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만 23회 등장… 통치기관 흔적 없어
이영식 인제대 교수
입력 : 2016.06.15 04:56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서] [11] '임나일본부'의 虛像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고대 일본의 야마토(大和) 정권이 서기 720년에 편찬한 '일본서기'에만 있는 용어다. 하지만 여기서 파생된 임나일본부설(說)은 근대 일본 역사학계가 만들어낸 역사를 가장한 허상이었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이 4~6세기 무려 200년 동안 백제·신라·가야를 포함하는 한반도 남부 지역을 근대 식민지같이 경영했고, 그 통치의 중심으로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운영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가야 고분군을 비롯한 영남 지역의 유적을 식민지배자에게 허락된 무한의 권리로 파헤쳐 보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단 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광복 이후 한국 고고학계 역시 가야 유적을 발굴하고 관련 유물이 출토될 때마다 "이로써 임나일본부설은 부정됐다"는 발표를 반복했지만 정작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직접 증거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임나일본부 문제는 일본서기 편찬진의 특별한 역사의식과 서술 방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는 없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다양한 임나일본부설이 횡행했다. 고대 일본의 가야 출장 기관이라는 설,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열도 오카야마 지역에 있었던 가야계 분국(分國) 임나를 둘러싸고 긴키(近畿)의 야마토 정권이 규슈의 백제계 분국(서북부)과 신라계 분국(동북부)과의 쟁탈전에서 승리해 설치한 기관이라는 설, 야마토 정권과 무관한 가야 거류 왜인들의 자치적 행정기관이었다는 설, 주체를 일본에서 백제로 바꾸어 '임나백제부'로 보아 가야에 설치된 백제군사령부였다고 해석하는 설, 통치나 행정기관이 아니라 외교사절이었다는 설 등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사료 비판 없이 일본서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외교사절설을 제외한 모두가 허상이었음은 간단하게 밝혀진다.

경남 함안 읍내의 가야시대 건물터 발굴지. 일본서기에 529년 3월 아라국(아라가야)이 백제·신라·왜의 사절을 초청해 개최한 것으로 기록된 고당(高堂) 국제회의 장소로 추정된다.

복원된 국제회의장. /함안박물관 제공
왜왕이 가야에 파견한 외교사절…
일본서기 편찬자가 '府'자 붙여
가야사 복원 자료로 활용해야
먼저 임나일본부의 기원을 4세기 중후반에 이른바 신공왕후가 신라와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설화에서 찾고 있지만 정작 임나일본부의 기록은 5세기 후반(1회)과 6세기 전반(22회)에 국한돼 있다. 4세기 후반에 신라와 가야를 평정한 왜나 백제가 100~150년이나 지난 뒤 통치 또는 군정(軍政) 기관을 설치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23회나 등장하는 일본부의 기록에 왜나 백제가 가야에서 조세 징수나 역역(力役)과 군사를 동원했거나 정치적 강제를 보여주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고대 일본의 통치기관이나 백제의 군정 기관을 상정할 수 있는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본부라는 용어가 보이는 기록은 모두 왜의 사신들이 경남 함안에 위치했던 아라국왕의 보호 아래 백제와 신라를 상대로 전개했던 외교 활동이다. 결국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왜왕이 가야에 파견했던 외교사절이었고 일본서기 편찬자가 자신의 역사 해석에 따라 통치기관을 뜻하는 '부(府)'라는 한자를 빌려 기록했을 뿐이다.
이렇게 임나일본부의 허상과 실체가 밝혀지는데도 일본서기의 관련 기록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야사의 복원 때문이다. 이 기록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없는 가야사 복원을 위한 자료들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다. 임나일본부설의 극복을 통해 일본부로 표기된 왜사(倭使)들의 활동이 친(親)백제·반(反)신라에서 친신라·반백제로 전환한 특징이 새롭게 지적됐고, 이런 사실은 신라와 백제의 침략에 대응하던 가야의 외교전략을 추출할 수 있게 했다. 가야에 대한 식민지배란 가설이 가야의 독립 유지 노력이란 역사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의 가야사 연구 부진이 식민사학의 임나일본부설을 불러들였다. 우리의 뒤를 비춰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울인 일본서기 관련 기사의 연구를 통한 가야사 복원이 필요하다.
공동 기획: 한국고대사학회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