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민족중흥은 철학사상 있어 가능
필자는 일본 유학시절 일본인들에게 ‘일본은 철학이 없는 민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은 소박한 사념(思念)과 800만 신(神)은 있으나 체계화한 철학사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한국이 일제에 의해 위대한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해서인지 철학이 없고 사상이 없는 민족이 되고 있는 양상이다.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 나아갈 수가 없다. 주체성을 잃은 민족이 돼 정신을 못 차리고 외세에 저항 할 수 없는 형세이기도 하다. 흉노와 몽골은 무력으로 유럽까지 침략하고 거란과 여진은 무력으로 중원(中原)을 제패했으나 철학이 없었기에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타민족의 철학사상을 신앙하다가 타민족에 동화돼 멸망했다. 중국과 이스라엘은 타민족의 무력에 패배해 패망했지만 철학 사상이 있음으로써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자주자존의 정신이 강열해 불굴의 투쟁을 전개, 오히려 철학사상으로 정복민족을 지도·흡수함해 재기·재생했다. 일본은 체계화한 사상이 없었기에 불교, 유교 등 외래사상을 신앙했다. 그들은 해중원도(海中遠島)에 동떨어져 있어서 타민족의 압박을 받지 않고 성장해 오만한 습성이 커져 외래사상을 신앙하면서 신도(神道)라는 자연종교를 더 존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주자존의 민족의식을 토대로 외래사상을 신앙해 근대화에 성공하고 오늘의 번영을 이룩했다. 그러나 고유한 철학사상이 없어 일본 정치인들은 독일과는 판이하게 정신적 병폐를 갖고 있다. 요컨대,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무력이 아니고 철학사상이다. 그러므로 철학사상은 그 민족의 생명력이다.
독일은 철학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 우뚝 섰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족은 그 생명력을 회복하는 의식(意識), 사상적 운동을 전개해야 재기재생(再起再生)했다. 주먹구구식 구호나 말로 부르짖는 선동은 새 역사를 창조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은 ‘인간사상’이 태어난 모태의 원조국(元祖國)으로 외국의 인간사상보다 매우 우월한 국가의 지위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퇴계사상(退溪思想), 실학사상(實學思想), 외래사대사상(外來事大思想)에 절여져서 이에 구걸하고 있다. 이 사상들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을 소홀히 해 버리고 중화주의, 사대주의가 문제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산사회주의는 물질에 편중하고 있으나 인간 사회에는 인간이 주인이다. 특히 인간사회의 모든 사상 중 우리의 ‘인간사상’이 주체이고 최고다. 오늘날은 세계사가 인간시대에 도달해 아무리 우주시대며 우주여행을 하는 사회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인류는 인간을 부르짖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인간사상’이 모든 사상을 지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인간사상’은 외국의 ‘인간사상’보다 우월했다. 그래서 우리는 인류사상 가장 강대한 북방유목민족, 남방한족(南方漢族)과 인류사상 가장 호전적인 동방왜(倭)족에 포위돼 세계사상 치열한 침략을 받으면서도 이에 저항하고 1만년 불멸의 역사를 창조해 왔다. 그 이면에는 한민족의 정신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유불사상(儒彿思想)은 외래사상이요, 무저항사상(無抵抗思想)이다. 외래사상으로서 민족의식을 북돋을 수 없고 무저항사상으로서 투쟁을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은 불교, 유교의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자(孔子) 유교사상의 요약(要約)
먼저 공자사상을 살펴본다. 공자 역시 우리 한민족으로 공자가 태어난 시대는 중국의 춘추시대였다. 은 왕조(殷王朝) 후에 주(周)나라로 이어지나 주(周)나라는 봉건제(封建制)의 붕괴시기에 봉건제로부터 군현제(郡縣制)로 옮겨갔다. 주(周)나라 초기는 봉건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군신(君臣), 부자(父子)의 질서에서 사회가 영위(營爲)되기를 이상으로 했던 공자는 시대가 갈수록 실력항쟁시대가 돼 가는 상태로 약육강식의 상태로 가자 그 개선을 도모하려 했다. 공자의 근본사상은 공자 자신이 명확한 정의(定義)를 내리지 않았으나 인(仁)이다. 그래서 주체적인 마음을 갖는 방법은 애(愛)다. 친애(親愛)의 정(情), 자신보다도 사람을 위한 이타적 행위(利他的行爲)를 중시(重視)해 모든 덕(德)을 덕(德)이 되게 하는 것이 인(仁)이라는 것이다. 인(仁)의 자의(字意)는 2인(人)의 인(人=나와 너, 인간의 원형을 나타내는 사람이 둘)이라는 인(仁)으로 여기에서 이상(理想)을 말하고 있다. 