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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숭례문. /조선DB |
국보(國寶) 1호를 현재의 숭례문(崇禮門)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으로 바꾸자는 의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저께 한 시민단체가 또다시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지정해 달라며 국회에 입법 청원서를 제출, 해묵은 논쟁에 불을 붙였다.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측은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측은 국보에 매긴 숫자는 관리의 편의성 때문이지 국보에 서열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양측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다. 아무리 관리상의 번호에 불과하다지만, 은연중에 각인된 ‘대한민국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을 강제로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의 숭례문이 과연 국보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숭례문, 즉 남대문(南大門)은 2008년 2월 완전히 소실(燒失)됐다. 문화재에서 완전 파괴와 부분 파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부분 파괴 상태에서는 일단 문화재의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구를 하면 그 문화재가 가진 영속성이 유지가 된다. 역사성, 예술성, 문화적 가치가 모두 계승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 완전히 멸실되거나 소실된 문화재는 복구나 복원을 한다고 해도 문화재적 가치는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특히 목조(木造) 건물은 얼마나 오래되었나 하는 것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만약에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전소(全燒) 된 후 완전히 새로 지어졌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란 명성과 가치는 자동으로 없어지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남대문이 국보적 가치를 유지하려면 초기에 화재를 진압해서 유물의 상당 부분을 보존했어야 마땅하다. 부분 소실이 되었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명성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고, 남대문이 가진 역사적 무게를 고스란히 계승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62년에 남대문을 고쳐 지을 때도 비록 목재(木材)의 반 이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했지만, 이는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고쳐 지은 것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란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낡은 부분을 교체하는 방식의 유지보수를 통해 문화재의 가치와 생명을 영속하는 것은 목조건물이 지닌 물리적 수명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전소(全燒)된 순간 남대문은 국보 지위 상실
남대문이 전소(全燒)된지 며칠 만에 문화재청은 재빨리 회의를 열어 “복원된 남대문도 국보 1호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가 가관인데 “숭례문은 국보와 사적(史的)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고, 국보로 지정할 당시 목조건축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 등 복합적 요소를 감안해서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대문 소실에 대한 책임 여론이 들끓자 이런 식으로 따가운 여론을 달래보려 한 것이다.
문화재청의 발표가 있은 그 다음날 한 문화재위원회의 위원이라는 사람이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숭례문이 국보가 된 것은 목조건물뿐 아니라, 아래 석축이나 성곽까지 포함해서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목조건물이 불타도 석조 건축물이 있기 때문에 국보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별문제가 없다. 또 숭례문 1층은 다 탄 것이 아니다. 남은 목재를 최대한 활용해서 복구하면 된다. 때문에 우리는 ‘복원’이 아니라 ‘복구’라고 표현한다.”
‘복원’과 ‘복구’에 그런 뜻 깊은 차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인터뷰를 우연하게 듣고 우리나라 문화재위원들의 수준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화재위원의 해석대로 하자면 우리의 국보가 전부 파괴된다고 해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게 된다. 복제한 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서 국보로 지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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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4월 6일 화재로 녹아내린 낙산사 동종./ 조선DB |
이렇게 따지고들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굳이 유물이 아니어도 됨)은 국보가 될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예컨대 뒷집 처마 밑에 놓여 있는 된장 항아리에는 수천년 내려온 도자기의 전통이 스며있기 때문에 고려청자의 역사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항아리를 만든 사람이 그 기술을 조상에게 받았으니 정신 문화사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항아리를 만든 흙은 유구한 도자기 역사를 가진 이 땅에서 왔기 때문에 충분히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파괴되거나 불타 없어진 보물에 대해 더 이상 안타까워 할 필요도 없다. 2005년 불에 타 녹은 낙산사 동종(銅鐘)의 일부를 다시 녹여 새로 종을 만들면 국보로 환생할 수 있다. 황룡사지에서 나온 기왓장 한 장을 새로 복원한 황룡사 9층목탑 상단에 얹어 놓고는 1500년 된 목탑이라고 우기면 된다.
아마 정말 이런 식으로 국보로 지정한다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러다가는 “국보가 탈 때 나온 연기도 물리적으로는 국보의 일부니까 그 연기를 가둬놓았다가 복원한 문화재에 쐬면 예전의 문화재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문화재위원들도 나올지 모르겠다.
물론 다른 역사적 이유도 있겠지만, 남대문이 국보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몇 남지 않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목조 건물로서는 믿기 힘든 긴 세월의 영욕을 견뎌왔고, 조상들의 숨결과 함께 해온 그 건물이 불에 탄 것이다.
복원된 남대문이라도 국보로 지정하면 그만이지만(근대 유물이라도 국보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렇게 국보를 지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소실 이전의 남대문과 동일한 역사적 가치를 지닐 수는 없다.
국보 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꾸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대문이 전통적 개념의 국보적 지위를 상실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