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에서 실존인물 단군 제사 지내는 집 많다” > 역사뉴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역사뉴스

[한민족] “만리장성에서 실존인물 단군 제사 지내는 집 많다”

송화강 2019-05-05 (일) 17:26 6년전 10346  

“만리장성에서 실존인물 단군 제사 지내는 집 많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2-07-07 14:31:38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최태영 선생은 2005년 11월 30일 106세로 타계했다. 선생은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대단히 훌륭한 분이다. 필자는 지난 2001년 여름 최태영 선생이 102세 때, 약수동에 있는 시니어하우스에 찾아뵈었다. 그 당시 선생이 고대사를 연구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생은 자기사명을 우리나라 고대사, 특히 ‘인간 단군을 찾아서’에 있다고 하며 사비를 들여가며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면서 연구에 몰두했었다. 선생은 “일제가 우리역사를 다 망가뜨렸다”고 한탄했다. 그래서 남은 생애를 ‘단군연구’에 몰두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선생은 “어렸을 때 배운 우리나라 역사와 지금의 우리나라 역사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내용으로 돼 있다”, “나는 중국에서 만리장성 안에서 단군에 제사지내는 집이 많이 있음을 직접 확인 했다”, “단군은 곰의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도 아닌 우리 조상인 자연인이다”, “일제가 나서서 학계를 동원하고 군관이 합작해 ‘신라가 한국사의 시작’이라며 수천 년의 한국 고대사와 단군조선을 신화와 미신으로 돌려 잘라버리고 일본 고대사는 엿가락처럼 늘렸다”는 소신을 강하게 피력했다.

실종된 역사 찾는 것을 사명으로 평생 몸 바친 선생

선생은 또 “간사한 일본은 조선총독부로 하여금 교도대학(京都大學) 이마니시 류(今西 龍)를 내세워 일본 측에 유리하도록 조작한 역사만을 실증과학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뜨려 우리 정신을 학살 했다”고 했다. 또한 “조상의 뿌리가 잘리면서 단군과 우리는 이산가족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병도 교수는 이런 인식을 그대로 강단에서 교육함으로서 한국역사가 잘못 계승됐다. 선생은 “이북에 납치된 정인보, 신채호, 안재홍, 손진태, 최동, 장도빈 선생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고대사’나 ‘단군연구’에 나서지 않겠지만 그분들이 여기 없기에 나섰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단군이 실재인물이다. 우리조상이 동아세아의 요동에 선주(先住)했던 종족이다”고 확신했다. 그는 25년간 역사 복원노력을 하기위한 일념으로 그리고 단군을 되찾기 위해 일본과 중국 등 노구를 이끌고 수많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생은 “신라 해상왕 장보고, 개화당의 김옥균, 보성학원 이용익, 임정 수석 김구선생을 이유나 설명 또는 공개재판 없이 암살하더니 우리역사를 잘라낸 사실마저 암살(묵살)해 버리고 있다”고 한탄해 했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역사의 암살이라는 이 비열한 일을 감행하는 소위 일제 식민사관의 학자(學奴)와 정치세력은 공범자로서 역사의 심판을 언제까지 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평생의 사명을 법학에서 역사연구에 까지 생을 바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학자들 일부는 연구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에 기웃거리는 것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고도 한탄해 했다. 선생을 대하면서 오늘날 국내외를 막론해 위대한 대업을 성취하고 큰 일을 이룩한 사람들은 모두 사명이 투철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크게 느끼게 했다. 사명을 위해서 살고, 사명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위대하다는 것을 최태영 선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실존주의를 제창한 덴마크의 키엘케고르(Kierkegoard)는 20대 젊은 시기에 쓴 일기에 “온 세계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내가 이것만은 붙들고 놓을 수 없다. 내가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나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사명을 찾아 위대한 철학자로 존경을 받는 실존철학(實存哲學)자가 됐던 것처럼 선생의 생애 속에서 필자 또한 사명을 찾게 된다.

우리도 자기사명을 찾아 세계로 웅비하는 위대함 보여야

선생은 “제3공화국의 죄과는 출세주의를 만연시켜 가치관을 변질시킨 것”이라고 했다. 우리사회는 제3공화국이후 ‘출세만 하면 된다’는 가치관이 팽배해 자기 사명을 찾지 못하고 젊은 사람들도 권력지향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법과 질서가 실종돼 매일 같이 지도층의 부정부패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국가장래가 밝다고 하겠는가. OECD국이 되고, 20~50의 클럽에 가입하고, 경제 10대국에 진입한 우리가 아닌가. 선진국 대열에서 제대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가야 한다. 잘못된 초등교육으로 시민생활의 훈련이 부족한 우리다. 예의, 신의, 청렴함, 수치(羞恥) 등을 보면 일등 국민 같지가 않다. 일제가 변질시킨 가치관은 제3공화국에 와서 출세 제일주의를 만연시켰다. 이기적인 사고로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다. 이제는 자기사명을 바로 찾고 가야 한다.

우리가 외국인에게도 존경을 받으려면 법과 질서를 지키고 외국인에게도 인격적으로 인정받고 감명을 주는 일 들을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에 미흡한 것 같다. 한국인의 신념과 자존심, 긍지를 갖고 어디를 가든 법을 지키며 한국 국민인 것을 자랑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부터 350여 년 전 숙종대왕 때 우리의 사표가 되는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선생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일이 있다. 마침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흉년이 들어 쌀을 아끼느라 금주령을 내렸던 때였다. 청천(靑泉)선생이 일본에 도착하자 일본인들은 선생에게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고 술을 권했다. 그러나 청천(靑泉)선생은 술잔을 들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금주령이 내렸다. 그러므로 내 비록 내 몸이 물 밖에 나와 있다할지라도 내가 국법을 어길 수는 없다”는 선생의 말 한 마디에 일본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일본에 가는 우리 사신들에게 큰 교훈이 됐다는 것이 청천선생의 문집에 적혀 있다.

그렇다. 우리가 설사 어느 나라 어디에 있다고 할지라도 한국 국민이다. 한국의 국법을 지켜야 하고 다른 민족에게 우리들의 권위를 스스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새 역사를 창조해가는 21세기에 있다. 우리는 한국역사 창조에 큰 힘이 되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자유, 평화, 정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국민족으로서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하나의 뚜렷한 단위를 갖추어 인류평화의 대광장을 향해 슬기롭게, 힘차게 전진해 가야 할 때다. 누구나 모두 자기 사명을 발견하고 내가 먼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역사를 바로 세우고, 국가 민족을 사랑하는 자가 돼야 한다. 이런 다짐을 최태영 선생을 생각할 때 마다 하게 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21세기는 동북 아세아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자기 사명을 발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국가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자신들이 돼야 한다. 두 손을 모은다. 스위스의 법학자 칼 힐터(Hilty)는 “인간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사명을 발견하는 날이다”고 했다. 우리의 사명을 찾고 이 나라를 새롭게 해 나가자.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로그인

최신 댓글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254
어제
500
최대
4,666
전체
1,069,605


Copyright © 한퓨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