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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단군, 민족의 과거이자 미래…짓밟은 일제만행

송화강 2019-05-05 (일) 16:39 6년전 10874  

단군, 민족의 과거이자 미래…짓밟은 일제만행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7-07-22 14:45:02


이을형(250x350).jpg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일제는 침략과 동시에 조선총독부 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둬 철저하게 우리역사 말살을 시도했다. 고대사와 상고사를 없앴으며 관련 자료들을 걷어 들여 분서(焚書)했다. 그리곤 제멋대로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선비(鮮卑)와 역사학자들은 항의·비판·비평 대신 외세에 잘보이기 위한 아첨에 열을 올렸다. 구한말 대학자로 또 의병장으로 칭송되는 유인석(柳麟錫)은 “조선은 중국을 천(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조선보다 중국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毅庵集 二十六 宇宙問答)는 말이나 했다.
 
유인석이 말한 그대로 조선시대의 명현(明賢)이라는 자는 다 중국을 ‘천(天)’으로 받들었다. 중국정부를 ‘천조(天朝)’라 하는 가하면 중국사신(中國使臣)을 ‘천사(天使)’라 존칭하고 중국장성을 ‘천장(天將)’이라 존칭했다. 청구비사(靑邱秘史 一卷, 一面 參照).
 
또한 조선조시대(朝鮮朝時代)에는 왕이 천제(天祭)를 거행치 못하고 천제(天祭)는 중국의 천자만이 천제(天祭)를 거행할 수 있고, 조선은 중국을 섬기는 나라임으로 천제(天祭)를 거행할 수 없다고 했다.(朝鮮王朝實錄 太宗 十四 五月條). 이같이 자학적(自虐的) 역사를 조장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조선사편수회’의 만행(蠻行)에 대해 지금도 식민사학자(植民史學者)는 한사람도 편수회가 조선사를 망치고 있음에도 ‘조선사편수회’에 대한 비평이나 비판은커녕 ‘편수회’가 조작한 그것만이 조선 역사인양 맹신(盲信)하며 일보도 전진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오히려 사학자 아닌 검사출신인 이상시(李相時)변호사 만이 1987년 [단군실사(檀君實史)에 관한 문헌고증(文獻考證]에서 신랄하게 ‘조선사편수회’를 비판했다고. 최태영 선생은 그의 저서 에서 말하고 계셨다.(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60면).
 
한국인이라면 일본이 조선을 망치려고 ‘조선사편수회’가 만든35권의 책에 대해 비판하고 그 책을 당연히 무시해야 함에도 여전히 교육과정에서 왜곡사는 정사로 받아들여진다. 조작의 역사가 모조리 쏟아지고 있음에도 그렇다.
 
일본의 조선사편찬사업은 우리한민족의 역사를 말살하고 일본의 역사를 내세우려는 얼마나 흉악한 만행(蠻行)인지는 바로 알만한데 그 악(惡)의 유령(幽靈)이 한국인 자손들에게 여전히 거짓인지 모르도록 깊이 뿌리박혀 있다. 오늘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보는 고대사(古代史)
 
아직도 일본이 우리에게 끼친 해독을 그대로 입으면서 이에 만족해하며 이를 거짓인줄모르고 속고 있으니 일본의 유령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슬픈 일이며 참으로 통탄할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항한 사실은 우리민족은 4300여 년 전 단군조선은 두말 할 것 없이 건재하고 있었다. 이 시대는 씨족시대요, 부족시대이다. 동시에 신석기시대인데 우리한민족은 이 시대에 돌과 철을 파괴하는 호시(楛矢), 석족(石鏃)과 타민족에게 없는 대궁(大弓)을 발견한 민족이다. 그리고 또한 인류최초에 등장한 역사적 민족이다.
 
당시에는 동서민족이 불과 수백리 안에서 소부락 생활을 했을 때다. 우리 한민족은 만 여리 거리의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한 대민족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단군신화와 한민족의 본원(本源)인 숙신씨(肅愼氏) 역사에 명기돼 있다. 앞서 외국의 석학들도 이미 밝힌 대로 우리민족이 최초에 인간을 발견한 문화민족이요 최초에 경이적인 무기를 발견하고 최초에 무력이 중원에 떨진 강대 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단군신화’에 대해도 살펴 볼 필요를 느낀다. ‘단군신화(檀君神話)’는 한민족의 본원(本源)인 숙신씨(肅愼氏)의 역사를 묘사(描寫)한 것이다. 역사적 신화는 허공(虛空)중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실생활(實生活)을 근거로 나온 것이다.
 