그 구체적 실천은 ①극기(克己, 사리사욕을 버린다) ②서(恕, 배려) ③충(忠,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다) ④신(信, 타인을 기만하지 않는다) ⑤예(禮, 인(仁)이 사회질서에 객관화 될 것을 이상으로 했다) 등이다. 주(周)시대 성인들의 언행선례(先例), 제사의식, 행사의 작법 등이 인(仁)이 객관화 된 것을 공자는 바랬다. 인간의 욕망과 자의(恣意)를 그대로 인정하면 사회는 혼란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통제(control)하고 조화 있는 인간관계를 수립하려고 하는 도덕적 권위를 가진 사회 관습이 예(禮)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천하통일을 한 주(周)나라에는 당연히 그 행위를 합법화 해 정당화해야 할 이론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본가(本家)를 중심으로 몇 개의 분가가 결합해서 일문(一門), 종족(宗族)으로서 하나로 통합해 하나로 하기 위해서는 종족을 통제하는 것으로서의 룰(rule)이 필요했다. 이것이 종법(宗法)이다. 이것은 관혼상제에 상호부조(相互扶助) 등의 규정, 상하의 신분적 질서, 그 생활을 규제하기 위한 예(禮)에 의해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생활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자각이나 사고는 불충분했기에 이들을 통일하는 것으로서의 권위가 필요했다. 그 권위가 천제(天帝)다. 천제(天帝)는 천후(天候), 농작물의 풍흉(豊凶), 전쟁의 승패 등 인간세계 모든 것을 관여하는 것으로서 신비적인 힘이 절대자로 생각하게 됐다. 거기서 나온 것이 개인도덕과 사회도덕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다. 수신(修身)은 인(仁)의 실천 방법이다. 구체적으로는 극기(克己), 서(恕), 충(忠), 신(信)의 실천이다. 제가(齊家)는 부모에게 효도, 형제의 우애, 조화 있는 가정의 수립이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국가의 질서와 천하화평의 유지다. 이를 위한 행동의 형식은 사회적 규범인 예(禮)라고 했다. 공자는 예(禮)의 근본은 극기라고 했는데, 자신의 욕망을 제어(制御)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禮)와 인(仁)은 객관화된 것이다. 즉, 공자사상의 요점인 인(仁)은 인간의 근본적 덕(德)이며 애(愛)이다. 예(禮)는 객관화 된 ‘사회규범’이라는 것이다. 정치도덕과 사회적 도덕, 이 두 개의 도덕을 연속한 것으로 해서 합리적으로 결합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의 사후(死後)에는 그 일방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출현으로 학파가 발생하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제자가 맹자(孟子), 순자(荀子)이다.
석가의 불교사상의 요약(要約)
불교(원시 불교)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상을 요약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즉, 일체의 모든 것은 인연(因緣)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늘 변화하고 그 자리에 서 있지 않는다. 인생은 사고팔고(四苦八苦)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로병사(生老病死)로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에 낳는 자신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인생에는 애별이고(愛別離苦-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증오스러운 것에 만나는 고통), 오음성고(五陰盛苦-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 구불득고(求不得苦-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등의 사고(四苦)가 있다.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와 이 같은 사고(四苦)를 합쳐 팔고(八苦)라 하는 것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인생은 사고팔고)라는 것이며, 제법무아(諸法無我-사람은 무엇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것이다. 자아(自我) 그 자체가 실체가 아니다. 불교에서 자아(自我)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존재는 물질적 요소인 색(色), 감각, 수(受), 사고작용(思考作用=想), 의지결정(意志決定=행·行), 식별작용(識別作用=식·識)의 영역 속에서 성립하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위의 진리를 바르게 지향하면 열반(涅槃)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불교는 사체(四諦=4개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고체(苦諦-인생은 고생이다, 자각(自覺)하라) ▲집체(集諦-고뇌는 번뇌에서 발생하고 번뇌는 사랑을 갈망하는 갈애(渴愛)에서 나온다) ▲멸체(滅諦-갈애(渴愛)를 완전히 멸한 것이 열반(涅槃)이다) ▲도체(道諦-열반(涅槃)에로의 수도법(修道法) 즉, 팔정도(八正道)라는 것) 등이다.
