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관가야 대표적 유적지인 대성동고분군 모습.
지난 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황동 옛 시가지 중심 한쪽. 축구장 크기의 '금관가야 왕궁터' 발굴 현장에는 가을을 앞둔 막바지 더위 속에서도 많은 이가 몰렸다. 시가지 접근성이 용이한 데다 최근 가야사 '붐' 현상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연구사와 보조원 10여 명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한 여성 연구사가 양손에 솔과 작은 삽 모양의 기구를 들고 관람객과 연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벽용 돌로 보이는데 아직은 확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이쪽은 주거지 모습을 띠고 있죠." 여느 발굴 현장에선 쉽게 목격할 수 없는 다소 의아스러운 이 모습에 민경선 연구사는 "이곳에선 늘 있는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봉황동 왕궁터 발굴현장·고분군·가야테마파크
'가야사 붐' 타고 시민·언론·학계 방문 줄 이어
민 연구사는 "요즘 발굴 현장 추세가 관광객이나 주민들의 접근이 쉽도록 개방형으로 가고 있다"며 "곳곳에 가야문화 유산이 즐비한 데다 '발굴 현장'이 많은 김해에선 자연스러운 '소통현장'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 발언' 이후 가야 유적과 발굴 현장에 시민들의 관심도 눈에 띄게 늘었지만 가장 관심이 많은 쪽은 아마도 학계와 언론 쪽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실제 김해지역 금관가야 유적지 곳곳은 시민들은 물론 언론과 학계의 발길이 최근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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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가야 대표적 유적지인 대성동고분군 모습. |
구릉 위 작은 언덕배기로 주민들 사이에선 '애꼬지'라 불리는 김해 대표 유적인 대성동고분군을 보면 알 수 있다. 봉분 없이 넓다란 지형을 가진 이곳은 가야 고분군의 원류다. 그 시대의 지배계층과 피지배층의 무덤군으로 가야의 성립과 성격, 정치, 사회적 구조를 확인하는 데 절대적 가치를 가진 유적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 송원영 팀장은 "관람객 수도 늘었지만 가야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과 학계의 관심이 도드라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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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터 발굴현장. |
대성동고분군 주변에 있는 수로왕릉과 왕후릉 등 가야 유적과 국립김해박물관도 비슷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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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테마파크 전경. |
이 같은 현상은 김해 분성산 중턱에 마련된 가야테마파크를 보면 더 확연해진다. 가야의 역사를 놀이와 체험, 전시를 통해 보고, 듣고, 만지면서 배울 수 있는 가야문화 복합공간인 가야테마파크는 문 대통령 발언 이후 관람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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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동고분박물관 내부 모습. |
김해시도 '가야왕도' 위상을 재확인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가야사 연구 복원'은 가야사의 시작인 '김해'가 그 중심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김해시는 아예 9월 한 달간 주말에 한해 '가야사 야행(夜行)'길을 열었다. 수로왕과 왕후 허황옥이 함께 거닐던 지금의 대성동고분군과 봉황동유적지, 패총, 여의각 등을 야간에 개방했다. 수로왕릉과 왕비릉의 야간 개방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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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허리띠 |
1000억 원대의 사업비 확보가 안 돼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야사2단계사업도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2단계사업은 구지봉과 대성동 고분군 사이에 있는 김해교육지원청과 학교 등 교육시설 이전을 통한 단절된 유적 환경을 복원·정비하는 것으로, 2006년부터 추진됐으나 사업비 문제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김해시는 한발 더 나아가 "올해 기본계획 수립용역에 나선 '역사문화도시' 지정에도 불을 댕길 수 있게 됐다"고 환영 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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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가야 토기 |
다만 지역학계는 가야사 연구와 복원의 기대감 못지않게 가야사의 문헌과 고고학의 일치된 자료 수집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가야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구와 조명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을 문헌 기록과 고고학의 연대관 차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삼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가야사 연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적과 유물을 통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가 중요하다"면서 "가야권에 산재한 고분 발굴이 가야사 연구의 필수 선행 과제"라고 말했다.
정태백 기자 jeong1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