하로 잘라냈다. 일본은 우리가 그들에게 앞선 문명을 전해준 은혜를 저버리고 진실을 숨기며 식민지 침략을 미화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아직도 씻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사학계의 주류는 일제의 ‘조선사편수회’가 왜곡·조작한 역사만을 사실인양 믿고 연구는 하지 않으며 우리의 역사를 망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너무 많음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최근의 아베신조(安倍晉三) 일본수상이 상식이하의 망언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된다. 왜 이들이 우리가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는 하지 않고 원수로 갚고 있는가. 한번 생각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해서 역대 수상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야마구찌(山口縣) 출신들이 더욱더 반한감정을 심하게 갖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은 고대 백제, 고구려, 가야, 신라, 발해가 멸망하자 유민으로 간 한민족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백번 다시 태어나도 그 골수에 박힌 유민이 된 한(恨)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을 고칠 자들이 아니다.
 
일본은 유민이 된 한을 잊지 않은 가엾은 민족인가
 
지금의 일본인은 거의가 우리나라에서 유민(流民)으로 간 후손이다. 따라서 아직도 본국에 대한 원한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고대부터 많은 은혜를 베풀어도 그들은 언제나 기회 있을 때 마다 우리를 원수같이 여겨온 배경이다. 중국과 일본은 일찍부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지배를 받아온 것에 대해 자존심의 상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역사왜곡과 변조를 통해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뿌리 채 뽑는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이유다. 우리의 고대사를 인정하는 순간 지금의 자긍심을 온전히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왜곡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를 새김질해야 한다. 우리는 고대부터 중국과 일본에 선진 문화를 전해 주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문화가 꽃 피워질 수 있었고 일본 역시 오늘의 일본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은 조선조 때 1607년 이후 12번의 조선통신사를 통해 한·일 교류를 하면서 우리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였다. 오늘의 일본이 가능한 역사적 사실이기에 이를 망각하면 안 되는 일본이다.
 
조일전쟁 후 일본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게 되고 이를 위해 엄청난 예산과 ‘조선가도(朝鮮街道)’까지 만들어 환대했다. 이 도로는 조선통신사와 도쿠가와 장군(德川將軍)만이 사용하는 길도(吉道)다. 다이묘(大名)나 당시 네덜란드 사신이 빈번히 일본을 오고 갔으나 이 길을 통과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의 통신사 사신들을 일본은 극진히 맞이했다. 그러나 일본민족은 조선에서 건너간 유민이기에 언제나 본토인 한국을 호시탐탐 노렸다. 왜구의 숱한 노략질과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임진년 ‘조일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임진왜란에서 대패한 것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이순신장군에 대한 연구를 200년 동안이나 치밀하게 했을 정도다. 그런데 조선침략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이 일본 야마구찌(山口縣) 출신들의 정치인들이다. ‘요시다 쇼인’(吉田 松蔭)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해서 ‘사이고 다가모리’, ‘기시 노부스케’나 ‘사도에이사구’, ‘아베신조’(安倍晉三) 등이 모두 야마구찌(山口縣) 출신들이다. 이들은 지금도 일본 내 반한감정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으로 조선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이들 일본의 반한 보수파들은 지난날 무력에 의한 침략을 감행했고 지금은 일본 정계에 깊이 우파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 왕이 사과한 것도 사과가 아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나 실제로 우리에게 유익을 준 때가 없다. 우리는 고대에서부터 일본을 어미가 아이의 젖을 먹이며 키운 것 같이 은혜와 위엄으로 대해 왔으나 일본은 과거 자신들의 유민이 된 원한을 골수에 품고 그 반대의 행위를 일삼아 왔다. 그런데 일왕이 조선 침략과 침탈행위를 사과한다며 ‘통석’(痛惜)이라는 표현을 했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자원(字源)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상반된다. 대자원(大字源)에 나와 있는 통석(痛惜)을 보면 통석(痛惜)은 중국 위(魏)나라 문제(文帝)가 ‘미지불수 양가통석’(美知不遂 良可痛惜)이란 문구에서 최초로 유래됐다. 일본은 이를 인용했다. 이 말의 뜻은 ‘훌륭한 뜻(美知)을 이루지 못했으니 참으로(良可) 애석(痛惜)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통석하다는 것을 일본 측 입장에서 바꿔서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그 속내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의 훌륭한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참으로 애석하다’는 의미가 된다. 신문에나 TV에서 일왕이 사과했다고 하는 보도를 자주 접하며 다시 이 글을 쓰게 되는데, 우리는 통석이란 말을 예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일왕이 사과를 함에 있어서 일본은 학자들의 자문을 구해 통석(痛惜)이라는 입장을 우리에게 전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사과했다고 하지만 이는 우리를 얏 잡아 본 얄팍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통석이란 말을 쓰게 한 사람은 일본의 대표적 작가(作家)인 이노우에 야스시(井上 靖)다. 이노우에(井上)보다 앞서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가 자문을 했다. 일본은 시정문(施政文) 등의 작성시에 반드시 자문하는 것이 관례다. 이 같은 통석(痛惜)이란 뜻을 갖고 사과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본의 언어사술(詐術)에 말려든 것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이 언급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그 이면을 살펴보고 그 진위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지금 일본의 정치권과 우익 보수층의 행태를 보면 일본이 진정 사과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미국의 작가 죠지 산타야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고 했다. 일본의 언어상 이중적 구사를 분석하고 우리가 제대로 알고 이런 표현에 대한 말을 신중히 곱씹어 봐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반 지성주의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가치체계의 혼란이 점증하고 있다. 사실상 가치표준을 상실 한 상태다. 막스 웨버는 “국민수준 이상의 정부를 갖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 국민들도 사이비 정치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정도를 걷도록 해야 할 소명을 다해주기를 소망한다.
 
우리 또한 크게 각성해야 할 것은 첫째가 정치권, 둘째가 언론, 셋째가 교수(학자)사회, 넷째가 관료집단, 다섯째가 재벌이이다. 우리 모두에게 진정성 있는 더 큰 애국심과 민족애가 더 기대되는 오늘이다. 21세기 지식사회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지적 충만이 수반돼야 한다. 여전히 역사적 소명의식을 외면한 정치철새들이 소신이 없는 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도 공정하지 못한 채 편향보도를 하고 있지 않다고 자부 할 수 있는가. 교수사회도 사회정화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가 의문이며, 관료집단은 일본과의 대좌에서 단 한번이라도 우위에 서서 일본이 우리를 얕잡아보지 못하게 했는가 묻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일제의 잔재를 씻었는가. 일본이 우리의 가치관을 변질시킨데 서 나아가 우리의 공동체의식이나 연대의식 역시 빈약한 상황을 보면 일본이 우리를 얕잡아 보고 제멋대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일본의 망언을 지켜봐야 하는가. 한·일 양국 간에 분란만 일으키는 일본에 대해 그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모든 조약의 폐기를 시작으로 새 출발을 하는 새 구상을 바로 세우고 우리의 국가기틀을 튼튼히 다져가야만 한다.
 
아울러 모든 국민들 각자의 분발도 기대한다. 이제부터라도 민족사관에 입각해 우리 역사를 도둑질한 역사해적인 중국과 일본의 왜곡·변조를 막아야 한다. 이는 올바른 역사교육과 시민정신에서 출발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한 기강(紀綱)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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