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아요디아의 한 힌두사원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허왕후에 관한 기록. 과연 그녀는 실존 인물일까. 2000년 전 이역만리 땅에서 온 인도 공주와 가락국(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세기의 결혼'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고향 아유타국은 어디일까. 본보 특별취재팀은 '잊힌 왕국' 가야의 역사를 깨우는 주요 작업 중 하나로, 허황옥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동명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부 장재진 교수(인도문화교류연구소장)가 동행했다.
북인도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서
4·6마리 물고기 문양도 눈에 띄어
남인도 '칸치푸람' 도처에 불상 널려
집 앞 조각상 등 '물고기 숭배' 흔해
"허황옥 실체 위해 종합적 연구를"
■북인도 '아요디아'
인도 북부 도시 러크나우에서 아침 일찍 차를 몰았다. 쉬지 않고 동쪽으로 달리길 2시간여. 이윽고 갠지스강 중류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아요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도로인 '초크 아요디아 로드'를 따라 입구로 들어서자 우리나라 1960~70년대에나 볼 법한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길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소들과 달리, 주민들 얼굴엔 빈곤의 그늘이 묻어난다. 취재진 차량을 발견한 이들이 앞다퉈 손을 내민다. 앞을 가로막거나 옆을 따라붙으며 '관광 가이드'를 자처한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라마가 태어난 곳, 힌두교 7대 성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쇠락한 풍경이다.
 |
| 첸나이 거리의 한 트럭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 |
도시 곳곳에는 힌두교 사원이 분포돼 있다. 한 사원 앞에 다다르자 입구 위에 새겨진 커다란 물고기 두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수로왕릉에 있는 쌍어문양과 형태가 흡사하다. 허왕후 관련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쌍어문은 가야의 허왕후와 인도를 잇는 연결고리로 주목을 받아왔다. 쌍어문은 아요디아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특히 고대 남인도 판디아 왕국의 기장(記章)이기도 하다. 이곳 힌두사원에서는 쌍어문뿐만 아니라 4마리, 6마리 대칭의 물고기 문양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갠지스강 지류인 고그라강에 이르자 강변을 따라 허름한 원두막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힌두교 순례자들이 숙소처럼 묵는 곳이다. 백발의 노인들이 원두막에서 기도하거나 흙빛 강물에서 멱을 감고 있다. 아쉽게도 북인도 아요디아에선 불교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불교는 허황옥의 실체에 접근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그녀가 파사석탑과 함께 인도 불교를 가야에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허황옥이 탄 배는 아유타국을 출발하자마자 큰 풍랑을 만나 뱃머리를 돌려야 했고, 파사석탑을 실은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항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고향이 힌두교 성지 아요디아라면, 순례자들이 머무는 고그라강변이 출발지일 터. 오랫동안 쌍어문과 지명으로 허황옥 도래길을 추적해온 한양대 김병모 명예교수는 허황옥 가문이 오래전 북인도 아요디아에서 중국 쓰촨성 안악현(옛 보주)으로 이주했고, 동중국해에서 배를 띄워 김해에 이르렀다고 본다.
■남인도 '아요디아 쿠팜'아요디아에서 1700㎞ 떨어진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의 주도(州都) 첸나이. 이 도시를 중심으로 인도양 벵골만과 접한 동쪽 해안가 마을은 과거 '아요디아 쿠팜'이라 불린 지역이다. 첸나이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칸치푸람에서는 불교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카차베스와라 힌두사원의 입구를 겸한 건축물. 눈부신 흰색의 상부와 달리 회색빛 하부는 힌두교 이전 불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벽돌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공간에 음각으로 새긴 불상이 눈에 띈다. 인근 에캄바라나타 사원도 벽면을 따라 10㎝ 안팎 크기의 비슷한 불상들이 새겨져 있다.
 |
|
칸치푸람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 보관된 불상.
|
옛 불상이 보존된 곳도 있다. 칸치푸람 경찰서의 앞마당, 수바라야 고등학교 운동장 등지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불상들이 보관돼 있다. 첸나이 지역 불교학자 크리스난 씨는 "힌두교가 불교를 흡수·통합하면서 불교의 흔적들이 사라지거나 힌두교 유적과 뒤섞인 형태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고대 타밀 왕국이 번성했던 이 지역은 언어적인 면에서도 우리나라와 상당한 관련성을 보인다.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아빠 엄마 언니, 신체 부위인 이빨 궁디 등 타밀어 단어 중 500여 개가 우리나라 말과 발음이 같거나 유사하다. 실제로 칸치푸람에서는 학생들이 "엄마" "아빠"라 부르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북인도 아요디아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서도 쌍어문양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트럭 등 차량에 입힌 문양, 집이나 가게 앞에 설치된 물고기 조각상 등 '미낙시' 여신에서 비롯된 물고기 숭배 사상이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요디아 쿠팜의 해안은 지금의 첸나이에서 마하바리푸람까지 이어진다. 허황옥의 고향이 이 지역이라면 50㎞에 걸친 광활한 해변 중 배를 띄운 곳은 어디일까. 동명대 장재진 교수는 "쌍어문양은 물론 아요디아란 지명도 인도 전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허황옥의 실체를 추적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2000년 전 역사를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역사학, 고고학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언어학, 기상학, 해양학, 지리학, 기술공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첸나이(인도)/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