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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한국신화 기행 4

송화강 2019-05-12 (일) 22:48 6년전 4541  

16. 샤먼과 대장장이③

 

서라벌 옛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
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
사랑도 그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고
맹세에 잠든 대궐 풍경 홀로 우는 밤
궁녀들의 눈물이냐, 궁녀들의 눈물이냐
첨성대 별아.

누가 작곡한 것인지, 누구 부른 것인지 모르는 채 요즘도 내가 고향 친구와 어울리면 자주 부르는 노래다.

50, 60년대에는 아득히 먼 삼국시대를 당대적 현실로 착각하고 부르는 듯한 노래가 많았다.

그런 노래들 중에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남은 노래가 바로 ‘신라의 달밤’이다.

왕릉이 밀집해 있는 경주의 대능원에 자동차를 세우면 주위에 볼 것이 많다.

천마총(天馬塚)이 바로 대능원 안에 있다. 돌아서면 내가 ‘아크로무세이온(우뚝 솟은 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인

남산이 보인다. 여기에서 첨성대, 계림, 반월성으로 통하는 길로는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이따금씩, 유료 마차가 다닐 뿐이다.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이 길로 들어서면 정말 옛 서라벌의 북소리가 함께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43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크고 웅장해 보이던 첨성대가 지금은 작고 아담한 모습을 하고 길가에 서 있다.

입장료는 300원이다.

세계의 이름난 고적들을 꽤 많이 찾아다녀 보았지만 입장료가 이렇게 싼 곳은 경주뿐일 것이다.

첨성대는, 입장료 내고 들어가지 않아도 철책 바깥에서 잘 보인다.

첨성대 보고, 오른쪽 길로 잠깐 걸어 들어가면 계림(鷄林)이다.

계명성(鷄鳴聲), 닭우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시림(始林)이라고도 한다. ‘비롯된 숲’이다.

느티나무와 회나무 고목들이 들어차 있는 성림(聖林)이다.

입장료는 역시 300원이다. 계림은 43년 전과 조금도 다름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계림의 고목 사이를 돌아나오면

눈 앞에 나지막한 구릉이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반달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잠깐 오르면 꽤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걸어서 20, 30분 걸리는 거리에 ‘서라벌 북소리’, ‘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 ‘첨성대 별’이 현실인 것처럼 존재한다. 등산복 차림으로 느릿느릿 오가는 경주 시민들이 한없이 부러워

진다.

여기에서 펼치는 ‘삼국유사’는 별미다.

어느 날 탈해가 동악에 올라갔다가 심부름하는 자를 시켜 마실 물을 길어오게 했다.

심부름하던 자가 물을 길어 오던 중 먼저 마시려고 뿔잔에 입술을 대었다. 입술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탈해가 나무랐다. 심부름하는 자가 맹세해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가깝고 멀고 간에 감히 먼저 마시지는 않겠습니다.”

그제서야 심부름하는 자의 입술이 뿔잔에서 떨어졌다. 이 때부터는 심부름하는 자가 감히 탈해를 속이지 못했다.

지금도 동악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요내 우물’이 바로 그것이다.

노례왕이 죽자 탈해가 왕위에 올랐다.

(호공에게), 이것이 옛날(昔)의 우리 집이오, 하면서 집을 빼앗았다고 해서 성씨를 ‘석씨(昔氏)’로 하였다.

혹은, 까치 때문에 (아진의선이) 궤짝을 열었으므로 까치 ‘작(鵲)’ 자에서 새 ‘조(鳥)’를 털어버리고 석씨로 했다고도

한다. 궤짝을 ‘풀고(解)’, 알을 ‘벗고(脫)’ 나왔다고 해서 탈해(脫解)라고 했다고도 한다.

탈해왕 3년, 호공이 밤에 월성 서쪽 마을에 갔다가 시림(始林)에서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호공이 가서 보니, 보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에 드리워져 있는데 구름 속에는 황금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바로 그 궤짝에서 빛이 비쳐나오고, 또 흰 닭이 나무 아래서 울어 호공은 이를 왕에게 알렸다.

왕이 시림으로 거동하여 궤짝을 열어 보니, 사내 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혁거세 탄생과 같았다. 혁거세가 자신을 ‘알지(閼智)’라고 했다는 그 말에 따라 아이 이름을 ‘알지’라고 지으니,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다.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들이 뒤를 따르면서 기뻐 날뛰며

춤을 추었다.

왕이 날을 받아 그를 태자로 책봉했으나 알지는 왕위를 사양하여 오르지 않고 파사(婆娑)에게 그 자리를 물렸다.

