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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학] 중국문화 발원도·중국정신 유교도 ‘한민족이 했다’

송화강 2019-05-05 (일) 16:57 6년전 8887  

중국문화 발원도·중국정신 유교도 ‘한민족이 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4-05-03 21:17:47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한민족의 장대하고 찬란한 역사
 
인류는 역사의 산물이다. 찬란한 세계문명을 일으킨 강력한 배달국이 서기전 3500년경 만리장성 북에서 중원보다 더 앞선 문명으로 존재했었음이 세계학계에 알려졌다. 세계학자들에 의해서 요하문명(홍산문명)이 세계최초의 문명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당황한 중국은 ‘다원문명론’을 조작해 있지도 않은 문명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모두 허구다. 그리고 삼황오제, 치우천황, 황제헌원을 동북공정 전까지는 전설의 인물로 다루다가 지금은 실재인물로 인정하고 있다. 치우천황은 황제헌원과 싸운 적인데도 이제는 중국 시조로 모시고 있다. 아울러 요하문명, 황하문명, 장강문명 등이라고 하면서 요하를 중국역사에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은 이처럼 북방민족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넣는 동북공정을 통해 송두리째 장성 이북의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마치 떼를 쓰고 있다. 단군이 다스리던 조선과 북부여를 나라이름 대신에 흉노, 동호(東胡), 예, 맥 등 종족명을 중국사서(史書)에 기록해 마치 이들이 조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는 없다. 만리장성 앞 연산, 그곳은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임에도 지금은 만리장성까지 더 연장하며 억지춘향이식 역사날조를 행하고 있다. 이곳에 거대한 적석총과 이집트 피라미드 보다 1000년 앞서 세워진 것들은 모두 우리의 역사유적 유물이다. 이곳의 무덤도 장군총과 비슷한 것이 수천기가 분포돼 있다. 적석총은 한반도 제주도, 일본, 시베리아, 중국산동 반도까지 북방문화계역임에도 중국의 역사 도둑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칼럼은 요순(堯舜)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중국의 문물제도가 한국에서 창조되고 중국은 한민족이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하고 배운 사실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문화, 유교를 창설한 주역은 동이족
 
먼저 중국이 자랑하는 요순(堯舜)은 우리 한민족이면서 중국문화를 창설한 주역이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문화를 창설한 주인공은 요(堯)가 아니고 순(舜)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사학계의 제1인자인 사마온공(司馬溫公)과 중국문화의 대종사(大宗師)인 공자(孔子)의 견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중국사학계의 태두(泰斗)인 사마온공(司馬溫公)은 계고록(稽古錄, 卷四, 有虞氏 下)에서 요(堯)임금에 대해 도당씨(陶唐氏)라 간단히 언급하고, 순(舜)임금에 대해서는 유우씨(有虞氏) 상(上)과 유우씨(有虞氏) 하(下) 등의 두 편으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孔子)는 ‘순(舜)같은 대성인(大聖人)은 후세에도 다시 출생할 수 없다’는 최고의 찬양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견해들은 실제로 중국문화를 개척한 주역이 요(堯)임금이 아니고 순(舜)임금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맹자이루장(孟子離婁章)에 순(舜)은 ‘동이인’이라고 언급돼 있고, 사기(史記)에도 순(舜)은 동이인(東夷人)으로 기록돼 있다.(史記卷一, 五帝本紀第一 (註),周處風土記). 또한 서전태서장(書傳泰誓章)에 수유억조이인(受有億兆夷人)이라고 했다. 즉, 은 왕(殷王) 주(紂)가 동이인(東夷人) 억조(億兆)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 것이다. 억조(億兆)는 국민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면 은(殷)의 국인(國人)은 동이(東夷)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순(舜)나라와 그 백성이 우리 한민족이라고 하는 사실을 적시한 셈이다.
 
또한 춘추좌전(春秋左傳 三十七, 召公四)에 ‘주극동이 이운기신’(紂克東夷 而隕其身)이라고 했다. 즉, 은왕(殷王) 주(紂)가 동이와 상극(相剋)해 멸망했다고 했다. 상극은 불화요, 불화는 선한 정치를 못해 인화(人和)를 잃은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은왕(殷王) 주(紂)가 그 국민인 동이를 잘 다스리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은(殷)의 신화(神話)가 난생설(卵生說)로서 한민족(韓民族)의 신화와 동일하고 은인(殷人)이 백의를 입는 것이 한민족과 동일하다. 오늘날 중국은 은(殷)을 자기조상이라고 하지만 은(殷)은 중국 한족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다.
 
