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국정교과서에 잃어버린 상고사 제대로 수록돼야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매달린 논란은 필자를 불쾌하게 하고 경악하게 한다. 이들의 행태는 애국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추태를 벌이는 것 같아 보기가 좋지않다. 우리는 조국광복 70년이 됐지만 역사교과서는 일제가 던져준 그 수준을 못 벗어나지 못한 채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의 상고사를 제대로 교과서에 수록해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모두 배제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매장한 채로 살아왔다. 일단의 세계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이) 있는 역사도 수록하지 않은 나라’라고 질타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사학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새 국정교과서에서는 엄연히 존재한 우리의 상고사를 수록하고 그 실체를 밝혀 우리 역사가 얼마나 유구하고 찬란한가를 세계에 알리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식민사관을 맹종하는 자들은 중국의 사서(史書)나 삼국지의 허구 위서(僞書)를 근거로 고대사를 쓰며 학자연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찬다. 중국의 시조라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어느 민족이며 어느 나라 사람인 것을 모르고 중국이 위조하고 일제가 심어 놓은 반도사관의 책을 쓰고도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면 구역질까지 난다. 이런 자는 학자도 아니며 식민사관의 노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세계 역사학자들이 격찬을 하고 있는 우리 역사를 방치할 수 없다. 식민사관이 갖고 있는 콤플랙스를 갖고 추종하는 것은 우리선조에 대한 모욕이고 나아가 범죄행위다. 이번 칼럼은 계속해서 예맥의 진실 된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대륙 많은 민족 대표한 예맥, 진(秦)·진(晉)·한(漢) 등 화학족(華夏族) 국가들 지배
중국은 동북공정 등을 통해 우리역사를 뒤엎고 고대사를 제멋대로 구성하려 하나 그것은 해적행위다. 그들은 상고사가 없기에 우리선조를 모셔가는 일까지 벌이고 조작하며 고대 대륙의 세계를 자기들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들은 중국 내의 민족을 폄하하며 역사를 편집하고 있으나 뜻대로 될 수 없다.
고대 당시 중국에는 9종(種)의 구이(九夷), 8종(種)의 적(狄), 7종(種)의 융(戎), 6종(種)의 만(蠻)이 있었다. 고대 중국은 예맥, 월씨(月氏), 제의(諸衣), 전구(旃裘) 등 유목민족과 중국을 통일한 진(秦)과 모든 제후(諸侯)를 제패한 진(晉) 등이 공존했다. 당시 예맥(銳麥=濊貊)이 모든 민족을 대표하면서 중국과 일승일패(一勝一敗)의 패(覇)를 다투었다. 당시 예맥은 진(秦), 진(晉), 한(漢)은 물론 식민사관론 자가 내세우는 허구의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등과 병립(竝立)하며 한족(漢族)을 정벌·정복하고 제압했다. 예맥은 1천여 년 동안 중국의 여러 나라와 싸워 거의 중국을 호령한 강대한 나라였다. 어느 중국의 한족(漢族)에도 밀리지 않고 중국을 호령했는데, 이는 예맥조선이 이들 중국의 나라보다 강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기질은 호전적이고 용맹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예맥(銳麥=濊貊)이 이렇게 강성한 이유는 우리가 선진무기인 철제 고시(楛矢), 석족(石鏃)과 기동성을 갖춘 기마민족(騎馬民族)의 용맹함이 다른 민족과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철의 문명을 먼저 발견 한 점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의 발견으로 인류사상 최초에 철제 무기를 갖고 이민족(異民族)을 정벌·정복 제압 할 수 있었다.
세계 5대문명 시발 요하문명…황하문명도 편두직모·상투·새의 깃 등 배달 한민족 방증
이러한 앞선 문명은 황하문명보다 2000년 앞서 요하문명을 탄생시키고 고대문명을 선도한다. 서기전 3800년경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서기전 3200년경의 이집트 문명, 서기전 3000년경의 그리스 문명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서기전 2500년경의 인도문명을 촉발시킨 문명의 원류였다.
서기 2000년 경 황하문명의 경우는 특히 우리 한민족이 일으킨 문명인 것을 세계 인류학자들이 잇따라 인정하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을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인종인 편두직모(偏頭直毛=뒷머리가 납작하고 곧은 머리털)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한 상투를 틀고 머리에 새의 깃을 꽂고 다니며 하늘 백성임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 밝은 땅(밝달, 배달)의 나라에서 문명이 태동했다.