알지가 금 궤짝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

알지가 열한을 낳고, 열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가 수류를 낳았다. 수류가 욱부를 낳고 욱부가 구도를 낳고,

구도가 미추를 낳았다.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탈해는 임금 자리에 앉은지 23년만에 죽어서 소천 둔덕에 묻혔다.

뒤에 탈해의 신령이, 내 뼈를 조심해서 묻어라고 했다. 그의 해골 둘레가 3척 2촌이요, 몸뚱이뼈 길이가 9척 7촌

이었다. 이빨이 엉켜 하나인 듯했고 뼈마디가 연결되어 있었으니 소위 천하에 적수가 없을 장사의 형해였다.

나라에서는 그 뼈를 부수어 형상을 빚고, 그 형상을 대궐에 모셨다.

탈해의 신령이 또, 내 뼈를 동악(東岳)에 두라고 하여, 그곳에 모셨다.

이런 말도 있다. 그가 죽은 뒤, 그러니까 27대 문무왕 때 얼굴이 무섭게 생긴 노인이 문무왕의 꿈에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탈해다. 내 뼈를 소천 둔덕에서 파다가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에 안치하라.”

왕은 이 말을 좇았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나라에 제사가 끊이지 않으니, 제사 흠향하는 이가 바로 이 동악신이다.

탈해는 소위 용성국에서 배를 타고 신라로 온, 자칭 대장장이다.

그는 신라에 도착한 직후, 지팡이를 끌면서 두 하인을 데리고 토함산으로 올라가 돌무덤을 만들고 이레 동안 지내

는데, 이것은 샤먼의 입무의례(入巫儀禮)를 상기시킨다.

야쿠트 족에게는 ‘무당과 대장장이는 한 통속’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들은 훌륭한 여성을 ‘무당이나 대장장이 마누라 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르야트 족의 믿음에 따르면 이 땅의 모든 대장장이들은 천상의 대장장이 보쉰토이의 아들 9형제의 제자들이다.

보쉰토이가 이 땅에 대장장이들을 퍼뜨리도록 아들 9형제를 보낸 것이다.

석탈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부르야트 족의 대장장이 신 보쉰토이가 떠오른다.

대장장이 샤먼 석탈해의 도래(到來)와 그의 죽음 사이에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놓여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알지는 황금궤(黃金櫃)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 궤짝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쇠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

혁거세의 성씨 ‘박(朴)’은 식물성이다. 탈해의 성씨 ‘석(昔)’은 까치 ‘작(鵲)’에서 나온 것이니 동물성이다.

여기에 김씨, 즉 광물성 성씨가 가세한다.

‘이빨이 엉켜 하나인 듯하고 뼈마디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용광로를 연상시킨다.

후손에게, 자기의 뼈를 소천 둔덕에서 파다가 소상을 만들어 토함산에 안치하라는 석탈해의 신조(神詔)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전형적인 야장무(冶匠巫) 의례에 속하기 때문이다.

 

 

 

 

17. 고주몽

 

 

 

태양신 아드님의 성령으로 잉태하사

1193년에 씌어진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은 시대적으로는 김부식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이

1285년에 써낸 “삼국유사” 사이에 위치한다.

이규보의 성향도, 김부식이나 일연 스님과는 달리 가치중립적이다.

중국 섬기기쪽으로 되우 치우쳐 있던 정치가 김부식, 부처나 보살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귀신이나 사람의 형용을

빌어 세상에 나왔다는 이른 바 ‘본지수적설(本地垂跡說)’ 쪽으로 신화를 몰고 간듯한 느낌을 주는 일연 스님과는 달리

이규보는 도가(道家風)의 활달한 선비였다. 

그는 경전(經典), 사기(史記), 선교(禪敎), 노불(老佛), 잡설(雜說)에 두루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시와 거문고와 술을

좋아해서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즉 ‘세 가지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선생’,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가파르게

우뚝하다고 해서 ‘인중용(人中龍)’으로 불리기까지 한 분이다.

‘동명왕편’ 머리말에서 그는 자신이 신화 경시 풍조에 편승해온 것을 반성하고, 역사서에서 신화를 의도적으로

빠트린 김부식을 질타한다.

도무지 12세기의 글 같지 않게 활달하다. 신화가 이렇게나마 명맥을 유지해온 까닭을 알게 하는 글이다.

