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1500년 전까지도 중국대륙 지배한 한민족
중국은 배달국 고조선, 고구려 말엽까지만 해도 황제제도 등 모든 문물제도는 물론 문화적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훨씬 못 미친 후진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의 군사력만 해도 중국 본토는 물론 동부 아시아대륙을 지금부터 1500년 전 까지도 압도적으로 지배해 온 강국이었다. 중국이 예맥(銳麥)의 용맹을 감당하지 못해 예맥(銳麥=濊貊)의 국명까지 짐승의 한자를 붙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예맥의 지배하에 한(漢)나라는 물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우리와 맞설 수 있는 국력이나 능력이 없었다. 특히 부족국가 수준의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은 우리와 맞설만한 상대가 전혀 아니었다. 오죽 했으면 외국의 학자들 까지 우리 교과서가 채택하고 있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창해군(蒼海郡), 한사군 등의 설치는 모두 허구라고 외치고 있다. 이 모두가 한(漢)나라와 오늘의 중국이 꾸며낸 것으로 사실과는 전혀 다른 위조·조작이다. 고조선(古朝鮮)의 경우만 해도 ‘군사민주주의 형 고대국가’(軍事民主主義形 古代國家)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1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거듭 자각해야 한다. 미국의 고고학자 죤. D. 클라크 박사는 “1981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방사선 탄소측정 한 결과 그 상한선을 구석기 초기 270만 년 전에서 70만 년 전 문화로 인정 된다”고 했다. 그는 이 시대부터 우리 한민족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근거로 아시아 전반에 걸쳐서 살아 왔음을 고증하고 있다. 특히 현재 중국의 동북부 및 만주 일대, 한반도를 근거로 한 토착 민족이 우리 선조들이라는 것이다. 요하문명(紅山文化)이 그것을 입증한다. 우리 선조들은 만주, 몽골, 시베리아, 중국, 터키, 인도 동남 등 넓은 지역에 종주족의 주류를 이루어 동양문명의 창조자 역할을 하면서 독자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번 칼럼은 우리 민족의 분포와 문화사상 및 문물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한민족(韓民族)…인류학-몽골인종, 언어학-우랄·알타이어, 역사학-환족(桓族=韓族)
우리는 흔히들 우리 한민족을 단일민족이라고들 하고 있으나 그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인류학적으로는 몽골인종에 속하고, 언어학적으로는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역사적으로는 환족(桓族, 韓族/배달민족, 조선족)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 환족(桓族=韓族)은 구환족(九桓族), 九황족(九皇族), 구려족(九藜族), 구이족(九夷族), 동이족(東夷族)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숙신족(肅愼族), 예맥족, 부여족 등의 시대적 국명 또는 지역적인 호칭이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무려 194개의 호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특히 구려(九藜), 구이((九夷), 동이(東夷), 예맥(濊貊), 학(貉)이라는 호칭은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부르는 칭호(稱號)다. 당시 강력한 단군조선의 제후국(諸侯國)들에 대해 중국이 자신들의 나라라고 하지만 순(舜), 상(商)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 또한 은(殷) 역시 단군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이었다. 중국이 내세우는 나라들이 거의 모두 우리의 한민족이 세운 나라들이었다.
은(殷)나라는 우리 한민족의 전통에 따라 의(義)를 숭상했다. 의(義)를 위해서는 왕위(王位)나 황위(皇位)의 위엄(威嚴)까지 안중에 없는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와 효자의 모범이라는 소련(少蓮)과 대련(大蓮) 형제도 모두 동이족이고 단군의 조선사람 들이다. 고대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이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 조상들이 선진문화인인데서 기인했다.
환족(桓族=朝鮮族=東夷族)…산동반도 중심 중국 대륙 전역과 한반도가 주요 밀집지
환족(桓族, 朝鮮族, 東夷族)의 주된 밀집지는 산동반도였다. 아울러 요서지방, 발해 연안, 요동 송화강 유역과 한반도 등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남으로 해대지(海岱地)로는 등주(登州)에 우이(嵎夷)가 있었고 춘추시대 래주(萊州)에 래이(萊夷)가 있었으며 거국(莒國), 개국(介國), 근모국(根牟國) 등이 있었다. 해상에는 도이(島夷), 회이(淮夷), 서주(徐州)에 서국(徐國)이 있었는데, 서국왕(徐國王)인 서언왕(徐偃王)은 중국의 주(周)나라 주목왕(周穆王) 때에 사수(泗水) 일대에 나라를 세워 인의(仁義)로서 선정(善政)을 해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무려 36국이나 됐다. 이에 강소성(江蘇省) 서산(徐山)에 사당(祠堂)이 있어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고대 중국은 주왕(周王)시대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까지도 우리나라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이었다. 당시 중국은 소국가군이 난립된 상태였다. 진시황이 중국을 서기전 221년에 통일했으나 그 진(秦)은 악정(惡政)으로 겨우 41년 밖에 국가유지를 하지 못했고, 우리 한민족의 국가는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됐다. 예맥은 3000년 전에 등장해 1000년 간 중국에 공포의 대상이 될 만큼 강력한 군사력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이 기간 중 한나라도 예맥을 넘보지 못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중국의 은(殷), 진(秦), 전한(前漢), 후한(後漢) 위(魏), 초(楚), 오(吳), 서진(西晉), 오호16국(五胡16國), 동진(東晋), 북조(北朝), 남조(南朝), 수(隨), 당(唐), 요(遼), 북송(北宋), 금(金), 남송(南宋) 시대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은 일이 없다. 예맥과 부여가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고구려가 패망하기 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예맥…황제국 아니었지만 용맹함 떨쳐 두려운 강국 ‘별볼일 없는 국가’ 날조
고대 우리민족이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로 등장한 것이 오늘날 고고학에 의해서 분명하게 판명되고 있다. 그런데 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에 의한 문서역사(文書歷史)에는 천자, 황제의 국가에 예속(隸屬)된 후왕(侯王)의 국가로 위조돼 있다. 예컨대, 4300년 전 대국을 건설한 숙신씨(肅愼氏)는 석기시대에 돌과 철을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하고 만 여리 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해 대국을 건설한 것이 확실한대도 이를 빼어버렸다. 예맥이 등장한 3000년 전은 중국인이 구국(舊國)이라고 하며 떨던 예맥의 역사가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돼 있다. 예맥은 중국대륙의 국가들이 떨던 구국(舊國)이었다. 예맥은 유목민족으로 강력한 무사로 용맹을 떨쳤다. 다만 역대 우리 고대국가들이 모두 황제국가로 황제를 칭했으나 예맥은 용맹했지만 문화가 없었기에 황제국가는 되지 못하고 일반 국가로 남았다.
일제의 반도사관…대륙의 위대한 역사 망각케 하는 ‘한민족의 족쇄’
단군의 역사에 “한민족은 천신의 피를 받았다”고 돼 있다. 이에 중국 문헌에도 한민족이 최초에 천자, 황제의 문물제도를 창안했다고 했다.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伽倻)가 모두 천자(天子), 황제(皇帝)를 칭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보듯 일본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분치지역(分治地域)이었을 뿐이다. 또한 일본 황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흥망에 따라 운명을 같이했다. 즉, 일본의 왕권(王權)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왕족내 지 귀족들에 의해 교체돼 왔음이 여러 역사 자료와 문헌 등이 방증하고 있다. 제국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나라들이 우리 선조들에 의해 일어나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그 주변 제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운명도 명멸을 함께 했다. 지금의 반도사관이 얼마만큼 우리의 족쇄를 잡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영혼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명심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백원·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고조선학회 ‘고조선연구 제1호’,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 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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