이처럼 세계 5대문명이 우리 한민족에 의해 주도 된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리한민족이 문화민족으로 등장하고 인류사상 최초에 강대족으로 찬란히 발전한 배경은 우연이 아니다. 예맥 역시 북방의 한민족(韓民族)이었다. 유목민족이었던 이들은 중국대륙으로 나아가 중원에서 역사적 민족으로 등장, 타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했던 것이다. 이러한 한민족의 기상(氣象)은 고려시대 몽골이 세계를 정복했지만 그들의 침입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한 민족정신에서도 나타난다. 당태종과 징키즈칸 마저도 ‘한민족은 인력으로 침략할 수 없고 천신(天神)의 능력이 아니면 이겨낼 수 없다’고 경탄해 마지않을 정도로 강한 민족성을 지녔다.
예맥(銳麥=濊貊)은 4300년 전 나라를 세운 숙신씨(肅愼氏)를 계승하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보다 먼저 건설해 1천여 년 동안 강대한 활동을 한 것이 판명됐다. 재언컨대, 기자조선은 순수한 한족(漢族)의 집단이요 단군조선을 계승치 못했고, 또한 위만조선(衛滿朝鮮) 역시 순수한 한족(漢族)의 집단인 기자조선(箕子朝鮮)을 탈취한 것이요 우리 한민족(韓民族)을 침략하지 못한 것이 판명됐다. 단지 한무제(漢武帝)가 한족(漢族)의 집단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정복해 사군(四郡)을 설치한 것 뿐이다.
사료기록 곳곳에 서려 있는 고조선 계승 예맥조선, 후예 부여와 고구려도 강대국 떨쳤다
중국은 우리 고조선(古朝鮮)을 순수한 한족(漢族)인 기자조선(箕子朝鮮)이 계승했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날조다. 기자조선이 단군조선을 계승치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또한 위만이 기자조선을 탈취했으나 고조선을 침략치 못했다.
중국대륙을 호령하던 예맥조선(銳麥朝鮮)을 계승한 것이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이고 이들 부여와 고구려도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것도 모두 판명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 단군조선(檀君朝鮮)도 절반을 지우고 부여(夫餘)부터 한국사를 구성해 단군조선이 부여로 계승된 양 주장하고 있으나 아니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계승한 것은 부여(夫餘)전에 바로 예맥이 있었다.
중국은 우리의 역사자료를 거의 모두 없앴지만 지리지(地理誌)인 산해경(山海經)만은 지리지(地理誌)이기 때문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 지리지가 역사의 진실을 말해 준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부여국(夫餘國)이 예맥(銳麥)의 고지(故地)’라고 분명히 적시했다.(山海經, 第十一, 海內書經). 또한 진서 부여전(晉書 夫餘傳)에는 그 왕이 인문(印文)에 예맥왕(濊貊王)의 인(印)이 있고, 국중(國中)에 예맥의 성(城)이 있는데 본래 예맥(銳麥)의 땅이라 했다. 삼국지 부여전(三國志, 夫餘傳)에 선대(先代)로부터 전해 온 옥벽규찬(玉壁珪瓚)에 예맥왕(銳麥王)의 인(印)이 찍혀 있다고 했다. 이 같이 중국은 예맥을 지우려 했으나 예맥은 곳곳에서 그 자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맥(銳麥=濊貊)에 대한 일화(逸話)는 이밖에도 곳곳에서 면면히 발견 되고 있다. 후한서 동이전(後漢書, 東夷傳)에는 ‘예맥의 노인들이 예맥은 고구려와 종(種)이 같다’고 언급하면서 일명(一名) 맥이(貊耳)라고 했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킨메이덴노(欽明天皇, 536~571) 15년 12월조(條)에 예맥(銳麥=濊貊)을 박(狛)이라고 칭했다. 박(狛)은 바로 예맥(銳麥=濊貊)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 기록들은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가 예맥조선(銳麥朝鮮)을 계승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상고사를 종합하면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을 이은 고조선(古朝鮮)시대 숙신씨(肅愼氏)를 계승한 예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고조선 이후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계보(系譜)는 고조선과 이 시대의 숙신씨(肅愼氏), 예맥, 부여, 고구려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이 같은 계승은 이어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 고려(高麗), 조선(朝鮮),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계승·발전된다. 이제 사대주의 식민사관의 역사가 위조된 것을 가르치고 배워온 것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이번 국정교과서를 계기로 상고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 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 ·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南帝 ‘命理속의 哲學’,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