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이번 칼럼은 한민족의 천민사상(天民思想)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고대부터 하늘을 숭배하고 존중하며 신(神)의 자식임을 자처했다. 이에 대한 그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면서 현재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변조를 언제까지 우리가 방관해야 하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다른 민족도 우리 한민족처럼 천(天)을 숭배하지만 우리와는 같지 않음을 밝히려 하는 것이다.
천(天)을 숭배한 고대, 제 부족(諸 部族)과 부족국가
고대 북방유목민족은 일반적으로 천(天)을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 한민족은 북방유목민족으로 일찍부터 천을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다. 신 원사(新 元 史)에 몽고는 배천(拜天)의 예를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금사(金史)에 요(遼)는 중오(重五=5월5일), 중원(中元), 중구일(重九日=9월9일)에 천에 절을 하는 풍속이 있었다. 금이 이 풍속을 받았다고 한다. 금지(金志)초흥본말(初興本末)에 금인(金人)은 설(元旦)에, 해(日)에 절을 하고 중오(重午=5월5일)에 유(柳)를 사(射)하는 제천의 행사를 거행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같이 한민족은 천(天)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고대 신선파(神仙派)가 천신(天神)을 신앙했다. 포박자 지리(抱朴子 至理)에 신선(神仙)이 백일(白日)에 승천한다 하고, 동서미지(微旨)에 신선이 용을 타고 승천한다고 했다. 속 자치통감 강목(續 資治通鑑綱目)에서는 선인동자(仙人童子)가 천신(天神)이 되어 운중(雲中)에 나타났다는 신선천신 설(神仙天神 說)이 나와 있다. 한민족은 본래 신선사상(神仙思想)을 창조한 신선국(神仙國)이다. 그래서 더욱 천(天)을 존중했다. 고구려 무덤에서 천왕도(天王圖)가 발견되고, 신라의 천마총(天馬冢)에서 천마도(天馬圖)가 발견되는 것도 이 천민사상(天民思想)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백제왕 신사에 우두천황(牛頭天皇)이라는 간판이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에 천(天)을 존중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는 중요한 국가 건물에 천(天)을 많이 붙였다. 그 많은 전각(殿閣)에도 천(天)을 붙인 것이 확인된다.
예컨대 천덕천(天德殿), 천흥전(天興殿), 천성전(天成殿), 봉천전(奉天殿), 천복전(天福殿), 천수전(天授殿), 순천관(順天館), 승천관(昇天館), 승천궐(昇天闕), 천우문(天佑門), 봉천선(奉天船) 등이다. 또한 지명(地名)에 천자(天字)를 많이 붙인 것을 볼 수 있다. 천신산(天神山), 승천성(昇天城), 경천역(敬天驛), 순천도(順天道), 순천부(順天府), 승천부(昇天府), 승천군(昇天郡)이 그 실례이다. 특히 고려사에 천신사(天神寺)가 있다. 천신을 존중하지 않은 불교가 천신사(天神寺)라 칭한 것은 고려시대에 천신(天神)을 존중하는 사상이 왕성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高麗史 列傳, 卷四十一, 鄭仲夫). 이 고려사에는 고려 말 왕 공양왕(恭釀王)이 양생(養生)의 운동으로서 천(天)에 절을 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고려말기까지 천(天)을 존중, 신앙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천(天)을 존중하고 신앙하는 것은 북방유목민족과 신선파의 공통된 사상이요 농업민족과 비신선파애서도 볼 수 있는 일반적 사상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천(天)을 존중하고 신앙하는 사상은 타민족의 천(天)을 존중하고 신앙하는 사상과 본질이 크게 다르다. 타민족은 천(天)을 창조주로 존중 신앙한다. 이는 천주사상이다. 한민족은 천을 친부(親父)로 존중, 신앙한다. 이는 천부사상이다. 여기서 천주사상은 천(天)이 만든 것이요 낳은 것이 아니고, 천부사상은 천(天)이 낳은 것이요 만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타민족은 천신의 피를 받지 못한 평범한 민족이요, 한민족은 천신의 피를 받은 성신족(聖神族)이라고 자처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민족은 천민(天民)이라고 칭한다. 중국과 일본이 천민이라는 것은 당치도 않다. 예기왕제(禮記=王制)에 말한 천민(天民)은 인민을 가리킨 것이고, 맹자(孟子)가 말한 천민(天民)은 이윤(伊尹), 강태공(姜太公)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가리킨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천민(天民)은 피를 받은 성신족(聖神族)을 가리키는 것이다.