“세상 사람들이 동명왕이 신기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한 것으로 말하여 이제는 어리석은 사람까지도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 나는 일찍이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돌아가신 스승 공자님께서는 괴력난신, 즉 괴이한 것과, 용력(勇力)한 것과, 패란(悖亂)한 것과 귀신스러운 것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동명왕 일은 너무나 황당하고 기괴하여 우리들(같은 선비들)이 입에 올릴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궁금해서) 뒤에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어 보았더니, 그 책들도 동명왕 일을 싣기는

했지만 너무나 간략해서 도무지 자세하지 못했다.

저희 나라 것은 자세히 적고 남의 나라 것은 소략하게 적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구삼국사(舊三國史)’를 구해 ‘동명왕본기’를 읽어 보았더니 (동명왕과 관련된) 신기하고 이상한 사적이 세상에

이야기로 떠도는 것보다도 더했다. 처음에는 귀신스럽고 허깨비놀음 같았다. 

그런데 세 차례 되풀이해서 읽어 그 바탕을 알고보니 ‘귀신’이 아니라 ‘신(神)’이었고 ‘허깨비’가 아니라 ‘거룩한

형상’이었다.

국사는 있는 대로 쓰는 글인데 어찌 거짓을 썼으랴.

김부식은 국사를 보태 쓰면서 짐짓 그 일을 생략했다. 그는, 국사란 무릇 세상을 바로 잡는 글인데, 신기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후세에 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략했음인가.

‘당현종본기’와 ‘양귀비전’은 도사가 하늘에 오르고 땅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시인 백낙천(白樂天)

은 그것이 인멸될 것을 두려워하여 노래로 지어 기록했다.

실로 황당하고, 음란하고, 기괴하고, 허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보인 것이다.

동명왕 사적은 걷잡을 수 없이 신기하고 이상한 것일 뿐 뭇사람들을 현혹하려 한 것이 아니고, 나라를 여는 신기한

사적일 뿐인데 이것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그래서 시로 지어 남겨 우리나라가 원래 성인의 나라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동명왕편’은 머리말에 이어 중국의 창세 신화를 운문으로 노래한다.

동명왕 신화는 바로 이 중국 창세신화의 뒤를 잇는 것이다. 하지만 ‘동명왕편’은 운문으로 되어 있다.

운문으로 기록된 신화는 행간이 너무 넓다.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그렇듯이 ‘동명왕편’도 자세한 산문 각주가

있어야 그 문맥 안에서 행간의 의미를 따라잡을 수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동국이상국집’을 두루 살펴 동명왕 신화의 뼈대를 다시 짜본다.

서기전 59년 4월 초파일, 천제의 아들이 다섯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

천제를 따르는 사람들은 흰 고니를 타고 쫓아왔다. 색색 구름이 위로 뜨고 구름 속에서 가락이 울렸다.

천제의 아들은 웅심산(熊心山)에 열흘 동안 머물렀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까마귀 깃털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있었다.

천제 아들이 내린 곳은 흘승골성이다. 천제의 아들은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고 하고 자신을

‘해모수’라고 했다. 아들을 낳자 이름을 ‘부루’라 짓고 ‘해(解)’로써 성을 삼았다.

북부여 왕 정승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나타나서 말했다.

“장차 나의 자손으로 이곳 왕을 삼겠으니 너희는 이곳을 피하라. 동해 해변에 가섭원이라는 기름진 땅이 있으니

가히 도읍할 만할 것이다.”

정승 아란불이 해부루에게 권하여 나라를 그곳으로 옮기게 하고는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했다.

해부루왕이 늙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산천에 자식낳기를 비는 제사를 드리러 다녔다.

어느 날 곤연(鯤淵)에 이르렀을 때 왕이 탄 말이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하게 여기고 그 돌을 뒤집게 하니 돌밑에 금빛 개구리 형상을 한 아이가 있었다.

왕은, 하늘이 내게 주신 아들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금개구리(金蛙)’라고 이름짓고 태자로 삼았다.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 혹은 성 북쪽의 압록강가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왕이 내력을 묻자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하백(河伯), 곧 강신(江神)의 딸입니다. 이름은 ‘버들꽃(柳花)’입니다.

동생인 ‘원추리꽃(萱花)’, ‘갈대꽃(葦花)’과 함께 압록강의 ‘곰마음 못(熊心淵)’에서 놀다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분을 따라가 ‘곰마음 산’밑에 있는 압록강변에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분은 가서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를 알았다고 꾸짖고는 저를 귀양보낸 것입니다.”

금와가 이상하게 여기고 여자를 깊은 방에 가두었다. 깊은 방에 가두었는데도 햇빛이 여자를 비추었다.

햇빛으로 인하여 태기가 있었다. 이윽고 낳으니, 다섯되 들이는 실히 될 알이었다….

또 알이 등장한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심지어는 가락국 수로왕 신화에 이어 또 알이 등장한다.