단군신화(檀君神話)와 숙신씨(肅愼氏)의 신화(神話)는 실생활(實生活)과 완전히 부합된다. 단군(檀君)이라는 명칭은 단궁(檀弓)을 잘 쏘는 무사(武士)라는 뜻이다. 그런데 진서각주(晉書각注)에 숙신씨(肅愼氏)가 단궁(檀弓)을 사용했다고 했다.
 
또 단군신화에 한민족(韓民族)이 태백산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단군신화에 한민족이 태백산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중국의 산해경(山海經) 별문(別文)에 숙신씨(肅愼氏)가 백두산에 살았다고 했다.
 
진서각주(晉書각注)에도 숙신씨(肅愼氏)가 백두산에 거주했다고 했고 또 단군신화에 4300년 전에 개국(開國)했다고 했다. 그런데 죽서기년권상(竹書紀年卷上)에 숙신씨(肅愼氏)가 순(舜)25년(4300년 전)에 만 여리(萬餘里)동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 했다고 했다.
 
이는 당시 대국(大國)을 건설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중국의 진서각주(晉書각注)에도 숙신씨(肅愼氏)가 4300년 전에 대국을 건설한 것이 단군이 4300년 전에 개국했다는 신화(神話)로 표현 된 것이다.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단군이 산신(山神)이 됐다 함은 산악(山岳)을 존중하는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 진서(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동북산(東北山)에서 석족(石鏃)을 채취 할 때에 반드시 먼저 신(神)에 기도 한다고 했다.
 
산에서 생산되는 석족(石鏃)을 위해 기도하는 신은 수신(水神), 화신(火神), 일신(日神),천신(天神)이 아니고 산신(山神)이다. 단군신화에 범과 곰이 한 굴에 살았다함은 짐승도 평화를 사랑해 싸우지 아니하고 한 굴에 사는 도덕(道德)이 있다는 뜻이다. 즉 짐승을 존중한 것이다.
 
숙신씨(肅愼氏) “고조선은 같은 한민족의 나라”
 
한(漢)나라시대에 읍루(挹婁)가 옛날 숙신씨(肅愼氏)의 영토에 진출했으나 읍루(挹婁)의 본부는 숙신씨(肅愼氏)의 서쪽에 있다. 고구려가 망한 후에 대조영(大祚榮)이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 오루하(奧婁河)를 점거 한 후, 오루하(奧婁河)가 읍루(挹婁)로 전음(轉音)됐다.
 
즉, 읍루(挹婁)라는 명칭은 오루하(奧婁河)라는 명칭의 변화이다. 숙신씨(肅愼氏)의 일명(一名)이 읍루라 함은 그릇된 것이다. 숙신씨(肅愼氏)는 고조선보다도 앞서 있던 대국으로 저명한 국가이다.
 
그런데 우리는 숙신국(肅愼國)에 대한 것을 지워져 있어 모르고 중국은 단군(檀君)을 지워 없앴으나 이 두개의 고대국가는 국가제도나 인습이 거의 같은 하나다. 중국은 고조선을 말하기보다 고조선을 지우기 위해 숙신국(肅愼國)에 대해 할애(割愛)하고 있음을 본다.
 
예컨대 읍루(挹婁)의 명칭은, 후한서(後漢書)에 비로소 보이고 문화가 발달되지 못해 군주(君主)의 제도가 없고 부락마다 추장(酋長)이 있을 뿐이다. 읍루(挹婁)는 숙신씨(肅愼氏)의 영역에 속한 일 부족(部族)이요 국가의 제도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읍루(挹婁)가 인구가 번식(繁殖)해 각지에 분포되고 숙신씨(肅愼氏)는 점차 쇠퇴해 읍루를 견제치 못함으로 읍루가 숙신씨의 영토에 진출했다. 이러한 유래를 모르고 숙신씨의 일명(一名)이 읍루(挹婁)라 함은 큰 오류(誤謬)이다. (晉書각注 卷九十七, 列傳 六十七 四夷).
 
그런데 동이족 중 4300년 전에 중국문헌에 나타난 것은 오직 숙신씨(肅愼氏) 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단군은 찾아보기 어렵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단군을 지워 찾기 어렵다.
 
중국은 고조선 대신 숙신씨(肅愼氏)를 내세우고 우리나라 역사교재에는 숙신(肅愼)은 지워져 있어 찾기 어렵다. 중국과 일본의 사서를 없애버려 이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요구 되고 있다.
 