천민사상에 대한 고증(考證)
사서(史書)인 고기(古記)에 천신환웅(天神桓雄)이 단군을 낳았다고 했다. 즉, 단군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는데, 성신역문(聖神譯文)에 독(毒)은 육이라고 해석했다. 천독(天毒)은 천신이 양육하는 자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 대화 원년(大化 元年)에 보면 일본 22대왕 코우도쿠 덴노(孝德天皇, 일본은 36대라 한다)가 고려왕을 신(神)의 자(子)라고 칭했다. 또한 지바씨(千葉氏)의 전설에 한국의 처녀를 천여(天女)라고 칭했다. <일본 중앙공론(中央公論) 1971년 4월 특별 호(일본역사의 조선관(日本歷史の 朝鮮觀)-시바요타로(司馬遼太郞)>. 특히 인류의 대표라는 천자(天子)를 자칭하고 타민족을 무시하는 명 태조 주원장(明太祖朱元璋)이 한국은 천(天)이 만든 나라라고 말했다.(고려사절요 우왕 십일 년 구월(高麗史節要禑王11년9월). 이는 타민족이 한민족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민족(韓民族)은 인류사상 타민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신화(神話), 독특한 백의(白衣), 독특한 산명(山名), 독특한 국서(國書)를 갖고 있다. 이는 천민(天民)으로 자처한 것을 분명히 입증한다. 특히 타민족까지 한민족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한국에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있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 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를 뒤 덮으려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날조는 우리 한민족을 모독하고 있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다.
중국 “고구려와 한반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 선전
천민사상(天民思想)은 타민족도 천을 존중한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우리 한민족같이 천민(天民)으로 자처하지는 못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인류사상 우리 한민족이 최초에 문화민족’으로 등장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나아가 한민족이 ‘인류사상 최초의 강대국’으로 발전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 이는 이미 상술했기에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중차대한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역사 지키기에 온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천민사상(天民思想)도 도둑질하며 자기들만이 천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지금 중국과 일본은 우리 고대사 말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 실례로 일본은 초, 중, 고 교과서를 비롯해 ‘일본사’를 완전히 우리 역사를 가져가서 거꾸로 왜곡시키고 있다. 중국은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 425년간 고구려 수도였던 중국 지린성 지안(吉林省 集安)에 3년 전(2010년)에 박물관을 건립했다. 중국은 이를 다시 내부 보완을 거쳐 2013년 5월 1일 개관했다. 이곳 지안박물관(集安博物館)을 통해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교묘하고 세밀하게 선전하면서 동북공정을 벌이고 있다.
이곳을 관람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중국은 조선족을 소수민족이라 홍보한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삼족오(三足烏)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안내판에는 “태양조 삼족오(三足烏)는 고대전설에 등장한다. 고구려 벽화의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민족과 중원민족이 동일하게 태양조를 숭배했다는 의미다”라고 말도 안 되는 왜곡된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안내판 지도에는 고구려가 한(漢) 당(唐)의 영향을 받아 중원에 융합됐다는 내용만 가득히 채워 마치 한(漢)과 당(唐)이 고구려를 지배한 것처럼 각색돼 있다. 실로 파렴치하고 후안무치의 역사변조다. 그러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고구려와 한반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구려 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왜곡·선전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연변일대를 고구려 영토에서 제외시키고 해당지역을 말갈족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발해역사는 아예 묵살하려는 듯 장백에 세워져 있는 발해 영광탑(榮光塔) 안내판에는 “당나라 발해시기에 쌓았다. 모양과 구조가 서안(西安)의 당나라 때 현장탑과 비슷하다”는 식으로 써 있다. 기만적인 허위 작태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 “현토군이 고구려로 성장한 것” 주장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고구려 영토의 남쪽 경계는 ‘한강유역’이라고 하면서 어떤 유적표시 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관되게 중원과 고구려의 ‘결합’을 강조하고 “한 무제가 현토군에 고구려 현을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현토군이 고구려로 성장 한 것처럼 묘사하는 언어도단의 파렴치한 수법이다. 아니 천인공노할 간사한 수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는 졸본부여에서 발단해 한나라가 세운 모든 군을 통합했다. 또 한민족(韓民族)이 오히려 중원을 장악하고 수양제의 100만 대군과 당태종의 30만 정예대군도 물리친 강대한 국가였다. 중국은 이에 대한 내용은 한 줄도 실지 않고 숨기며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우리도 알지만 중원에 한족(漢族)이 이주한 것은 최근 130여년밖에 안 된다. 중국이 이런 사실들은 숨긴 채 더 웃기게 행동하는 것은 “고구려는 멸망할 때 까지 당나라 관리 복장을 했다”고 하는 당치도 않은 주장이다. 신라는 당나라 복장을 했으나 고구려는 다카마쓰 쓰가 벽화(高松塚壁畵)에서 보듯이 당나라 복장을 입은 적이 없다. 참으로 기가 막힐 역사변조이고 ‘동북공정’이다. 이는 중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을 현혹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중국집안(集安)에 있는 현존 최고의 ‘고구려비’는 확대경까지 동원해서도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게 했다. 이처럼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자연스럽게 중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말도 안 되는 역사변조를 버젓이 하고 있다. 우리가 이에 대해 언제까지 침묵만 지킬 것인지. 파렴치한 이웃나라들이 우리 역사를 도둑질하며 진실을 왜곡 하는 작태에 필자는 환멸과 혐오감을 느끼며 우리 정부도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에 항의해 대응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최인 선생의 연구자료를 참조하고 일부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