우리 조상들은 ‘알’ 이야기 빼고는 신화를 쓰지 못할 분들 같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하지만 까닭이 있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을 나는 조류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런 조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상(飛翔)과 초월의 상징

이었다.

그리스 신들에게 각각 신조(神鳥)가 딸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천신 제우스의 신조는 독수리, 태양신 아폴론의

신조는 까마귀다.

알타이 인 거주지역 전역의 샤먼은 새 모양을 본뜬 의상(鳥型衣裳)을 입은 채로 접신(接神)한다(M 엘리아데).

해모수가 머리에 쓴 것이 무엇이던가. 까마귀 깃털관(烏羽冠)이었다. 

까마귀, 특히 ‘세발까마귀(三足烏)’, 태양을 상징하는 너무나도 유명한 새다.

그가 허리에 찬 것이 무엇이던가. 용광검, 태양신의 상징이다. 해모는 태양신의 아들이다.

‘해(解)’는 아무래도 ‘해(太陽)’인 것 같다.

태양신의 아들이 버들꽃에 자식을 끼친다. 햇빛으로써 끼친다. 태양신 아들의 성령(聖靈) 아닌가.

어째서 ‘버들꽃’인가.

 

 

 

 

18. 버들은 비오지 않아도 홀로 습하나니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이, 흥

…… 진한 땅 6부 촌장들이 모여 임금 모실 궁리를 하다가 버들 산(楊山 양산) 밑 댕댕이우물, 혹은 담쟁이우물

(蘿井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진 것을 보고 달려갔다. 가 보니, 흰말 한 마리가 무릎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곁에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박혁거세 탄생 신화의 첫머리다.

열쇠말은 ‘버들 산’이다.

“저는 하백(河伯), 곧 강신(江神)의 딸입니다. 이름은 ‘버들꽃(柳花 유화)’입니다……

압록강의 ‘곰마음 못(熊心淵 웅심연)’에서 놀다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분을 따라가 ‘곰마음 산’ 밑에 있는 압록강변에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고주몽 신화의 첫머리다. 열쇠말은 ‘버들꽃’이다.

“왕건이 궁예를 섬기는 장군으로 군대를 이끌고 정주를 지나다가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처녀가 길 옆

시냇가에 서 있었다……”

태조 왕건 설화에는 버드나무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왕건이 물을 청하자, 처녀가 바가지로 물을 깃고 그 위에다 버들잎을 훑어넣어 왕건에게 건네주었다는 대목이다.

박문수 이야기에도 이 버들잎이 등장한다. 우리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다.

“왕후가 부끄러워서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어귀에 이르렀을 때 태동하여 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고 죽었다.

성종이 유모를 택하여 아이를 양육하였는데 장성하여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현종이다.”

(김재용 이종주 공저 ‘왜 우리 신화인가’에서 재인용)

또 버들이다. 버들(버드나무)이 이처럼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인가?

먼나라 그리스의 신화에도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신성한 결혼의 여신 헤라는 버드나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헤라는 사모스 섬 암브라소스 강둑 버드나무 아래서 태어난다.

제우스는 뻐꾹새로 둔갑해서 접근하고, 헤라는 비에 젖은 뻐꾹새가 애처로워 가슴에 품어주었다가 순결을 잃게

되는데, 이들이 첫 정을 나눈 곳도 바로 비오는 봄날의 버드나무 밑이었다(파우사니아스).

민요의 노랫말 중에는 별 의미도 없는 사실을 평면적으로 서술한 것일 뿐인데도 끈질기게 불리는 노랫말이 여럿

있다.

가락국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구지가(龜旨歌)’의 노랫말(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이 그렇고,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가득찬다’는 ‘도라지 타령’의 노랫말이 그렇다.

아무리 불러 보아도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불린다.

영국민요 ‘런던 다리 떨어진다(London bridge falling down)’가 매우 암시적인 시사를 던진다.

런던 다리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런던 다리 떨어진다, 아이고, 우리 아가씨(My fair lady)……

노랫말은 단순하기 그지없는데도 영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런던 다리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게 떨어졌으니 우리 ‘아가씨’는 과연 큰일 아닌가?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독하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랫말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민요가

줄기차게 불리는 것은, 그 노랫말이 생산적인 성적 행위를 암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안 삼거리’의 노랫말(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이 흥……)도 나는 그렇게 푼다.

‘삼거리에 늘어진 능수버들’에서 나는 ‘벌거벗고 누운 번듯이 드러누운 여성의 치모’를 상상한다.

