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1965년 6월22일 한국은 일본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한마디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굴욕적인 조약이었다. 지난 5월 24일 우리나라 대법원은 일제 때 한국인을 강제 징용했던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 제철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근거해 완전히 끝난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분명히 따져볼 필요를 느낀다. 필자는 한·일 협정은 ‘실패작’이며 잘못된 점을 누차에 걸쳐서 강연에서나 논단과 칼럼으로 이미 피력했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 기준이 된 한반도 지배가 “불법적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본 판결을 승인 할 수 없다”는 판결은 국제법상 하자가 없다. 또한 “한·일 청구권 협정만으로 개인의 청구권 까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변론취지도 틀린 것이 아니다. 이유인즉, 협정내용이 처음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기본조약 제2조(구 조약의 무효)를 보면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인 것이 확인된다”고 돼 있는데, 일본이 주장하는 조약은 구성요소나 절차를 밟지 않은 늑약(勒約)이라는 것은 법을 한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한·일협정은 기본협정 제2조를 바로 한 다음에, 재협상을 새로 하고 조약다운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참으로 한심한 조약을 맺고서 이를 잘했다고 하는 자를 보면 참으로 동정을 금치 못한다. 1910년 이전에 한·일 간에 조약은 없고, 늑약만 있었다. 또한 청·일 간에 맺은 ‘간도조약’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 조약은 제3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간도조약에서 우리나라 국경을, 압록강 두만강으로 한 것 자체도 기가 막히는 큰 과오를 범하고 있다. 이를 인정한 우리나라 대표의 국제법 무지는 천하의 웃음거리임을 알아야 한다.
무지한 한·일협정 내용, 제대로 보고 말해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일협정이 이렇게 된 것은 얼마나 준비 없이, 무지하게 했나를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약을 체결하려면 협상에 있어서는 그 원칙, 방법, 목표, 전망상의 연구와 그 내용이 국가에 미칠 영향 등의 분석을 제대로 잘 해서 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 못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연구·분석해서 한 것이 전무하다. 그 원인은 첫째, 국제법의 무지였다. 일본이 말하는 조약은 일본에서 가져온 양면괘지에 자기들 멋대로 쓴 괴문서였다. 조약의 구성요소를 갖추지 않은 것이다. 고종황제나 순종황제의 동의나 비준도 없어서 옥쇄를 위조하고 일본이 제멋대로 한 것을 조약이라고 인정한 한국대표들의 국제법 무지와 연구부족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창피한 일이다. 협정내용도 일본의 구미대로 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혹시 잘했다고 말하는 측은 무상 3억$, 유상 2억$에 상업차관 1억$ 받고 정유공장과 제철소를 짓고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하나, 개별보상 등 일본이 일괄 타결로 몰고 간 것에 대해서는 아무대처를 못했다. 1930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철권정치를 하며 토지 수탈을 필두로 언어와 글, 창씨개명, 국기, 애국가, 광산과 공장 등 재산의 95% 대가가 고작 5억불 인가는 납득이 안가는 액수다. 강제 병합 후 5년간 압록강과 인제를 통해 베어간 나무만도 3억$ 어치가 넘는데, 김종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메모도 한심하고 창피하거니와 우리대표의 협상내용은 가관이다. 일본이 당초 보상 산정한 것은 ‘독립축하 금’ 조로 15억$ 예정하고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300억$에 가까운 278억$을 요구했다.) 5억$은 말도 안 되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보상액이다. 또한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도 너무나 부실하다.
예컨대 재일 한국인의 협정영주권자에게 의무교육, 아파트 추첨권, 생활비 3만엔 지급, 강제퇴거를 하지 않는다 등의 4개 항목만 거론하는 유치함을 보였다.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행정차별은 필자가 알아본 결과는 316가지에 이르고 있었다. 일본의 의도대로 된 것이었다. ‘협정영주권자에게 ‘내국민 대우를 한다’라는 한 줄이면 다 커버가 되는 것인데, 고작 4개만 거론한 것이 얼마나 유치한지 알 일이다. 일본은 한국을 우습게 본 것이다. 제2차 대전 후 유럽 국가들은 피해국가 국민에 대해 국적선택을 인도적 견지에서 하게 했을 만큼 성의 있게 나왔으나 일본은 아니었다. 독일은 서독 거주 오스트리아인에게 국적을 선택케 했고, 피해국가에 영토까지 할애하는 성실성을 보였다. 영국은 영국 본토 내 인도인에게 영국 국적취득을 인정했다. 프랑스는 1965년 알제리 인에게 프랑스 국적 취득의 자유를 인정했다. 일본은 철저한 차별정책만을 취하는 몰염치만을 보여줬다.
이것은 한·일협정 당시 우리 협상대표들의 대응이 전혀 없었던데서 기인하고 있다. 1946년10월 4일 당시를 돌아보자. 당시 출입국관리법과 그 이듬해 외국인등록 법을 통한 지문날인, 등록증 항시 휴대, 정시(呈示) 의무 등을 3년마다 갱신하게 하고, 이를 어겼을 때 형벌규정을 두어 생활전반에 형벌위협을 가했다. 목욕탕에 가는데도 외국인 등록증을 휴대하지 않으면 단속하고, 국적법에 의한 차별을 강화하고 있었다. 당시의 출입국관리법은 ①억압 ②추방 ③동화정책으로 요약될 만큼 구미 나라들과는 정 반대의 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추방정책에 딱 들어맞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김일성이 6.25 전쟁 후 재일 동포를 받아들인다고 하자 일본은 “인도적 차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10만의 재일 동포를 지옥의 북한으로 북송까지 했다. 이는 누가 봐도 재일한국인에 대한 추방정책의 일환이었다.
협정무효 통고하고, 책임 제대로 물어야
우리 협상대표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협상력도 허술한가는 그대로 드러난 사실이다. 당시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덤볐다.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협정’이나 ‘한일어업협정’, ‘문화재 반환협정’, ‘대륙붕문제’, ‘독도문제’, ‘사할린 동포 귀환문제’, ‘해저개발 기술협력문제’, ‘징용자 및 정신대라는 군위안부에 대한 보상 문제’, ‘역사왜곡 문제’ 등 제대로 협상을 하고 얻은 것이 제대로 있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니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1965년의 한·일협정이다.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우리는 일본에 재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비엔나 조약 법 조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제65조는 ‘조약의 무효 또는 종료, 조약탈퇴, 조약운영 절차에 관한 절차로서 취해야 할 조치 및 이유를 포함해 통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조항에 의해서 우리는 한일 기본협정 제2조(구 조약의 무효)는 지난날 체결한 조약으로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제2조는 불필요한 것으로 삭제하고, 바로 잡고 가야한다. 진정한 한·일 간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제가 무력을 앞세워 감행한 조약이 아닌 ‘늑약(勒約)’들이 국제법상 성립이 안 되는 것이기에, 이제 정정당당히 을사늑약(乙巳勒約)과 경술합방늑약(庚戌 合邦勒約)들이 무효라고 일본에 통고해야 한다. 더불어 김대중 정권 때 체결한 ‘신 어업협정’에 독도를 공동관리 하게 한 것도 그렇게 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석명(釋明)하고, 이를 폐기한다는 통고를 일본에 정식으로 통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의 침탈행위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일제지배 하의 모든 책임을 철저하게 새로 일본에 물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하지 않으면 일본은 우리를 깔보면서 다시 독도 침탈행위 등을 계속할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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