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 하면서도 단군역사에 대해 무지하다. 더욱이 일본 강점기의 교묘한 역사 왜곡은 우리의 역사인식마저 바꿔놓았다. 단군은 실제로 BC2333년 전 지금의 중국 요동 땅에 조선을 개국하고 2096년간 47대에 걸쳐 통치해온 임금들을 지칭하는 한문 식 명칭이다. 즉, 고조선을 개국한 것이다. 고조선은 그 이전에 1565년간 지속된 환국(桓國)시대 말기 곰이며 호랑이 등을 귀히 여기는 여러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해 요동에 최초의 단합된 민족국가를 이루었기에 우리역사의 기원으로 중요시 되는 것이다. 단군이라는 명칭은 왕이라는 용어로 변화했다. 또 왕검은 임금이라는 이두(吏讀)이다. 오늘날 단군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의 비극은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단군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일제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일본 황통사(皇統史)의 식민사관이 조선인들에게 그대로 교육된데 그 원인이 크다. 단군 조상들의 뿌리가 잘려나감에 따라 우리는 국가와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역사가 그 핵심을 잃었다.
그러나 단군사(檀君史)를 심도 있게 연구해 온 최태영(崔泰永) 박사의 연구결과를 보면 단군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한(韓),중(中),일(日)의 역사기록들이 전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중국과 일본이 한국사 왜곡 말살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근거로 존재한다고 평생을 단군을 연구해 온 최태영 박사는 말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천자문 다음에 배우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이 있다. 사대(事大) 때문에 비록 중국사를 앞세워 기자와 위만을 말하고 있다 해도 중국의 요(堯)임금과 같은 시기에 요동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졌고 단군(왕)들이 다스렸음을 우리 선조들은 잊지 않고 가르쳤다. 여기서 고조선이란 오직 한(韓)민족 단군들이 대를 이어가며 통치한 조선(朝鮮)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역사를 자기 뜻대로 구미에 맞게 재구성해 버렸지만 역사책과 달리 지리책만큼은 변조할 새가 없었다. 중국의 세계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고조선 이야기가 나온다. “고 조선인들이 한문을 쓰게 된 뒤 나라이름을 ‘아사달’에서 조선(朝鮮)이라 하고 배달임금을 단군이라고 했다”하고 ‘조선의 음이 조선’(潮仙)’과 같다는 설명이 나온다. 여기의 ‘조선(潮仙)’이란 단순히 그 음을 차용한 것이다.
고조선의 임금인 단군들은 우리 조상인 실제 인물들이다. 이 단군들은 중국대륙 요동 땅을 통치했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들인 것이다. 단군조선 말기에 이르러 힘이 미약해 지면서 지금의 중국대륙에서 밀려 삼한(三韓)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한반도 북부의 강력한 왕국 부여(夫餘)는 이 일대 한민족 국가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단군의 제위를 이어갔다. 이 같이 우리민족이 중국대륙과 만주 한반도에 먼저 살았던 선주(先住)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대에 조선에 이르러 천하가 중국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신봉한 사대세력(事大勢力)에 눌려 위국(爲國)이나 호국(護國)을 내세운 행사를 금함으로서 단군의 존재도 국가규모의 힘과 의미를 잃었다. 그럼에도 단군사당(檀君祠堂)과 성황당(城隍堂)이라는 당집으로 전락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동네단위의 민간신앙으로 맥이 이어진 것이다. 일제 때는 미신이라는 이유로 타파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단군에 대한 오해는 이 같은 일제의 역사왜곡 만행에서 비롯됐다. 단군이 실재했다는 것은 조상대대로 불러온 세년가(世年歌)라는 노래로도 전승했음이 세종실록에 나온다.
일제는 조선을 침탈하면서 초라한 일본역사보다 한국이 유구하고 우월한 찬란한 역사를 가진 것을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됐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그 옛날 고조선이라는 중국대륙과 만주일대와 한반도에 이르는 강대한 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지워 잊어버리도록 해야만 통치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역대 환웅천황(桓雄天皇)이 수천 년 다스린 환국(桓國은) 물론 고조선도 단군도 모두 실재가 아닌 신화로 바꾸어 버렸다. 환국을 기재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불태우거나 변조하고 일본이 일찍 한국을 지배하기도 했다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날조했다. 우리 고대사 왜곡의 앞잡이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부류가 “한국사는 신라 때부터 시작이다”이라는 당치도 않은 설을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호도함으로서 그 이전의 한국고대사를 못 믿을 것으로 돌려 버렸다. 이 같이 한국사를 질시해 온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미친 짓이요 우리 영혼을 죽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잃게 하고 가치관을 변질시킴으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고취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큰 덕을 봤다.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이를 솔직히 시인한다. 가시마 노보루(鹿島昇)같은 일본사가(史家)들은 “일본의 황통사(皇統史)는 거짓역사이지만 일본은 놀랄 만큼 짧은 기간 내에 과학과 선진 물질문명을 받아 들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아울러 한때 세계지배를 꿈꿀 정도로 자부심과 용기를 갖고 발전했다. 이는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에 대해서는 미안한 일이지만 오로지 이 같은 역사 위조의 공적이다”라고 실토하고 있다. 일본인 중에는 고조선사와 일본의 진정한 고대사인 상가야 왕조사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같은 학자들이 상세히 연구·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군부와 신직(神職)이 개입된 역사나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紀)는 진정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제국주의 황통사(皇統史) 사가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실정이다. 고대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였다. 미나마(任那)는 가야의 식민지였다. 철을 얻기 위해 가야는 일본에 분국(分國)을 두었던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이름도 생기기 전인 4세기~6세기 미니마(任那) 일본부(日本府)를 한반도에 설치해서 가야를 지배 했다느니 신라·고구려·백제를 정복했다는 일본의 주장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일본의 우리나라 역사 위조사는 1988년 일본 후지산(富士山) 아래 지하 서고(書庫)에서 비서(秘書)인 미야시다 분쇼(宮下文書=신황기(神皇紀)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1200년 전의 이 문서에는 백제인이 와서 일본을 가르치다가 일본 왕이 됐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일본 궁내성(宮內省) 소장의 상기(上記)에는 일본에 건너온 한 단군자손의 73대손이 일본의 진무(神武)일왕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구사카 히로시(日下 寬), 쓰보이 구에조(坪井九馬三)가 일본어로 번역해 1902년 도쿄대학(東京大學)과 1916년 경성조선연구회(京城朝鮮硏究會)에서 원문과 함께 출판한 ‘교정(校訂) 삼국유사’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기록 중 환국(桓國)을 정확히 기록해 놓은 삼국유사 정본(正本)의 증거자료다.
이같이 일본은 꼼수로 고조선의 역사를 엄청나게 왜곡하고 고조선은 존재하지 않은 양, 조작하고 단군도 신화라고 꾸미며 마치 일본이 옛날 한국을 지배했다는 사실과는 180도 다른 거짓역사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이 물러 간지 70년이 다돼 가는데도 우리는 단군과 고조선역사가 실종된 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학자와 일본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웃음거리다. 우리의 위대함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여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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