신화는 성적인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상징적인 의미를 빌려 행간에다 녹여 놓을 뿐이다.

옛 이야기꾼들은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왼, 비속한 희시(戱詩) 한 구절이다. 지은이는 잊었다.

나는 이 시에서도 한 엉큼한 남성이 밤과 버들을 빌려 그려내는 여성 성기의 속성을 읽는다.

“북산의 누런 밤은 작대기로 때리지 않아도 절로 벌어지고
남산의 푸른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홀로 습하다

(北山黃栗不棒石木 북산황률불봉탁
南山靑柳不雨濕 남산청류불우습)”

김재용(원광대), 이종주 교수(전북대)가 함께 펴낸 ‘왜 우리 신화인가’에 놀랄만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만주족의 창세 신화 중에 ‘천궁대전(天宮大戰)’, 즉 하늘에서 벌어진 큰 싸움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아홉 개 ‘모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진족 토착어인 ‘모링’은 ‘차례’, 혹은 ‘회(回)’를 뜻한다고 한다.

‘모링’은 ‘산모퉁이 휘어둘린 곳’을 뜻하는 우리말 ‘모롱이’를 연상시킨다.

경상도 북부에서는 ‘산 모롱이’를 ‘산 모링이’라고 한다.

이 ‘천궁대전’에 따르면 이 세상에 가장 먼저 있었던 것은 물거품이다.

바로 이 물거품에서 ‘아부카허허‘가 탄생한다. 여성인 아부카허허는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생명의

원초적 시원이다.

‘아부카’는 하늘, ‘허허’는 여성을 뜻한다. 바로 하늘 여성이다.

그런데 이 ‘허허’는 ‘여성 성기’와 ‘버드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생명이 여성의 성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에 따라

창조 여신 ‘아부카허허’의 이름은, ‘하늘 여음(天女陰 천녀음)’, ‘하늘 버들(天柳樹 천류수)’, ‘하늘 어머니(天母神)’

라는 3중적 의미를 지닌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주족 시류 풍속 중의 하나라는 ‘버들쏘기(射柳 사류)’다. 

무당이 큰 산의 오래된 버드나무에서 아홉 가지의 싱싱한 버들가지를 꺾어 와 높은 나무에 묶으면 마을 사람들이

돌화살을 교대로 쏘는데, 버들가지를 맞추는 사람이 바로 창조 여신 ‘아부카허허’의 간택을 입는다는 것이다.

고주몽이 활을 잘 쏘아 백보(百步) 떨어진 곳에 늘어진 버들잎을 맞추었다는 설화는,

그러면 고주몽의 활솜씨를 과장한 것이 아닌가?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은 ‘버들꽃’ 부인이 ‘해를 품고 주몽을 잉태하여’, ‘왼쪽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존귀한 자는 남성이 뿌린 씨앗에서 잉태해서는 안 되는가?

신화는 남성의 씨앗을 행간에다 묻는다. 해모수가 머리에 쓰고 있었다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까마귀 깃털 관

(烏羽冠 오우관)’, 해모수가 허리에 차고 있었다는 역시 태양신을 상징하는 ’용광검(龍光劍))’이 바로 남성 성기의

은유다. 바로 그 빛줄기가 여성 성기의 상징일 수 있는 ‘버들꽃’, 혹은 버들잎에 꽂힌 것이다. 

존귀한 자는 여성의 성기를 통해 나올 수 없는 것인가?

신기하고 이상한 사적을 꾸미는 이들은 이렇듯이 ‘왼쪽 겨드랑이’를 좋아한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이 선도산 성모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일연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야 부인의 왼쪽 옆구리로 나왔다는,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좌액탄생설(左腋誕生說)을 흉내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브 역시 아담의 옆구리 ‘출신’이다. 하느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으니’,

부처님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천지 창조 시대에 벌써 전례가 있었던 셈이 아닌가?

주1)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뿌리내리는 버드나무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좁으장하고 갸름한 버드나무 잎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이기도 한다.

 

 

 

19. 고주몽이 파렴치범이라니

 

고구려 건국 신화를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동명신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몽신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명왕’은 고구려의 개조(開祖) ‘고주몽’이 사후에 얻은 시호(諡號)인 만큼 이 둘은 동의어다.

따라서 어떻게 부르든 상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까닭은 고구려 시조가 아닌, 부여 시조 ‘동명’의 ‘동명신화’가 독립해서 존재

하기 때문이다.

동명신화는 중국의 역사서 ‘논형’에 실려 전하는데 내용은 주몽신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적인 신화인만큼 우선 주인공의 이름이 ‘동명’과 ‘주몽’, 세운 나라 이름이 ‘부여’와 ‘고구려’, 이렇게 서로 다르다.