중국사가 임혜상(林惠祥)과 중국문인 전사년(傳斯年)도 은인(殷人) 동이설(東夷說)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예기, 단궁편(禮記,檀弓篇)에 공자(孔子)가 은인(殷人)이라 자칭하고 사기에도 공자가 은인(殷人)이라고 기록돼 있다. 사기(史記, 卷四十七, 孔子世家第十七)에 ‘공자는 우리 한민족이다’고 했다. 요컨대 중국문화를 개척한 자가 중국인이 아니라 한민족인 순(舜)임금이고, 중국문화의 총본산인 유교를 창설한 공자(孔子)가 바로 한민족이다. 여기에 이의(異議)를 달 학자가 없다. 현재의 중국문화는 한국에서 발생하고 중국은 이를 수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도 한민족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모방한 것이다. 또한 중국정사(中國正史) 포박자(抱朴子)에 중국민족이 시조라고 칭하는 신화적 제왕인 황제(黃帝)가 동으로 청구(靑丘)에 와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얻었다고 했다. 청구(靑丘)는 한국이요, 삼황(三皇)은 천황(天皇)·지황(地皇)·인황(人皇)을 가리킨 것이다. 따라서 중국역사 첫머리에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라고 기록된 것들이 한국에서 수입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베낀 것이다. 이는 천자(天子), 천황(天皇) 등 황제(黃帝)의 문물제도를 최초에 창조한 주역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는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한민족에 의해 발원하고 번창한 중국 문화
 
논어(論語, 卷之三, 八佾第三)에 ‘이적지유군 불여제하지무야’(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無也)라고 했다. 즉, ‘이적(夷狄)은 군주가 있고 중국은 군주가 없다. 그러므로 이적(夷狄)과 중국의 풍속은 같지 않다고 한 것’이다. 공자(孔子) 당시에 중국에 군주가 없었다. 그런데 군주가 없다고 말한 것은 무엇인가? 군주(君主)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음을 가리킨 것이다. 즉, 이적(夷狄)은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있으나 중국은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음을 개탄한 셈이다. 그런데 이 이적(夷狄)은 어느 민족을 가리킨 것인가. 고대 중국인이 남방민족을 만(蠻)이라고 칭하고, 서방민족은 융(戎)이라고 했다. 이들은 고대 한민족(韓民族) 동쪽의 반도와 북쪽의 만주에 거주해 동북방에 있었다. 그러므로 한민족(韓民族)을 이적(夷狄)이라고 칭했다. 통감(通監)에 고구려를 동이(東夷)라고 칭하고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예맥을 북적(北狄)이라고 했다.
 
고대 동서남북 사방민족 중 높은 문화를 가진 민족은 오직 한민족(韓民族) 뿐으로 기타 다른 민족은 문물제도가 없는 야만민족이었다. 당시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중국보다 발전한 민족은 분명히 한민족(韓民族)이다. 특히 한민족을 소개하는 전문에 ‘수적지방이조두상재 중국실예 구지사이’(雖狄之邦而俎豆象在 中國失禮 求之四夷)라고 했다. 즉, ‘부여, 고구려 등 이적(夷狄)의 국에 조두(俎豆)의 문화가 있음으로 중국이 예를 잃으면 부여, 고구려 등 이적(夷狄)의 국에서 배운다’고 한 것이다. 이는 부여, 고구려 등을 이적(夷狄)이라고 가리킨 것이다. 또한 예(禮)는 아래 하(下)가 위의 상(上)을 섬기는 문물제도라고 했다.
 
당시 ‘예(禮)를 잃으면 부여, 고구려에서 배운다 한 것’은 군주를 섬기는 등 예의를 한민족(韓民族)에게서 배운다고 언급한 것이다. 또한 공자가 중국의 무도(無道)를 개탄하고 한국을 군자국이라고 찬양하면서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한 말은 공자가 중국에 도(道)가 없음을 개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중국은 사상이 없는 나라였다. 공자가 말하는 유교는 그 주지(主旨)가 인(仁)이요 행동강령은 충효(忠孝)이다. 효(孝)보다는 충(忠)을 내세웠다. 충(忠)은 제왕(帝王)을 높이고 받드는 것이다. 유교는 제왕(帝王)을 옹호하는 군주주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유교문화는 천자(天子)를 존중하는 문물제도에 집약된다.
 
