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커버스토리]우리가 ‘환만주 문화권’ 중심이었다[커버스토리]우리가 ‘환만주 문화권’ 중심이었다
청동기시대 고조선~발해 2000년…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
![]() 다이내믹한 묘제가 나타난 체르냐치노 5유적의 발굴 당시 모습. <정석배 교수> 선사시대와 초기 역사시대에 동북아시아는 크게 3개의 문화권을 구성하고 있었다. 내몽골 오르도스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북방 유목 문화권, 중국의 중원 문화권 그리고 동북 3성과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 한반도를 포괄하는 가칭 ‘환(環)만주 문화권’이 그것이다. 우리의 활동공간이 ‘환만주 문화권’의 중심지인 만주였던 때는 청동기시대 고조선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근 2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었다. 아마도 청동기시대 이전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에도 ‘환만주 문화권’ 지역은 우리 선조들의 중심 활동공간이었을 것이다. 아직 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중심 활동공간이 한반도로 축소된 것은 장구한 역사에서 본다면 불과 1000년 남짓할 뿐이다. 아니, 이 시기에도 간간히 우리의 선조들이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중국 동북 3성과 연해주 그리고 아무르강 유역은 역사·문화적으로 우리 선조들의 활동공간 그 자체였다.
체르냐치노 2유적에서 발굴한 옥저 쪽구들 아궁이. <정석배 교수> 이 외에도 북방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반도 및 ‘환만주 문화권’은 초원 유목 문화권 및 시베리아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유사성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화들은 항상 서쪽에서 동쪽, 북쪽에서 남쪽으로만 전파되었을까.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나 백제의 건국신화를 보면 건국의 주체들이 모두 북쪽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첨저 혹은 원저의 토기를 보이는 시베리아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 후기 세로보 문화는 한반도의 첨저 빗살무늬토기보다 연대가 오히려 더 늦다. 두만강 가까이에 자리 잡은 연해주 보이스만 문화 인골은 형질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신석기시대 전기에 두만강 유역에서 북쪽으로 주민들의 이동이 있었고, 지금의 에스키모인들은 바로 두만강 유역에서 이주한 보이스만 문화인들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몽골의 거란성터 주인공은 발해 유민 최근 조사하고 있는 몽골의 거란 성터도 마찬가지다. 발해 멸망 후에 몽골로 잡혀간 발해 유민들이 몽골지역에 발해 계통의 성터를 쌓고, 선진 발해문화를 퍼트렸음은 자명한 일이다. 유사성이 반드시 문화의 전파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문화집단 간의 관련성 혹은 친연성은 입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또한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의 전파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사실 중국은 우리의 역사뿐 아니라 중국 북방과 서방 그리고 동방의 모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고조선, 부여, 옥저, 고구려, 발해 등 당연한 우리의 북방역사가,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문헌에 등장하는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고 지키는 데도 힘이 부치지만, 점차 문헌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정석배|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문화유적>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5675&code=115#csidx5218ed28ba1b0b78b20091661d06d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