어머니의 신분도 서로 달라서 동명의 어머니는 궁녀이지만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河伯), 곧 강신(江神)의 딸이다. 

동명은 하늘의 기(氣)에 의해 잉태되고, 주몽은 햇빛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점, 다시 말하면 전자는 천기감정(天氣感精)

모티브, 후자는 일광감정(日光感精) 모티브라는 점에서 다르다.

동명은 어머니의 태를 열고 나온 태생(胎生)이지만 주몽은 알 모양으로 태어나는 난생(卵生)이라는 점도 다르다.

이렇듯이 서로 다르면서도 뼈대는 거의 동일한 신화가 바로 ‘상사신화(相似神話)’인데, 신화는 어차피 ‘상사’의 운명

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몽신화가 후대 모듬살이의 여러 가지 문화 요소를 첨가한 ‘동명신화’의 ‘고구려 버전(version)’이라고 해도 주몽

신화에 대한 폄훼가 되지는 않는다.

신화는 사람이 만든 ‘이야기’인 만큼 세월의 흐름과 함께 첨삭을 통한 육화(肉化)와 육탈(肉脫)의 프로세스를 겪는다.

고대신화는 첨삭의 프로세스 끝에 남은 화석(化石)이다.

동명신화와 너무나도 닮은 꼴인 주몽신화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의 분주(分註), 즉 본문 사이에 가는 글씨로 적어

넣은 풀이말에 가장 자세하게 실려 있다.

이규보는 ‘구삼국기’를 그 출전으로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동명왕편’의 분주 행간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은 신화가 펼쳐진다.

“금와왕이 버들꽃 처녀를 깊은 방에 가두자 햇빛이 여자를 비추고 여자는 햇빛으로 인하여 태기를 보였다.

이윽고 낳으니, 다섯되들이는 실히 될 알이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이는 상서롭지 못하다.’
금와왕은 부하들을 시켜 그 알을 마굿간에 두게 했다. 하지만 말들이 그 알을 밟지 않았다.

이번에는 부하들을 시켜 깊은 산에 버리게 했다. 그러자 모든 짐승이 둘러싸고 지켰다.

구름이 끼고 음산한 날에도 알에는 항상 햇빛이 비쳤다.”

이규보는 위와 같은 내용을 분주로써 소개하고는 다음과 같이 운문으로 노래를 이어나간다.

“이것이 어찌 사람일까 보냐, 하고(차개인지류·此豈人之類)
마굿간에 두었더니(치지마목중·置之馬牧中)
여러 말들이 밟지 않았고(군마개불리·群馬皆不履)
깊은 산속에 버렸더니(기지심산중·棄之深山中)
온갖 짐승이 옹위하였다(백수개옹위·百獸皆擁衛).”

이렇게 되자 금와왕은 알을 도로 가져오게 하여 어미인 ‘버들꽃’에게 보내었다. 마침내 알이 갈라지자 한 사내

아이가 나왔다. 나온 지 한달이 지나지 않아 말을 온전하게 했다. 하루는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세요.”

어머니가 대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가 파리를 쏘는데 쏘는 족족 명중했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일러 ‘주몽(朱蒙)’이라고 했다(아이는 이 때부터 ‘주몽’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장성하니 온갖 재주에 두루 뛰어났다. 금와왕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다. 이 일곱 왕자는 늘 주몽과 함께 놀고

함께 사냥했다. 그런데 왕의 아들들 및 그들을 따르는 부하 40명이 잡은 사슴은 겨우 한 마리인데 견주어, 주몽이

활을 쏘아 잡은 사슴은 여러 마리였다.

왕자들이 시기하여 주몽을 붙잡아 나무에 묶어두고는 사슴을 빼앗아 갔다. 주몽은 묶인 채로 나무를 뽑아 버렸다.

태자 대소가 왕에게 은밀히 아뢰었다.

“주몽은 신통하고 용맹한 장사인데다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찍 손을 쓰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자, 이제 주몽은 큰일났다. 이제 주몽은 영웅신화의 한 굽이인 ‘시련과 도피의 굽이’로 들어서야 한다.

영웅은 이 시련의 기간과 도피의 기간을 이긴 자를 일컫는 만큼 주몽도 이 시련을 거뜬하게 이겨낼 터이다.