그런데 천자(天子)라는 명칭과 제도는 한민족(韓民族)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모방했다. 백호통작(白虎通爵)에 ‘천자자 작칭야 왕자 부천모지 위천지자야’(天子者 爵稱也 王子 父天母地 爲天之子也’라고 했다. 즉, ‘제왕은 천신(天神) 지신(地神)을 부모로 해서 천신(天神)의 자(子)가 됨으로 천자(天子)라 칭한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천자(天子)는 하늘의 피를 받은 자(子)를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에는 천신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없다. 인류사상 천신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을 제창한 자는 오직 한민족(韓民族)뿐이다. 한국사상을 계승한 유교는 한국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모방해 천자의 명칭과 제도를 제정했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이 후에 천자(天子) 운운함은 우리 한민족이 창조한 문물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천자의 관제(官制)도 한국에서 배웠다
 
천자(天子)의 문물제도가 한국에서 창조되고 사방민족 중 한민족이 대표적인 것은 역사에서 잘 알 수 있다. 때문에 한민족(韓民族)을 사이(四夷)라고도 칭하는데, 고대 사방민족 중 한민족(韓民族)을 사이(四夷)라 칭한 예가 많다. 삼국지에도 부여, 고구려를 사이(四夷)라고 칭했다. 공자(孔子)는 옛날부터 중국의 사이(四夷)에서 천(天子)자의 관제(官制)를 배웠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우리 한국에서 관제를 배웠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사가 범엽(范曄)이 공자(孔子)의 말을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기입하고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도 공자의 말을 조선조(朝鮮條)에 기입했다. 이는 공자(孔子)를 가르친 담자(郯子)가 한민족(韓民族)이요, 공자(孔子)가 말한 사이(四夷)가 한민족(韓民族)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은 한민족(韓民族)의 천자(天子) 문물제도를 옛날부터 수입한 것이었다.
 
또한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獨斷, 卷上)에 ‘천자이적 지소칭 부천모지고 칭천자’(天子夷狄 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라고 했다. 즉, 천자(天子)라는 칭호는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지신(天神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천자(天子)라는 칭호를 창조했다고 했다. 이 채옹(蔡邕)의 글은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韓民族)이 창조한 그 문물제도를 수입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중국고서(中國古書) 산해경(山海經-海內經)에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하고 석문(釋文)에 독(毒)은 육(育)이라는 해석이 있다. 천독(天毒)은 하늘이 양육(養育)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조선민족은 천신(天神)의 양육을 받는 자식이라고 가르쳤다. 즉, 천자(天子)라는 명칭이 한민족(韓民族)에 의해 창조됐고 교육됐다. 후에 거란, 일본이 자기나라 왕을 천황(天皇)이라 칭한 것이나, 중국이 천자(天子)를 흉내 낸 것들은 모두 우리 한민족에게서 배워간 것들이다. 지금도 일본은 우리가 창조한 천황(天皇)제도를 배워서 일본의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호칭하고 있는데, 이것은 상고시대 우리가 써 오던 제도였다.
 
현 일본 왕도 백제계라고 자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인들은 평생 한번은 자기 선조에게 참배한다며 7년에 한번 공개하는 미에겡(三重縣) 이세시(伊勢市)에 있는 이세신궁(伊勢神宮)과 나가노겡(長野縣)에 있는 센고지(善光寺)에 700만명이 참배한다. 이들 신위(神位)는 모두 가야, 백제, 신라 유민의 신위이다.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신위는 원신(園神)과 한신(韓神)이라고 하는데 원신(園神)은 가야, 신라조상 신이고 한신(韓神)은 백제계 조상신의 신위다. 그리고 센고지(善光寺)에 있는 신위(神位)는 백제성왕(百濟聖王)의 신위(神位)이다. 제아무리 역사를 날조 왜곡해도 진실은 그 선조들에 의해서도 모두 밝혀지게 마련이다. 일본왕조발생(日本王朝發生)도 일본열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건너갔다. 단군 이래 한국이 일본 왕조의 발상지이고 실크로드다. 일본에서는 이를 상가야 왕조사(上伽倻 王朝史)라고 지칭하며 한국의 고대사와 일본역사의 접점(接點)을 찾는 중요자료로 환단고기(桓檀古記)가 덧붙여졌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상고사’, 최인 ‘한국학강의’, 孔丘·孟軻 著 李家源 譯解 ‘論語 孟子’, 禹玄民 譯解 四書五經 ‘論語’, 徐相潤 譯解 ‘周易’,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최진열 ‘대륙에 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조선민족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西嶋定生·護雅夫·木村尙三郞·猿谷要 ‘世界歷史の基礎知識1·2’, 秋山謙藏,‘日本の歷史’ 외 다수의 서책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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