중국고사(中國古史)에서도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위(室韋)도 동이족이라 했는데 진서각주(晉書각注)에 동이(東夷)가 100여국으로 분립했다고 했다.(晉書각注 (卷三 帝紀第三). 당시 고조선도 120여의 제후국(諸侯國)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살아진 역사를 복원하는데 상고사와 고대사의 정립이 요구 되고 있고,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은 물론 숙신국(肅愼國)과 고조선관계와 예맥(銳麥)=濊貊)에 대한 복원(復元)도 심도 있는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연구 실정은 역부족으로 말이 아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단군 할아버지라 하는 호칭을 그저 단순 경직되게 혈연상의 조상으로만 해석해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그 자손이냐, 따라서 단군이 없다고 부인하는 자도 있음을 본다.
 
우리가 단군(檀君)의 자손이란, 단군의 개국한 나라의 백성이란 말이다. 단군이 많은 사람들을 낳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문리적 해석만 하는 것은 학문을 모르는 소치이다.
 
우리민족은 비교적 순일(純一)한 편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다민족(多民族)으로 복합(複合)구성되고 오늘날 그 자손들은 세계 각국의 국적을 갖고 퍼져 나갔다. 고조선의 단군은 47대가 엄연히 우리역사 뿐만 아니라 외국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우뚝 서 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단군은 과거이자 미래다
 
진서(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말(馬)이 있으나 타지 아니하고 우마(牛馬)가 3년 동안 서남(西南)을 향해 졸고 있었다고 했다. 이는 짐승을 사랑하고 존중한 것이다. 단군은 실재 했다.
 
제아무리 중국과 일본이 단군을 의도적으로 지우려하나 실재했던 단군을 지울 수 없다. 오죽했으면 북경 경화학교(京華學校)의 교사(敎師) 위안 텅페이(袁騰飛)는 역사를 가르치며 “일본도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지만 중국만큼은 아니다”고하며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했다.
 
“중국교과서에 기술된 내용 중 진실은 5%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완전한 허구(虛構)”라고 했다. 이에 동북공정을 하는 중국은 역사왜곡 조작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그를 감옥에 가두고 있다. 또한 동양의 대 역사학자 김희덕(金熙德)박사도 김정일이 프랑스 의사가 북한에 와서 치료한다고 말했다고 간첩으로 몰아서 장기간 감옥에 가두고 있는 것이 지금 중국의 실상이다.
 
일본역시 단군을 신화(神話)로 엮으려하나 그리 될 수 없다. 단군은 우리의 과거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신화에도 실지로 형(刑)을 주(主)한다고 했고, 진서(晉書)에도 숙신씨(肅愼氏)가 사형(死刑)에 처한다고 했다. 숙신씨(肅愼氏)와 단군조선(檀君朝鮮)은 같은 시대 한민족의 국가로 양립했으나 이에 대한 연구가 더 요구되고 있다. 우리역사는 국내학자보다 외국학자가 더 앞서고 있는 실정이다.
 
고대당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한민족이 편발(編髮)을 했는데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단군시대에 편발(編髮)했다고했다.(東史綱目 (第一,上). 그런데 진서(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편발(編髮)했다고 했다. 이는 단군시대의 신화와 숙신씨(肅愼氏)전설이 같음을 기록한 것이다.
 
위에서 죽서기년권상(竹書紀年卷上)에 숙신씨(肅愼氏)가 순(舜)25년(4300년 전)에 만 여리(萬餘里)동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 했다고 했는데 숙신씨(肅愼氏)는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3대 이전에 중국동북지대에 대국을 건설해 지금의 길림성동쪽 모든 지방을 전부 차지했던 대국(大國)이었다. 그런데 우리학교교재는 이러한 것을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
 
숙신씨(肅愼氏)는 고조선보다 40여 년 전에 세워진 대국으로 고조선과 같은 전설과 신화를 갖고 있다.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에 [근세인류학자가 동북민족은 다 숙신(肅愼)에서 나왔다]고 했다.(渤海國志長編 卷十六, 族俗考, 第三). 이는 동이족의 시조가 숙신씨(肅愼氏)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상은 최태영 선생과 최인선생의 서물을 참조 인용한 연구결과이다)
 
따라서 숙신씨(肅愼氏)에서 분파된 동이족 중 숙신씨(肅愼氏)의 전통을 계승한 자가 바로 우리한민족(韓民族)이다. 이 한민족에 의해 고조선의 역대단군도 실재(實在)로 고대에 군림했음은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음에도 중국과 일본은 이를 지우려고 하나 이는 야만행위일 뿐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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