‘주몽’이 ‘활 잘 쏘는 자(善射)’를 뜻한다는 말은 여러 문헌에 실려 있다. ‘논형’에 ‘동명은 활을 잘 쏘았다(東明善射)’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에는 ‘부여 사람들은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했다(扶餘俗語善射者爲朱蒙)’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동명왕편’은 주몽이 어떻게 활을 그렇게 잘 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활솜씨를 연마한 과정을 밝히고

있지 않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명궁 후예(后예羽) 이야기 한 대목을 읽어보자.

요 임금 시절에 하늘에 태양이 열 개나 나타나 땅을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임금이 하늘에 빌자 하늘나라 황제가, 천상의 명궁 후예를 내려 보내었다. 후예가 인간 세상에 내려 열 개의 해를

향해 차례로 살을 쏘았다. 화살 맞은 해가 금빛 털을 흩날리며 땅에 떨어지는데, 이 때 떨어진 것이 바로 ‘다리 셋인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다. 후예 이야기 끝부분에 활 잘 쏘는 ‘봉몽(逢蒙)’이 등장한다.

‘방몽’이라고 한 책도 있다. 하여튼 후예는 봉몽에게 활쏘기의 첫걸음을 이렇게 가르친다.

“깜박거리지 않도록 눈을 단련한 연후에 나에게 오라.”

봉몽이 베틀 발판을 오래 바라봄으로써 눈을 단련하니 마침내 쇳조각이 다가와도 눈을 깜박거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후예는 다시 가르친다.

“작은 물체가 크게 보이도록 눈을 훈련한 다음에 나에게 오라.”

봉몽은 쇠꼬리 털에다 이(蝨) 한 마리를 매달아 놓고 매일 바라보았다. 세월이 지나자 마침내 이가 수레바퀴만하게

보였다. 봉몽이 다시 찾아가자 후예는 가진 재주를 모두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배워도 봉몽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궁 후예를 이길 수 없었다. 질투심을 느낀 봉몽은 후예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여러 차례 활을 쏘나 후예가 번번이 피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자 봉몽은 마침내 복숭아 나무 몽둥이

로 후예를 때려죽였다.

이 이야기가 실린 원가(袁珂)의 ‘중국신화전설’(전인초 김선자 역·민음사)에 놀라운 각주가 붙어 있다.

“…유의해야 할 논의 중의 하나가 봉몽이 바로 주몽, 즉 동명왕이라는 주장이다…. 주몽과 봉몽은 이름도 서로 비슷

하고 또 활도 잘 쏘는 것으로 보아 한가지 신화가 분화된 것 같다….”

우리가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 부르는 주몽이 중국 신화에 파렴치범으로 그려진 것(혹은 그려질 가능성이 있음)

을 보라. 우리가 ‘동명’과 ‘주몽’을 아우르는 ‘동명성왕 신화’를 품어야 하는 소이연이다.

주1.‘후예사일’, 즉 ‘후예가 태양을 쏘다’. 땅에 떨어진 세마리의 까마귀는 세개의 태양을 상징한다.

아직은 가설이기는 하나 주몽이, 이 중국의 천신(天神)을 죽인 파렴치범일 수도 있다니….

 

 

 

 

20. 신화는 만화가 아니지만

 

만화에서 본 한 장면이다. 운전 기사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고, 사장은 뒷 자리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다.

그런데 달리던 자동차의 오른쪽 앞바퀴가 빠져 저혼자 굴러가 버린다. 자동차가 오른쪽 앞으로 기울어진다.

자동차가 달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운전 기사는 장갑 상자에서 낚싯대를 꺼낸다.

그리고는 낚시 바늘을 던져 오른쪽 앞바퀴의 굴대를 낚아채고는 지그시 당긴다. 기울어져 있던 자동차가 바로 선다.

운전 기사는 한 손에 낚싯대를 든 채 지그시 당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 자동차를 운전한다.

운전 기사가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 있던 사장,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내뱉는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러자 운전 기사가 웃으면서 되묻는다.

“만화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신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만화에서 그렇듯이 신화에서도 안 되는 게 없다. 문제는, ‘어떻게’ 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화의 ‘되게 하는 수단’은 만화가 개인의 아이디어다. 만화가의 아이디어는 대개의 경우 일회적이다.

하지만 신화의 ‘되게 하는 수단’은 그 신화가 속한 모듬살이의 집단 무의식, 혹은 보편 무의식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신화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신화에 ‘살아 남은 것’은 그 신화가 속한 민족의 집단 보편 무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토끼는 거북을 이겨낼 수 없다

‘동명왕편’을 읽어 보자.

“(왕자들이 주몽의 용맹과 비상한 눈초리를 시기하여 일찍 도모할 것을 주장하자) 왕은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했다. 주몽은 마음에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는 천제(天帝)의 손자인데 남을 위하여 말이나 기르고 있으니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합니다.