팔정도(八正道)는 해탈을 위해서는 두 개의 극단(極端)을 피해서 중도(中道)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2개의 극단은 엄격한 고행금욕(苦行禁慾)과 극단의 쾌락주의(快樂主義)다. 중도(中道)에의 구체적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인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등을 말하고 있다.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 즉, 불교의 가르침의 도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고, 정사(正思)는 바른 사고(思考)를 말하는 것이다. 정업(正業)은 바른 행위이고, 정명(正命)은 바른 생활에서 바른 불교의 가르침이며 정견(正見)의 생활 위에 실현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정진(正精進)은 바른 삶에 정려(精勵할 것을 의미하고, 정념(正念)은 바른 사념(思念)으로서 정견(正見)을 늘 마음에 간직해서 잊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정정(正定)과 바른 선정(禪定)에서 바른 지혜가 얻어지는 정견(正見)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인생이 미혹되는 원인은 무명(無明-인생 진실의 모습에의 무지)라고 했다. 인생의 진실이란 모든 것은 인연(因緣)에 의해서 성립하고 변화 한다는 것이다. 중도(中道), 연기설(緣起說)이다. 불교는 이처럼 죽음에의 준비도 아니며, 노인을 위한 가르침도 아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추구한 철학인 것이다.
유교, 불교 인간사상은, 자애(慈愛)편중 ‘역사창조 무관’
불교, 유교를 비롯한 모든 사상은 자애(慈愛)에 편중해 용기가 없다. 이것이 ‘인간사상’의 공통된 결함이다. 그러나 한국의 ‘인간사상’은 북방 유목민족 대륙기질의 전통을 계승해 용맹하며 진취적이다. 물질도 중시한다. 그런데 모든 인간사상은 인도(人道)에 편중해 물질을 무시한다. 이것이 인간사상의 공통 결함인데, 한국의 ‘인간사상’은 대륙산악지대에서 육성(育成)됐기 때문에 물질(物質)을 중시(重視)한다. ‘홍익인간’의 홍익(弘益)은 물질적 실익을 존중하는 것이요 또한 인간(人間)은 인간주의(人間主義)이다. 즉, 홍익인간은 중물적(重物的), 인간주의를 계승·발전해 역사창조에 크게 공헌했다. 타민족의 인간주의는 인도(人道), 윤리(倫理)에 편향해 물질을 무시함으로 공허(空虛)한 이상(理想)에 흐르고, 실질적으로 그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한민족(韓民族)은 물질을 중시해 국민의 경제적 생활을 보장했다. 물질적 토대 위에서 진정한 인간주의가 실현돼 국민의 인화단결(人和團結)을 이룩하고, 이 인화단결이 역사창조에 크게 공헌했다. 고려사(高麗史, 志, 卷, 三十二, 食貨一)에 보면 농병제도(農兵制度)는 토지를 국유(國有)로 하고 국가에서 그 토지를 군인에게 분배해 그 생활을 보장해 주어 군인이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애국심, 의용심(義勇心)을 발휘해 외적을 방위하는데 크게 공헌했다는 내용이 있다.
농병제도(農兵制度)는 부여시대(夫餘時代)에 창안돼 고려시대까지 계승됐다. 이 농병제도가 몇 천 년 동안 외적의 침략을 방위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또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第十六, 國俗一)에 보면 동이족은 궁술로서 이위천하(以威天下)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위천하(以威天下)는 하늘아래 모든 민족을 두렵게 했다는 뜻이다. 숙신씨(肅愼氏)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의 위력에 의해 4300년 전에 대국을 건설했다. 신라는 당과 연합해 고구려·백제를 멸한 후에 고구려 백제의 옛 땅을 독점하려고 한 당과 67년 동안 싸웠다. 최후 40여 전투에서 신라가 전승하고 당이 전패함으로 당은 퇴각했다. 신라에 전패한 당은 신라의 천보궁(千步弓)을 배우려고 신라에 요청했으나 신라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삼국사기문무왕상(三國史記文武王上, 9年)에 그 내용이 있다. 이는 신라가 천보궁(千步弓)으로 당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룩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기술한 수양제와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으나 대패한 것은 외침에 대비한 무기와 전술 성곽이 완고하고 특이했기에 가능했다. 한민족의 궁술과 축성술이 강대족(强大族)과 투쟁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가 몽골에 40년간 저항한 저력은 한민족이 가진 인간사상, 천민사상, 중물사상 등 3대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민족이 인간사상, 천민사상, 중물사상으로서 외적의 침략에 저항하고 1만년의 역사를 창조한 사실은 몽골과의 민족투쟁에서도 재확인된다. 우리는 불교나 유교의 인간사상에다 천민사상과 중물사상이 있었기에 침략을 막아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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