남쪽 땅으로 내려가 나라라도 세우고 싶지만 어머니가 계셔서 헤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말했다.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말아라. 나 역시 고민을 거듭하던 일이다. 내 들으니, 장사가 먼 길을 가려면 좋은 말이 있어야

한다더라. 내가 말을 고를 줄 안다.’

그러고는 긴 채찍을 들고 마굿간으로 가서 여러 마리의 말을 어지럽게 때렸다. 말들이 모두 놀라 달아났다.

그 중의 한 마리, 붉은 과하마(果下馬)는 두 길이나 되는 가로장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과하마’는 타고도 과실 나무 가지 밑을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작아서 얻은 이름이다. ‘

붉은 과하마’는 ‘삼국지’의 적토마를 연상시킨다. 적토마도 키가 아주 작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명왕편’의 저자 이규보는 “‘통전(通典)’에 따르면 주몽이 타던 말은 모두 과하마라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몽은 이 말을 차지하기 위해 기계(奇計)를 쓴다. 그 말 혀 밑에다 바늘을 꽂아놓은 것이다.

다른 말은 모두 잘 먹고 나날이 살쪄 가는데 붉은 과하마만은 혀가 아파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나날이

여위어갔다. 왕이 말 먹이는 곳으로 와 보니, 주몽이 기른 말은 모두 살쪄 있는데 한 마리만은 심하게 여위어

있었다.

왕은 그 말을 주몽에게 내렸다. 말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 주몽은 그제서야 붉은 과하마의 혀 밑에서 바늘을 뽑아

내고 제대로 먹였다.

“주몽은 어진 사람 셋, 즉 오이, 마리, 협부를 은밀히 사귀었다. 세 사람은 모두 지혜로웠다.

주몽은 이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엄체수에 이르렀다.

엄체수는 압록강 동북쪽에 있는 강이었다고 한다. 뒤에서는 금와왕의 군사가 주몽을 추격해오고 있었다.

건너려 해도 배가 없었다. 주몽은 말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개연하게 탄식했다.

‘나는 천제의 손자이자 하백(江神)의 외손자입니다.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바라건대 하늘과 땅은 나를

위하여 배다리를 주소서.’

주몽은 이 말 끝에 활을 들어 강물을 쳤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스라엘의 ‘신화(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구약성서 ‘출애굽기’를 펴고 14장 21절

부터 읽어 본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홍해에 이른) 모세가 팔을 바다로 뻗치자, 하느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갈라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이집트 인들이 뒤쫓아 왔다.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그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 섰다. 모세는 팔을 바다 위로 뻗쳤다.

말이 새자 바닷물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물결이 밀려 오며 병거와 기병을 모두 삼켜 버렸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바다에 들어섰던 파라오의 군대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아론의 누이이자 예언자인 미리암이

노래를 메겼다.

‘야훼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쳐넣으셨다.’

천제 해부루의 손자이자, 머리에는 까마귀 깃털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찬 태양신 해모수의

아들인 주몽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주몽이 활로 강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와 다리를 만들어준다.

예언자 미리암이 하느님을 노래했듯이 이규보도 동명왕을 노래한다.

“활을 잡아 강물을 치니(조궁타하수 操弓打河水)
물고기와 자라 무리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맞추어(어별병수미 魚鼈騈首尾)
우뚝한 다리를 이루니(홀연성교제 屹然成橋梯)
비로소 건널 수 있었구나(시내득도의 始乃得渡矣)
조금 뒤에 쫓던 군사 이르러(아이추병지 俄爾追兵至)
다리에 올랐으나 다리가 바로 무너지더라(상교교선비 上橋橋旋土己)”

하필이면 자라(거북)인가? ‘자라 자지, 골나면 한 소쿠리’라는 우리 속담이 암시하듯이 자라(거북)는

우리 정서에 익숙해진 남성 성기의 상징이다.

가락국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구지가(龜旨歌)’의 노랫말(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을 나는 ‘발기하지 않으면 잘라버리겠다’로 읽는다. 자라(거북)는 동시에 ‘튼튼한 기반’의 상징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믿는 세계의 중심인 그들의 우주수(宇宙樹)는 거북 등에서 자란다.

중국 신화도 거북을 대지의 받침대로 삼는다.

거북의 네 다리는 세계의 네 구석(四遇)이다.

중국인들의 우주산(宇宙山)인 봉래(蓬萊)를 받치고 있는 것도 거북이다.

‘토끼와 거북’ 우화에서도, ‘별주부전’에서도 토끼는 결코 거북을 이겨먹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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